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부터 국제연합(United Nations, UN)은 인류 공동의 과제로써 지속가능발전목표(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SDGs)를 설정하여 인류의 보편적 문제인 빈곤, 질병, 교육, 성평등, 난민, 분쟁에 더해 지구와 환경문제로 구분할 수 있는 기후변화, 에너지, 환경오염, 물, 생물다양성과 경제 사회문제로 구분될 수 있는 기술, 주거, 노사, 생산, 고용, 소비, 사회구조, 법, 대내외 경제 등 분야 관련 17가지 목표를 설정하였다. 특히 SDGs에서는 지구와 환경에 대한 목표가 강조되었다. 지속 가능성, 지속 가능한 개발/발전을 위해 빈곤, 난민 문제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평화와 정의가 중요하다, 생물종 다양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식의 이야기는 이미 너무 익숙하여 새롭지 않다. 하지만 이러한 국제사회 최대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는 것에 대해서는 국제정치 분야 종사자 또는 기업, 정부 몇몇 관계자 외에는 자신의 삶과 맞닿아 있다는 느낌이 별로 들지 않고 막상 왜 이러한 것들이 중요하며, 내 일상과는 무슨 관계인지에 대해 깊게 고민해 본적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사)대한스트릿컬처연맹은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한 교육으로써 세계 문화 교육, 세계 시민 교육을 진행했던 경험을 예술과 결합하여 보다 구체적으로 이러한 국제적 이슈들을 우리 삶에서 어떻게 적용시키고, 교육할 수 있을지, 어떻게 대중과 소통해야 하는지 연구자, 예술가, 교육자, 기획자가 모여 연구하고, 기획하며 평화, 정의, 행복, 환경 등을 주제로 문화예술교육을 해왔다. 대관령에서는 유휴공간이었던 대관령 원예농협 자재창고를 문화예술플랫폼 ‘포테이토클럽’으로 기획하여, 대관령 지역 유소년을 대상으로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 전시, 공연 등을 기획·운영하고 있다. 그러던 차에 창의예술교육랩 콘텐츠 실험연구실 사업의 일환으로 산림 문화시설 중심형 콘텐츠 개발 사업에 참여하게 되었다. 평소 고민하던 지속가능한 삶과 개발과 관련한 17가지 목표 중 ‘생물 다양성’에 집중하여 예술교육 콘텐츠를 개발해보고자 ‘에코-에듀랩’을 기획했다. 강원도산림박물관에서 실행해 볼 수 있는 교육 콘텐츠를 개발하여 이를 시범 운영해보는 것이 주 내용이었다.
  • 생태박스 설치
  • 생태박스 관찰
지속 가능한 삶을 이해하기
종 다양성을 유지하는 것이 지속 가능한 지구, 삶, 개발, 발전을 위한 것인지 선뜻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 나무를 꺾지 마라, 쓰레기를 분리수거해라, 플라스틱/일회용품 사용을 줄이라는 이야기들이 사실 내 생활로, 삶의 양식으로 녹아들기에는 거리감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었다. 따라서 생태, 또는 생물 다양성 등에 대한 이슈를 우리 삶에서 어떻게 적용하고 교육해 나가야 할지, 이에 관한 내용을 어떻게 대중과 소통해야 하는지에 대해 그동안의 경험을 프로그램 개발에 응용해 보았다.
우선, 생태 전문가, 유소년 문화예술교육 전문가, 지속가능한 교육 분야 전문가, 해외사례 전문가, 예술가, 학부모 그룹 등과 협력하에 커리큘럼 개발을 위한 연구를 진행했다. 생태 전문가로서 박사 및 연구원,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한 큐레이터, 학예사, 예술가 등과 협력했으며, 미국, 스웨덴, 중국,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연구원들을 통해 해외사례를 수집했다. 생태를 주제로 작업을 진행한 시각 예술가의 자문을 받고 유소년 자녀를 둔 학부모 그룹과의 면담을 통해 수요자의 요구를 반영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자 노력했다.
