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교육이라는 거울을 통해 예술교육 현장을 비평하다
예술교육 좀 하는 전북 부안 출신 문화비평가 고길섶. 문득 그의 이름이 궁금해졌다. 진짜 길섶이란다. ‘이름대로 산다’는 말을 믿지 않더라도 적어도 그의 이름에는 그의 존재와 개성을 가름할 수 있는 어떤 사연이 있지 않을까? 어머님이 고추밭 농사일을 하다 길가에서 낳았다는 출생의 비밀(?)이 있었다(호적에는 분명 한자 이름인 ‘길섭’이지만 자기 맘대로 길섶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다).
‘길섶’이라는 이름은 낭만적이고 목가적인 느낌을 주는 예쁜 우리말이다. 길가, 길 어깨, 길의 가장자리의 의미처럼 그가 접하는 세계는 분명 중심이 아닐 것이다. 주변과 경계에 관한 것들이고 닦여지고 세련되고 정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생생하고 날것들이 더 많을 거다. 그런 그의 얼굴에는 골똘한 시골 청년의 인상이 풍겨난다.
그는 젊었을 때부터 우리글과 말, 즉 언어문제에 천착하였고 국어라는 틀에 가두어 두지 않는 언어의 자유를 주창하였다. 이후 다양한 문화연구 및 문화비평 활동을 하다 부안, 고창에 돌아왔다. 그의 표현에 의한다면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 현장 비평을 하러 전라북도 지역을 싸돌아다니고 있다. 그가 이렇게 지역 현장을 싸돌아다니면서 교육진과 주민들을 만난 결과로 평가 모니터링보고서나 연구보고서의 형식이 아닌 주민들의 숨소리, 말소리, 마음의 변화까지를 의미화한 잘 정리된 현장 비평서(고길섶, 《거기에서 사람을 보다》, 2015, 도서출판 기역)를 볼 수 있었다.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 현장의 단순한 감상후기나 모니터링 보고서가 아니라 특정시점에서 보는 공시적인 현장 비평글인 이유에 대해 물어보았다.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의 취지가 더 살려지고 방법적으로 더 섬세하게 접근될 수 있게 하기 위해 교육현장의 세세한 움직임과 표정들, 말들에서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특이점들, 취약점을 발견하고자 했습니다. 긍정의 특이점들을 연결해서 더 키우고자 했어요. 저의 현장비평은 교육 전체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방문했던 특정 시점의 특정 과정을 중심으로 한 비평입니다.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이 성과 자체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과정을 중시하기 때문에 특정 시점의 과정 평가가 오히려 사업 취지에 더 적합할 수도 있습니다.”
그가 접근했던 비평방식은 ‘지금 여기’를 보는 공시적 방법의 비평이다. 그가 이해하는 지역특성화의 개념도 ‘지금 여기’라는 개념과 관련되어 있다. ‘지금 여기’를 보면 지역특성화 요소가 파악된다는 것이다. 물론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은 사업으로 제시된 일정한 방법론적 기준*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기준은 기획단계에서 유념해야 할 가이드일 뿐 실제 실행에서는 이와 전혀 다른 지역특성화 요소가 존재한다. 따라서 이러한 방법론적 잣대를 들이대면 현장에서는 프로그램의 특이성을 발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과정을 현장의 관점에서 꼼꼼하게 보지 않으면 프로그램 특성과 교육대상자들의 개성을 발견하기 어렵다. ‘지금 여기’에서 이루어지는 주민들의 문화예술적 행위와 연결되어 있는 생활환경을 맥락적으로 분석하는 현장비평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 ‘소재, 대상, 인프라, 융합, 추진체계’를 지역의 특성을 구성하는 지역특성화의 다섯 가지 요소를 명시한다.
박승규의 《일상의 지리학》에서는 같음의 지리학의 지역적 동질성을 주목하면서 ‘지금 여기’라는 표현을 쓴다. 하지만 ‘같음의 지리학’은 곧 ‘지금 여기’의 지리 현상에 주목함으로써 다름과 차이, 특이성을 찾아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단 지금 여기의 모습을 미시적이면서도 정교하게 바라보았을 때 다름을 찾아낼 수 있다고 한다. 동일한 경관은 같다는 이유로 어느 공간에서나 동일한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놓인 맥락과 지역구조에 따라 다른 의미를 띤 다른 장소성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다른 의미를 찾아내는 정교함이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즉 ‘nowhere(어디에도)’인 것처럼 보이지만 ‘now here(지금 여기)’의 관점에서 전혀 다른 일상성을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고길섶의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현장비평의 시선은 정확히 위와 같은 철학적 관점·태도와 일치한다. 그는 일상적인 삶이 영위되고 있는 ‘지금 여기(now here)’의 관점에서 매우 정교한 시선으로 특수함과 개성, 특이점을 찾아내어 분석하여 의미 있고 타당한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으로 재구성한다.
