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여성 인권운동 단체인 ‘장애여성공감’에는 몸에 대해서 새롭게 이야기하는 방법을 탐색 중인 극단 ‘춤추는허리’가 있다. 다양한 몸과 허리로 여러 가지 공연을 즐겁게 보여주겠다는 기조가 담긴 이름이다. 여성의 몸은 건강하고, 젊고, 날씬해야 한다 같은 사회적 통념에 따르자면 휘어지고 비틀거리는 몸은 비정상이 되지만, 극단 춤추는허리는 자신들의 몸으로 정상이라고 치부되는 것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균열을 내며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 대해서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질문을 던진다. 균열을 큰 구멍으로 만들기 위해 다른 단체들, 소수자들과 연대하고 있다. 혼자가 아니라 같이 가는 방법을 찾고, 실천 중인 여성들로 구성된 춤도 추고, 연극도 만드는 단체다.
‘몸을 보여주기’를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단체
장애여성공감은 1998년에 만들어진 장애여성 인권단체다. 장애여성들이 모여 자신의 이야기를 공유하기 시작했고, 어떻게 하면 이 이야기들을 사회에 알릴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장애여성공감에 소속되어 있는 극단 춤추는허리는 2003년도에 창단되었다. 장애여성의 삶을 몸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초기에는 주로 지체장애가 있는 분들로 극단이 구성되었고, 4, 5년이 지나면서 정신장애, 발달장애가 있는 분들이 합류하게 되었다. 장애 안에서도 존재하는 수많은 차이를 인식하고, 공유하고, 드러낼 수 있도록 서로 간의 이해와 합의점을 찾아가는 과정을 오랜 시간을 들여 거쳐왔다. 장애가 있는 몸을 그대로 보여주면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연극으로 만든다.
춤추는허리의 연출가 서지원은 퍼포먼스 문화제 참여로 극단과 처음 인연을 맺었을 때, 자신들이 이곳에 존재하고 있고, 다른 방법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 오직 이것 한 가지만이 중요했다고 이야기했다. 당시 무대에 섰던 경험을 “사람들은 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죠. 빨리빨리 돌아가는 세상에서 장애가 있는, 그것도 언어장애가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이런 식으로 듣지는 않으니까요. 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무대라는 공간이 좋았어요.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라고 기억하고 있다. 지난 공연부터 배우로 무대에 서기 시작한 활동가 진성선은 “공연 후에 몸에 대해서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을 수 있었어요. 연극을 하기 전에는 스스로 몸에 대해서 생각해 본 경험이 없었어요. 무대는 몸을 드러내고, 나의 이야기를 하는 공간이 되었죠. 저는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나의 차별 경험을 이야기하고, 다른 사람의 경험을 듣고, 이를 재해석하며 삶을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 볼 수 있어요. 연습실에서부터 다른 사람과 관계 맺기를 다시 시도해 보는 거예요.”라고 경험을 들려주었다.
서지원 연출가가 극단에서 연출 작업을 시작하게 된 시기는 2015년부터이다. 그전에는 극단 소속 단원이 아닌 외부에서 연출가가 합류해서 공연을 만들었다. 그런데 외부에서 온 연출가들은 단원들의 일상에 대해서 모르고, 단원들 역시 그들의 일상을 모르니 갈등이 생기는 것이 당연했다. 외부의 연출가들은 일반적인 연출가들이 의례 원하는 것처럼 완벽한 공연을 만들고자 했다. 춤추는허리가 무대에 올리고 싶은 공연의 지향점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래서 “우리끼리 해보자, 우리만의 무대를 만들어보자.”는 마음가짐으로 공연의 모든 것을 자체적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중증 장애여성이 연극을 연출하는 모습은 사회가 쉽게 상상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처음부터 잘 해내고 싶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잘 하는 것이 무엇일까? 사회가 상상해본 적이 없는 장면이 있는 공연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목적일까? 나는 그냥 나로 존재하면 안 되는 건가?” 하는 질문들이 생겨났고 이를 통해 우리답게 하는 것이 답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고 서지원 연출가는 이야기했다.