리서치 결과, 환경 또는 산림 등에 집중한 문화예술교육은 쉽게 찾을 수 있었으나, 보다 포괄적 관점을 제시하는 생태 및 순환에 기반한 문화예술교육은 드물었다. 그리하여 생태를 중심에 두고 문화예술교육을 기획해보기로 했다. 생태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생물 다양성 유지의 필요성을 본질적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생물 다양성의 유지/증가는 생태계의 구조 및 기능을 지탱하게 할 뿐 아니라 생태계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중요한 기능을 한다. 생태계 서비스는 생활에 필요한 자원을 공급받고, 자연현상을 조절하고 자연기능을 지원하며, 문화와 휴양에 대한 서비스를 아우르는 말이다. 이러한 프로그램의 목적과 의의에 기반하여 예술가와 큐레이터, 커리큘럼 전문가가 구체적인 프로그램 커리큘럼을 작성하고 교구재를 제작했다. 프로그램 시범운영은 2019년 겨울 춘천의 유소년, 전국의 문화예술교육 전문가를 대상으로 각 1회씩 총 2회 실시되었으며, 이후 올해 봄 학기 포테이토클럽 미래소양 프로그램 중 하나로 대관령 지역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에코-에듀랩’을 정식으로 진행했다.
2019년 ‘에코-에듀랩’ 시범수업
작은 상자 속 관계 맺기
‘에코-에듀랩’은 총 5차시로 구성하였다. 생태 순환과 관련된 내용을 학습하고, 생태를 구성하는 요소 중 토양, 식물, 곤충을 주제로 생태 학습・관찰하기, 그리고 학습하고 관찰한 내용을 예술 활동으로 표현하는 순서로 진행했다. 각자 자신의 ‘생태박스’를 만들어서 그것을 어느 장소에 둘지 스스로 결정하고 그 이유를 기술하는 것으로 프로그램은 시작된다. 프로그램의 핵심 교구 중 하나인 생태박스는 미국 사진작가 데이빗 리치웨거(David Liittschwager)의 『1입방피트의 세계: 생물 다양성의 초상화(A World in One Cubic Foot: Portraits of Biodiversity)』에서 그 아이디어가 시작되었다. 이후 미국 스미소니언 자연사박물관에서 이를 ‘바이오큐브(BIOCUBE)’로 명명하여 종 다양성에 대한 교육프로그램에서 활용했다. ‘에코-에듀랩’은 바이오큐브를 벤치마킹하여 강원도의 맥락에 맞게 변형하고 적용하였다.
생태계의 생물 다양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생태계가 어떻게 기능하는지 이해하고 생태계 변화의 영향을 예측하는 것이 그 첫걸음이다. 대부분의 생물 다양성 이슈는 아주 작은 단위에서부터 발생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조그만 나뭇잎 아래 또는 숲 속 아주 작은 구멍에 숨어 있는 생명체, 우리가 지구 위 딛고 있는 내 발 크기 정도의 공간에 집중하는 것부터가 생태계와 생물 다양성을 이해하는 시작점이라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생태박스를 활용하여 자연 속 자신이 정한 공간 내에서 관찰, 탐구한다. 참여자들에게 자연 속에 자신의 공간을 갖고 그 공간을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탐구하는 과정을 통해 생태계에 대한 주인의식을 갖는 기회를 주고 싶었다. 궁극적으로 이러한 활동들은 자신의 행동과 결정이 생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인지하고 그 영향이 어떠한 결과로 되돌아오는지 알 수 있도록 하고자 함이었다. 이처럼 작은 활동이 강원도, 나아가 대한민국뿐 아니라 글로벌 생물 다양성 유지 및 증가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한 곳에 설치해 둔 생태박스의 변화를 매시간 관찰하고자 하였으나 상설로 설치해 둘 공간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아 매시간 자신이 정한 장소에 설치하고 그곳에서 관찰 후 철거하는 식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토양 관찰 후 토양을 활용하여 그림을 그리거나, 식물 관찰 후 채집한 식물을 활용하여 시아노타입(cyanotype)으로 식물 청사진을 만들거나, 곤충 관찰 후 수채 색연필로 곤충을 그리거나 다양한 재료를 활용하여 곤충을 만드는 등 생태계와 나의 관계를 스스로 이해하는 시간이 되도록 하고자 했다.
