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늦은 봄, 문화공간 싹을 처음 찾았다. 전주시 완산구 서신동 지하에 있는 자그마한 공간이 주는 자유로운 느낌이 매우 신선했다. 역할이 부여된 공간이 아닌 쓰임에 따라 달라지는 공간, 사용하는 이들 누구나 주인이 되는 모두의 장소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채성태 대표는 그렇게 자신의 옆자리를 모두에게 내어준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눈높이를 맞추고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열고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촘촘한 관계망이 맺어진다. 그는 사람들이 문화예술을 통해서 ‘자기 삶을 기획하는 길’을 잘 찾아갈 수 있도록 안내하는 동반자이자 친구다. 수학자 아미르 악젤은 ‘‘0’은 무한이면서 동시에 비어 있는 것’이라고 했다. 채성태 대표가 이야기하는 문화예술교육은 숫자 0과 같지 않을까?
전주에서 20년 가까이 ‘문화공간 싹’을 운영해오셨다. 민간단체가 지속적으로 공간을 운영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어떻게 운영하고 계시는가?
열린 공간을 지향한다. 문화공간 싹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비밀번호를 공유하고 있는데, 누구나 쉬었다 갈 수 있는 편안한 공간, 누구나 주인으로 이용하는 공간이 되길 바라서이다. 처음 동네에 터를 잡았을 때, 관심이 필요한 아이들이 많이 있었다. 서신동은 전주에서 잘 사는 곳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새롭게 개발된 아파트단지와 원도심의 주거환경 격차가 크다. 특히 부모가 없는 아이, 부모가 있어도 챙김을 받지 못하는 아이, 학대받는 아이 등 도시 빈틈에 숨겨져 따뜻한 손길이 필요한 아이가 많았다. 아이들이 배고파서 돈이 필요하면 언제든 가져갈 수 있도록 저금통을 만들었다. 아이들이 필요로 했고 아이들을 믿었기에 만들었던 시스템이다. 가져가기도 하고, 언제든 넣을 수 있고, 드나드는 어른들이 채워주기도 했다. 이렇게 지역과 만나면서 서로가 서로를 믿어주는 과정이 문화예술교육에서 중요하다고 느꼈다.
처음부터 큰 계획을 가지고 접근하지 않는다. 아이, 어른들을 만나면서 사람들의 관점을 따라가다 보면 이들이 원하는 그림이 있다. 거기에 집중해서 다양한 이야기를 끄집어낸다. 문화공간 싹의 사업은 이렇게 시작하여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교육으로 채워지고 만들어진다.
처음부터 큰 계획을 가지고 접근하지 않는다. 아이, 어른들을 만나면서 사람들의 관점을 따라가다 보면 이들이 원하는 그림이 있다. 거기에 집중해서 다양한 이야기를 끄집어낸다. 문화공간 싹의 사업은 이렇게 시작하여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교육으로 채워지고 만들어진다.
문화예술교육에 몸담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예술은 움직여야 한다. 어린 시절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액자 안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내가 표현하는 것, 세상을 보고 느끼는 것, 세상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싶었다. 초등학교 시절 화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학원을 한 번도 다녀본 적이 없어서 학원 다니는 애들이 너무 부러웠다. 그래도 자연과 대화하거나 주변의 이야기를 가지고 표현하면서 화가의 꿈을 키웠다. 주변에서 “넌 화가가 될 수 없어. 넌 가난해. 공장이나 들어가야 해.” 이런 말로 어린 마음에 상처를 주기도 했지만 내 꿈을 꺾지는 못했다. 오히려 서로 싸우고 약자를 위협하고 더 많이 가지려는 어른들의 모습에 실망했고, 좀 더 사이좋게 살 수는 없을까 생각했다. 그러면서 네모난 캔버스가 아니라 사람이 사는 지구에, 사람들이 화목하게 어울려 살아가는 풍경을 그리는 사람이 되기로 했고,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대학 진학 이후 구두닦이, 때밀이, 노가다를 하면서 모은 돈으로 아이들을 만나고 다녔다. 배움의 기회는 누구에게나 공평해야 한다. 생활에서 스스로 깨달음을 얻는 과정에 돈이 필수조건이 된다면, 나처럼 환경이 어려운 아이들은 교육을 받을 수 없게 된다. 아이들과 함께 문화예술교육을 하는 데 큰돈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일상을 인식하고 생활 안의 요소가 어떤 교육이 될 수 있을지 고민하고 개발하고자 노력했다.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누구든지 나 자신을 마주하고 자기 스스로를 위한 교육을 만들거나 스스로 누리는 삶의 주체가 되는 방식으로의 과정을 설계했다. 그러다 보니 지원금 없는 문화예술교육이 가능했다. 아이들뿐만이 아닌 성인, 청년도 마찬가지다.
