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만약 방금 어떤 공연을 보고 감동하며 극장을 나섰다면, 서둘러 핸드폰을 켜고 방금 관람한 작품의 정보를 찾아볼 것이다. 이때 당신이 선택하는 검색어는 공연 제목일 수 있고, 공연에 등장하는 배우이거나 연출가 혹은 작품의 원작인 희곡, 소설, 영화일 수 있으며, 공연에서 들었던 음악일 수 있고, 소품일 수 있으며, 무대 자체이거나 조명일 수 있다. 사실 공연이 아니더라도, 예술작품에 감동하였다면 이에 대해 더 알고자 할 것이고 자신의 관심사에 따라 다양한 정보를 검색할 것이다.
자료 저장소를 넘어, 관객이 알고 싶은 것
그렇다면 우리는 예술에 대한 정보를 주로 어디에서 볼 수 있을까? 기사가 될 수도 있고, 작품 비평이나 예술 정보를 축적한 데이터베이스를 서비스하는 웹사이트일 수 있으며, 예술가의 개인 웹사이트일 수 있다. 더 나아가 작품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자료를 보고 작품에 대해서 더욱 깊이 알고 싶다면 예술 디지털 아카이브에 접속하게 된다. 예술 디지털 아카이브는 작품 창작 과정이나 결과에서 생산된 다양한 기록물이 있을 것이라 기대하는 곳이다.
국내 예술 디지털 아카이브를 방문하면, 작가가 자필로 작성한 작품의 원고와 공연 프로그램북의 디지털 이미지처럼 다양한 예술 기록물과 이에 대한 설명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외에 다른 것을 알고자 한다면, 예를 들어 예술가의 또 다른 작품이 궁금한 경우 디지털 아카이브 내에서나 웹상에서 다시 검색해야 한다. 이러한 불편함을 뒤로하고 예술 기록물을 바탕으로 작품에 접근할 수 있는 다양한 경로를 제공하는 디지털 아카이브를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소극장 연극과 맥주의 관계를 추론하기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시맨틱(Semantic) 디지털 아카이브’를 제안한다. 시맨틱 웹의 개념을 적용한 시멘틱 디지털 아카이브는 웹의 창시자인 팀 버너스 리가 제안한 개념으로 “월드와이드웹 상에서 ‘지식의 조각’이라고 할 수 있는 개체들(individuals)이 서로서로 어떤 의미 관계를 맺는지 명시적으로 드러내고, 그 바탕 위에서 개체와 개체 사이의 관계를 추론하여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거나 종합적인 지식을 얻으려는 것”(김현, 임영상 외, 『디지털 인문학 입문』, HEUBOOKS, 2016, 147쪽)으로 정의할 수 있다. 여기에서 개체들(individuals)이란 웹상의 텍스트, 이미지, 영상 등 다양한 데이터 형식을 말한다. 의미 관계를 명시적으로 드러낸다는 것은 텍스트와 이미지의 관계, 이미지와 영상의 관계의 내용이 어떠한 것인지를 사람과 컴퓨터 모두가 알게 한다는 것이다.
시맨틱 디지털 아카이브를 도입한 예술 디지털 아카이브는 작품과 작품에 관여한 모든 것을 상상하고 이를 시맨틱 웹의 관점에서 모델링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아래 그림과 같이 공연을 기반으로 공연과 유관한 정보를 의미 관계로 정의한 데이터로 구성한다. 이러한 데이터를 ‘시맨틱 데이터’라고 하며, 시맨틱 디지털 아카이브는 시맨틱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하여 구축한다. 시맨틱 디지털 아카이브는 종합적인 정보 제공 외에 데이터에 기반을 둔 새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1970년대 유흥업소 등에서 소비되던 맥주가일상 속 음료로 변화하는 과정을 『소극장 연극 시맨틱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에 관한 연구』(2018)에서 밝혀낸 바 있다.