참여자들은 손에 흙이 묻거나, 곤충을 만지는 것, 그리고 자연 속에서 활동하는 것에 대해 호불호가 분명했다. 개미, 나비, 나방 등이 나타나기만 해도 도망가거나 해하려 하던 참가자들이 수업이 진행될수록 곤충을 따라다니며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관찰하고, 표현하는 등 자연 속에서의 활동이 자연스러워지며 자연과 우리가 더불어 존재한다는 것을 체득해나가고 있었다. 또 매시간 설치와 철거를 반복했던 생태박스를 자연에 설치하는 순간 자연 속 자신의 공간에 대한 주인의식이 생겨났으며, 이를 관찰하고 관심을 가지고 아끼는 모습은 에코-에듀랩을 통해 경험케 하고 싶었던 가장 일차적이자 중요한 학습 결과였다.
  • 시아노타입 작업
  • 생태박스 안 표현하기
낯설게 보고, 새롭게 경험하기
에코-에듀랩 프로그램 기획과 진행이 순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우선, 각기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과의 협력에 기반한 하나의 커리큘럼을 도출하기가 쉽지 않았다. 수업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학부모가 프로그램을 이해해야 하고, 생태, 예술, 교육 분야 전문가가 함께 연구하여 도출한 커리큘럼을 교수자가 전달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전문분야에 기반하여 이종 분야를 이해하고자 하는 개별 전문가들의 의지와 노력이 필요했다. 지식의 병렬식 나열 또는 물리적 조합이 아닌 개별 지식과 교수법, 그리고 매체를 새로이 아우르는 제3의 콘텐츠와 이를 위한 교육키트, 교재가 도출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생태, 예술, 교육 전문가와 기획자 모두 이해되지 않는 부분 없이, 콘텐츠와 커리큘럼에 대해 동의하고 의도와 필요성에 공감할 때까지 만남과 토론, 공부와 고민을 지속해나갔다. 물리적인 시간과 에너지를 투입한 만큼 커리큘럼이 도출될 즈음엔 참여 전문가 모두 생태에 대해 보다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었을 뿐 아니라 이를 자신의 분야와 접목해내고, 생물종 다양성 유지의 필요성을 설파하는 전도사가 되어 있었다.
상이한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 소통의 어려움도 있었지만, 생태, 문화, 예술, 교육이라는 키워드로 공동의 관심사를 공유하며 서로 상상하지 못했던 부분을 지적하여 프로그램 커리큘럼이 더 꼼꼼하게 구성될 수 있었다. 가령, 관찰하거나 채집할 때 최대한 원래의 상태를 해치지 않는 방법으로 진행할 수 있도록 한다거나, 주변에 대한 관찰과 조사를 통해 해당 생태, 생물, 유기물을 이해하는 방법 등을 알 수 있었다. 또 생태박스를 설치해 두고 관찰할 때는 멀찌감치 떨어져서 생태박스 안에 뱀과 같은 위험 요소가 있는지 미리 파악한 후 다가가야 한다는 것도 커리큘럼에 포함할 수 있었다.
생태예술교육 프로그램이 생소한 학부모 및 대중에게 프로그램의 목표와 내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도 고민이었다. 산림 체험 프로그램이냐, 예술체험 프로그램이냐, 자연 학습이냐, 수목원 프로그램이냐 등 참여자 모집 공고문을 본 학부모의 문의가 많아서 사전 설명회를 진행하고, 참가자를 모집했다. 프로그램 수료식에 참석한 한 학부모는 “솔직히 뭐 하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어떤 식으로든 아이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 일단 보냈는데, 수업 결과물과 함께 아이들이 생태계를 대하는 시각과 태도가 변한 것을 보니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 이제야 알겠다.”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자연 속에서의 활동, 예컨대 흙을 만지고 곤충을 관찰하고 식물을 채집하는 등의 활동에 대해 소극적이거나 거부감을 강하게 표시하는 참여자들의 관심과 참여를 끌어내는 것이 관건이었다. 왜 관심이 없냐, 왜 싫으냐는 질문에 “옷이 더러워져요” “징그러워요”라고 하는 학생들이 다수였다.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모자, 조끼, 관찰도구(플래시라이트, 망원경, 돋보기, 핀셋, 삽 등) 자연탐사대 복장을 하고 역할극을 하듯이 “지구탐사대, 탐사를 떠납시다!” 등의 구호로 관심을 증대시켰다. 막상 한번 경험을 하고 나면 별일 아닌 듯, 이후 활동부터는 참가자들이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서 프로그램을 원만히 진행할 수 있었다.
