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오후, 학생들이 모두 하교한 6학년 1반 교실엔 아직도 온기가 가득했다. 봄 햇살 때문만은 아니었다. 음악이 없어도 음악적인 교실, 액자가 없어도 사방이 미술 작품으로 가득한 교실. 그 교실에서 권나무 선생님을 만났다. 6학년 1반에는 두 그루의 나무가 있다. 한 그루는 교실 뒤편에 아이들이 직접 그려 만든 학급나무이고, 다른 한 그루는 그 나무를 자랑스럽게 소개하는 권나무 선생님이다. 교실 뒤편의 나무는 여러 모양의 잎들과 색이 여러 줄기로 나뉘어 풍성하고 조화롭게 그려져 심겨있다. 하루 만에 그릴 수 없는 크기이고, 한 사람이 그릴 수 없는 다양한 표정의 나무이다. 그 나무가 ‘함께 숲이 되자’라는 큰 글씨 아래 우뚝 서 있다. 그 글을 보고 나니 오히려 그 나무가 풍성한 숲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이 교실은 아이들의 놀이터이자 직접 가꾼 안식처 같은 느낌이 들었다. 권나무 선생님은 천안 신부초등학교 담임이자 제12회, 제13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포크 노래상을 받은 뮤지션이기도 하다. 무대가 아닌 교실에서 이뤄진 인터뷰였기에 뮤지션보다는 교사로서의 깊은 교육철학을 나눌 수 있었다.
시간의 흐름으로 기다려주는 숲
단번에 만들어지는 숲은 결코 없다. 시간의 흐름을 온전히 수용해야 숲은 만들어 진다. 숲이 그러하듯 권나무 선생님의 교실도 시간의 흐름을 매우 소중히 생각한다. 당장의 반짝이는 영감만큼 꾸준함에도 가치를 둔다. 2012년 신규교사 때부터 매년 ‘우리들의 음악 프로젝트’, ‘우리들의 작품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몇 프로젝트는 SNS를 통해 이미 입소문이 나고 방송에까지 소개되었지만 참여하는 학생들은 교과목의 일부라고 생각할 뿐, 자신이 하고 있는 게 예술 프로젝트라는 걸 모른다. 그만큼 교과목 안에서 자연스럽고 진지하게 녹아든다.
“저는 시간의 흐름으로 기다려주고, 시간이 담긴 것을 보여주는 예술활동을 프로젝트라고 해요.”
온전히 지내는 시간이어야 학생들이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이 작품이 담겨 있는 교실이라는 공간에 더 애정을 느낀다고 말한다. 이를테면 그가 지양하는 미술 활동은 2시간에 완성하는 투명수채화 활동이다. 어떻게든 2시간 안에 완성할 순 있겠지만, 투명수채화 활동은 연한색으로 바탕을 그리고 말리고, 그 위에 덧대고 덧대어 완성하는 것이기에 시간의 흐름과 과정을 충분히 느껴야 제대로 된 미술활동이라고 말했다. 정작 권나무 선생님은 학창시절 미술 시간이 괴로웠다고 했다. 그림을 그리고 만들지만,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없기 때문에 온전히 자기 것이란 확신을 할 수 없어서이지 않을까.
선생님의 반 아이들은 졸업을 하거나 학년이 올라갈 때, 자기 작품을 하나도 빠짐없이 챙겨간다. 나의 시간과 땀이 담긴 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작품이란 것을 학생들도 이미 아는 것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자기가 만든 것이 가치가 있다고 느끼는 것, 그것이 예술활동이라고 스스로 확신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작품에 대한 남들의 평가에서 자유로운 건 당연한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오늘 아침 나눔 시’와 같은 글쓰기 작업도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사실 우리는 스스로 학습과 꾸준함 보다 확실하고 좋은 교육법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6학년 1반 친구들은 그 좋은 교육법을 예술활동으로 자연스럽게 흡수해가고 있었다.