‘장애’ ‘여성’ ‘공감’이라는 키워드
춤추는허리는 ‘장애여성’이라는 단어를 쓴다. 장애와 여성 두 가지로 정체성을 나눌 수 없기 때문이다. 남성 중심 사회, 비장애인 중심 사회에서 ‘장애’ ‘여성’ ‘차별’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은 중요하다. ‘장애여성’이 아닌 ‘장애’로만 자신들의 정체성이 뭉뚱그려지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장애가 있는 여성의 경험이나 욕구를 드러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인권운동을 하는 단체라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극단의 오디션을 볼 때도 장애여성의 인권을 이야기하는 것에 관심이 있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그들을 지나가고 있는 교차성에 주목하다 보니, 청소년, 이주 여성, 성소수자와 같은 소수자들과 만나는 접점이 생긴다. 자신들의 삶이 다른 소수자의 삶과 연결되는 지점으로 무엇이 있는지 실제 경험을 돌아보면서, 질문을 찾고자 고민하고 있다. 사회에 존재하나 눈에 보이지 않는 더 많은 수의 차이들을 드러내는 방법들을 탐색하는 단체로 정체성을 채워가고 있다.
장애인을 만나보지 않거나 어떤 관계를 맺지 않고 있다면 장애인의 경험을 모를 수밖에 없다. 다른 소수자의 경험도 마찬가지다. 장애에 따라서도 많은 차이가 있고, 성별이나 경험에 따라서 발생하는 차이도 무수하다. 춤추는허리는 이 차이를 드러내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진성선 활동가는 이 과정에서 갈등이 생기기도 하지만 이를 풀어나가는 과정, 즉 동료가 되어가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서지원 연출가는 무대에서 몸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것이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관객과 관계 맺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라고 강조한다.
서지원 연출가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집회에 모인 많은 사람을 보면서, “사회가 무엇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길래 저렇게 많은 사람이 집회를 하고 있을까? 여전히 보이지 않게 차별받는 사람들이 너무 많구나. 어떤 생각으로 목소리를 낼 것인가?”를 고민했다고 한다. 더 넓게 보고 더 넓게 생각하고, 사회가 규정한 정상과 비정상에 대해서 끊임없이 생각해야 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어쩌면 ‘공감’이라는 키워드는 좁게 보자면 동료가 되어가는 과정, 더 넓게 보자면 차이를 알아보는 눈을 갖는 것, 사회의 구조를 직시할 줄 아는 것이 아닐까.
무대에 올리는 이야기를 만드는 창작 방식
공연의 주제를 정할 때는 다 함께 모여 이야기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오랫동안 같이 고민을 나누는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무대에 올리기 때문에 결국에는 각자의 이해 정도에 따라 공연의 내용이 달라진다. 한 주제에 대해서 오래 생각하고, 연대하는 단체들을 만나보는 과정을 거친다. 공연 만들기가 자신의 세계를 깨는 과정이 되기도 한다.
매주 2회씩 갖는 정기적인 연습 시간에는 창작 워크숍이나 장면 만들기 워크숍을 진행한다. 연습하는 시간을 꾸준히 갖는 이유는 비장애인처럼 연기하거나 기능적으로 무언가를 잘해서 최고의 연기자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다. 자신의 장애에 맞는 호흡이나 발성을 찾기 위해서다. 춤추는허리가 기량을 기른다는 것의 의미는 크게 두 가지이다. 먼저, 자기 몸 상태에 따라서 자기답게 표현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팔에 장애가 있는 아빠 캐릭터를 소화하기 위해서는 먼저, 대상을 장애인으로 보이게 할 것인지, 비장애인으로 보이게 할 것인지를 결정한다. 만약, 팔을 들어 아빠의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 어려울 때는 다리를 움직여서 아빠를 표현하면 된다. 두 번째로, 이야기하기를 멈추지 않는 것이다. 처음 하는 일은 장애가 있건 없건 간에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다. 예를 들면, 복잡한 은행 업무 보기, 낯선 장소에서 낯선 사람 만나기 등이 있다. 누구나 처음에는 실수하고 실패할 수 있는 일이다. 이런 일상의 일들을 만나고, 실패하고, 또 다른 일을 만나고 실패하고, 이렇게 계속해서 나아가는 것이 기량의 완성이다. 서지원 연출가는 이런 마음을 갖는 것 자체가 예술적인 성취라고 생각한다. 함께 실패할 수 있는 동료를 찾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공간을 지켜내는 것이 바로 주체성이라고 강조한다.