에코-에듀랩 프로그램을 통해 만난 농촌 지역의 유소년들은 자연을 생업의 터전으로 인식하거나, 너무 흔해서 눈길 준 적이 없고 그 가치를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부모님들은 내 자식이 손에 흙 묻히고, 자연에 관심 갖는 것에 불편한 마음을 갖는 정서가 분명 존재했다. 하지만 프로그램에 참여한 짧은 시간을 통해서 흔한 주변 환경을 낯설게 보고, 새롭게 경험하면서 자신을 둘러싼 환경, 커뮤니티, 공간에 대한 소속감, 관심, 애정이 생겼다. 이것이 예술의 힘이 아닐까 다시금 생각했다. 에코-에듀랩은 흔한 것들도 예술 활동이라는 경험과 형식이 더해지면 의미가 더해지고 새로이 보일 수 있다는 진부하지만 여전히 설득력 있는 명제를 증명하는 사례였다.
  • 관찰 결과를 청사진으로 표현하기
  • ‘에코-에듀랩’ 지구탐사대
미시적 관계가 만드는 생태적 사고
실내 활동이 예전과 같이 편하지 않은 지금, 사람들은 다시 자연을 찾고 있다. 산으로, 들로. 내 주변 가까운 자연 속에 한 장소를 정해 일주일에 한 번씩이라도 산책 삼아 찾아가 보자. 처음엔 그냥 뭐가 있나 보고, 그다음엔 뭐가 변했나 보고, 그리고 난 다음엔 어떻게, 왜 변했을까 생각해보자. 그리고 나면 나랑 자연의 관계가 어떠해야 할지 저절로 떠오를 것이다. 그리하다 보면 떨어진 나뭇잎도 한번 가져와서 액자에 넣어보고, 개미가 지나갈 때 발을 옮겨주기도 하고, 손이 심심할 때 부지불식간에 개미를 그리며 낙서를 하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어느 날 무분별한 벌목 현장을 보며 자연에서 보았던 생명체들의 터전이 사라져가는 것에 가슴 아파하고, 분개하며, 어느 순간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며 나무 한 그루 더 심는 그런 삶의 변화가 ‘에코-에듀랩’을 통해 시작되길 바라고 있다.
코로나 19의 환경과 맞닿게 되어 생태예술교육이 가지는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았다. 원시림과 같은 환경의 파괴로 자연의 조건을 변화시키고 인간이 야생의 터를 침범하여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옮겨왔다. 코로나19 역시 인간이 생태계를 교란한 결과로 발생한 것이다. 우리 일상에 마스크와 사회적 거리두기, 방역과 안전 등 뉴노멀이 불가피해지고, ‘코로나 블루’라는 사회적 우울감이 팽배한 이때, 우리는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동안 우리는 너무 생태계, 자연을 당연시한 나머지 관심을 둘 기회도 없었다. 자연에 대한 무분별한 소비와 파괴, 침범을 일삼았던 것이 어떠한 생태 변화를 일으켰는지, 나아가 그것이 인간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아야 한다. ‘에코-에듀랩’에서 제안했던 생태박스와 같은 가상의 생태박스를 만들어 가까운 자연에 두고 꾸준히 찾아가 보자. 관심을 가지면 좋아하는 것이 생겨나고 좋아하는 것이 생겨나면 아끼고 보호하고자 하는 마음이 필시 생길 것이다.
강지현
강지현
(사)대한스트릿컬처연맹 이사장 강지현은 문화예술접근성 강화를 위해 전시, 공연, 교육, 연구, 플랫폼 구축 등을 통해 다양한 문화예술장르 경험 기회를 제공하고자 노력해오고 있다. 지속가능한 개발(Sustainable Development)과 문화예술을 주제로 예술가, 연구자, 지역민과 함께 지역 내 유휴공간을 활용한 대관령 문화예술플랫폼 포테이토클럽, 밀양 폐교를 시각예술공간으로 활용한 누루미술관을 기획,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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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_ 필자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