대학 진학 이후 구두닦이, 때밀이, 노가다를 하면서 모은 돈으로 아이들을 만나고 다녔다. 배움의 기회는 누구에게나 공평해야 한다. 생활에서 스스로 깨달음을 얻는 과정에 돈이 필수조건이 된다면, 나처럼 환경이 어려운 아이들은 교육을 받을 수 없게 된다. 아이들과 함께 문화예술교육을 하는 데 큰돈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일상을 인식하고 생활 안의 요소가 어떤 교육이 될 수 있을지 고민하고 개발하고자 노력했다.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누구든지 나 자신을 마주하고 자기 스스로를 위한 교육을 만들거나 스스로 누리는 삶의 주체가 되는 방식으로의 과정을 설계했다. 그러다 보니 지원금 없는 문화예술교육이 가능했다. 아이들뿐만이 아닌 성인, 청년도 마찬가지다.
1994년부터 문화예술교육을 하고 계신 것으로 안다. 초창기와 비교했을 때 달라진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버리는 것의 중요성을 알았다. 작품을 하면서 군더더기를 버리는 것처럼 문화예술교육도 버려야 한다. ‘어떤 대상인가! 어떤 지역인가! 이곳은 이것을 했으면 좋겠다! 저것을 했으면 좋겠다! 이 사람들은 이것이 필요할 것이다! 저것이 필요할 것이다!’ 하고 기획하면, 그림이 사람들의 생각보다 기획자 시선으로 짜여진다. 모든 것을 나 자신의 프레임 안에 넣으려고 한다. 참여자에게 주체성을 강조하면서 주인으로서 역할을 주지 않는다. 내 생각 안에 가두는 거다. 기획자, 강사, 진행자 모두가 그렇다. 문화예술교육은 사고(思考)의 판을 열어줘야 한다. 사고할 수 있는 판을 열어주고 그 대상이 자기의 생각으로 판을 누리게 해야 한다. 교육할 때 사고할 수 있는 여유를 보장하나? 그렇지 못하다. 시간을 주지 않는다. 참여한 사람들 스스로 사고할 수 있는 과정이 필요한데 그 과정을 기다리는 것이 어렵다. 어떤 주제를 중심으로 할 것인지 어떻게 사고하게 할 것인지 대상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참여자들의 사고에 따라 움직이는 유연함을 가져야 한다. 고민을 나누면서 이렇게 사고가 열리면 절반은 성공한 것이다. 사고가 열리면 관심도 따라오는데 그 관심 안에서 사고하는 것, 누군가의 생각을 들어주는 것, 믿음이 쌓여가는 것으로 새로운 인적 관계가 만들어진다. 지금 운영하는 프로그램 기획도 처음에는 큰 틀만 세우고 참여하는 사람이 스스로 만들고 움직인다. 어른이든 아이든 대상과 상관없다.
광주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웹진에 쓰신 칼럼 ‘문화예술교육, 시작이 반이다’에서도 참여자가 스스로 사고할 수 있는 주체성에 대해 강조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주체적 참여자가 될 수 있는 문화예술교육 운영방식은 어떤 것일까?
일회성 교육을 하는 현장을 보면 답답한 느낌이 많다. 일부이긴 하지만, 참여하는 사람이 주인이 아니고 강사, 기획자의 프레임에 갇혀서 진행되는 프로그램을 보면 너무 안타깝다. 특히 교육의 취지를 참여자들이 알 수 있도록 충분하게 소통하는 시간을 갖지 않고, 설명해도 모를 거라는 짐작으로 지나가는 경우도 있다. 기획자, 강사들이 좋은 결과만 보여주려고 하다 보니 보여주기식으로 교육과정이 흘러가기도 한다. 기획이 현실의 상황에 맞추어 유연하게 흐를 수 있다는 것을 가정해야 한다. 문화예술교육 취지에 대한 이해가 기획자, 강사에게 더 강조되어야 한다.
그간 활동내용을 보면 도시재생, 원도심, 공동체 등 지역사회와 관련된 콘텐츠가 많다. 문화예술교육이 왜 사회적 문제와 연결되어야 한다고 보는가?
처음부터 지역을 주제로 초점을 맞춘 건 아니다. 자신이 잘하는 것을 발견하거나 그 재능을 키우기 위한 것을 먼저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지역 안에서 살아가야 할 사람이기에 미래를 그릴 수 있다.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은 지역 안에서 쓰일 때 살아난다. 이렇게 살아있는 지식은 세상과 자기 삶을 인식하는 교육과 연결된다.