  • 1970년대 소극장 시맨틱 아카이브 개념도
    [사진출처] 『삼일로창고극장 자료집 :1975-2015』, [문화+서울] 2018년 7월호 (필자제공)

[시맨틱 데이터의 구조]
1975년 에저또창고극장, 공연〈잔나비는 돌아오는가〉  +   A는 B의 스폰서이다   +  OB맥주
주어 술어 목적어
데이터의 관계가 보이는 아카이브
시맨틱 데이터를 활용한 예술 디지털 아카이브 서비스로는 호주의 공연 종합 데이터베이스인 ‘오스스테이지(AusStage)’가 있다. 오스스테이지는 공연, 창작자, 단체, 공간, 전시, 주제, 자원, 장르, 지도 등 주요 9개 데이터 유형이 있고, 각 유형 데이터는 다른 유형 데이터와의 관계 속에서 구축되었다.
  • [이미지출처] AusStage
     
  • 〈햄릿(Hamlet)〉(1891년) 공연 정보(2020.12.3. 기준)
    [이미지출처] AusStage
오스스테이지에서 1891년 빅토리아 극장에서 공연된 연극〈햄릿〉에 대한 정보를 예로 들어보자. 파란색 텍스트는 9개 데이터 유형에 속하는 정보 중 하나로 클릭하면 해당 데이터 페이지로 넘어간다. ‘리소스(Resource)’ 항목은〈햄릿〉기록물이 있는 웹주소나 소장처를 밝혀주는 공연자료 데이터에 해당한다. 각 예술가의 이름을 클릭하면 예술가 페이지로 넘어가게 되고, 그가 참여한 호주 내의 공연 정보를 볼 수 있다. 오스스테이지의 가장 흥미로운 데이터는 장르와 주제인데, 해당하는 공연 목록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Tragedy’(비극)를 주제로 한 공연이 1785년에서 2019년까지 총 753편(2020.12.3. 기준)이 있었다는 것을 데이터를 통해 보여준다.
오스스테이지는 호주 내에서 수행된 공연에 참여한 창작자 사이의 관계를 네트워크 그래프로 시각화하여 제공한다. 2006년, 2007년 호주에서 공연한 우리나라 극단 여행자의〈한 여름밤의 꿈〉프로듀서를 중심으로 하는 네트워크 그래프를 보면 시기별 협업 빈도수와 재공연시 창작자 변화를 볼 수 있다. 네트워크 그래프는 사용자가 필요한 정보를 파악할 수 있도록 협업 빈도나 중심 데이터를 변화시키는 등의 조작이 가능하다. 오스스테이지의 데이터 구조는 노르웨이 버츄얼입센센터(The Virtual Ibsen Centre) 디지털 아카이브 ‘입센스테이지(IbsenStage)’의 모델이 되었다.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디지털 아카이브
이처럼 예술 디지털 아카이브는 디지털화된 기록물을 서비스하는 것 이상으로 예술작품에 대한 새로운 발견을 가능하게 하는 플랫폼이 되어 가고 있다. 국내에서는 올해 활동을 마감하는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에서 시맨틱 디지털 아카이브를 준비하고 있다. 2020년 12월 공공극장으로서의 운영을 종료하는 남산예술센터는 그동안의 예술적 성과를 시맨틱 디지털 아카이브로 구축하였고, 12월 31일부터 서비스할 예정이다. 2009년 재개관부터 2020년까지의 활동을 공연/행사, 작품, 인물/단체, 공연자료, 사건, 공간, 개념, 보도/연구 등 8개 데이터 유형으로 정리하였다. 또한 약 250편의 공연의 주제, 소재, 형식 등의 키워드 정보와 공연, 작품, 창작자, 공간, 사건과의 관계를 네트워크 그래프로 서비스할 예정이다. 이를 바탕으로 사용자의 관심에 따라 새로운 의미 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시맨틱 디지털 아카이브로 구축하였다. 나아가 남산예술센터 디지털 아카이브를 시작으로 국내 공연예술의 역사와 기록물을 서비스할 수 있는 시맨틱 디지털 아카이브를 기대해본다.
정주영
정주영
아트앤데이터 대표, 인문정보학 박사, 극작가/연출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매개된 경험에 대한 관심으로 디지털 인문학 공부를 시작했고 현재는 공연예술 온톨로지를 연구하며 국내 공연사 전체를 데이터 기반으로 읽어내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모색 중이다.
rikayu@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