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대학의 수난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과거 ‘상아탑’이니, ‘학문의 전당’이니 하며 칭송받고 선망되던 그 자리는 처절한 경쟁과 경제 논리, 끝없는 욕망으로 무장한 이 시대와 사회의 이데올로기가 고스란히 압축된 ‘복마전’이 되어가고 있다. 지성과 낭만을 논하며 엘리트를 양성하고 정의를 외치며 대중을 선도하던 과거는 아스라한 추억이 되었다. 그저 대학재정과 실적을 위한 사업 수주, 학령인구 급감에 따른 학생 유치, 그리고 어느 대학의 경우처럼 ‘공무원 사관학교’를 대놓고 표방하며 취업의 매개자를 자처하는 직업훈련소로 변모하고 있다. 이런 시대에 ‘취업’도 ‘돈’도 되지 않는 예술대학들의 위상은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일부는 존폐의 위협을, 다른 일부는 정체성의 혼돈을 겪는 가운데, 대다수의 예술대학은 그저 이 엄혹한 폭풍우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며 대학이라는 울타리 안에 숨어 잔뜩 웅크리고 있는 형국이다.
문화예술교육이라는 정책 화두가 본격 추진된 지 어느덧 15년 가까이 흐르면서 그러한 예술교육의 양과 질, 방향성과 과제, 그리고 이를 현장에서 구현할 예술교육자의 양성과 지원 방안 다각화의 고민 역시 넓고 깊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많은 부분 여전히 우리의 문화예술교육은 강사파견 지원 및 개별 사업들 중심으로 추진되고 진행되는 것이 현실이다. 그 과정에서 우수한 예술가이자 예술교육자를 훈련시켜 양성하고 연계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할 예술대학들을 활용하는 방안이나 그들의 역할에 대한 문제의식은 상당 부분 배제되거나 무관심했던 것 또한 사실이다.
중부대학교 산학협력단 ‘예술이 사는 크크마을의 키키광장’
예술 학과/대학이 주체가 된 예술교육
문화예술교육이 보다 보편적 접근성과 확장성을 지향하면서 꿈다락 토요문화학교를 위시한 다양한 사업 중 하나로 시작된 ‘주말예술캠퍼스’ 사업은 그런 측면에서 기존에 어정쩡한 방관자처럼 방청석에 머물던 예술대학들을 문화예술교육의 무대 한 켠으로 끌어들이는 의미를 지닌다. 주말예술캠퍼스 사업은 본디 문화예술교육사 양성기관을 대상으로 프로그램 개발과 신규 문화예술교육사 역량 강화를 위한 ‘예술교육이 바뀐다’ 지원사업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다 2017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예술 관련 학과 및 대학을 중심으로 우수한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직접 운영하도록 지원하는 형태로 변모하였다. 2017년 신규 7개소를 포함한 총 11개소로 시작하여 매년 사업의 방향성과 구조, 양이 아닌 내용적 성장을 고민하며 지속적으로 사업의 내실과 운영 방식의 다각화를 적극 추진하였다.
