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유아극(Baby Drama)은 주로 36개월 미만 아기들이 보는 연극을 말하며, 국제적으로는 스몰사이즈(Small Size)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내가 처음으로 영유아극을 접한 것은 2006년 아비뇽에서였다. 당시 <은어송>이란 작품으로 아비뇽 축제에 참가했는데, 우리 공연장 바로 옆에 있는 극장에 아침마다 유모차가 길게 늘어서는 것이었다. 하루는 궁금해서 유모차를 따라 들어갔더니, 아기들이 기저귀를 차고 젖꼭지를 물고 연극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게 뭐지?” 다음 해 한국 아시테지 이사장 자격으로 덴마크와 스웨덴을 방문했을 때, 정식으로 스몰사이즈 부스를 찾아 영유아극을 접하게 되었다.
  • <잼잼>
의욕적인 도전, 가능성의 발견
이후 영유아극을 우리 사회에 알리고 싶어서 다양한 노력을 했지만 잘 전달되지 못했다. 문화예술 쪽에는 이를 지원하는 카테고리가 없어 시의 다른 지원에도 도전했었지만 “내가 유치원 선생인데 아이들이 어떻게 40분을 집중합니까.”하는 소리만 들었다. 물론 필요한 작업이라면 지원이 없어도 해야겠지만 영유아극은 한 공연에 30~40명 내외의 관객밖에 받을 수 없기 때문에 공적인 지원 없이 작품을 만든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다행히 2010년 마포아트센터 상주단체가 되면서 극단이 스스로 작품을 선택할 수 있게 되어 처음으로 <꽃사랑>이란 공연을 만들 수 있었다. 삼신할미 이야기에 바탕을 두고 ‘어미는 누구나 삼신’이라는 생각으로 만든 작품이다. 그런데 의욕만 갖고 만든 작품이라 그랬는지, 공연 중에 내가 나타나기만 하면(내가 마마대왕 역을 맡았다) 아기들이 울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공연 전에 약 15분 정도 아기들과 놀면서 친해지는 시간을 가졌더니 아기들이 덜 울었다. 다음 해에 서울 아시테지 축제에서 영유아극 전문가들에게 이 작품을 쇼케이스 형식으로 선보였더니 “이 작품은 24개월부터 48개월을 대상으로 쓰라.”고 했다. 작품에 ‘서사’가 있어 아기들이 이야기를 따라가려면 적어도 24개월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 영유아극은 서사가 없는 것일까? 서사가 있더라도 그것을 꿰지 않아도 되는 형식은 아닐까?
한동안 다음 작품을 못하고 있다가 ‘부천문화재단’을 만나면서 다시 작업할 수 있었다. 부천문화재단에서 어린이 축제를 만들면서 영유아극을 초청해줘서 살풀이춤을 바탕으로 한 <새>를 만들었다. 아기들은 수건 갖고 노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 수건으로 예술적 경험을 쌓게 하고 싶었다. 줄거리가 있기는 하지만 굳이 줄거리를 따르지 않아도 되는 공연이었다. 그런데 공연 중에 아기들이 뛰어다니는 난감한 상황이 발생했다. “아, 실패했구나.” 하고 접으려고 했을 때, 부천문화재단 대표님이 거기서 가능성을 보고 작품을 발전시켜 보자고 했다. 이후 <새>는 극단민들레의 대표 작품이 되어 여러 나라에서 공연하게 되었다. 다음 해에는 부천문화재단과 보다 협력적인 관계를 맺어 부천 시내 어린이집을 찾아 연출과 배우가 수개월 동안 아기들과 놀면서 아이디어를 찾고 작품을 개발했다. 아기들이 일어나서 밥을 먹고 옷을 입고 집을 나서기까지의 과정을 먹거리를 중심으로 만든 공연이 <맘마>다.
그러나 글 쓰는 이가 본격적으로 영유아극에 눈을 뜨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2016년 아이들극장 상주단체가 되어 영유아극 워크숍을 통해 전문가인 장은주(재키) 선생을 만난 것이다. 지금까지는 주로 감으로, 더듬이를 더듬어가면서 작품을 만들었다면, 장재키 선생을 만나 이론을 갖출 수 있었다. 선생은 아이들의 발달 단계부터 신체적 정서적 특성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주었다. 이러한 공부를 바탕으로 아기들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여기서 예술적 가치를 찾아내고, 놀이를 확장시켜 예술적 동작으로 만드는 작업을 했다. 이렇게 만든 작품이 <잼잼>이다.