“‘지역특성’이라는 말은 흔히 형식 논리적인 측면에서 지역의 사회문화적 특성이거나 ‘교육의 내용, 대상, 운영적 특성’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대상자들의 생활환경 맥락으로 그들의 생활을 표출해주고 거기에 관여하는 교육진의 의도가 함께 움직이는 ‘마음의 현장’이 바로 지역의 의미라 할 수 있죠.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에서 말하는 지역이란 마음의 공동체라고 할 수 있어요.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마음의 세계는 다시 그들이 존재하는 공간적 환경마저 역동적으로 변화시킬 수도 있습니다. 즉 교육하는 과정에서 서로 연결되면서 움직이는 ‘마음 현장의 특이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지역을 이야기하는데 웬 마음? 이는 지역과 교육대상에 대한 감성적인 접근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마음의 현장이 곧 지역’이라는 의미는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이 교육대상자들 간 그리고 그들의 생활세계와의 관계성에 기초해야 함을 강조한 표현이다.
“특히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은 드라마와 같은 서사구조를 지닌 과정으로서 교육의 진행 과정에 따라 새로운 상황들이 생겨나고 교육내용과 직접적으로 관련되거나 그렇지 않은 교육 외적인 요소들에서 사소한 갈등, 위기, 대응의 모색에 따라 펼쳐지는 진땀, 갈등, 감동, 재미의 요소들이 매우 드라마틱해요.”
그는 과정 중심의 특성을 ‘표현-소통-공감’이라는 감정구조가 얽혀 있는 ‘과정과의 대화’로 보고 있다. 개별적인 개인들이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채 만들어지는 집단의 행위 성향(그는 이를 ‘아비투스’**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다.)을 마음의 공동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마음 공동체가 바로 지역의 특성을 말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마음 공동체를 위해, 즉 문화예술교육의 대상세계(역동적인 아비투스가 발현되는)의 상황인식과 문제발견, 변화를 이끌어 내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분열과 재결합, 혼란과 안정, 상실과 회복의 관계가 역동적으로 리드미컬하게 이루어지는 과정이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 아비투스(Habitus):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가 제창한 개념으로 일정하게 구조화된 개인의 성향체계를 말한다.

“예전에는 음악교육이라고 하면 민요, 리듬악기, 장구, 장단, 공연 따위들의 단어들이 키워드였지만, 지역특성화라는 맥락에서는 예컨대 경로당, 싸움질, 민원, 함께, 밥 해먹기, 이름 부르기, 가족 초청 따위의 단어들이 키워드로 중요시됩니다. 전자의 언어코드에서는 음악교육 그 자체에만 집중되는 프레임이지만, 후자의 언어코드에서는 삶의 관계 속에서 그 삶의 관계에 개입하는 음악적 활동의 프레임입니다. 후자의 언어코드는 상황의 인식과 문제의 발견을 생생하게 상상하도록 도와줍니다. 이것이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의 성격입니다.”
그리고 또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 활동은 삶의 태도 변화에서 나아가 문화사회를 위한 공동체의 변화를 일으키게 하는 문화 행동으로 이어지길 바라고 있다.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을 말할 때 대부분 문화예술교육 일반의 논리로 이해를 해요. 지역특성화는 하나의 요소일 뿐이고요. 하지만 저의 생각은 다릅니다. 지역특성화라는 맥락 속에서 이해되는 문화예술교육, 그렇게 연결이 되어야 되지 않을까요? 전북의 경우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의 대상에서 아동 청소년은 교육대상에서 제외시켰는데 그것은 아직 청소년 대상 특성상 이런 지역특성화 맥락으로 연결시키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것은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이 문화적인 공동체, 커뮤니티 형성의 취지가 강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일정한 집단의 사람들이 문화예술교육 과정을 통해 스스로 문화적인 역량을 높이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문화적 역량을 갖는다는 것은 예술 표현과 소통뿐 아니라 스스로 문화적인 커뮤니티를 갖춰나갈 있는 힘을 말합니다. 교육과정 안에서 표현하고 소통하고 공감하면서 함께 삶의 환경 속에서 놓인 자기 공동체의 문제 상황을 해결해 나가는 것입니다. 즉 문화예술교육이 수단이 되어 삶의 과제를 문화예술적으로 해결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 그리고 이것이 습관이 되어서 일상에 스며들게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죠.”
