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문제에 처음 관심을 두게 된 계기는 ‘코끼리들이 웃는다(코웃다)’ 단체 대표와의 만남에서 시작되었다. 카페에서 음료를 주문하던 중, 대표가 진열된 음료를 보며 “이건 유리인가요, 플라스틱인가요?”라고 물었고, 직원이 플라스틱이라고 대답하자, 그는 따로 머그잔에 마실 수 있는 음료로 선택해 주문했다. 그 순간, 나는 ‘이런 사람이 있구나, 내가 몰랐던 것뿐이지 이렇게 행동하는 사람들은 많겠구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직접 목격한 것은 처음이라 강한 기억으로 남았고, 주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변화를 이끄는 행동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계기였다. 어쩌면 코웃다 단체에 대한 이상과 대표의 행동에 대한 동경이 이러한 결심을 하게 만든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나의 작은 경험이 예술 활동의 큰 원동력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해군대장 ‘초록소’와의 만남
시간이 흐르고, 단체를 창단할 시기가 다가왔다. 동료들과 함께 단체명을 고민하던 중, 그동안 좋아하던 만화 <원피스>의 한 캐릭터를 떠올렸다. 당시 만화 속에서 실체는 등장하지 않았지만 이름만 거론되었던 미지의 인물, 바로 해군대장 ‘초록소’였다. 앞으로 지속적인 예술 활동을 하며 주변에서 거론되겠지만, 실체는 아무도 모르는 존재로, 마치 수호천사처럼 활동하길 원했다. 그렇게 우리는 단체명을 ‘초록소’라고 짓게 되었다. 이후 만화에서 ‘초록소’의 실체가 나왔다. 그 인물은 밟고 지나간 자리에서 풀과 꽃, 나무와 같은 자연이 무성해지는, 자그마치 ‘숲숲열매’의 능력자였다.
예술 창작 소재로서 기후에 관심이 생긴 것은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에서 진행한 ‘거리예술·서커스 유망 예술가 양성과정(거리예술 넥스트)’ 수료 후, 거리예술 장르에 매료되면서다. 거리에서의 예술은 왜 필요할까? 거리에서 예술을 한다면 어떤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어떤 이야기가 효과적이며, 예술에 종사하지 않는 사람들과도 소통할 수 있을까? 거리라는 공간과 시간 특성에 제한받지 않고, 끊임없이 유동하는 관객과 관계를 맺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가? 이러한 수많은 질문에서 출발하게 되었다. 단체 초록소를 창단하면서 거리라는 공간에서 예술을 공유하기 위해서 그동안 해왔던 개인적인 창작에서 벗어나야 했다. 나와 너, 그리고 우리가 함께 사회 변화를 이끌 수 있는 매개체 역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 중심에 있었던 것은 바로 ‘기후’였다.
오렌지로 살린 숲처럼
2017년부터 현재까지 기후를 기반으로 창작 활동을 지속하고 있으며, 그 시작은 ‘거리예술 넥스트’ 최종 발표작인 <인공호흡2017>이었다. 과학자 2명이 오렌지를 활용해 죽어가는 숲을 살린 사례를 목격하고, 물과 오렌지를 통해 삭막해진 거리와 우리 서로의 관계가 회복되는 순간을 표현하고자 했다. 작품 마지막 장면에서는 경사로에서 오렌지 500개를 굴려 관객들에게 전달하고, 그 오렌지들이 곳곳에 놓이게 했다. 숲에 뿌려진 오렌지 덕분에 죽어가던 숲이 살아났던 것처럼, 사람들 사이에 잠시나마 뿌려진 오렌지들로 인해 삭막한 관계가 회복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었다. 사용된 오렌지는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관객들에게 나누어주거나 착즙 주스를 만들어 제공하기도 했다.
이때부터 고민했던 것은 작품의 소재가 활용된 후 버려지지 않고 재사용되는 것, 즉 리페어와 리사이클에 대한 것이었다. 공연 후뿐만 아니라 창작 시작 단계부터 모든 과정에 유의미하게 적용되었다. 기후변화와 위기의 심각성을 효과적이고 쉽게 전달하기 위해, 모두가 알고 있는 빙하, 나무와 숲, 산호, 해수면 상승, 현대인의 관성적인 태도, 지구온난화로 영향받는 동물들과 우리의 미래, 그리고 아이들 등 다양한 고민이 확장되며 작품을 기획했다. 빙하를 대변하기 위해 같은 색과 모양의 냉장고를 찾아 중고 상가를 돌며 리서치하고, 사라지고 죽어가는 숲을 표현하기 위해 아직 쓸모가 있지만 버려지거나 나눔 목록에 오른 목재 가구를 찾기 위해 당근 어플과 사투를 벌였다. 그리고 옮겨오는 과정에서 최소한의 탄소 배출 노력이 모여 2017년 <인공호흡2017>부터 2024년 <지붕 위로 내몰린 사람들>까지 스물네 개 개별 작품이 완성되었다.
초록초록한 예술을 소처럼 우직하게
때때로 단체 작업이 단편적으로만 이해되고, 단순히 기후를 소재로 활용하고자 하는 모습으로 취급되는 것에 아쉬움을 느낀다. 하지만 우리는 크게 개의치 않는다. 참여 예술가와 관객 스스로 기후에 관심을 가지고, 전혀 관심 없었던 이들이 함께 작업하며 창작 과정에서 직접 부딪히고 깨달으며, 우리가 수없이 들었던 ‘기후’라는 단어가 주었던 표면적인 이야기들이 아닌, 더 실질적이고 다채로운 의미로 우리 삶에 녹아들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안다.
기후를 소재로 작업하면서 우리의 행동과 습관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성장하고 있으며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을 더욱 확립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사회적으로 ‘어른’이라는 단어를 스스로, 서로에게 사용할 수 있게 될 만큼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경제적인 어려움이나 어떠한 현실적인 제약과 상관없이 우리가 즐거워하고, 원하는 방향으로 창작자로서의 길을 유지할 계획이다. 관객과 만나 우리가 느끼고 성장했던 부분을 함께 나눌 것이며, 예술이 진정한 예술다움으로 나아가도록 끊임없이 고민하며 활동하고자 한다.
- 정성택
-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의 거리예술·서커스 유망 예술가 양성과정(거리예술 넥스트, 서커스 펌핑업) 수료 후, 단체 초록소를 창단하여 무대와 거리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는 예술, 기후, 일상, 신체의 교차점을 탐구하며 ‘집단적 움직임’ 연구에 몰두하며, 기후변화와 위기는 우리 모두가 함께 대응해야만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강조한다.
thechorokso@gmail.com
인스타그램 @cie.greenc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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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를 소재로 예술활동을 하는 단체답게 작품에 사용되는 물품들의 리페어, 리사이클링을 고민한다는 게 감명 깊었습니다.
소처럼 우직하게 쭉 활동해주세요. 기대하겠습니다!
지금처럼 흔들리지 않는 신념으로 활동해가기는 모습 응원하고 지지합니다. 2025년도 초록 친구들과 멋진 활동들 기대합니다. 음~~~~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