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장소인 천장산우화극장을 찾아가면서 우려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미리 받아본 자료에 따르면 천장산우화극장은 성북정보도서관 지하 강연장을 리모델링하여 올 3월 개관했다고 한다. 극장을 만들고 운영하고 있는 ‘월장석(월계동·장위동·석관동)친구들’은 이미 지난해부터 성북정보도서관에서 ‘월장석방방방’이란 프로그램을 네 차례 기획하고 진행했다. ‘신년모임’ ‘귀신의 집’ ‘어른이 놀이방’ 등을 테마로 공연을 한다든가, 아트마켓을 연다든가, 요리를 하는 등 도서관을 전혀 다르게 사용하는(?) 프로그램들이다. 2016년에는 극단 서울괴담의 <도서관오디세이_앨리스 편>이 성북정보도서관 곳곳에서 장소특정 공연으로 올려지기도 했다. [천장산문방9]라는 반년간지도 발행하고 있다. 아마도 이러한 과정이 극장 개관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사람들이 모이고, 들썩들썩 판이 벌어지고, 그것이 극장 개관으로까지 이어지는 ‘모범답안’ 같은 과정을 보면서도 걱정이 가시지 않은 것은 혹여 이러한 참신한 시도와 노력이, 다시 끊임없는 시도와 노력의 ‘요구’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것 때문이었다. 때때로 커뮤니티아트이든 유휴공간 활용이든 예술활동의 인프라가 전혀 갖추어지지 않은 곳에서의 작업들이, 훌륭한 슬로건에도 불구하고 정작 예술작업으로 이어지지 않는 봉사활동인 경우들도 없지 않다. 그리고 그러한 작업들은 초기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과 달리 지속적인 공간과 장소로 남지 않는다.
한여름 땡볕에 헉헉거리면서 빼곡하게 집들이 이어지는 골목을 돌고 돌아 성북정보도서관에 도착했다. 천장산 바로 밑 마을의 끄트머리에 좀 생뚱맞게 육중한 건물로 앉아 있는 도서관. 이 건물 지하에 극장이 있다. 흐르는 땀을 닦으며 드디어 극장 문을 열자 너무 훌륭한 블랙박스가 눈앞에 있는 것이다. 지하이지만 산자락 옹벽과 건물 사이에 공간을 두어 창이 있다. 조명기도 넉넉해 보이고 에어컨 성능도 좋다! 극장에 대한 덕담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월장석친구들’을 소개해 달라. 자료를 보니 극장 개관 전부터 여러 프로그램들을 진행하고 극장 개관 운영을 맡고 있다.
월계동, 장위동, 석관동에서 ‘예술마을 만들기’를 하던 이들이 모였다. 예술가, 주민, 기획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한다. 매주 금요일 11시에 정기모임을 갖는데, 20명쯤 참여한다. 참여는 자유롭다. 카톡방에는 백 명 정도 있다. 규칙이라면 단체가 아닌 개인 참여. 나는 서울괴담 대표이지만, 유영봉 개인으로 참여한다. 단체 대표로 발언하게 되면 집단이 배후에 있기 때문에 그만큼 목소리가 커진다. 알음알음 사람들은 계속 찾아온다. 궁금하니까. 하지만 왔던 사람들이 모두 남아 있는 것은 아니다. 절실한 사람들이 남는다. 우리는 과정 하나하나를 논의하고 합의한다. 그러니 일이 진행되는 것이 너무 더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실하면 그 더딘 시간을 견딘다. 아직 극장 방음시설을 못 했는데, 업자 불러서 하면 금방 한다. 그런데 그렇게 안 하는 거다. 육 개월 걸릴 것 같다. 더디지만 좋은 공부라고 생각한다. 연극은 공동체 예술인데, 정작 우리는 공동체의 기능과 메커니즘에 서툴다. 우리 안에서 소통을 제일 못하는 것 아닌가 싶다. 공동체를 배우고 훈련하는 공부다.
처음부터 극장을 만들려고 했던 것인가?