책상 낙서 X 책상화 O
<책상화 대회>는 JTBC 뉴스룸과 YTN 라디오에 소개되면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보통 책상에 그림을 그리면 낙서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작품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미술대회였다. 하지만 이 <책상화 대회>는 단순히 “책상에 낙서를 해도 돼”가 아니었다. 오히려 ‘왜 책상에 낙서를 하면 안 되는 걸까’, ‘책상의 주인은 누구인가’에 대한 학생들의 치열한 토론을 통해 준비된 대회였다. 그러한 토론을 통해 몇 가지 규칙이 정해졌다. 쉬는 시간과 미술시간에만 연필로 그리자(연필은 지워지니까). 반드시 낙서가 아닌 작품이어야 할 것! 자리를 바꿀 때는 모두 깨끗이 지울 것! 몇 달 동안 이 약속들이 잘 지켜질 때쯤, 공고를 내고 반 전원 참가로 책상만의 특성을 활용할 수 있도록 2주간 연습을 함께 한 후에 스톱워치까지 동원된 엄정한 대회로 열리게 되었다. 마치 수능을 보는 수험생처럼 참여한 아이들은 매우 열심히 했다고 한다. 아이들의 작품은 놀라웠다. 책상을 까맣게 칠한 다음에 지우개로 지우거나, 흑연이 쉽게 번지는 책상의 표면을 활용한 기법 등 매우 창의적인 작품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어느덧 2시간이 지나고, 전교생을 불러 익명으로 심사를 진행하고 파티를 했다. 이 책상그림그리기 대회는 SNS에서도 큰 주목을 받게 되고, 2학기 2회 대회에서는 지우개 등의 물품을 후원 받기에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이 흥미로운 작품들은 창작자에 의해 지우개로 깨끗이 지워졌기에 실물을 다시 볼 수 없지만, 학생들의 열의와 설렘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권나무 선생님은 자유보다는 자율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그리고 자율은 서로의 약속과 책임이 중요하기에 설명하기도 행동하기도 쉽지 않다. 많은 이에게 획기적이고, 귀여운 사고의 전환이 되었을 이 책상그림그리기 대회는 이렇게 철저한 토론 속에서 준비되었다.
책상화의 발상을 어떻게 떠올렸는지 설명을 부탁했다. “미술수업 소묘시간에 지나치게 집중해서 스케치북을 벗어나 책상에까지 그림을 이어 그린 은수가 있었어요. 깜짝 놀랐죠.” 그것은 낙서가 아닌 작품이었다. 또한 책상이란 사물이 그림 그리기에 매우 좋은 도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선생님은 학생의 해프닝을 예술로 전환할 수 있는 예술가인 것이다. 지금도 ‘책상 줄 재밌게 만들기’와 같은 책상을 이용한 실험이 계속되고 있다. 물론 여기에도 위와 같은 자기검열과 책임감 있는 토론을 거쳤다.

사진 출처: 권나무 페이스북
예술의 기쁨도 교실에서
권나무 선생님은 말투에서 억지스러운 면이 없이, 차분하고 자연스럽다. 수업도 마찬가지이다. 음악활동이나, 미술활동이라고 해서 유난 떨지 않는다. 오히려 좀 더 교과목의 실제에 가까이 하려 노력한다. 활동의 자연스러운 점을 강조했다.
“초등미술은 굉장히 중요해요. 저희는 금요일마다 우정의 편지를 쓰는데 편지 표지를 만드는 것에서부터 미술작업을 시작해요.”
예술을 위한 예술이 아닌, 나를 위한, 그리고 우리의 필요에 의한 예술을 지향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기행문 쓰기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만약 교과목에 기행문 쓰기가 있다면 여행을 직접 가야 한다. 그리고 그 여행을 가기 위해서는 학기초부터 코스를 짜고, 놓치지 말아야 할 곳과 약도를 함께 준비해야 한다. 그런 과정이 자연스럽게 학생들과 함께하는 교육과정으로 재구성된다. 그곳을 먼저 공부한 후에 여행 도중 메모하며 느낌을 직접 쓸 수 있도록 돕고, 그 메모를 이용해서 기행문 초안을 쓸 수 있게 한다. 권나무 선생님은 논리적이기에 부지런한 예술가이다.
“수업을 진행하는 교실과 노래를 하는 무대나 인간과 인간이 만나는 것은 다르지 않아요.”
교사와 뮤지션 모두에 인격이 들어갈 수밖에 없기에 신념을 지키고 매순간 최선을 다하고 싶다는 권나무 선생님의 노래와 ‘함께 숲이 되는 교실’을 시 한 구절을 통해 응원해본다.
자신이 뿌리내린 그 자리에서
자신이 타고난 그 빛깔과 향기로
꽃은 서둘지도 않고
게으르지도 않고
자기만의 최선을 다해 피어난다
꽃은 달려가지 않는다.
-박노해 <꽃은 달려가지 않는다> 중에서

김준수(몬구)
김준수(몬구)
2003년부터 현재까지 밴드 몽구스와 몬구로 음악활동을 하고 있다. 그간 DJ, 드라마, 영화, 연극, 광고음악, 로고송, 락페스티벌 등에서 환희를 느끼며 창작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최근에는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하자센터, 상상마당, 한국애니메이션고등학교 등 음악이 흘러야 하는 곳에서 음악을 중점으로 문화예술교육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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