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영화계를 보면 이른바 슈퍼히어로 영화 전성기임을 알 수 있다. 지난 수 년간 아이언맨, 캡틴아메리카, 스파이더맨, 헐크, 토르, 슈퍼맨, 원더우먼, 배트맨 등 다양한 캐릭터의 슈퍼히어로가 자신의 적을 깨부수고 지구를 구하기 위해 스크린 상에서 동분서주했다. 그리고 이들을 능가하는 거대한 적들이 나타났을 때, 아예 이들이 함께 모여 거대한 적을 쳐부수는 ‘어벤져스’ 조직까지 등장하게 되었다. 뭐 사실 영화를 보기 전부터 결말은 뻔하지 않겠는가. 자신만의 특출한 능력이 있으면서 그들이 모여서 엄청난 시너지를 발휘하는 ‘어벤져스’라니.
[아르떼 365]에서 이들을 만나 인터뷰를 해달라고 부탁했을 때, 문득 이러한 생각이 들었다. 대략적인 이야기를 들어보니 바로 이들이 예술교육계의 ‘어벤져스’가 아닌가. 바로 ‘상상이즘’이라는 이름의 단체에 대한 이야기다. 상상이즘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하 ‘교육진흥원’) 아르떼 아카데미 ‘2017 KCP 우수 교육 프로그램 수료과정’(이하 ‘KCP’)에 참여한 멤버들이 뭉쳐 2018년에 정식으로 발족한 단체다. 날씨가 꽤 날카로웠던 겨울의 어느 주말, 상상이즘 회원 중 한 명이 운영 중인 인사동 인영갤러리 사무실에서 이들을 만나 결성과정, 활동, 목표 등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각자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김경아 : 상상이즘의 회장을 맡고 있다. 의상학과를 졸업하고 경찰공무원으로 정년퇴직했다. 예술에 대한 열정으로 그림을 그려왔는데, 과거 문화예술교육사 자격증을 따면서 교육진흥원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지금은 강남구청에서 노인 대상의 예술교육에 관심을 두고 프로그램을 개발 중이다.
신은희 : 한국도슨트협회 교육이사로 재직 중이다. 원래 화장품 회사에서 화장품에 대한 교육을 담당했다. 화장품이 다양한 색조를 띄다 보니 예술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몇 년 전 문화예술교육사 자격증을 따면서 미술교육에 눈을 뜨게 되었다. 회사의 업무도 그랬고, 적성에 맞더라(웃음). 지금은 겸재정선미술관에서 도슨트를 진행하고 있고, 다양한 기관에서 도슨트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권은미 : 디자인을 전공했고, 뉴봄디자인 대표로 있다. 지역과 디자인이 결합한 모델에 관심을 가지고 판교 지역에서 지역 주민들과 함께 잡지를 창간, 발행했다. 그런데 1년 반 정도 진행하니까 힘에 부치더라. 취미로 생각하는 참여자들도 있고, 지속하기가 어려워서 휴간을 하게 되었다. 그 상황에서 KCP를 알게 되었고, 예술과 교육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현재는 일반인, 학생,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IT 예술교육을 진행하고 있고, 상상이즘의 디자인 관련 업무도 맡고 있다.
문구 : 현재 인영갤러리를 운영 중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큐레이터에 대한 목표가 있었다. 대학원에서 미술사를 전공하고 사립미술관에서 일하며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미술관 교육을 진행했는데, 이 분야가 적성에 맞더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교육강사로 몇 년간 활동했고, 그 와중에 KCP를 접하게 되었다. 전시와 교육을 접목한 프로그램을 기획 진행하고 좀 더 발전시키고 싶었다.
장엄지 : 미술교육을 전공했고 문화예술교육사 자격증을 통해 교육진흥원과 인연을 맺었다. KCP를 통해 미술교육 프로그램에 대해 좀 더 업그레이드할 수 있었다. 여러 기관에서 만화와 디자인을 통합하는 예술교육을 진행하고 있고, 상상이즘에서 막내로 기록을 담당하고 있다(웃음).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이미 탄탄한 전문성을 가지고 계신 듯하다. 그런데 KCP가 어떤 프로그램이고 어떤 과정을 거쳤길래 이렇게 뭉쳐서 단체까지 만들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김경아 : KCP는 장르별 특성을 심화시킨 전문적인 교수법을 체험하고 습득할 수 있도록 문화예술교육자를 대상으로 운영한 프로그램이다. 2주 동안 80차시의 과정으로 운영되었는데, 해당 분야의 기초부터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 개발까지 전 과정을 아울렀다.
