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예술은 그것의 생산과 수용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어떤 관계를 형성한다는 점에서 사회적이다. 주지하다시피, 서로 다른 역할을 수행하는 예술가들은 여러 상호작용 속에서 작품을 만들어간다. 심지어는 홀로 작업을 하는 예술가조차 창작에 사용하는 온갖 재료를 만드는 사람들과 연관되어 있고, 그것을 관객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협력하는 모든 이들과 관계 맺는다. 그리고 이러한 창작의 결과물은 나누면 나눌수록 더 큰 만족감을 불러일으켜 ‘소유’보다는 ‘공유’의 감각으로 사람들을 이끌어가게 마련이다. 이때 예술가들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사회 속에 자리 잡고 그들이 믿는 예술의 가치를 구현해나가므로, 한 사회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에 따라 그들이 예술을 실천하는 방식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여기, 더욱 많은 이들의 참여를 통해 덜 차별적이고 더 공평한 세상을 만들어가려는,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고 모두에게 주어져야 할 목소리를 복원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21세기 한국의 예술가들에 관한 이야기다.
사회적 환기와 현장 기록으로서의 예술
2020년 여름, 아현동에 있는 복합문화예술공간 행화탕에서는 20명의 음악가와 13명의 시각예술 작가가 참여한 공연과 전시가 《노량진: 터, 도시,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사람들을 만났다. 그곳엔, 노량진수산시장의 현대화사업으로 인해 오랜 세월 꾸려온 삶의 터전을 잃고 공권력의 물리적 폭력 앞에 무너진 시장 상인들의 삶이 고스란히 들어와 있었다. 그들의 몸과 말, 마음의 이야기는 사진과 그림으로 남았고, 매일 저녁 노래와 영상이 되어 퍼져나갔다. 예술가들은 상인들의 투쟁을 널리 나르고 밝혀지지 않았던 투쟁의 이면을 기록으로 남겨 그들과 연대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은 강제 철거의 현장을 봐왔고 그로 인한 희생에 분노하고 애도했지만, 여전히 물대포와 최루액을 사용하는 철거 현장이 있다는 사실은 예술가들을 통해 바깥으로 알려지기까지 그다지 세간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다양한 사회 문제에 힘을 보태기 위해 느슨한 동료 집단으로 작업해오던 예술가들이 ‘예술해방전선’이라는 이름을 걸고 모인 것은 2019년 여름. 그해 겨울 시장에서 쫓겨난 상인들이 노량진역 1번 출구 앞에 노점상을 차리면서부터 그들의 본격적인 활동은 시작되었다. 예술가들은 매주 금요일 오후 6시 해방문화제를 열었고,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되면서 다른 연대의 방법을 찾아 촬영 장비를 들고 현장으로 나갔다. 그 많은 사연을 보고 듣고 그것을 각자의 창작을 통해 작품화하기까지, 예술가들이 상인들과 함께 한 시간은 그 자체로 하나의 창작 행위이자 억압적 사회에 대한 투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 전개되는 이들의 활동은 곧잘 잊히곤 하는데, 기실 그곳에 있는 당사자들이 아니고서 예술가들의 노고를 알기는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현장의 예술가들은 그렇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기꺼이 투쟁 현장의 안팎을 넘나드는 매개자가 되기를 자처한다.