주말예술캠퍼스 사업의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개인이나 단체가 아닌, 예술 관련 학과나 대학이 주체가 되어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운영한다는 점이다. 당연히 해당 대학이 보유한 예술 전문성 및 인적/물적 자원을 활용하여 양질의 프로그램 개발과 운영을 담당하게 된다. 대학의 전임교원이 책임연구원을 맡아 구성한 연구진이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교육강사가 이를 실행하며, 전담 행정인력을 고용하여 참여자 모집 및 관리, 사업 정산 등을 담당하는 형태로 각자의 역할이 합리적으로 분업 된 구조로 운영된다. 당연히 해당 예술 장르 전문성을 지닌 인적 자원과 대학이 보유한 공간 및 시설 등의 물적 자원이 적극 활용된다는 큰 장점을 지닌다. 2019년 사업에 참여한 대구가톨릭대학교의 경우, 대학의 넓고 큰 무용실 두 곳에서 초등학생 1~2학년과 3~5학년 대상 두 개의 프로그램을 동시에 진행하였다. 프로그램별로 주강사 2인에 보조강사 2인, 그리고 대학 재학생들이 인턴강사로 수업을 지원하였다. 덕분에 참여한 초등학생들은 드넓은 무용실을 누비며 신명 나게 예술 수업을 만끽할 수 있었고, 조명과 음악이 제공되는 소극장 무대에 서서 피날레 공연발표로 마무리하는 체험까지 가능하였다. 대학과 프로그램에 따라 VR이나 3D 펜 등 최첨단 디지털 기기 및 장비의 활용(성결대, 숭의여대 등), 다양한 전문 악기를 다루고 연주해보는 체험(명지전문대), 전공자들의 예술공연 체험(세종대) 및 여러 장르가 통합되는 예술교육 프로그램(경성대, 경북대, 서원대, 국민대 등) 등 참여 학생들이 현장의 예술가 및 예술전공자들을 만나서 배우고 체험하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이러한 사업 포맷은 참여하는 학생들에게 생소하고 궁금한 공간인 대학 캠퍼스의 문을 열어주었다는 점에서 예술대학 및 예술에 대한 친밀감과 호기심이 배가되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학부모들에게는 대학이 지닌 전문성과 공신력에 대한 신뢰와 안정감을 통해 다른 사교육이나 체험학습과 차별화되는 예술교육에 대한 기대와 믿음을 제공한다. 대학의 입장에서는 예술교육에 뜻을 지닌 졸업생 및 재학생들의 현장 경험 제공은 물론 교육강사나 연구진으로서의 역량강화를 도모할 수 있으며, 지역사회와 긴밀히 연계하는 대학의 사회적 역할과 이미지 제고에 크게 기여하는 성과를 지닌다.
무엇보다도 인상적인 것은 주말예술캠퍼스 사업은 기존의 교육진흥원 사업들에 비교하면 매우 드물게 규모나 숫자의 확장 대신 매년 사업의 내용적·질적 개선 노력을 통해 사업의 내실과 방식의 다각화를 지속적으로 이루어왔다는 점이다. 지난 3년간 매년 11개소를 선정하여 신규와 기존의 적절한 균형을 견지하였고, 사업 방향의 점진적 개선을 통해 일회성 공모사업이 아닌 지속적이고 실험적인 콘텐츠 개발을 지원하는 인큐베이팅 프로젝트로서의 성격을 강화하였다. 그 핵심에는 사업 담당자의 의지 및 유연성과 함께 전문가 컨설팅의 적절한 활용이 원동력이 되었다고 하겠다. 초기의 장르 매칭형 컨설팅에서 해당 기관의 수요 맞춤형으로, 수업 방문 평가가 아닌 사전 컨설팅과 현장 모니터링 등을 통해 연구진·강사들과의 신뢰를 쌓고 함께 개선방안을 논의하는 접근이 주효했다. 그 과정에서 콘텐츠 개발 못지않게 우수하고 경험 많은 예술교육자가 진행하는 양질의 수업 또한 우선 목표로 주목하게 되었고, 자연스레 애초 목적의 하나였던 문화예술교육사 자격증 소지자의 강사 구성 요건이 점차 완화되고 축소되기도 하였다. 천편일률적인 성공사례 발표 대신 ‘실패 사례’ 공유를 통해 솔직하고 진솔한 논의와 상호조언이 가능해진 이유일 것이다. 또한 프로그램 구성과 운영 면에서 획일적인 주 1회 수업체계를 과감히 탈피하여 ‘방학형 또는 학기형’ 프로그램의 구성, 그리고 2019년에는 사업의 특성에 따라 ‘집중 캠프형’ 등의 다각화를 통해 대상과 목적에 맞는 다양하고 유연한 프로그램 포맷을 시도하게 된 것들은 향후 다른 사업들에도 시사점이 매우 큰 성과라 할 수 있다.