흔히 문화예술교육의 목적을 개인의 삶을 즐겁고 풍요롭게 하는 것에서 나아가 공동체가 당면한 삶의 과제를 해결하는 데에까지 역할을 확장해야 한다고들 한다. 특히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에서는 더더욱 그러해야 한다.
그를 만나면서 10여 년을 달려온 문화예술교육의 질적인 변화를 위해서도 이제 비평 기능이 어느 때보다 활발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사업관리라는 명목으로 수많은 모니터링과 컨설팅이 진행되어 왔다. 또는 간간히 프로그램 모델을 확산시키기 위해 몇몇 모범 사례를 소개하는 과정은 있었다.
하지만 고길섶의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현장비평은 이와는 사뭇 다른 측면이 존재한다. 그는 현장비평의 목적을 ‘토론과 공감, 연대의 고리가 확장되는 것’으로 삼고 있다. 특정 과정을 중심으로 한 과정비평이면서도 참여자들의 마음의 연결과정을 살펴보는 관계비평, 예술적 표현 도구가 어떤 작용을 하는지를 보는 예술비평, 교육이 어떻게 커뮤니티의 변화에 기여하는지를 파악하는 지역문화비평을 입체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이야기를 나누고 관찰하면서 교육현장의 세세한 움직임과 표정들, 말들에서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특이점들, 취약점을 발견하여 제시하는 그야말로 ‘현장비평’이다. 또한 그는 비평글을 기획자나 주강사에게 보여주고 비평의 오류와 한계를 보완하거나 반론을 제시함으로써 현장에서 교육주체와 함께 성장하고 생각의 차이를 긍정적으로 이해하는 과정으로 삼고 있었다.

이번 만남을 통해 필자는 그동안 이러저러한 많은 평가에 참여하면서 사업계획서만으로 문화예술교육의 좋고 나쁨을 구별하는 품질 감별사(?)가 되었던 것에 반성한다. ‘지금 여기’라는 현장의 관점과 ‘지금 여기’를 있게 한 상황 맥락에 대한 면밀한 파악이 없이 프로그램 평가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얼마나 오류투성이 인지를 새삼 느끼게 해준 시간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여기’에서 현장을 보면 ‘세상에 나쁜 예술교육은 없다’. 다만 다른 지역 상황, 열악한 교육환경, 교육 주체들의 서로 다른 노하우, 다른 장소기억과 사람들의 각기 다른 사연이 존재할 뿐. 각기 다른 사연과 상황을 그대로 드러내 주고 피드백하여 긍정적인 의미로 재해석해 주는 사람이 바로 현장비평가다. 고길섶, 그는 교육과정을 관찰하고 질문하고 비평하고 소통하면서 특이점을 의미 있게 발견해 타당하게 부각시켜주는 임무를 수행함으로써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의 가장 중요한 원리인 ‘마음 공동체’를 찾아주었다. 이제 그를 ‘제1호 동네 문화예술교육 현장 비평가’라고 명명한다.
고길섶
고길섶

전북 부안에서 태어나 서울 성균관대학교에서 한국철학을 곁눈질하다 언어문제와 문화연구 쪽에 발을 담갔다. 농사 좀 짓겠다고 껄떡거리다 자연의 땅과 담쌓고 있을 지경이며, 2013년에 부안면 구현마을에서 글쓰는 마을 교육활동을 1년 하다 재미를 붙여 2014년부터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 현장비평을 하게 되었다. 그가 쓴 《거기에서 사람을 보다》는 전북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가 지원한 <2014 전북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의 현장비평과 질적 연구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정민룡_북구문화의집 관장
정민룡_북구문화의집 관장
한 때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었었고 잠깐 문화인류학을 공부했다. ‘근린 문화기획’하는 일을 좋아한다. 현재 광주북구문화의집에서 문화예술교육과 시민문화활동을 매개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생각하는 손 등 공방프로그램, 노작 중심의 예술교육인 <바퀴달린학교>를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