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관련된 거의 대부분의 개념이 그러하듯, 티칭아티스트(Teaching Artist)의 개념 역시 경계를 넓혀가며 팽창 중이고, 그 범주와 역할에 대한 논의는 진행 중이다. 특히 무용과 연극분야는 (이 책이 쓰인 미국에서도) 학교 안팎 교육에서의 역할과 기여도에도 불구하고 “있으면 좋은” “기타의” 활동으로 여겨지며, 학문적 고찰 역시 소원하다. 이 책의 저자들은 미국 웨인주립대학의 무용, 연극과의 교수들이지만, 묶어낸 연구들은 현장 중심적이고 실증적이다. 학교 안팎 외에도 다양한 현장의 티칭아티스트 사례를 포함하고 있으며 연구논문, 현장기록, 사례연구, 인터뷰를 통해 현장의 목소리와 학문적 성찰을 담았다.

  • 『티칭아티스트의 두 세계』 (메리 엘리자베스 앤더슨, 더그 리즈너, 아카넷, 2018)
비대칭 권력관계의 창의적 조정
제목 『티칭아티스트의 두 세계』(Hybrid Lives of Teaching Artist)가 의미하듯 교육자와 예술가는 종종 정반대의 가치를 지향한다고 여겨진다. 예술가의 도전정신, 탐험, 실패의 위험성, 예측불가능성은 학교 교육 시스템의 특성과는 멀다. 그 갭(gap)을 메우면서 예술이라는 창의적 활동과 사회의 통합, 건강한 시민의식을 연결하고자 고군분투하는 것은 티칭아티스트의 몫이다. 연구와 인터뷰를 통해 드러나는 그들의 삶과 역할 역시 책 제목처럼 양면적이다.
이 책은 티칭아티스트의 역할에 대한 이론적인 범주화나 개별 아티스트의 개발을 위한 하우투(how to)가 아니다. 오히려 사회적 소외계층과 사회적 통합을 위해 기여해온 티칭아티스트들이 스스로 경험하는 사회, 문화, 경제적 소외와 그를 야기한 비대칭 권력관계를 “창의적이고 의도적으로 조정하는 과정”의 일환으로 보인다. 두 저자는 질적 혼합연구방식을 채택하여 3년간 172명의 무용 및 연극분야 티칭아티스트들을 인터뷰하고, 양적 데이터를 모았다. 172명의 티칭아티스트들은 역할, 어려움, 현장에서의 활동, 교육 목적, 준비, 평가, 전문성 개발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해서 응답하였고, 이들의 생생한 목소리는 이 책의 주요한 골격이자 3개의 챕터를 견인하는 역할을 한다.
우리보다 예술교육에 더 호의적인 문화적 환경일 것이라는 예상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미국에서는 지난 50년간 교육제도의 변화와 정치적 환경이 지속적이고 꾸준한 예술교육 프로그래밍을 방해해왔다고 지적하면서 책을 연다. 티칭아티스트들은 지난 십여 년간 건강한 시민문화를 위해 기여해 왔으나 그들은 정작 “부족한 일자리, 일관성 있는 훈련과정과 전문성 함양 프로그램의 부재”를 경험한다. 그와는 반대로 티칭아티스트에 기대하는 역할은 복잡해지고 팽창한다. 티칭아티스트는 예술가의 전문성을 지니고 복잡하고 섬세한 평가를 하며, 학생들을 예술가로 대하는(p.77) 사람들로, 시각예술에서 창의적 글쓰기까지 수많은 다학문과 하위학문을 포함하지만 그들의 전문성 함양을 위한 지원은 미비하다. 상당수가 10년 이상 티칭아티스트로 활동하지만 대부분이 파트타임으로 일하며 상근직 임금의 18~59%에 달하는 보수를 받는다(p.35). 효과적인 티칭아티스트가 되는 데 도움이나 받은 영향은 현장(75%), 다른 티칭아티스트(67%), 독학(65%)의 비율이 높았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예술 지원이 가장 먼저 삭감되고, 학교에 돈이 별로 없고, 예술위원회가 돈이 없고 그게 다 합쳐지면 일자리가 없다. 나는 수당을 지불하지 않는 수업과 관련 없는 업무를 요구하는 곳에서는 기관들과도 작업하지 않는다. (중략) 내가 생계를 꾸릴 정도로 일할 방법을 찾지 못한다면 이 분야를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
– 티칭아티스트 인터뷰(p.227)
정체성, 현장, 실천에 대한 생생한 목소리