미술 전공자랍시고 내가 가진 예술의 방법을 나누는 교육을 하겠다는 짧은 생각을 가졌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을 만나면서 차츰 삶에 밀착된 교육이 삶에 긍정적 변화로 이어진다는 단순한 원리를 알게 되면서 변화가 찾아왔다. 아이들은 문화예술교육을 경험하고 난 뒤 생활을 즐기는 시선에 여유가 생긴다. 어떤 이들은 주입하는 것처럼 장르 중심의 문화예술교육에 머물러 있다. 이런 접근은 참여하는 대상에게 단발적으로 끝난다. 예술가(예술교육자)가 자기만의 이야기를 예술로 표현하거나 교사가 요구한 대로 가르치는 것, 그 안에 자기 주체성은 없다. 지역은 밀접하게 내 삶과 연관되어 있고 그 안에 예술을 느끼면서 지역을 새롭게 인식하게 된다. 삶과 연결된다는 것은 누구나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자리가 생기는 것이다.
미술 전공자랍시고 내가 가진 예술의 방법을 나누는 교육을 하겠다는 짧은 생각을 가졌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을 만나면서 차츰 삶에 밀착된 교육이 삶에 긍정적 변화로 이어진다는 단순한 원리를 알게 되면서 변화가 찾아왔다. 아이들은 문화예술교육을 경험하고 난 뒤 생활을 즐기는 시선에 여유가 생긴다. 어떤 이들은 주입하는 것처럼 장르 중심의 문화예술교육에 머물러 있다. 이런 접근은 참여하는 대상에게 단발적으로 끝난다. 예술가(예술교육자)가 자기만의 이야기를 예술로 표현하거나 교사가 요구한 대로 가르치는 것, 그 안에 자기 주체성은 없다. 지역은 밀접하게 내 삶과 연관되어 있고 그 안에 예술을 느끼면서 지역을 새롭게 인식하게 된다. 삶과 연결된다는 것은 누구나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자리가 생기는 것이다.
삶 중심의 문화예술교육은 세대통합에 대한 관점이 필요하다. 사람 관계는 분절된 것이 아니라 연령, 세대, 계층, 성별 등의 사회구조 속에서 끊임없는 상호소통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세대통합적인 문화예술교육은 어떻게 가능할까?
아이들을 위한 교육을 고민하면서 자연스럽게 세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처음 시작할 때는 교육이 필요한 아이들에게만 시선이 갔는데,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면서 아이들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교육은 가정뿐만 아니라 지역에서 만나는 주민과도 연결되는 부분이 있다. 지역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아이들이 건강하고 즐겁게 자라기 위해서는 주변 환경이 달라져야 한다. 이를 위해 아이뿐만이 아니라 어르신을 위한 교육과 부모 교육이 필요했다.
교육 내용을 만들 때는 나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지역의 이야기를 잘 알고 있는 주변 어른들을 만나고 그 만남이 교육과정에 녹아나기 때문에 지역에 함께 살고 있는 다양한 세대들이 함께 융합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함께 했을 때 파급효과가 훨씬 크다. 지역의 기관, 시설과 연계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 모든 것이 사람(주민)들을 위해 존재하는데 잘 알고 사용하면 좋겠다. 그렇게 확장된다. 세상은 함께 알아가면서 살아간다.
교육 내용을 만들 때는 나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지역의 이야기를 잘 알고 있는 주변 어른들을 만나고 그 만남이 교육과정에 녹아나기 때문에 지역에 함께 살고 있는 다양한 세대들이 함께 융합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함께 했을 때 파급효과가 훨씬 크다. 지역의 기관, 시설과 연계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 모든 것이 사람(주민)들을 위해 존재하는데 잘 알고 사용하면 좋겠다. 그렇게 확장된다. 세상은 함께 알아가면서 살아간다.
교육에 대한 접근이 남달라 보인다. 상호소통적이고 호혜적인 관계 맺음을 위한 개념을 더 잘 설명할 수 있는 단어가 없을까?
고민이 많았다. 교육하면 딱딱하게 책상에 앉아서 배우거나 가르치는 장면을 생각하게 되는데, 지식을 전달하거나 받는 것도 교육이지만 그 교육 안에 서로 소통하는 과정이 있다. 교육의 큰 덩어리 속에서 이런저런 다양한 교육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내다 보면 참여자가 인식을 못 할 때가 많다. 문화나 예술과 관련된 개념이 껍질만 알려진 경우가 많다.
