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4차 산업혁명. 그 실체에 대해서는 비판론과 회의론도 존재한다. 하지만 다소의 선정성과 모호함에도 불구하고, 테크놀로지를 기반으로 한 거대한 변화가 도래하고 있다는 것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과거와의 차이가 있다면 이제 테크놀로지가 인간을 보조하는 것을 넘어 인간의 역할을 대신하는 수준에까지 도달할 것이라는 점이다. 그 정점에는 인공지능과 네트워크, 로봇, 증강현실(AR)/가상현실(VR) 기술 등이 존재하는데 개별 테크놀로지의 발전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각 기술의 연결과 융합, 시스템화이다. 그래서 필자는 4차 산업혁명을 ‘디지털 기술을 통해 모든 것을 연결하여 모든 것을 자동화하는 새로운 문명의 단계’로 이야기하고 있다.
상상력과 창의성의 달라진 지위
이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기 위해, 크게는 기계에 종속되지 않고 인간의 선택과 결정의 존엄을 지키는 것에서부터 작게는 생업을 위한 일자리를 얻는 것에 이르기까지 특히 강조되는 것이 바로 상상력과 창의성이다. 이 가치들의 중요성과 의미는 오래전부터 이야기됐지만, 이전에는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부가적인 조건이었다면 이제는 ‘살아남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될’ 필수조건으로 그 지위가 완전히 바뀌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막상 상상력과 창의성이라는 불똥이 발등에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것들의 실체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조차 드물다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평소 이 가치들을 그다지 고민할 필요도, 추구할 이유도 없이 살아온 기성세대가 갑자기 다음 세대의 상상력과 창의성을 고양시켜야 하는 임무를 떠맡고 만 것이다. 이래서는 자칫 엉뚱한 일을 벌이기 십상이다. 과거의 관성을 좇아 상상력과 창의성을 수치화, 정량화하여 평가하려 하거나, 어설픈 형태의 문제로 만들어 입시에 반영하려 하거나, 혹은 아예 잘못된 것을 상상력과 창의성이라며 ‘익히라고’ 내놓는 경우 등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제 과거와 달리 이런 우를 범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
일단 상상력의 본질부터 확인해 보자. 막연한 생각과 달리 상상력은 유별난 것을 떠올리는 능력이 아니라, 내가 직접 보지 않고 겪지 않은 것을 실제처럼 그려내고 또 느끼는 힘이다. 물론 남다른 관점으로 엉뚱한 것을 연상하는 것도 상상력의 일환이지만, 내가 직접 그려낸 것이 아니더라도 어떤 특정한 조건이나 상황에 집중해 나의 가치를 투영할 수 있다면 그 또한 상상력이다. 따라서 상상력을 발휘하기 위해 모두가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 같은 초현실적 사고를 할 필요는 없다. 그보다는 생각과 감정의 자유로움 속에서 나와 남,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넘나들며 사유하고 몰입하는 능력이 훨씬 중요하다.
그런데 이런 능력을 얻기 위해서는 인습이나 권위에 복속되지 않는 자유로움만큼이나 인류가 이미 쌓아온 다양한 경험의 습득이 무척 중요해진다. 인류가 언어와 문자를 통해 전달해 온 지식과 교양은 애당초 다음 세대가 전 세대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과거에 이미 일궈낸 성과를 수월하게 습득하여 더 발전시켜 나갈 수 있도록 고안된 것이다. 이를 폭넓게 습득함으로써 우리는 무지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고, 반복되는 오류를 줄일 수 있으며, 그 바탕 하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었다.
인간 존재 가치를 지키는 방법론과 태도
결국 각종 가치가 급변하고 사회와 경제 구조마저 달라질 것으로 여겨지는 앞으로의 예측 불가능한 시대일수록,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앞뒤 없는 전진이나 괴력난신의 엉뚱함이 아니라 전방위에 걸친 교양의 함양과 이를 자유롭게 서로 나누고 논하여 시대에 맞는 새로운 가치를 찾아내는 일이라는 점이다. 이것은 우리나라 사회에서 가장 부족했던 바로 그 지점이기도 하다. 이런 인문사회적 상상력이 문화예술계와 교육계에서 폭넓게 꽃피지 않으면 자칫 가치에 무관심한 기술 자체의 발전에만 정신없이 끌려가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 면에서 창의성은 이렇게 배양된 상상력의 실천적 가치라고 볼 수 있다. 상상력 자체는 그 주체의 내면의 것일 뿐 세상과 관련된 무엇을 만들어 내지는 않는다. 그런데 이제 내가 가진 상상력을 어떻게 펼쳐내어 주변과 관계할 것인지의 방법론과 그 결과는 무엇이 될 것인지의 비전이 결합하면 그것이 바로 창의성이다. 인류 역사상 상상력과 창의성을 가장 극적으로 발휘한 인물로 평가받는 아인슈타인은 당대의 물리학적 지식을 습득한 후 그 과정에서 얻어진 의문에 몰입했고, 이를 수학적으로 풀어낸 결과 우주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해석을 얻기에 이르렀다. 이 과정에서 그가 필요로 했던 것은 지성과 인습을 넘어서는 자유로운 사고, 그리고 용기와 실천력이었을 뿐, 마냥 뜬금없고 엉뚱한 생각은 아니었다.
이제 기계가 주도하는 시대를 맞이하면서 우리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능력은 바로 인간적으로 사고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것이다. 기계도 판단하고 결정하고 행동할 수 있지만, 감정이입하고 공감하고 비전을 세우는 것은 앞으로도 꽤 긴 기간 동안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상상력과 창의성은 바로 그런 인간 존재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방법론이자 태도이다. 그 결과로 무엇을 만들어낼 것인지를 예상하려 들거나 서둘러 생산적 결과를 얻어내려는 순간 상상력과 창의성은 또다시 무너지고 만다.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현실의 우선순위에 가려 나누지 못했던 생각과 느낌의 자유, 교육 현장에서 입시로 인해 밀려났던 다양한 지식과 교양, 그것들을 마음껏 버무려 새로운 것을 끌어낼 수 있는 토양의 준비, 이런 총체적인 태도와 가치관을 정립했을 때만이 기계시대에 인간을 가치 있게 만들 상상력과 창의성은 비로소 작동할 수 있을 것이다.
원종우
원종우
철학도, 록 뮤지션, 대중음악 운동가, 칼럼니스트, 정치사회 논객, 음모론 전문가, 다큐멘터리 작가, 과학 커뮤니케이터 등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해왔다. 현재는 과학과사람들 대표로 과학 관련 일에 매진하며 2020년 5월까지 3년 6개월간 김어준의 <뉴스공장> 과학코너를 맡아 진행했고 팟캐스트 <파토의 과학하고 앉아있네> 시리즈와 SBS 라디오 <허지웅쇼>의 과학코너를 진행하고 있으며, 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직도 맡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과학하고 앉아있네』 『태양계 연대기』 『파토의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나는 슈뢰딩거의 고양이로소이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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