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30일 미국 플로리다주의 케네디우주센터에서,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스페이스엑스(Space-X)가 유인 우주선 ‘크루 드래곤’(Crew Dragon) 발사에 성공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함께 했지만 민간 기업이 주도하는 우주 계획의 첫발이 내디뎌진 것이다. 발사 장면 동영상과 사진 등을 보다가 크루 드래곤의 조종석을 보게 되었다. 우주선 조작부 대부분이 터치스크린으로 되어 있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레버를 당기거나 스위치를 누르는 것이 아니라, 간단한 터치 조작으로 거대한 우주선이 움직인다. 20세기에 만들어진 SF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 <에이리언>(1979), <토탈 리콜>(1990) 등에 등장하는 우주선의 조종석은 당시 비행기 조종석을 발전시킨 모양이었다. 20세기의 과학기술보다 훨씬 앞서 있는 미래를 상상했지만 미처 터치스크린은 예상하지 못했다.
SF에 대한 편견 하나는 황당무계하다는 것이다. <스타워즈>를 상상하면 그럴 수도 있다. 초능력이 나오고, 광선검은 과학적으로 불가능하니까. 하지만 <스타워즈>처럼 중세 기사담과 서부극을 우주로 확장한 스페이스 오페라는 SF의 한 장르일 뿐이다. 과학적인 논리를 중심에 둔 하드 SF부터 디스토피아의 세계를 그린 사이버펑크까지 SF의 장르는 다양하다. 초기 SF 소설의 테마는 우주전쟁, 외계인의 침략, 해저와 지하세계, 초능력, 시간여행 등이었다. 어떤 면에서 본다면 비일상적인 것에 대한 동경과 비전이라고 할 수 있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지만 언젠가 도래할 수도 있는 것을 그렸다. 근대의 인간은 중세에서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사물과 사건이 눈앞에서 펼쳐지는 것을 보았고 경험했다. 그렇다면 미래는 어찌 될 것인가. 인간은 과연 어떻게 진화할 것인가. 판타지가 이곳이 아닌 다른 세상의 꿈을 꾸게 한다면, SF는 지금 이후의 새로운 세계를 상상하는 것이다. 아직 재현되지 않은 현실, 아직 구현되지 않은 상상을 SF에 담는 것이다. 즉 SF는 과학적 상상력을 기반으로 만들어지는 이야기다.
‘크루 드래곤’(Crew Dragon) 인테리어
[영상출처] 유튜브
다차원적으로 존재하는 시간 속에서
근래에 만들어진 SF 영화들을 보면서 우리가 미래에 닥칠 일을 경험해본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터스텔라>(2014)는 사막화가 진행되어 더이상 생존이 불가능해진 지구를 보여준다. 엔지니어이며 우주비행사였던 쿠퍼는 농사를 짓는다. 황폐해진 세상에서는 식량이 제일 중요하다. 그러나 쿠퍼는 지금 필요한 일만 해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고 믿는다. 미국항공우주국은 비밀리에 외계의 행성을 조사 중이었고, 인류가 이주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춘 행성을 찾기 위해 12명의 탐험가가 떠난다.
<인터스텔라>는 과학적인 영화다. 작가인 조나단 놀란은 <인터스텔라>의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대학에서 4년간 상대성이론을 공부했고, 블랙홀이 어떤 모양으로 보이는지 알기 위해 물리학자 킵 손을 초빙하여 연구하고 배웠다. 흔히 블랙홀을 거대한 검은 구멍 정도로 생각하지만, 빛이 블랙홀의 주변을 맴돌기에 특이한 모양과 빛의 움직임으로 나타난다. 영화에는 블랙홀의 모습이 사실적으로 표현된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 쿠퍼가 외계 행성을 알게 된 것은, 집의 서재에서 미지의 신호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무엇이 그에게 신호를 보낸 것일까? 영화 후반부에 쿠퍼는 거대한 도서관 같은 공간으로 들어간다. 상하좌우의 구분이 모호한 공간에서 쿠퍼는 과거의 자기 집을 보게 된다. 그리고 사랑하는 딸 머피의 모습을 보고 알게 된다. 미지의 신호는 미래의 자신이 보냈다는 사실을. 즉, 쿠퍼가 간 공간은 시간이 중첩된 다차원이다. 이 장면을 보고 있으면 비현실적이고, 상상으로 만들어낸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현대의 물리학은 시간이 과거에서 미래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편재한다고 말한다. 3차원의 인간이 그렇게 보고 있을 뿐 다차원에서 과거와 미래는 동등하게 존재한다. <인터스텔라>는 처음부터 끝까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적인 사실과 논리적으로 예측하는 장면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인간이 우주에 갔을 때 무엇을 보고, 무슨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지금의 과학이 상상할 수 있는 최대치가 <인터스텔라>에 담겨 있다. 아직 보지 못했지만, 미래에 우리가 보게 될 풍경들.
