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고, 예뻐라! 어디서 이렇게 예쁜 사람이 왔쪄?”
호수공원 벤치에 앉아있는 어르신들은 만개한 벚꽃을 볼 때보다 더 감탄한다. 세상에 온 지 2년 채 안 됐을 것 같은 아이는 어르신들의 찬사가 완전히 끝날 때까지 기다린다. 그러고 나서는 머리만 까딱 움직여서 나름의 작별인사를 한다. 바람결에 실려 아이보다 먼저 다른 벤치에 도착하는 달짝시큼한 냄새. “아이고야, 너무 예쁜 똥강아지네!” 일행 없이 혼자 앉아있던 어르신은 박수까지 치며 환하게 웃는다. 아이는 팔을 벌린 어르신에게 보들보들한 몸을 잠깐 맡겼다가 뺀다. ‘빠빠이’를 하고 자박자박 걸어가는 아이는 사람을 발견할 때마다 일단 멈춘다. 한 무리의 여학생들에게 “대박! 완전 귀여워.”라는 말을 듣고 나서 다시 발걸음을 뗀다. 몇 발자국 뒤떨어져서 따라가는 아이의 엄마는 그 광경을 익숙하게 바라보고 있다.
미약한 존재들의 마음 읽기
『오빠와 손잡고』에 나오는 아이는 눈에 띄는 개나리색 원피스를 입고 나간다. “아고, 예뻐라!” 알은 체 해주는 사람은 한 명도 못 만난다. 아이를 반겨주는 건 꽃, 톡톡 치는 나무, 비가 오지 않을 거라고 안심시키는 구름뿐이다. 학교에 가야 할 오빠는 아이를 챙기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엄마와 아빠는 창문 밖이 깜깜한 새벽부터 일하러 가고 없다. 아이와 오빠는 그런 일상을 해가 뜨고 지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모양이다. 둘이서만 밥 먹고 씻고 생활하면서도 돌봐줄 어른을 찾지 않는다.
보통의 아이들이 가진 강력한 무기는 울음. “나 좀 봐요, 내 얘기 좀 들어보라고요.”라고 차분하게 말하지 않는다. 지금 배고프다고, 지금 놀아주라고, 지금 저기에 있는 장난감을 갖고 싶다고, 지금 잠이 온다면서 징징거리다가 악을 쓰며 운다. 『오빠와 손잡고』의 아이는 칭얼대거나 눈물을 뚝뚝 흘리지 않는다. 밖에서 잘 놀다가 “오빠 심심해.”라고 하는 게 최고의 요구다. 오빠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그건 집에 가고 싶다는 뜻이다. 높은 곳에 있는 아이들의 집에는 불이 켜져 있다. “엄마다!” 하지만 크고 무서운 사람들이 마을의 집들을 아무렇게나 다 때려눕혀 놓았다. 오빠는 아이를 감싸 안고 숨는다.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오빠에게 말을 건넨다. 배고프다고.
『까마귀 소년』에 나오는 아이는 학교에서 ‘땅꼬마’라고 불린다. 입학 첫날부터 5년 동안 혼자였다. 친구들과 선생님은 땅꼬마에게 말을 걸지 않고 곁을 내주지 않는다. 태풍이 부는 날에도 채소 잎 주먹밥을 싸 들고 학교에 온 땅꼬마를 누구도 알은 체 하지 않는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 외롭거나 화가 나서 구시렁구시렁 혼잣말을 할 수도 있지만 땅꼬마는 보잘것없는 작은 것들에 마음을 쏟는다. 운동장에서 눈을 감고 앉아서 온갖 소리를 듣고, 기어 다니는 지네와 굼벵이들을 들여다보며 혼자만의 세계를 가꾸어 간다.
땅꼬마의 존재를 알아본 사람은 6학년 담임 이소베 선생님. 머루와 돼지감자 자라는 곳을 알고, 자기만의 이야기를 가진 땅꼬마는 졸업하기 전 학예회 무대에 선다. 오직 땅꼬마만이 아는 갓 나온 새끼 까마귀, 아침에 우는 까마귀, 즐겁고 행복한 까마귀 소리를 들려준다.
“이소베 선생님이 일어나 설명을 했단다. 땅꼬마가 어떻게 해서 그 소리들을 배우게 되었는지 말이야. 동틀 무렵 학교로 타박타박, 해 질 무렵 집으로 타박타박, 여섯 해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날마다 타박타박. 우리들은 모두 울었어. 길고 긴 6년 동안 우리가 땅꼬마를 얼마나 못살게 굴었는지 생각하면서 말이야.”
보듬고 들어줄 사람
『오빠와 손잡고』와 『까마귀 소년』은 돌봄에 관한 그림책이다. 공동체가 살아 있었던 수십 년 전에도, 어린이집과 학교에서 어느 정도 맡아주는 현대에도 아이들을 개별적으로 보듬으면서 요구를 들어줄 어른이 필요하다고 일깨우는 책이다.
올해 6월에야 등교한 우리 아이는 하루에 5분씩 나머지 공부를 했다. 그날 배운 수업 내용을 한 줄로 요약하거나 온라인 수업으로는 알지 못했던 약분, 통분을 복습했다. 스무 명이 넘게 생활하는 교실에서, 코로나19 때문에 신경 쓸 게 많은 담임 선생님은 우리 아이에게 필요한 것을 알아봐 주었다. 『까마귀 소년』의 이소베 선생님이 땅꼬마에게 해준 애정과 비슷했다. 덕분에 우리 아이는 조금 늦긴 했지만 친구들이 공부하는 울타리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오빠와 손잡고』에 나오는 아이들은 의젓하게 행동한다. 울지 않는다. 어디에 있든 찾으러 올 거라는 믿음을 준 엄마 아빠가 나타난 뒤에야 아이 같아진다. 살림살이도 없이 트렁크만 끌고 이사하는 부모님 등에 업힌 아이들은 참 작다. 새로운 곳에서는 꽃, 나무, 구름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이 아이들을 알아보고 말 걸어주면 좋겠다.
- 배지영
- 서점이 없는 산골에서 자랐다. 스무 살 때부터 드나든 군산 한길문고에서 ‘작가와 함께하는 작은서점 지원사업’ 상주 작가로 일한다. 『환상의 동네서점』 『대한민국 도슨트 – 군산』 『소년의 레시피』 『우리, 독립청춘』 『서울을 떠나는 삶을 권하다』, 동화집 『내 꿈은 조퇴』를 썼다.
okbjy@hanmail.net
이미지 제공 _ 웅진주니어, 비룡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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