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바지 더위에 대구예술발전소에서는 생태예술 프로젝트 ‘도롱뇽의 눈물, 나비의 꿈’ 퍼레이드를 위한 작업이 날씨만큼이나 뜨겁게 달궈지고 있었다. 작업장은 거대한 인형과 탈을 만드는 곳, 의상을 꿰매고 색칠하는 곳, 노래를 연습하는 곳, 장다리를 익히는 곳 등 이곳저곳 아니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는데, 그 열기를 내뿜는 참여자들의 뒤꽁무니를 쫓아가 보았다.
저는 순한 양입니다, 저는 예쁜 꽃입니다.
탈 또는 가면을 만들고 있는 아이들이 자신을 소개하는 멘트다. 듣기에 따라선 이름이 아니라 배역으로 설명하는 것이 별것이 아닐 수도 있다. 한데, 언제부터 양과 꽃이라고 말하게 된 것일까. 역할이 정해졌을 때부터일까 아니면 가면을 만들면서부터일까. 어쩌면 누군가의 장난스러운 호명이 시작점이 되었을 수도 있다. ‘나는 누구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삶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누구라고 부르고 불린다는 것은 ‘~되기’의 실천과정에서 일어나는 사건이자 책임과 의무를 떠맡는 무거운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아이들의 알림은 역할극 놀이에서 이뤄지는 가벼운 인사 같은 것이다. 그러나 지금 여기에서는 장난스러운 호칭이 ‘언어는 문지기일 뿐이니 이 너머의 다른 곳을 보라’고 손짓하고 있었다. 연극은 이미 시작되었고 지금은 공연 중이라고 말하는 계시처럼 들렸기 때문인데 잠시 멍할 수밖에 없었다.
가면을 만든다는 것은 자신을 설명하는 기호를 만드는 일로 마치 우리의 옷처럼 신분, 취향, 가치관 등 어떤 정보를 장착하는 것과 유사하다. 아마도 아이들이 양과 꽃으로 변신하게 된 것은 자신을 덧씌울 가면을 작고 서툰 손으로 하나하나 자르고 붙이고 색칠하는 일을 반복하면서 몸이 시나브로 바뀌게 된 것이 아닐까. 재밌는 것은, 존재가 바뀌는 과정이 사람은 곤충처럼 껍질을 벗지 않고 껍질을 입으면서 발생하고 있었다. 가면을 쓰게 되면, 그 존재가 되어보는 것을 넘어 그 대상을 기억하고 유추하게 된다. 때문에 도롱뇽이 되면 몸은 꼬리뼈가 꿈틀꿈틀하며 움직이는 상상을 하고, 나비가 되면 날갯죽지가 팔랑팔랑 춤을 추는 듯한 상상에 젖는다. 배역을 그리고 대상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한때 도롱뇽이었고, 나비였고, 황새였고, 양이었고, 꽃이었기에.
[변신술을 위한 연극적 연산과정]
죽마고우의 기원을 좇아서 친구가 된 아이들
여기엔 또 다른 변신자들이 있다. 이글거리는 아스팔트 표면을 발로 쿵! 쿵! 두드리는 거인들, 그들은 흡사 진격의 거인들처럼 큰 걸음으로 거만하게 세상을 굽어본다. 아이를 올려다본 게 언제일까. 하물며 눈높이를 맞춰서 이야기한 적이 얼마나 될까. 이런 어른을 꾸짖듯이 장다리 거인의 눈빛은 높은 곳에서 꼬나본다는 느낌을 준다. 이 풍경은 장다리를 익히고 있는 아이들이 만들어낸 그림이다. 건들거리는 아이들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끗거린다. 그냥 연습이고 걸음일 뿐인데, 잔잔한 거리의 일상에 작은 파동을 일으키고 있다. 80센티미터 높이의 장대 위로 올라선 아이들은 스웩 넘치는 제스처로 멋짐을 뿜뿜 풍기며 걷는다. 이렇게 되기까지 즉, 도구와 몸이 하나의 몸인 양 연결되어 걷게 되려면 시간이 좀 걸린다. 이 아이들은 작년에 50센티미터 높이의 장다리로 첫 걸음마를 뗀 후 주기적으로 장다리를 함께 익혀왔던 멤버들이다. 대나무 말을 타며 놀았던 어린 시절의 친구를 말하는 죽마고우처럼 이 멤버들은 장다리로 높은 시야를 누리는 사이가 되었다.
장다리는 처음에 홀로 설 수 없다. 2인 1조로 번갈아 익히게 되는데, 한 명이 장다리를 착용한 후에 직립보행을 위해 일어서서 첫발을 떼고 혼자 걷을 수 있을 때까지 다른 한 명은 부모처럼 붙잡아 주고 넘어지면 일으켜 세워주고 다시 걸을 수 있도록 서포터 역할을 수행한다. 이 때문에 장다리 착용자는 파트너를 전적으로 믿고 의지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가 오롯이 홀로 서서 세상과 당당히 마주하는 최초의 기쁨을 파트너와 함께 맛보게 된다. 또 하나의 특이점이라면, 이들을 지켜봐 주는 코어(core) 멤버가 있다. 불과 몇 년 전에 동일한 고통과 쾌감을 맛보았던 경험자로서 함께 하고 있었는데, 특별히 노하우를 전수하지는 않았다. 스스로 터득할 수 있도록 묵묵히 기다려 줄 뿐이었는데, 이런 모습 하나하나가 쿵쿵거리는 장다리 발걸음 소리처럼 마음을 두드리고 그 진동은 파동으로 바뀌어 울림을 준다. 장다리 훈련을 마친 아이들은 다시 작아졌다고 푸념하지만, 잠시 동안 호연지기를 길렀으리라.