신은희 : 2017년에는 연극, 미술, 무용, 세 분야의 프로그램이 운영되었는데, 미술의 경우 ‘KCP 미술의 상상과 확장’이라는 테마로 진행되었다. 미술 교육에서의 기본이 되는 조형 요소와 시간, 공간, 색채, 미디어를 통한 발상의 전환, 그리고 미술의 시각 원리와 개념, 구조, 상호작용 등을 바탕으로 한 사고의 확장을 다루었다. 일단 문화예술교육 종사자를 대상으로 전문가 교육 프로그램 80차시를 집중적으로 진행하다 보니, 시쳇말로 ‘장난 아니게 힘들 정도로’ 집중적이고 강도 높게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통학형과 숙박형으로 나누어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는데 이중 통학형으로 프로그램을 이수한 예술교육가들이 연수 이후에도 모임을 이어나가면서 상상이즘을 설립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생각했을 때, 집중적이고 강도가 높은 프로그램을 끝까지 마치고 나면 커다란 성취감을 가지고 자신의 전문분야로 다시 돌아갈 듯한데, 그러지 않았다. 프로그램의 결과를 다시 복기하고, 재생산하며, 확장하고자 한 것 같다. 귀찮기도 하고 쉽지 않았을 법도 한데, 이유가 궁금하다.
김경아 : 수업 시간이 정말 치열했다. 2주라는 짧은 기간 동안 오전 9시부터 저녁 5시까지 수업이었는데, 워낙 참여자들의 열의가 넘쳐서 강의를 위해 오신 선생님들이 지쳐서 쓰러질 지경이었다. 그래도 열정적으로 가르쳐주셨다. 저에게는 수업 자체가 혁신적으로 다가왔다. 기본적인 미술 교육 외에도 상상을 확장하는 프로그램들이 흥미로웠고, 실기 수업이나 다양한 융합형 수업들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도록 했다. 프로그램이 호락호락하지 않아서인지 처음에 22명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는데, 이수자는 17명밖에 안 되었다. 프로그램이 끝나고 마지막 시간에 모든 참여자가 소감을 이야기하면서 눈물을 흘릴 정도로 성취감과 뿌듯함을 느꼈다. 이후 다시 한 번 자리를 마련했는데, 주저 없이 이를 좀 더 이어가자고 합의를 봤다. 하지만 친목을 넘어 전문적인 조직으로 만들고자 했다. 친목은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었다. 총 14명이 참여하기로 하고, 2018년 7월 20일 단체설립 고유번호증을 발급받으면서 정식 단체로 출범하게 되었다.
문구 : ‘상상이즘’이라는 단체 이름은 14명의 회원이 모여서 치열한 토론과정을 거쳐 지었다. 처음에 ‘새로운 것을 만들자’라는 목표를 이름에 넣고자 ‘이즘(ism)’을 생각했다. 미술에서 새로운 사조가 나왔을 때 그 이름에 ‘이즘’이 붙잖나. 다양한 의견들이 오고 갔는데, 우리가 만난 계기가 된 것이 ‘KCP 미술의 상상과 확장’이었기에, ‘상상’이라는 이름을 넣기로 했다. 새로운 상상의 세상을 만들어보고자 했다.
14명의 회원은 상상이즘에서 회장, 부회장, 총무, 회계, 감사, 기록, 사진 촬영, 홍보, 기획 등 모두 직위와 역할을 가지고 있다. 단체에 대해 소속감을 만들고, 단체를 위해 자발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방식인 것 같다. 단체의 방향이나 프로젝트에 대한 모든 사항은 회원 모두에게 결정권이 있다. 생긴 지 얼마 안 되는 ‘따끈따끈한’ 단체지만 지난해 정식 단체가 되기 전부터 다양한 세미나, 워크숍, 전시회까지 쉼 없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고, 그동안 진행한 여러 프로젝트는 앞으로 상상이즘의 행보에 기대를 품게 된다.
김경아 : 기본적으로 상상이즘은 회원들의 회비로 운영한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 두 번째 주 토요일에 모두 모여서 회원 중 한 명이 자신의 전문 분야에 대해 발제하는 세미나를 연다. 이후 시간은 상상이즘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함께 고민한다.
권은미 : 작년 10월에 일산에 위치한 큰솔문화예술교육연구소 내에 위치한 숲에서 워크숍을 열었다. 큰솔문화예술교육연구소 박지성 대표가 상상이즘 회원이라 장소를 쉽게 정할 수 있었다. 기존의 대지예술 작품을 감상한 후 직접 숲에서 이에 대해 생각해보고 체험을 하는 프로그램으로 짰다. 예술가 혹은 예술교육가로서의 의미와 역할을 돌아보고자 했다.
문구 : 12월에는 전시도 열었다. 제가 운영하는 인영갤러리에서 12월 5일부터 11일까지 작업을 하는 회원들 중심으로 《제1회 상상이즘전》을 개최했다. 문화예술교육에서 좀 더 확장된 예술작업을 통해 다양한 소통을 하고 싶었다.