그건 아니다. ‘월장석방방방’을 하면서 도서관에서 마을사람들을 계속 만났다. 1층 로비에서 아트마켓도 열고, 벼룩시장도 열고, 책을 통해 이야기도 나누고. 그 과정에서 마을지도 그리기를 했는데, 현재의 마을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꿈꾸는 마을을 지도로 그리는 거다. 그러면 많은 주민들이 극장을 그리더라. 비중도 꽤 높았다. 연극애호가, 공연예술애호가들이 아니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도서관 바로 옆이 삼태기마을인데, 오랫동안 이곳에서 이웃해 살던 사람들이 있으니 마을이라고 할 수 있지만 마을이 아니다. 광장이 없다. 빈 공간이 있어야 집을 나와 만나고 마을의 관계가 생기는데, 그런 공간이 없는 거다. 우리는 빈 공간이 생기면 채우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이권이 개입하고. 공유지가 없는 거다. 공공이 빈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 빈 공간, 광장에 부합하는 공간이 ‘극장’이라고 생각한다. 또 월장석친구들에는 공연예술가들이 많다. 천장산우화극장은 ‘컨벤션룸’이라고 강연장이었다. 바로 옆에 세미나룸이었던 곳은 스튜디오로 운영하고 있고 기존 사무실은 창고로 쓰고 있다. 지금 극장은 네 개의 프로그램으로 운영되고 있다. ‘월장석 기획’,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인 ‘솔딱새 프로그램’, ‘서서히학교’, 그리고 지역연계를 위한 대관이다. 얼마 전 솔딱새 프로그램으로 정치극 페스티벌 ‘권리장전 2018_분단국가’에 참여하는 ‘프로젝트 통’의 <달팽이하우스>를 공연했고, 지금 서서히학교에서는 조명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다. 처음부터 극장을 목표로 했다기보다는 하려고 하다 보니 하게 된 것이다.
성북정보도서관은 어떻게 발견하게 되었나?
성북정보도서관은 성북구에서 처음으로 생긴 공공도서관이다. 그리고 상월곡동에 있는 유일한 문화공간이다. 공간탐방으로 처음 성북정보도서관에 왔을 때 여러 질문이 생겼다. 위치가 참 특이하다. 천장산 자락에 마을이 자리 잡고 있는 건데, 도서관이 자연(천장산)과 마을의 맥을 끊고 있다. 왜 이곳에 이런 구조의 건축물로 도서관이 지어졌을까 하는 궁금증도 생기고, 도서관이라는 공간도 궁금해졌다. 사서의 역할은 뭔지, 주민들은 왜 도서관을 찾는지 등등의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도서관에 대해 공부했다. 도서관의 역사를 보면, 지금과 같은 공공도서관은 프랑스혁명 이후에 건립되었다. 이전까지는 특정 계층만이 사용하는 공간이었다. 그런데 우리에게 도서관은 위정자의 계몽 프로젝트다. 도서관 열람실의 칸막이가 그렇다. 수험생들을 위한 공간이다. 칸막이 안에서 제시된 것만을 공부하도록 한다. 우리 사회의 경쟁이 그대로 펼쳐져 있다. 복도에 붙어 있는 ‘정숙’이라는 글씨도 그렇다. 왜 도서관에서는 조용해야 하지? 요즘은 카페에서도 책도 읽고 공부도 한다. 너무 조용한 곳보다 약간의 주변 소음이 있는 곳에서 더 집중이 잘되지 않나? 도서관에 책과 정보가 왜 이런 방식으로 디스플레이 될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보면, 이게 다 컴퓨터의 정보 관리 방식이 그대로 옮겨져 있다는 게 보인다. 도서관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어떤 정보를 어떻게 이용할까 에서 출발해서 디스플레이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관리하기 쉬운 방식인 거다.
천장산우화극장으로 이어지는 유영봉 대표와 극단 서울괴담의 활동이 흥미롭다. 유영봉 대표는 무대미술가로 연극을 시작했고, 서울괴담을 창단한 후로는 거리극 작업을 하다가, 북정동에서 수년 동안 커뮤니티 작업을 했다. 그리고 이번엔 도서관으로 옮겨와서 극장을 만들었다. 극장, 거리, 커뮤니티 각각 작업 방식이나 미학이 전혀 다른데, 이렇게 계속 활동 공간을 이동하는 이유가 뭔지 궁금하다.
도시와 공간에 관심이 있다. 그리고 전쟁과 분단에 대한 관심도 크다. 나는 마을에서 전쟁 이야기를 하고 싶다. 전쟁과 분단은 우리 삶에 여러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일상에 스며들어 있다. 활동공간을 이동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보다는 각각의 공간과 장소에서 이야기를 발견하고 그걸 바탕으로 작업을 하는 것이다. 창작은 예술가 안에서 생성되는 에너지도 중요하지만 동기는 외부에서 온다. 마을에서 만나는 여러 갈등에서 동기 부여가 된다. 예를 들어 이곳에서도 여러 이야기를 만난다. 천장산이라는 이름을 되찾은 것이 얼마 안 된다. 그전까지는 안기부 뒷산이었었다.(지금은 철거된 의릉 옆 한국예술종합학교 건물은 오랫동안 안기부가 사용하던 건물이다._필자주) 이곳에 성북구에서 처음으로 공공도서관이 지어졌던 것도 안기부와 인접한 지역으로 개발이 억제되어 있었던 데에 대한 보상도 있을 것이다. 또 도서관을 공부하면서 개발독재의 흔적과 그것이 어떻게 지금까지 우리 일상에서 계속되는지를 발견하는 것이다.
그런데 왜 극장 이름에 ‘우화’가 들어가나? 가족극장 혹은 어린이극장이라는 의미는 아닐 것 같다. (그의 극단 이름에 ‘괴담’이 있는 것이 떠올라 물었다.)