대구가톨릭대학교 산학협력단 ‘생명의 돌, 춤추는 화석’
예술교육의 확산 vs 예술대학의 딜레마
이러한 나름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주말예술캠퍼스 사업이 지닌 고민과 과제 역시 적지 않다. 그리고 그 고민과 과제의 상당 부분은 우리 예술대학이 직면하고 있는 딜레마와 맞닿아 있기도 하다. 먼저, 사업의 성과를 공유하고 홍보할 수 있는 우수 사례를 발굴하고 확산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문제는 이러한 예술교육 프로그램의 경우는 전시작품이나 공연 등 결과물과 달리, 그 활용방안이나 지원방안의 모색이 용이하지 않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2014년부터 ‘예술교육이 바뀐다’ 사업과 주말예술캠퍼스 사업에 지속적으로 참여해온 중부대학교의 경우, ‘크크마을의 키키광장’이라는 기본 콘텐츠를 계속 심화하거나 확장하면서 매년 한층 완성도 높은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수행하고 있다. 시각-미디어-놀이-움직임 등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고, 학생 중심적-과정 중심적 교육철학에 입각하여 참여 아동들로 하여금 끊임없이 새로운 질문이나 시도, 상상을 독려하고 소통하는 놀이, 전시, 탐색 등이 유연하게 연계된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책임연구원-연구진-교육강사-보조강사 등이 유기적으로 협력하면서 참여 아동들과 상호작용하기 때문이다. 또한 여러 해에 걸쳐 프로그램을 계속 개발하고 운영하고 다시 수정하는 과정을 거쳐 구성원들의 ‘내공’이 다져졌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문화예술교육의 강점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주는 사례이다. 지극히 노동집약적이고 지속적인 시간과 에너지의 투입이 요구되는 프로그램을 어떻게 요약해서 공유할 것이며, 이를 어떤 방식으로 확산할 수 있는가? 혹은, 과연 확산이 필요한 것인가? 이렇게 어렵게 개발되고 다듬어진 콘텐츠가 사업의 종료와 함께 사장되어 버리지 않도록 자체적으로 혹은 다른 예산으로라도 지속할 방법은 없을까?
또한, 주말예술캠퍼스 사업 공모에 지원하는 대학들의 숫자는 증가하고 있으나 그 내용과 비전, 운영 역량 등에서 매우 미흡한 경우가 상당수이다. 그 주요 이유는 아마도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오늘날 대학들이 처한 위상과 현실이 그만큼 척박하기 때문이다. 교수나 학과의 역량이 재정지원금이나 연구비를 수주하여 대학 재정에 기여하는 정도에 따라 평가받는 것이 오늘날 대학의 냉정한 현실인 상황에서 대학본부의 재정압박과 실적에 대한 교수들의 부담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다른 분야처럼 규모 있는 연구비나 사업비를 수주하기 힘든 예술대학의 교수들에게는 이런 소규모 사업일지언정 실적을 올리고 대학 홍보에 기여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대안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나마도 평소 대학에서 예술교육에 대한 관심과 연구, 축적된 교육과 실행 노하우가 부족하다 보니 문화예술교육의 특성과 대상을 고려한 콘텐츠를 개발할 연구진이나 교육을 실행할 예술교육자들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은 상태이다. 결국 기존에 운영하던 프로그램을 재활용하거나, 깊은 고민 없이 대충 포장된 프로그램들을 짜깁기하는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이는 역설적으로 본 사업의 취지인 “대학이 보유한 전문성 및 자원을 바탕으로 실험적이고 차별화된 (예술교육) 프로그램 개발”의 가장 기본적 전제가 되는 예술대학의 전문성 및 (인적/물적) 자원이 실제로는 우리의 기대만큼 풍성하지 않다는 반증이 된다. 무엇보다도 문화예술교육에 관한 이해나 철학, 관점을 고민하고 실천하는 예술대학의 교수들이 극히 드물고, 그런 예술가와 예술교육자를 양성할 수 있는 커리큘럼이나 지원체계는 찾아보기 힘든 것이 솔직한 현실이다. 예술이 우리의 일상이 되고 우리의 일상이 예술이 되는 시대이다. 예술 감상의 대상에서 예술 향유와 창조의 적극적 참여자로 예술과 예술교육의 주체-객체 패러다임은 이미 바뀌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우리 예술대학은 울타리 밖의 세상과 현실을 애써 외면한 채 막연한 ‘예술가 양성’이라는 관성적 패러다임에 사로잡혀 ‘예술교육’이 아닌 ‘예술 교육’만을 고집하고 있지는 않은가.
김병주
김병주
서울교육대학교 교육전문대학원 교육연극과 교수. 어쩌다보니 여러 직책과 역할을 수행하고 있지만 프락시스(PRAXIS) 예술/교육감독으로 불리고 교육연극, 포럼연극, 다양한 대상들과의 시민연극을 작업하고 고민하는 티칭아티스트로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 이론과 실천, 행위와 성찰의 균형을 찾아가는 ‘프락시스’를 삶의 철학으로 생각하며 산다.
praxis@snue.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