[예술적 도약이 이끈 자신감]
제의성의 회복을 찾아 떠난 여행
나무닭움직임연구소(대표 장소익)는 꼭 해야만 하는 연극을 만들려고 한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 아닌, 여가를 위한 연극이 아닌, 보다 근원적인 문제로 접근하려고 한다. 그것이 ‘연극의 제의성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란 화두로 이어져 공부를 위해 떠난 남미 여행에서 많은 아이디어를 얻게 되었단다. 그곳에서 워크숍과 탈을 갖고 하는 일인극 순회공연으로 마을을 찾아가면서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남미에는 시골 마을 한복판에 신기루처럼 극단과 극장이 있었고, 일인극을 보여주면 보통은 돈과 술을 주는데, 남미 사람들은 답례로 자기들 공연을 보여줬다. 무대에서 객석으로 자리를 옮겨 앉아 문화의 물물교환이라는 낯선 교류방식을 체험한 것이다. 남미 사람들은 마을 이야기와 마을의 춤과 노래 즉, 마을마다 교환할 문화가 없다면 몹시 수치스럽게 여긴단다. 이들의 이야기는 부메랑이 되어 우리의 마을로 되돌아온다.
그즈음 서울 대학로에서 경북 청송의 폐교로 사이트를 옮긴 나무닭움직임연구소는 ‘지금 이곳의 그들에게’ 스며들기 위해 장소를 발견하게 된다. ‘길 위의 무대’라는 공간을. 극을 위해 가공 또는 변형된 공간이 아니라 그들의 삶을 둘러싼 일상적 공간 그 자체가 이미 훌륭한 무대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연극의 태생이 거리에서 나왔듯이 그리고 우리의 굿거리 또한 길거리가 굿이 이뤄지는 무대였다는 사실도. 그렇게 환경연극의 세계로 들어서게 되었다. 연암 박지원의 사상도 길 위의 대화로부터 만들어졌듯이 거리는 “자연에 깃들어있는 천지신명과 내 안의 신명이 만나 새로운 삶의 에너지를 충전하는, 생태계와 교감이 이루어지는 장소”이자 마주치는 사람마다 안부를 묻고 소통하는 열린 공간이다.
[20~30년에 걸쳐 마을극장을 만든 남미 예술인들]
  • 남미여행 1인극 사진
    [사진 제공] 나무닭움직임연구소
밈,밈,밈, 밈~~~
매미는 무더위를 기다렸다가 자신이 자란 토양 위의 나무를 암벽 타듯이 올라서서 울어댄다. 우리는 어디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일까. 참매미의 울음은 ‘밈밈’소리를 반복적으로 내다가 ‘밈~~~’하고 길고 높은음을 낸다. 그리곤 다른 나무로 자리를 옮겨 다시 소리를 낸다. 매미의 짝짓기 샤우팅처럼 지금 여기 대구의 달궈진 거리는 잃어버린 뭔가를 찾아 여행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퍼레이드를 기다리고 있다. 어떤 볼거리가 펼쳐질까. 100여 명의 행렬엔 거대한 도롱뇽 인형, 황새로 변신한 장다리 그룹, 사자와 양 그리고 꽃의 탈을 쓴 아이들, 그 외 행진을 지켜보며 따라가는 거리의 시민은 어느 순간 행렬의 일부로 녹아든다. 행렬의 좌우에는 번쩍번쩍 플래시가 쉴 새 없이 터진다. 퍼레이드에 참여한 손들은 손을 흔들고, 손을 내밀어 악수하기도 하고, 손을 붙잡아 당기기도 한다. 함께 걷자고. 그렇게 뭔가에 이끌려 행렬과 행진은 이어진다. 연극의 제의성은 어쩌면 주술적 상황에 빠져드는 경험일지도 모르겠다. 여름 한 철을 울어대는 매미처럼 나무닭움직임연구소의 퍼레이드도 ‘나, 너’가 아니라 ‘우리’가 되어 보자는 일종의 프러포즈가 아닐까. 행위자와 보는 자로 구별 짓지 말고, 아이들과 노년을 분류하지 않고, 인간과 동식물을 고립시키지 않고, 강자가 약자를 괴롭히지 않고, 개인적인 삶의 문제에서 한 번쯤은 벗어나서 우리 모두의 문제 앞으로 함께 걸어가 보자고. 문화의 소비자가 아니라 문화적 주체이고 싶은 욕구를 건강하게 풀어내 보자고. 지금 여기 거리에서.
[저항이 필요할 때 힘을 모으기 위한 공동체 문화운동]
퍼레이드
[사진 제공] 나무닭움직임연구소
나무닭움직임연구소를 더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 미처 전하지 못한 이야기
안전을 강요하면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 반대편에 자유가 있다.
어른이 되기 위한 통과 의례, 불덩이 돌리기
기술은 점점 우주로 나아가고 하지만, 인간은 점점 우주로부터 고립되어가고 있다.
그림 _ 임체스
영상 _ 박영균 미술작가 infebruary14@naver.com
사진 _ 김종현 사진작가 digi@cacoong.com
임상빈
임체스(임상빈)
체스 마니아로 사람과 사물의 이미지를 체스말의 상징과 행마법으로 연결하는 작업을 하고 있으며, 교육예술 연구팀 ‘잔꾀’로 활동하고 있다.
작업실 서울시 성북구 성북로 12길 20
홈페이지 zanque.modoo.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