신은희 : 회원들이 원래 자신의 전문분야를 가지고 있고, 그에 더해서 상상이즘 활동을 하기 때문에 별 어려움이 없다. 회원 중 누군가 단체에 필요한 전문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웃음). 권은미 회원이 포스터나 그 외의 디자인 작업들을 진행하고, 전시 기획의 경우에는 문구 회원이 진행한다. 그 외에도 여러 프로젝트에서 분업과 협업이 가능하다.
상상이즘은 단순히 예술교육만을 위한 단체는 아닌 듯하다. 예술 활동과 교육 활동이 만나고 여기서 또 다른 확장을 꾀한다. 각자 또는 상상이즘으로 꿈꾸는 세상이 궁금하다.
문구 : 상상이즘 활동을 통해 회원 각자가 앞으로 더욱 나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러한 단체의 활동을 통해 예술과 교육이 행복하게 결합하고 이를 사회에 돌려주었으면 한다. 예를 들어 전시의 경우에는 창작의 과정과 그 결과물을 보여줌과 동시에 이를 어떻게 교육과 연결할지를 고민하고 있다. 예술교육 분야에서 상상이즘만의 차별화된 포인트를 만들어나가고자 한다.
김경아 : 상상이즘이라는 전문적인 조직을 통해 회원들 각자가 능력을 더욱 발휘하고, 조직 속 협업을 통해 자생성을 만들어가면 좋겠다. 각 회원이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데, 이를 좀 더 생산적으로 만들었으면 한다. 어떤 한 가지 주제를 다룰 때도 다양한 각도에서 접근할 수 있는 맨파워를 가지고 있는 만큼, 다양한 예술교육이 가능할 것이다. 예술을 교육하는 것은 다양한 사람들이 예술을 통해 상상하고 각자의 시선으로 해석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니까.
장엄지 : 상상이즘 활동을 통해 어린이와 장년층, 장애인 등 모든 사람이 예술을 즐기고, 예술의 자유를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권은미 : 2019년은 2018년에 이어 단체를 좀 더 굳건히 세우고 탄탄하게 만들고자 한다. 올해까지는 회원을 더 확장하지 않고 내실을 기할 수 있는 방향으로 상상이즘을 운영할 계획이다.
인터뷰를 끝내고 오후에는 상상이즘의 월례 세미나가 진행된다고 했다. 신은희 회원이 도슨트 교육에 대한 자료를 발제했다. 신생 단체의 열정이 느껴졌다. 밖으로 나오니 여전히 코끝이 시릴 정도로 차가운 공기가 몸을 휘감는다. 그래도 짧은 시간이나마 예술교육에 대한 열정을 듣고 느껴서 그런지, 그렇게 추운지 모르겠다. 상상이즘 회원 중 5명을 만나보았지만, 참석을 못 한 김수현, 김정화, 박지성, 방영경, 성경숙, 신서영, 윤영조, 이영미, 이윤정 회원들 또한 화가, 강사, 예술교육가, 일러스트레이터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렇게 전문가들이 모인 ‘어벤져스’ 단체, 상상이즘 또한 글 첫머리에서 이야기했듯, 너무나 ‘당연하게’ 우리 예술교육의 한 축으로 자리 잡지 않을까. 각자의 능력을 합치고 발휘해서, 예술교육을 통한 새로운 상상의 세계를 넓게 펼칠 수 있기를(적을 무찌르는 것이 아닌)!
- <2017년 하반기 KCP 연수 - 미술의 상상과 확장 프로그램>
- KCP(KACES Certificate Program, 우수 교육 프로그램 수료과정)는 2016년과 2018년 상반기에 걸쳐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하 교육진흥원)이 문화예술교육 강사를 대상으로 장르적 특성을 심화시킨 전문적인 교수법을 체험하고 습득할 수 있도록 마련한 교육과정이다. 2017년 진행된 KCP 미술의 상상과 확장 프로그램은 미술 교육에서의 기본이 되는 조형요소와 시간, 공간, 색채, 미디어를 통한 발상의 전환, 그리고 미술의 시각원리와 개념, 구조, 상호작용, 지속가능한 생태계 등을 바탕으로 사고의 확장을 목표로 하여 2주간 80차시의 과정으로 총 2회 운영되었다.
사진_이재범(pov스튜디오) andy45a@naver.com
- 류동현
- 서울대학교에서 인문대학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했다. 미술전문지 [아트](현 아트인 컬쳐), [월간미술] 기자로 일했으며, 문화역서울 284 전시큐레이터를 역임했다. 『미술이 온다』(오픈하우스, 2015), 『런던-기억』(책읽는 수요일, 2014) 등의 저서가 있다. 전시 <프로젝트284: 시간여행자의 시계>(문화역서울 284, 2017), 《페스티벌284: 美親狂場》(문화역서울 284, 2015) 등을 기획했으며, 개인전 《미술기자 Y씨의 뽕빨 111번》(워크룸, 2009)을 열었다. 현재 미술 저널리스트 겸 전시기획자, [페도라프레스] 편집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fedorapre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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