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과 4월 각 방송사에서 예능과 음악 프로그램을 통해 코로나19 시대에 각자 적응하는 방식으로 공연 영상을 내보내는 시도들이 있었다. 코로나19 여파로 취소된 대중음악, 판소리, 창작뮤지컬 등 국내외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한자리에 모은 MBC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의 <방구석 콘서트> 특집은 집에 머물고 있는 청중에게 테크놀로지를 통해서 현장 공연의 느낌을 전달하였다.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무관객 라이브’로 진행된 공연은 무대 위에서 최선을 다해 공연하는 아티스트와 텅 비어 있는 객석의 대비가 묘한 느낌을 자아냈다. 수준 높은 공연이었지만 진행자 몇 명의 박수 소리밖에 들리지 않아 쓸쓸하기도 했다. 코로나19로 모든 공연이 취소된 아티스트들의 사정이 더해져서 더 안타까웠다. SBS의 ‘트롯신이 떴다’는 <트로트 랜선 버스킹>을 진행했다. 방송국 스튜디오에 모니터를 잔뜩 설치해놓고 무대에 오른 가수가 집에 있는 시청자들을 실시간으로 보면서 공연할 수 있도록 했다. 출연 가수들은 층층이 쌓인 화면을 통해 수백 명의 관객 얼굴을 보면서 노래하는 새로운 경험을 했다. 집에서 접속한 관객에게는 유튜브 공연 영상을 보는 것과 비슷했겠지만, 적어도 무대에 오른 가수에게는 관객 수백 명이 자신을 보고 있는 느낌을 주었을 것이다. 두 방송 프로그램 모두 아티스트와 관객의 관계는 무엇인지, 그 관계의 단절은 과연 영상, 음향, 방송 기술의 발달로 메꿔질 수 있는 것인지 생각하게 만들었다.
관계를 기술로 메꿀 수 있을까
6월에 새 시즌을 시작한 JTBC의 음악 프로그램 ‘비긴 어게인’은 그 사이 조금 나아졌지만 아직 해소되지 않은 코로나19 상황을 반영하고 있었다. 유명 뮤지션들이 팀을 꾸려서 해외 도시를 다니며 거리에서 버스킹을 하는 형식의 ‘비긴 어게인’은 코로나19 시대에는 존속하기 어려운 프로그램이다. 어떻게 새 시즌을 진행할지 궁금했는데, 결국 국내 곳곳에서 ‘거리두기 버스킹’을 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뮤지션들은 합주실에 모여 곡을 고르고 연습을 하고 청중을 찾아 나섰다. 첫 번째 버스킹 장소는 코로나19 방역 일선으로 몇달 동안 뉴스에 등장했던 인천공항이었다. 오랜만에 공항을 찾은 뮤지션들은 주말의 인천공항이 이렇게나 텅 비어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했다. 한산한 체크인 창구들을 배경으로 무대를 세팅했다. 그리고 곧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공항 직원, 방역 관계자 등이 마스크를 쓴 채 2미터씩 간격을 두고 공항 터미널 바닥에 앉아 버스킹 관객이 되었다. 아티스트와 관객이 화면을 매개로 만나는 대신 오랜만에 공기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고, 노래가 공기를 통해 관객의 귀에 가 닿았다. 두 번째로 찾아간 마포 문화비축기지 공연장에서도 비슷했다. 이번에는 무대 주위로 자동차 수십 대를 배치해 놓고 관객이 차 안에서 노래를 들었다. 역시 공기를 통해 직접 전달되는 노래였다. 바이러스가 전파될까 항상 두려워했던 바로 그 공기였다. 뮤지션들도 청중들도 그 위험을 잘 알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모여 노래를 부르고 듣기로 마음먹은 자리였다.
지난 몇 년 동안 과연 인공지능이 예술을 할 수 있는지, 예술가가 될 수 있는지에 관한 논의가 많았다. 인공지능은 그림을 그릴 수 있는가, 음악을 만들 수 있는가. 인공지능은 인간만큼 혹은 인간보다 더 창의적일 수가 있는가. 그렇다면 창의성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인공지능이 지금껏 인간이 창조하지 못한 새로운 패턴, 새로운 아름다움을 만들어낸다면 이제 인간이 설 자리는 어디인지에 대한 고민이 이어졌다. 아무리 그래도 인간만의 영역, 인간만이 보일 수 있는 창의성, 인간만이 만들 수 있는 아름다움이 있을 것이라는 항변도 적지 않았다.
