새로운 일의 시작과 마무리가 교차하는 1월, 작은 쉼표를 그려야 할 사무실의 공기가 예년과는 달리 숨 가쁘게 돌아간다. 재난시대가 불러온 변화의 바람은 문화예술 현장의 담론과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사업 담당자들은 기존의 고착화된 사업의 틀을 해체하여 변화하는 문화환경에 대응할 수 있는 형태로 재편하는 데 여념이 없다. 춘천문화재단에서도 지난해 ‘더 문화로, 더 지역으로’ 향하는 비전 재수립을 통해 문화예술이 단순히 지원 영역이 아닌, 지역 문화안전망으로 가동될 수 있는 기반 조성을 위한 준비에 착수했다. 지금까지 추진해온 모든 일에 대한 관점과 태도가 재검토되는, 그야말로 전환이 요구되는 시점이 아닐 수 없다.
변화를 맞이할 준비, 더 지역으로
재난시대가 역설적으로 던진 유의미한 질문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우리는 과연 변화를 맞이할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는가?”일 것이다. 4차 산업혁명과 같은 필연적 변화도 마찬가지이다.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 우리는 이미 저마다의 방식으로 공동체 회복과 일상의 전환을 꾀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한 면에서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지난 12월 11일, 12일에 개최한 〈2020 지역 연계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 통합결과공유회 ‘문화예술교육계(契)’〉의 일환으로 열린 지역 문화예술교육 포럼 ‘모여보계(契)’는 우리가 맞닥뜨린 시대의 변화상을 요약하고 대응 전략을 안내하는 충분한 길잡이가 되어주었다. 특히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모든 것이 멈췄다고 생각한 시점에, 유연한 사고와 해석을 바탕으로 지역에 필요한 대안적 문화 활동을 이어나간 지역 교육 주체의 예술행동 사례는 여느 때보다 빛이 났다. 실무자로서 이번 ‘모여보계(契)’ 포럼을 주목한 부분도 바로 ‘발견, 궁리, 실행, 리뷰’ 네 가지 키워드를 통해 현장의 고민과 다양한 해석, 성찰을 확인할 수 있어서이다.
첫 번째 ‘발견’ 섹션에서 충북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는 공간, 지역, 현장 등을 주제로 예술가와 시민이 함께 숲, 놀이터 등 지역 문화자원을 적극 활용하여 다양한 형태의 문화예술교육 거점을 재생성하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일상 공간에 대한 다층적 해석, 특히 특정 시설과 공간이 아닌 지역 곳곳을 문화적 장소로 활용하는 방식은 춘천의 활동 사례와도 닮아 있었다. 춘천에서도 지난해 코로나로 인해 문을 걸어 잠근 학교와 문화기반 시설을 대신해 단계적으로 활동 공간을 다각화하기 시작했고, 그 대안 시설로, 다시 마을의 가장 가까운 공간으로 스며들어 도심의 문화권을 외곽으로 확장하는 데 힘을 쏟았다. 그 결과 기존 문화예술교육 데이터베이스 안에 존재하지 않았던 다양한 교육 주체와 새로운 수요자가 발견되었고, 강사와 프로그램에 치우쳐 있던 교육 형태를 재편해 교육대상과 주거지 특성 등을 고려한 마을 단위의 교육(활동)을 실행하게 되었다. 장르와 장르, 학습자의 예술적·감각적 경험을 통합하는 데 그쳤던 예술교육이 삶의 현장을 만나 마을의 돌봄 문제까지 인식하게 된, 문화예술교육의 전환 사례로 볼 수 있다.
충북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에서 비대면 시대를 맞이하여 체험, 전시, 공연 등을 온라인 콘텐츠로 다변화한 과정도 흥미로웠다. 한편 마을공동체 복원을 위해 지역 안으로 세밀하게 들어가 지역 예술가와 마을 구성원이 삶터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해결하는 과정이 훨씬 설득력 있게 다가온 것은 지금 현재 지역이 갖고 있는 돌봄, 교육, 안전, 먹거리 등의 문제가 재난적 위기상황에서 더욱 두드러지고 있기 때문인 듯하다. 춘천에서도 시민 개개인이 삶과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시민성과 숙의민주주의의 본질에 대한 물음도 재난 앞에서 더욱 본격화되는 상황이다. 마을공동체, 주민자치회, 주민참여예산 등 분권적·자율적 사회구조가 가속화됨에 따라 시민의 깊이 있는 변화 또한 기대된다.
