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청년들의 지역 이탈은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5년간 강원도 내 전·출입 인구 현황을 보면 20~39세의 순 유출 규모(전출인구-전입인구)는 2만여 명에 달한다. 청년들의 지역 이탈 가속화는 강원도의 산업, 경제, 문화 전반에 있어 큰 문제로 인식되고 있으며, 이를 막기 위한 실효성 있는 대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청년들이 지역에 남기 위해서는 청년들이 지역을 떠나는 이유를 확인하고 대안을 만들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이 ‘강원살이’에 주목하는 이유이다. 지역에 청년들이 넘치고 그들의 활력을 바탕으로 지역이 지속 가능한 발전을 해가는 것이야말로 지역 존립의 가장 큰 이슈가 된 셈이다.
2019년에 같은 생각을 하는 청년들이 모여 작당모의를 시작한 것이 바로 강원살이의 출발이다. 강원도 청년의 타 지역 이탈 현상이 심화하는 가운데, 정주 여건을 스스로 만들어가기 위해 조직된 청년 중심의 비영리 사단법인이다. 2016년부터 강원도사회적경제지원센터 주관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강원도 청년 기본조례 제정 및 지속적인 강원도 청년의제 발굴에 힘써왔던 활동들이 강원살이의 설립으로 이어졌다. 문화인력양성소 협동조합 판(춘천), 문화협동조합 피올라(원주), 콘텐츠기획사 ㈜낭만사(원주), 강릉청년공동체 청년나루(강릉) 등 강원도 4개 청년단체가 강원살이 설립에 주축이 되었고, 현재는 강원도 18개 시·군을 대상으로 15개의 회원사, 60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다. 청년의 지역정착사업을 통한 이주 청년을 확보하고 지속적인 청년들의 지역살이를 위한 다양한 커뮤니티를 운영하며, 지역 청년교류와 협업 사업으로 강원도 청년들의 나다운 삶의 변화를 위한 디딤돌과 발화점이 되고자 다양한 활동과 가치를 만들어내고 있다.
지역, 청년, 나다운 삶
강원살이는 청년들이 지역을 떠나는 현상에 대한 원인과 대안을 표면적 이유에서 찾기보다는 좀 더 본질적인 것을 들여다보자고 이야기한다. 일자리와 주거, 문화적 인프라는 결국 청년 스스로 ‘나답게 살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이러한 필요조건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현상이 아닌 근본적으로 청년이라는 주체의 삶에서부터 원인을 찾아야 바른 진단이 되며 대안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강원 청년들이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바탕으로 근본적 결핍을 채우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 될 것이라고 강원살이는 말한다. 강원살이는 시장경제의 논리 속에서 청년 이탈 문제의 해결책을 찾지 않는다. 주체인 청년에 집중하여 나다움의 발견과 실현, 지역의 재발견, 나와 우리다운 삶을 만들고자 한다.
강원살이가 제안하는 첫 번째 키워드는 ‘나다움의 발견’이며, 그 출발점은 개인이다. 청년들의 취향에 따라 모임을 자유롭게 개설하고 참여하는 과정을 통해 지역에서 나답게 놀 수 있는 N가지 방법을 찾아내고 있는 <오.프.너(오늘의 Friend, 너)> 프로그램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2019년에는 춘천, 원주, 속초, 강릉을 중심으로 53개의 모임에 391명이 참여했다. 올해는 코로나19로 난관에 봉착했으나 비대면 프로그램을 진행해보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온라인 버전인 <오.프.너 방콕 ver>은 집에서 즐길 수 있는 놀이 키트를 개발해 제공하고 온라인 모임으로 참가자들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안겨주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 동안 오프라인에서 즐기는 여가생활에 갈증을 느끼던 청년들의 결핍을 해소해준 의미 있는 프로젝트로 평가받고 있다.
<오.프.너> 이후 강원살이 자체 이벤트 프로그램으로 진행된 <엽서마실>은 코로나19로 인해 직접 만날 수 없는 강원지역 청년들의 일상 안부를 묻고 공유하는 과정을 통해 청년들 간의 네트워크가 끊어지지 않는 연결고리 역할을 했다. <나답게 버스킹>은 경험의 공유가 핵심이다. 지역에서 스스로 삶의 선택지를 찾아가는 청년들의 사례를 탐색하고, 지역과 청년의 관계 안에서 나다움에 필요한 기반을 고민하는 강연 프로그램과 강원도에서 활동하는 청년들의 삶과 이야기를 관람하는 ‘사람책 라이브러리’ 운영을 계획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문화협동조합 피올라에서 주최한 ‘원주살이 어떤가요’ 축제에서 다양한 활동사례를 공유하며 스스로 행복한 법에 대한 고민의 자리도 마련되었다.
두 번째 키워드는 ‘나다운 삶의 상상’이다. 강원도에서 정주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기 위한 사업인 <체인지 테이블>은 ‘강원도에서 나답게 산다는 건 뭘까?’를 청년 스스로 고민하고 공유하는 자리이다. 청년 인터뷰, 주제별 간담회 등을 통해 관련된 의제를 발굴하고 발굴된 의제 중 자체적으로 실험해볼 만한 주제를 선정하여 활동을 지원하는 것까지 고민하고 있다. <강원청년정기모임>은 <체인지 테이블>의 기반이 되는 커뮤니티로 강원도 청년들의 자유로운 생각을 공유하는 자리이다. 2019년 일곱 번의 모임, 109명이 참여한 이 자리에서 공유된 생각과 상상이 의제화되어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라운드 테이블>, 활동사례를 공유하는 <나답게 버스킹>, 청년 개인의 경험을 활동으로 공유하는 <오.프.너> 등의 프로그램으로 각각 확장되어 간다.