위험을 위로로 바꾼 ‘공기’
지난 몇 달 동안 아티스트와 관객이 만나지 못하는 극적인 상황, 또 이들을 어떻게든 만나게 해보려는 시도들을 보면서, 우리는 예술 창작자로서 인공지능과 인간을 구별하는 다른 방식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인공지능이 인간처럼 멋지고, 창의적이고,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는 핵심이 아니다. 예술 활동 결과물의 탁월함, 아름다움만이 우리가 예술적 인공지능을 평가하는 기준이 아닐 수 있다는 뜻이다. 대신 우리는 과연 어떤 예술이, 어떤 예술가가 사람들을 불러모을 수 있는지 물을 수 있다. 인천공항에서 또 문화비축기지에서 열린 ‘비긴 어게인’ 공연이 청중에게 어떤 위로, 어떤 예술적 효과를 주었다면 그것은 단지 그들이 연주한 음악이 탁월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 공연의 예술적 효과는 근본적으로 예술가와 청중이 ‘공기’를 공유했다는 사실에서 비롯되었다. 마스크를 쓰고 공항 바닥에 앉은 사람들에게 위로가 된 것은 거기서 노래를 부르는 뮤지션들이 공항 직원들과 마찬가지로 이 사태를 같이 겪고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아티스트와 청중은 서로의 사정을 알고 있었고, 바로 그랬기 때문에 그 사정을 다 이기고 공항 로비에 모인 서로에게서 무엇인가를 느꼈던 것이다. 각자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조심스럽게 자리를 만들어 모두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이 그날의 무대를 완성시켰다.
예술 작품을 창작하는 인공지능은 과연 사람들을 불러모을 수 있을까? 우리는 마스크를 쓰고서,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인공지능이 만들어낸 작품과 공연을 보기 위해 모여들 수 있을까? 우리는 인공지능 예술가와 공기를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위로를 얻을 수 있을까? ‘비긴 어게인’의 관객들이 각자의 사정과 위험을 극복해가면서 거기 앉아 있었던 것은, 뮤지션들도 각자의 사정과 위험을 극복해 가면서 약속된 공연 시간과 장소까지 힘겹게 당도했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비긴 어게인’ 버스킹에 참여한 가수 이소라는 “노래도 혼자 하는 건 사실 의미가 없다. 누군가 들어주고 이해하는 사람이 함께 있어야 그 공간이 같은 마음으로 이뤄져서 그 마음이 커지고 평화로운 세상이 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전 세계적으로 당면한 어려움을 함께 겪는 사람들이 시간과 공간을 같이 하면서 나누는 것이 노래이고 예술이라는 뜻으로 들린다.
코로나19 사태가 극단적으로 보여주었지만, 예술은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다. 물론 이때 위험은 감염병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예술가가 여러 가지 어려움을 헤쳐가면서 무대로, 전시장으로 나갈 때 대중은 그들과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기 위해 찾아온다. 그렇게 예술가에게는 사람들을 불러모으는 힘이 있다. 인공지능이 새로운 패턴과 아름다움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몰라도, 인공지능에게는 감수할 위험이 없고 따라서 사람을 불러모으는 힘이 부족하다. 인공지능이 예술가의 지위를 위협하는 것보다는, 자신과 세계를 둘러싼 위험 속에서도 어떻게 자리를 조심스럽게 마련하고 사람들을 불러모을 것인지가 지금 예술가들이 마주한 더 큰 과제일지 모른다.
전치형
전치형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 미세먼지, 세월호 참사, 지하철 정비, 통신구 화재 등의 사건들부터 로봇과 인공지능, 4차 산업혁명과 인류세 등의 주제들까지 과학적 지혜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영역들을 주목하고 고민한다. 저서로는 『사람의 자리 – 과학의 마음에 닿다』 공저로는 『미래는 오지 않는다』 『기계비평들』 『한국 테크노컬처 연대기』등이 있다.
cjeon@ka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