이 책은 3개의 챕터로 나뉜다. 티칭아티스트의 정체성과 역할을 다룬 1부에서는 어떤 이들이 티칭아티스트가 되고 그들의 전문성(무용 혹은 연극)이 학습자와의 관계에서 어떻게 발현되는지(「가르치는 학습자, 학습하는 교사」 맷 제닝스), 또 모호한 경계에서 자기의 역할을 규명해 나가는 티칭아티스트들의 목소리(「우리는 더 이상 실직 중인 배우가 아니다」 더그 리즈너 외) 등이 담겨있다.
2부 “활동현장”에서는 티칭아티스트들의 실무현장에 대한 조사를 시작으로 프로그램 개발, 교육을 위한 성찰과정(「성찰하는 티칭아티스트가 되기 위한 준비」, 크리시 틸러), 학교 교육 안에서 공감과 진정성의 의미로 접근하는 활동가들의 목소리(「마음으로 춤추기」 사라 휴스턴, 「공감의 예술교육」 더그 리즈너 외) 등이 있다.
3부 “책임감 있는 실천”에서는 티칭아티스트라는 작업의 윤리적 측면을 비롯하여 활동가들의 자신의 직업에 대한 훈련과 성찰의 방식을 다룬다. 티칭아티스트 평가와 사정에 대한 연구(「교육 평가에 참여하는 티칭아티스트」 배리 오렉 외), 자신의 활동을 연구할 때의 윤리적 문제를 다룬 「티칭아티스트-연구자의 다면성과 윤리적 문제」(대리 스나이더영)도 눈에 띈다.
정리하자면, 이 책은 현실 속 티칭아티스트들의 경험과 목소리를 학문적 접근을 통해 분석하고 기록한다. 지금 활동하고 있는 티칭아티스트는 어떤 사람들인지, 오늘날 이들의 활동을 지지하거나 위협이 되는 것은 무엇인가? 오늘날 티칭아티스트의 지위는 무엇인가? 이 책은 그 긍정적 업적에도 불구하고 학교로 가는 예술가의 아름다운 승리나 감회, 혹은 당장 적용 가능한 티칭아티스트를 위한 개발서 와는 거리가 멀다. 기본적으로 논문의 방식을 띤 원고들은 수월하게 읽혀지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보다 냉정하게 누가 어떻게 왜 티칭아티스트의 역할을 해왔는지를 다루며, 독립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티칭아티스트들이 예상되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학문적 성찰이나 교육체계의 구체화를 시도하는데 좋은 참고문헌이 될 것이다.
다르지만 낯설지 않은
한국과 미국이라는 문화적, 정치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공통점을 수긍하게 되는 부분도 있다. 상당수의 티칭아티스트들은 “이 일을 하게 된 이유”를 묻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했다. “나는 뼛속부터 교사이다”(무용68%, 연극62%), “예술을 통한 학습은 모든 이에게 중요하다고 믿는다”(무용70%, 연극 52%).(p.122) 소명의식과 사회적 책임감이 가장 중요한 동기가 되었지만 그들이 티칭아티스트로서 직면하는 가장 큰 어려움으로 언급한 “행정 관료체계와 정책, 그다음으로는 낮은 임금과 부족한 일자리”(p.123) 역시 우리에게 낯선 것이 아니다. ‘베스’라는 이름으로 기록된 한 티칭아티스트의 목소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왜 이 일을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향성을 가르쳐준다.

“예술표현에 노출될 기회가 거의 없는 커뮤니티와 아이들에게 예술기반의 학습을 제공한다는 의미에서 내가 하는 일은 정치적이라 할 수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나는 예술의 가치를 절하하는 풍토에 맞서 싸우고 예술에 재능이 있는 아이들을 위한 공간을 만든다.”
– 베스(무용 티칭아티스트) 인터뷰

제환정
제환정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강의전담교수다. 템플대학교에서 무용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춤과 춤추는 인간, 그리고 춤이 어떻게 인간사회에 기여하는지에 대해 관심이 많다.
jaehj07@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