드니 빌뇌브 감독의 <컨택트>(2016)는 시간에 대한 질문을 심오하게 파고든다. 외계의 거대한 비행물체가 미국, 중국, 러시아 등의 상공에 등장한다. 아무 해도 끼치지 않고 머무르는 외계인의 의도를 알기 위해 언어학자인 루이스 뱅크스가 현장에 간다. 루이스는 18시간마다 문이 열리는 외계 물체의 안으로 들어가 외계인 헵타포드를 만나고, 그들이 소리 내는 말과 보여주는 문자를 보게 된다. 헵타포드는 문어가 먹물을 내뿜듯 한 번에 모든 문장을 말한다. 주어와 술어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원처럼 둥글게 처음과 끝이 이어지는 것이다. 시간을 하나로 인지하는 헵타포드와 대화를 하게 된 루이스는 미래를 보게 된다.
<컨택트>의 원작을 쓴 테드 창은 현재 최고의 SF 작가로 평가받는다. 과학자인 테드 창은 지금 과학계의 중요한 문제들을 끌어들여 정교한 하드 SF 소설을 쓴다.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는 것은 3차원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문제다. 과학이 아니라 철학의 문제 같기도 하다. 테드 창은 그 점에 대해 이야기한다. 미래를 모두 알고 있다면, 과연 나는 다른 삶이나 선택을 원할 것인가. 루이스는 딸의 인생에 비극이 온다는 것을 보게 된다. 만약 딸을 낳지 않는다면 비극은 사라질 것인가. 루이스는 선택 한다. 미래를 알고 있더라도 지금 나는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과학적 예측을 통해 <컨택트>가 말하는 것은 내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태도임을 영화와 소설을 통해 알게 된다. 지금 우리가 사는 현재의 시공간과 다른 미래가 되어도 나,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테니까.
미래를 위한 새로운 나침반
우주도, 과학기술도 결국 우리의 선택을 통해 의미를 갖는다.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그녀>(2013)는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타인의 편지를 대신 써 주는 일을 하는 테오도르는 컴퓨터와 핸드폰까지 모든 것을 관장하는 인공지능 운영체제 ‘OS1’을 구입한다. ‘사만다’라고 소개한 OS1의 ‘그녀’는 테오도르의 일상생활을 함께 한다. ‘인공지능 운영체제로 당신의 말에 귀 기울이고, 당신을 이해하고, 당신을 아는 직관적 실체’로서 점점 진화하며, 아내와 별거 중인 테오도르의 연인이 된다. 사만다는 육체가 없기에 수많은 사람을 동시에 사랑하는 것이 가능하고, 이미 죽은 철학자와 토론을 하는 것도 가능하고, ‘단어들 사이의 무한한 공간’을 발견할 수도 있다. 그녀의 성장은 인간의 유한성을 초월한다. <그녀>는 나, 인간이란 과연 어떤 존재인지 묻는다. 다만 <그녀>의 영화적 관심은 ‘사랑’이고, 사만다가 과연 어디까지 진화할 것인가는 아니다. 사이버펑크의 주제 중 하나인 ‘의식의 확장’이라는 점에서 <그녀>가 보여주는 사만다의 행보는 흥미롭다. 인공지능을 통해 인간은 과연 어떻게 진화할 것인가. 과거에 ‘가상현실’이라 부르던 사이버 공간은 이미 가상이 아니라 또 하나의 현실로서 존재하고 있다. 내가 사만다를 만난다면, 그녀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그녀>(Her, 2013) 예고편
[영상출처] 유튜브
SF가 과거에 제기했던 수많은 질문은 지금의 혼란스러운 ‘미래’를 살아가기 위한 예언이었다. 외계인이나 로봇 등 타자를 통한 나,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질문. 다른 세계를 상상하면서 지금 이곳의 모순을 드러내는 것,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이해를 하는 것 등등. SF의 질문들은 이제 현실과 겹쳐진다. 놀라운 세상이 이미 현실로 도래했고, 새로운 과학기술과 관계를 어떻게 이해하고 살아야 하는가를 SF가 보여준다. 기존의 나침반이 더이상 올바른 방향을 가리키지 못하는 상황에서, SF의 질문들은 현실의 상상력으로 더욱 중요해지며 미래를 위한 새로운 가치 기준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메인 사진 출처 : www.flickr.com/photos/spacex
김봉석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 영화평론가. 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프로그래머. 전 [씨네21] [한겨레] 기자, [브뤼트] [에이코믹스] 편집장. 『나의 대중문화표류기』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전방위 글쓰기』 등의 책을 썼고, 공저로는 『탐정사전』 『좀비사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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