  • <꽃사랑>
  • <새>
아이들의 감각을 여는 가장 좋은 도구
여기서 공부한 내용을 다 정리할 수는 없지만 대강 요약하면 이렇다. 사람은 36개월 이전에, 특히 12개월에서 24개월에 시각을 제외한 모든 감각이 폭풍처럼 발달한다는 것이다. 시각은 만 6세가 되어야 1.0 정도의 시력이 생긴다고 한다. 또 아기들이 보는 시각선도 매우 좁아서 동선을 넓게 사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니까 극장의 좌우 폭이 넓으면 아기들에게 부담이 된다. 또 화려한 색과 화려한 조명은 그렇게 필요한 요소가 아니라고 한다. 한편, 영유아기는 급격한 골격계의 변화가 일어나는 시기이기에 아기들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이를 배우 몸풀기에 적용하니 배우들의 몸이 더욱 부드러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또 보통 사람들이 가장 빠지기 쉬운 함정은 아이들을 ‘교육’시키는 것이다. 이 시기에는 ‘인지’라는 것이 ‘운동’과 ‘감각을 여는 작업’을 통해 일어난다고 한다. 그러니까 흔히 말하는 교육은 크게 효과가 없다고 할 수 있다. 아기들에게 운동은 뭘까? 놀이다! 그리고 어린이들의 감각을 여는 가장 좋은 도구가 ‘연극’이라고 한다. 책이나 음악도 좋지만 연극은 관계성과 거리감, 부피감 등이 있어서 더욱 다양한 감각을 발달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상상의 정체를 듣고 쾌감을 느꼈다. 상상이란 막연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데이터를 다 사용해도 이해할 수 없을 때 작동하는 것’이라고 한다. 나는 ‘연극적 상상’을 ‘한계 안에서 최선의 결과를 찾는 것’이라고 했는데, 이것과 너무 잘 어울리는 답이었다.
공부를 하고나니 작품을 만드는 것이 생각보다 수월했다. 우선 아기들의 몸동작을 살피고 그것을 안무화하는 작업을 했다. 공연에서 아기들은 자기들이 흔히 하는 동작을 보면서 쉽게 시선을 주었다. 여기에 예술적 감각이란 무엇일까 생각하면서 몸을 확장시켜 일종의 무용동작을 겸했다. 그리고 손주들과 놀면서 가졌던 놀이를 찾았다. 그 놀이에서 다시 예술적 감각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면서 소꿉놀이를 확장시켜 나갔다. 손자와 놀면서 자동차를 길게 늘어놓고 기차놀이를 하던 것을 바탕으로 나무토막을 늘어놓고 기차놀이를 했다. 아기들의 놀이에 바탕한 것이어서인지 아이들이 무척 좋아하는 장면이었다. 물론 그것으로 탑을 쌓고 무너트리고, 쌓고 무너트리는 동작을 반복했다. 아기들이 나와 무너트리는 것을 도왔다. 아이들의 신체 활동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아이 동작을 확장하여 스트레칭을 하고 물구나무서기를 했다. 물론 아기들이 물구나무를 서지는 못하겠지만 이 동작을 모방하면서 신체 발달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서였다. 무엇보다 ‘잼잼’ 동작에 철학을 넣었다. 손을 쥐었다 펴는 동작에서 ‘소유와 나눔’의 철학을 발견하였고, 이를 안무화했다. 물론 아기들이 이 철학을 공유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어떤 다른 감흥을 느낄 것이고 성장해서 좋은 선생님을 만나고 선배를 만나면서 자기 생각을 구축할 때 영향을 줄 것이라 믿는다. 이런 철학을 넣으니 ‘잼잼’이 단순하게 손을 쥐었다 펴는 것이 아니라 의미로 작용했고, 예술가의 의도가 들어가면서 특히 펴는 동작에 더 힘을 주게 되었다.
  • <잼잼>
영유아기 예술 향유의 필요성
이제 우리 사회에서 영유아극 운동이 확산되어야 한다. 국가적으로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는데, 국가가 아기들의 문화적인 면까지 고려한다면 부모들이 공공에서 아기를 돌본다는 확신을 갖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아기 때 이런 경험을 한 사람들은 성장하면서 ‘집중력과 상상력이 좋아지고 무엇보다 공감능력이 뛰어나고 중재하는 힘이 커진다’고 한다. 가만, 요즈음 우리 사회의 폭력과 범죄 문제에서 저들에게 가장 부족한 점이 공감능력이라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겠다. 그렇다면 이제 사회적 비용을 줄이기 위해 사회가 무슨 일을 해야 할까? 아기 때부터 공연을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우리 예술가들이 이런 문제까지 생각할 필요는 없겠지만, 정책 입안자들이 이런 점을 헤아린다면 아기들이 연극을 볼 수 있는 환경과 재정을 만들어줘야 할 것이다. 유엔 아동권리 협약에 “어린이 청소년은 누구나 균등하게 문화예술을 향유하고 여가를 즐길 권리를 갖는다.”라고 했다. 인류 보편의 가치를 실천하기 위해서라도 아기들부터 공연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사진제공_극단민들레
arte365
송인현
극단민들레 대표, 스쿨씨어터(SchoolTheater) 협동조합 이사장을 맡고 있다. 극단을 중심으로 민들레놀이극연구소와 민들레연극마을을 운영하며 연극을 만들고 있다. <놀보, 도깨비 만나다!> <똥벼락> <은어송> 등을 작·연출했으며, 국제아동청소년 연극협회 한국본부 이사장, 아시테지페스티벌(ASSIFEe) 예술감독을 역임했으며, 제8회 아시테지 연극상, <놀보, 도깨비 만나다!>로 2000년 서울어린이연극상 최우수작품상, 연출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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