다음은 ‘나다운 삶의 구축’이다. <나답게 버스킹>이 공유의 자리라면 <나답게 실험실>은 공유로부터 출발하는 경험이 핵심인 사업이다. 지역에서 나답게 살아갈 수 있는 선택지를 상상하는 워크숍 프로그램과 워크숍을 통해 만들어진 기획을 직접 실험하는 프로젝트로 구성되어 있다. 나다움에 대한 청년들의 상상과 아이디어를 실행하고 경험하는 것을 통해 청년 스스로 가능성을 확인하는 자리이다. 2019년 춘천사회혁신파크 프로그램 운영 사업으로 진행한 <Breeze by 춘천>은 춘천살이 40일과 춘천 여행프로그램 등으로 구성되었다. 단기 지역살이가 지역의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키고, 지역 정착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사례를 통해 직접 확인했던 프로그램이다. (실제로 참여했던 2명의 타지역 청년이 춘천에 정착하게 되었다.) 2020년 첫 사업 <라이프스타일 렌트 : 휘게>는 공간, 상자, 도구 등을 렌트하여 다양한 라이프 스타일을 경험해보는 프로젝트이다. 커먼즈필드 춘천 1층 공간을 활용하여 참가자들이 휘게 (hygge, 편안하고 아늑한 상태를 뜻하는 덴마크어-편집자주)를 체험할 기회를 제공하는 한편, 휘게 키트로 집에서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체험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2년의 실험, 과정을 만드는 관계와 활동으로
지난해까지의 강원살이는 정체성을 확립하고, 다양한 경험을 통해 가능성을 확인했다. 강원살이가 추구하는 방향성과 부합하는 다양한 공모사업과 협력사업을 통해 청년들을 모아내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으며, 성공과 실패의 이분법적 사고가 아닌 가능성을 발견하는 데 집중했다. 다양한 실험과 고민을 하며 바쁘게 달려온 결과일까? 2020년은 강원살이에 있어 새로운 도약을 하는 한 해가 될 전망이다.
먼저 27:1이 넘는 경쟁률을 뚫고 ‘나눔과 꿈’ 공모사업에 선정되면서 강원살이가 추구하는 방향에 대한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나눔과 꿈’은 삼성전자와 사랑의열매가 함께하는 행복한 세상 만들기 프로젝트로 비영리단체를 대상으로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혁신적이고 파급효과가 큰 사업을 발굴·지원하는 사업이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총 3억 8천 6백만 원의 사업비를 지원받아 강원살이가 추구하는 사업을 실행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또한 서울시에서 공모한 <2020년 청년 지역교류 지원사업 ‘연결의 가능성’>에 선정되어 강원 청년과 서울 청년이 교류하며 지역의 경계를 허무는 청년 활동기반을 구축하고 문화, 예술영역에서 다양한 가능성을 모색하는 ‘히든페스타 season2: 서울 X 춘천’을 추진한다. 이와 함께 춘천문화재단 <빈집프로젝트 : 인생공방·전환가게> 조성 및 운영 단체로 선정되면서 다양한 문화예술적 실험을 통해 삶의 전환점을 주고받는 공간을 만들기 위한 다양한 고민을 시작하고 있다.
짧은 시간에 이토록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던 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지역의 청년들이 스스로를 돌아보고 ‘삶’을 넘어선 ‘살이’를 고민하는 이야기를 접하며 그들의 절실함과 생존본능에 미안함과 대견함이 교차한다. 강원의 ‘삶’을 정의하기보다 강원의 ‘살이’를 만들어가는 과정 그 자체로 이미 강원살이의 시작이라는 생각이다. ‘살이’로서의 지역 활동은 지속성을 담보하기 위한 ‘지탱 가능성’의 실험이자 현재 진행형 삶이다. 강원살이가 지속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청년들의 지역살이를 위한 관계의 밀도보다 점도를 높이는 고민이 필요하다. 무언가를 더 잘해야 하고 더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명분과 당위를 만들기보다는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지탱해줄 수 있는 끈끈한 지지자이자 동반자로 마주쳐야 한다. “대단하고 거창한 일을 만들기보다는 나를 돌아보고 나로부터 출발하는 지역살이가 되는 게 저희의 목표”라고 이야기하는 강원살이 오석조 이사장의 말에 기대와 신뢰가 가는 이유이다. 강원살이를 시작으로 확장되어 가는 청년들의 지역살이에 무한한 지지와 응원을 보낸다.
- 권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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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컨설팅 바라 대표이자 (사)한국문화의집협회 상임이사, 생활문화센터 컨설턴트이다. 전 춘천마임축제 운영위원장을 지낸 바 있다. 지역문화재단, 문화기관·단체를 대상으로 연구, 교육, 평가, 컨설팅과 문화정책 자문을 하고 있다.
artbara@naver.com
사진제공 _ (사)강원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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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마다 이런 고민을 가진 청년들이 많을 줄 안다. 다만 이런 개개인의 고민과 욕구를 묶어 낼 매개자와 기관 단체등이 더 많은 활동을 통해 청년들의 지역살이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