  • 최인기, <노랑진수산시장>, 《노량진: 터, 도시, 사람.》(2020)
    [사진제공] 예술해방전선
  • 건주, <노량진수산시장 상인>, 《노량진: 터, 도시, 사람.》(2020)
    [사진제공] 예술해방전선
예술, 자기 목소리 찾기의 과정
세계적인 기타 제조업체 콜텍이 해고 노동자들의 복직에 합의했다는 소식이 들려온 것은 지난해 봄. 2007년, 인천과 대전의 노동자들이 처음 공장에서 내몰린 이래 무려 13년의 세월이 흐른 후였다. 국내 최장기 기록으로 언급될 만큼 그들의 투쟁이 너무나도 길고 지난했기에, 미래에 닥칠 경영상의 위기를 우려해 사측의 손을 들어준 법원의 판결이 너무나도 기막혔기에, 이 밖에도 여러 다양한 이유로 콜텍 노동자들의 투쟁은 우리 사회에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경종을 울렸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들은 콜밴의 작곡가이자 연주자이고, 노래를 부르는 뮤지션으로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기타를 만들던 노동자들이 직접 기타를 연주하게 되기까지 그들의 곁에는, 실제 그들이 만들었을 기타를 사용하던 인디 음악인들이 함께 있었다. 홍대 앞 클럽 빵에서는 2008년 12월부터 이후 10년 가까이 이어질 수요문화제가 시작되었고, 결국 콜텍의 노동자들은 밴드를 결성해 자신들의 이야기를 노래하고 연주하며 투쟁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이후에도 그들은 〈구일만 햄릿〉이라는 연극의 주인공이 되어 셰익스피어의 비극 대사에 그들의 목소리를 담아 관객 앞에 선보였고, 농성 현장의 이야기를 써 내려간 일기는 『우리에겐 내일이 있다』(2016)라는 한 권의 책이 되어 세상에 나왔다. 특별한 재능을 가진 자들이 독점하지 않는 것으로서의 예술, 자신의 몫을 말하고 그것을 들리게 하는 것으로서의 예술을 실천하는 모든 과정에서 콜텍 노동자들의 참여를 지지하고 연대한 것은, 단연 현장의 예술가들이었다. 폐쇄된 인천 공장에 모여 그곳을 작업실 삼아 그림을 그리고, 전시와 페스티벌을 기획하면서 노동자들과 함께 생활하던 시각 미술 작가들이 있었고, 그들의 투쟁 현장을 기록하고 알리는 것으로 자본의 민낯을 공개하고 경찰 권력과 사법 권력의 실상을 파헤치는 영상 작가들이 있었다. 콜트콜텍의 투쟁에 함께 한 예술가들은 그들의 창작 행위를 통해 노동자들과 새로운 가능성의 공동체를 만들어나갔고, 노동자들 자신이 오롯이 하나의 주체가 되어 자기 예술을 할 수 있도록 그들의 경험을 나누고 서로에게 영감이 되어주었다.
사회의 다양한 상황과 맥락에 각자의 방식으로 개입하면서도, 실질적인 사회변화를 도모하고 추동하려는 예술가들의 움직임은 이 짧은 지면에 미처 다 언급하기 힘들 만큼 많고도 많다. 우리는 두리반과 용산 참사와 제주 강정 해군기지와 밀양 송전탑 농성장과 그 밖의 숱한 현장에서 예술가들의 흔적을 만난다. 그것은 그만큼 여러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방증하기도 하고, 예술이 특정한 한 가지 목적에 봉사하거나 정해진 틀 안에서 생산되고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는 새삼스러운 진리를 환기하기도 한다. 예술가들은 서로 다른 개인적 이유로 이러한 작업에 참여하지만, 현장을 통과해가면서 더 많은 이들과의 관계 맺기를 통해 예술을 거리로, 광장으로 실어 나른다. 그리고 그들이 하는 예술이 투쟁의 당사자들과 권력 사이에 어떤 의미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성찰하고 행동해나간다.
코로나가 일상이 되어버린 현실, 뉴노멀을 이야기하는 시대. 앞으로 우리가 살아가야 할 세계가 어떤 곳일지는 알 수 없지만, 불확실성 가득한 사회의 예술가들은 언제고 그들만의 예술을 탐색할 것이다. 따라서 무엇이 예술인지, 예술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관한 기존의 범주나 관습을 해체하고, 예술가들이 사회와 관계 맺는 방식으로부터 동시대의 예술을 새롭게 구성해가는 일은, 이미 우리가 외면할 수 없고 풀어야만 하는 과제가 되어 버렸다. 비가시적이었던 것을 가시적인 것으로 만들어가는 실천,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서로 다른 위치성을 가진 개인들이 터득해가는 상호 배움은 지금, 이 시각에도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예술에 관해 이야기하고, 예술을 통해 변화해가고, 예술 속에서 관계 맺으면서 만들어지는 가치, 우리는 예술가의 사회적 참여와 연대 속에 그 또 다른 얼굴을 본다.
김슬기
김슬기
창작을 위한 읽기와 기록을 위한 쓰기를 한다. 공연예술의 창작과 수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가치에 주목한다. 일상과 연극, 연극과 사회가 만나는 방식 및 예술의 사회적 가치와 예술가의 역할에 대해 고민한다. 공연 드라마투르그를 비롯해 각종 연구를 병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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