사회에 균열을 내는 특별한 공연
춤추는허리의 기획자 이진희는 자신들의 공연이 사회에 균열을 일으키기 때문에 특별한 공연이라고 생각한다. 공연이 자신들의 일상을 공유하는 것으로부터 만들어지기 때문에, 결국 정상적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는 이 사회에 균열을 내는 것은 사적인 이들의 일상이다. 사적인 이야기가 공적으로 발화되는 순간을 만들어 내고 다수 사람이 목격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역량이 장애여성공감과 춤추는허리에 어느 정도 쌓여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또한 한층 나아진 사회의식의 증거이기도 하다. 춤추는허리는 여기서 더 나아가, 치료의 맥락에서 언급되는 것들, 비장애인에게 감동과 영감을 주는 극복서사를 벗어난 이야기 만들기를 이어가고 있다.
가장 먼저 만나 볼 수 있는 공연으로 11월 28일부터 12월 1일까지 이음센터에서 올라가는 신작이 있다. 아직 제목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탈시설을 주제로 하고 있다. 탈시설이 물리적인 공간을 나와서 이동하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어떤 청소년에게는 집이 감옥일 수도 있다. 누군가는 탈시설을 했을지라도, 자유를 느낄 수 없는 환경에 놓이기도 한다. 각자의 경험치와 상황에 따라서 탈시설의 맥락은 달라진다. 장애인이 시설 밖에 있으면 위험하지 않을까, 사기나 당하지 않을까로 축소해서 단순화시킬 수 없다. 결국,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여러 사람의 이야기와 만날 수밖에 없는 주제이다. 장애인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사회의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서지원 연출가는 “나와 먼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우리가 소수자에 포함되지 않기는 쉽지 않아요. 내가 누구와 관계 맺을지 고민을 시작하는 것도 중요해요. 소수자들의 경험을 알고, 부딪히고 하는 것도 연대할 수 있는 시작점이 될 수 있어요.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요.”라고 말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서지원 연출가는 주체성이란 “함께 실패할 수 있는 동료를 찾고, 나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공간을 지켜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그녀의 동료는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누구나’라는 쉬운 대답 대신에 ‘소수자’라는 단어를 선택했다. 이들과 함께 계속해서 실패할 수 있는 권리를 찾고, 자신들의 이야기들을 여러 사람을 향해서 말할 수 있도록 무대를 지켜내는 것이 장애여성공감 극단 춤추는허리가 나아가고 있는 방향이다.
[참고]
– 『어쩌면 이상한 몸-장애여성의 노동, 관계, 고통, 쾌락에 대하여』(장애여성공감, 오월의봄, 2018)
– 강연회 ‘또 다른 시선-장애예술과 극장’ 중 <나는 예술가입니까>(신촌문화발전소, 2019. 4.18.)
– 서울시 인권위원회 5차포럼 자료집 「서울시 장애인 문화예술권 확보를 위한 쟁점과 제안」(2018. 7.10.)
– 서지원 연출가, 진성선 활동가·배우 인터뷰 (2019.10.21. 인터뷰어 전강희)

사진제공 _ 장애여성공감 극단 춤추는허리
전강희
전강희
공연평론가, 드라마터그, 축제의 프로그래머로 활동하고 있다. 2013년부터 2018년까지 독립예술웹진 [인디언밥]의 편집인으로 활동하며 여러 장르의 신진예술가들 작업을 기록하고 소개했다. 2015년부터는 서울변방연극제의 대표로서 축제를 만들고 있다. 무용팀 ‘움직임탐구그룹 14feet’와 새로운 기술을 적용해 설치형 공연을 만드는 ‘시적극장’ 등 다양한 장르의 작업에 드라마터그로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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