한 사람의 아이디어는 아니다. 극장을 만드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내 생각으로 말하면, ‘괴담’이라든가 ‘우화’ 같이 형식을 우회할 때 일상에서 드러나지 않는 것들이 드러난다. 서울괴담의 작업을 하면서 인형이나 가면을 쓰는 것도 드러나지 않는 것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일상에서도 ‘진실’만으로는 대화가 불가능하다. 모두 자신의 진실이 있다. 그런데 각자 자신의 진실을 들이밀면 대화가 안 된다. 나의 ‘진실’이니까. 예술도 대화고 소통이다. 예술은 진실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래서 ‘어떻게’에 대해 더 집요해야 한다.
예술가에게 세상 모든 삶이 모티브가 될 것이다. 그런데 커뮤니티 작업을 하면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그저 모티브로 취할 수만은 없다. 자신이 갈등의 당사자로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런 과정들에서 많은 예술가들이 지친다.
마을 작업을 할 때, 동장, 주민자치위원회 위원장, 구의원, 예술가가 있다고 하자. 예술가는 난데없이 뛰어든 이다. 그래서 예술가가 가장 강력하다. 아쉬운 것이 없다. 주민자치위원회 위원장이 예술가를 가장 경계한다. 대부분 그런 분들은 그곳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사람들이다. 마을은 자신이 젊어서부터 애써 만들어온 사회다. 자기 삶이다. 그런데 난데없이 등장한 예술가가 뭘 자꾸 바꾸자고 하니 경계하는 것이다. 무엇인가를 바꾼다는 것, 변화한다는 것은 결국 갈등이다. 그때 일정하게 상대를 존중한다. 대신 우리가 하는 작업에 대해서도 존중하도록 한다. 그래서 커뮤니티 작업에서 예술가가 힘이 있어야 한다. 무조건 주민들의 요구를 수용하는 것으로는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때로는 문화재단이나 구청장 등 행정력을 동원하기도 한다. 그동안 성북에서 계속 커뮤니티 작업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공유성북원탁회의(성북지역의 문화예술, 예술공간, 기획자 등이 모여, 지역기반의 커뮤니티를 통해 지역 공동체 활성화 및 공유를 통한 지역 재생 실천을 모색하는 네트워크 단체-편집자주)의 도움도 크다. 예술가 개인 혹은 개별 단체가 프로젝트만 들고 마을에 들어가서 작업하는 것은 힘에 부친다. 프로젝트를 구상할 때부터 공유성북원탁회의에서 함께 논의하고 구체적인 문제가 발생하면 해결책을 함께 모색한다. 월장석친구들도 공유성북원탁회의에서 일종의 워킹그룹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커뮤니티 작업을 하다 보면 예술가의 역할, 활동가의 역할을 생각하게 된다. 예술가들은 떠나고 싶을 때 떠나야 한다. 그리고 예술가들이란 도망가서 자기 시간을 확보하는 기술이 있다. 활동가의 관점으로 보자면 무책임한 건데, 또 예술가의 역할이 작동되는 방식이 그렇다. 반면 활동가의 역할은 남아서 극장을 지키고 후대로 넘겨준다. 이런 각각의 역할이 어떻게 더 촘촘하게 연결되느냐가 커뮤니티 작업의 과제인 것 같다.
유영봉
극단 서울괴담 대표, 월장석친구들 프로젝트매니저. 공유성북원탁회의 초대공동위원장을 역임했다. 일본 무사시노미술대학에서 공간연출디자인을 전공했다. 극단 여행자 등에서 무대미술로 참여했고, 2010년 극단 서울괴담을 창단하여 연극연출가로 활동하고 있다. 2011년부터 <도시괴담> <야간기습대회> <성북동81번지> 등 극장을 벗어난 거리 또는 특정장소에서 공연을 선보였다. 동시에 서울 성북동 북정마을에서 폐가를 고쳐 ‘북정미술관’을 세우고 <기이한마을버스여행> <북정블루스> <칠순잔치> 등 마을을 기반으로 하는 커뮤니티 연극 및 전시, 그리고 장소특정 공연 활동을 하고 있다. 2018년부터 지역의 예술가들과 함께 성북정보도서관 지하에 천장산우화극장을 짓고 공연장 운영에도 참여하고 있다.
영상_박영균(영상작가)
사진제공_극단 서울괴담, 월장석친구들
사진제공_극단 서울괴담, 월장석친구들
- 김소연_연극평론가
- 연극평론가. [컬처뉴스], [weekly@예술경영] 편집장을 지냈다. 경기문화재단 <커뮤니티와 아트> 콜로키움을 기획하고 편집했다. 무대가 어떻게 세상과 소통할 것인가에 대한 관심으로 글을 쓰고 잡지를 만든다.
kdoong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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