전환을 위한 궁리와 실행 그리고 비평
두 번째 ‘궁리’ 섹션에서 4차 산업혁명과 지역 자원을 연결한 제주창의예술교육랩 또한 전환의 관점에서 매우 흥미로웠다. 지역 문화자원과 연계한 융·복합 문화예술 콘텐츠 개발 방식은 관성에서 벗어난 주도적 실험을 펼쳤다는 점이 관심을 끌었다. 인문, 생태 등을 포함한 지역 자원을 연구·결합·실험했을 뿐 아니라 지역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가 전제되어 있었으며, 그간의 연구 내용과 시연 프로그램을 소통 플랫폼을 통해 공유하는 것까지 모든 과정이 실체적 탐구와 활용, 따뜻한 연결로 느껴졌다.
춘천에서도 기존 문화예술교육 네트워크 안에 존재하지 않는 다양한 문화시민 영역의 숨은 문화예술인을 발굴하고 이들을 통해 지역 문화예술의 다양성을 견인해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코로나19 상황과 맞물려 교·강사의 활동영역을 학교나 센터 등의 기존 거점 공간 중심에서 마을 단위 커뮤니티로 확장하고 이들의 역할을 마을교사(코디네이터)로 전환하는 주체 전환 과정을 추진하고자 했고, 점차 교육 프로그램 단위가 아닌 지역 교육환경을 고민하는 형태로 전환하게 되었다. 춘천시마을자치지원센터와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지역의 다양한 분야의 활동 주체가 모여 배움터를 만들고 함께 머리를 맞대보기로 했다. 특히 지난 2년간 주민총회에서 탈락한 마을 의제 중 환경·돌봄·안전 문제 등 문화적 되살림이 가능한 의제 또는 주제 중심으로 통합활동을 기획하는 워크숍을 추진하였고, 배움과 실행 과정으로 ‘가치 안은 배움터-시민이 바꾸는 지역실험’을 연결하였다. 예술가, 마을활동가, 주민자치위원이 팀을 구성하여 제주 창의예술교육랩과 유사한 성격의 지역실험을 추진 중이다. 물론 제주 사례처럼 기술과 인문 콘텐츠가 결합한 사례는 아니지만 지역의 문제를 문화적 방식으로 재해석하고 실행하고 있다는 점, 다층적 영역의 교육 주체가 지역 특성을 반영한 풀뿌리 문화예술교육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활동의 유사성이 보인다.
세 번째 ‘실행’ 섹션은 생애전환 문화예술교육 관점에서 많은 시사점을 주었다. 그동안 기초문화재단은 「문화예술교육 진흥법」이 시행된 후 약 15년간 중앙의 문화복지정책 기조를 수용하여 특정 대상(사회적, 경제적 소외계층)의 교육 사업을 추진해왔다. 이후 문화체육관광부의 ‘문화예술교육 5개년 종합계획(2018~2022)’ 비전에 공감하며 삶과 함께하는 문화예술교육으로 전환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개인의 생애주기별 수요에 기반한 보편적 문화예술교육에 방점이 찍혀있다. 사실 ‘전환기’ 대상의 관점에서 문화예술교육이 어떻게 세심하게 접근해야 할지 고민이 많은 지점이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서 ‘생애전환 문화예술학교’ 추진단장을 맡고 있는 고영직 문학평론가는 신중년 세대가 일종의 편견과 선입견이 충분히 고착화된 상태이며 살던 대로의 관성을 깨주는 행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화예술교육이 기존의 강좌와 기능 중심에서 벗어나 교육 대상으로 하여금 서사가 있는 삶, 자율적인 삶, 당사자 주도의 무형식의 배움을 경험할 수 있도록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신중년이 꼰대가 아닌 꽃대로, 받쳐주는 삶으로의 전환 속에서 삶의 회복력을 갖게 하는 것, 이것이 가능하려면 현재 문화예술교육 현장의 고민이 훨씬 깊어져야 한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사실 기초문화재단은 무형식의 배움 콘셉트가 익숙하지 않다. 보통 사업에는 운영지침이나 가이드라인이 존재하기 때문에 조건만 충족되면 문화예술교육이 이루어졌다. 이미 예술인 교·강사는 그 틀에 익숙하다. 대상과 환경에 맞추어 세밀하게 세팅되기보다는 표준화된 교안을 각색해서 활용하는 방식이었다. 그러한 관성으로는 전환기 대상의 필요와 욕구에 충분히 대응할 수 없음을 알고 있었지만 대응은 미비했다. 아마도 올 한 해는 여러모로 생애전환기 대상이 스스로 삶을 회복하는 무형식의 배움에 대한 설계가 구체화될 듯하다.