코로나19 시기를 어떻게 극복하고 있나? 미래에 대한 걱정이 앞서지만 새로운 상상력이 더 필요한 시기이기도 하다. 문화예술교육은 어떠한 변화에 직면해 있다고 보는가? 또는 어떠한 가능성이 열릴까?
코로나19로 인해 ‘우리한테 이렇게 시간이 주어지기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모두가 너무 바쁘게 살아왔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이 시간이 지난 이후 기존의 생각이 조금은 달라질 수 있겠다는 기대를 가져본다. 자기 삶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는 시간이니만큼 이런 생각을 필요로 하는 아이들을 도울 방법을 찾고 있다. 그러다 보니 할 일이 더 많아졌다. 주변 아이들도 챙겨야 하고, 인생의 값진 시간이 되게 하려면 어떻게 무엇을 움직일까 생각하다 보니 다른 때보다 더 바쁘다. 하루에 두 곳씩 이동하고 주말에도 쉬지 못한다.
간혹 문화예술교육 관련한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연락이 온다. 지원사업을 할 수 없으니 힘들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하소연을 듣기도 한다. 걱정스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화가 난다. 어쩌면 지금 문화예술교육이 가장 필요한 시기이고 많은 기획자가 움직여줘야 한다. 사람들이 힘들고 친구가 필요할 때이다. 지원금이 없다고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된다. 멈춰서는 안 된다. 사업이 재개되었을 때를 생각해서 함께 궁리하고 머리를 맞대면 좋은 아이디어가 생성된다. 문화예술교육자는 세상에 대한 사고가 열려 있어야 하는 데 내 생각만 하고 가야 할 곳은 보지 못하면 안 된다.
간혹 문화예술교육 관련한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연락이 온다. 지원사업을 할 수 없으니 힘들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하소연을 듣기도 한다. 걱정스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화가 난다. 어쩌면 지금 문화예술교육이 가장 필요한 시기이고 많은 기획자가 움직여줘야 한다. 사람들이 힘들고 친구가 필요할 때이다. 지원금이 없다고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된다. 멈춰서는 안 된다. 사업이 재개되었을 때를 생각해서 함께 궁리하고 머리를 맞대면 좋은 아이디어가 생성된다. 문화예술교육자는 세상에 대한 사고가 열려 있어야 하는 데 내 생각만 하고 가야 할 곳은 보지 못하면 안 된다.
서신동에 이어 요즘은 서서학동에 주목하고 계신다고 들었다. 어떠한 계획을 꿈꾸는가?
이 지역에 사시는 분들한테 내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나의 이야기를 표현하고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 이곳에는 문화예술교육에 참여할 기회가 너무 없다. 그래서 주민으로 들어왔고 함께 해야 할 거리를 찾고 있다. 공간을 더 만들거나 아파트 한 채를 더 얻어서 동마다 거점 공간을 만들까 고민 중이다. 이 아파트는 어르신들이 많이 살고 있는데, 거동이 불편해서 바로 앞에 있는 복지관에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어도 참여하기 힘들어하신다. 지금은 서서학동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하고 싶은 것들이 하나씩 생기고 있다. 어르신들을 만나 인사하고, 아이들의 걸음걸이를 살피고, 주민들의 쓰레기 버리는 모습 등 모든 장면을 모으고 있다.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하고 고민하는 지금은 맘껏 상상할 수 있는 탐색의 시간이다.
채성태
전남 무안 출생. 전북대학교 미술학과에서 한국화를 전공하고 전주에 정착했다. 1994년부터 문화예술교육을 해왔고, 더욱 다양한 활동을 하고자 2005년 문화공간 싹을 열었다. 문화공간 싹은 일반 시민과 문화예술의 거리를 좁혀 함께하는 문화예술, 생활 속의 문화예술로 싹을 틔우는 공간, 언제든지 쉽게 방문하고 참여하는 열림의 공간을 추구하고 있다. 이후 공간 이동과 확장을 거듭하면서 청소년 예술교육과 마을 유휴공간 활성화 등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지금은 재개발로 인해 이전을 준비하고 있다. 2013년 여성가족부 제9회 청소년푸른성장대상을 수상했다.
영상 & 인터뷰 사진_박영균 영상작가 infebruary14@naver.com
프로그램 사진 제공 _ 문화공간 싹
- 강현정
- 공공문화연구소(주) 소장, 문화의집과 청소년시설에서 15년 문화시설 운영 경험이 있으며, 현재 전북대학교에서 문화인류학을 공부 중이다. 공공영역의 민간주도 활동에 대한 관심이 많다. 일상의 문화 활동이 사람과 지역,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오늘도 살아간다.
hyuna1357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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