마지막 ‘리뷰’ 섹션에서도 문화예술교육 틀 깨기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오랜 기간 문화예술교육 기반구축 사업을 지켜본 임재춘 커뮤니티 스튜디오 104 대표는 정책적 가이드라인 안에 프로그램, 차시 방식, 단체 지원, 횟수, 의무사항 등 많은 제약사항이 존재했다고 평가했다. 덧붙여 지역문화예술교육을 재정의·재구조화해야 한다는 말에 깊이 공감했다. 신규단체와 기존단체에 대한 지원방식, 지원자 역량 강화, 콘텐츠 개발, 연구, 새로운 교육모델 발굴, 적용 등 사실 문화예술교육의 재구조화를 위해서 고민해야 할 과제들은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와닿았던 부분은 수많은 교육 결과자료를 검토해도 정확한 데이터나 통계가 뒷받침되어 있지 않아 사업 혹은 경향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파악하기가 어려웠다는 지점이다. 사업을 추진했지만 근본적인 질문인, 이 사업을 통해서 우리 삶의 태도와 방식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평가한 데이터와 엄격한 비평 과정이 생략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변화의 필요성에는 모두 동의하지만 실천적 경험의 레퍼런스가 쌓여있지 않기 때문에 관성적 매너리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은 사실 실무자인 나로서도 공감되는 부분이다. 실무자 또는 이해관계자가 조금 더 명확하게 문화예술교육이 지닌 문제적 상황을 인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춘천 또한 관련 주체 간 밀도 있는 대화를 통해 지역의 상황과 욕구에 대한 진단을 거쳐야 하겠다.
무형식의 배움으로, 생활세계와 더 가까이
코로나 팬데믹이 가져온 문화 현장의 고민은 이제 새로운 문화예술 환경 속에서 논의되고 이해될 필요가 있다. 이번 포럼에서 제시한 ‘발견, 궁리, 실행, 리뷰’ 네 가지 키워드는 사실 실무자에게는 고민의 연속성, 수레바퀴와 같다. 하지만 이제 다시 돌게 될 바퀴는 예전과는 다른 축을 갖게 될 듯하다. 문화예술교육은 이제 변화하는 문화 환경에 대응할 뿐 아니라 사회의 다양한 현상 속에서 조금 더 생활세계에 가까운 무형식의 배움으로 전환되어야 하고, 기초문화재단 또한 단순 향유와 참여 등 성과지표를 넘어서 적극적인 사회연결망으로서의 역할을 주도할 필요가 있다. 이번 포럼이 진행되는 동안 가장 큰 울림으로 다가온 것은 ‘관성을 깨라’ ‘있는 그대로 살지 말라’ 등의 화두였다. 다시 문화 현장이 무엇을 고민하고 답해야 할지 던져진 숙제다. 포럼에 참여했던 모든 사람이 함께 새로운 변화의 가치를 발견하고 궁리하고 실행하고 또 다시 비평할 수 있기를. 잠시 멈췄던 문화예술교육 수레바퀴의 축을 재정비하고 다시 한 번, 힘차게 돌려야겠다.
- 지역연계 문화예술교육 포럼 ‘모여보계(契)’ ※ 온라인 영상보기
- – 일시/장소 2020. 12. 11(금) 10:30~12:30 / 12층 Kaces hall
- – 진행지기 : 김소연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시민교육본부 본부장
- – 모임지기 : 전영주 충북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팀장, 유용석 제주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팀장, 고영직 문학평론가, 임재춘 커뮤니티 스튜디오 104 대표
- 강정지
- 춘천문화재단 문화예술교육팀 과장
stop0130@ccc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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