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8일, ‘2017 유아 문화예술교육 콘퍼런스’(블루스퀘어 카오스홀)가 관련 매체 및 국내 유아 문화예술교육을 주도하는 전문가 및 교육 기관 관련자, 정책 관련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되었다. 국내외 공연예술 분야와 시각예술 분야의 다양한 유아 문화예술교육 사례를 공유하여 향후 유아 문화예술교육의 발전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된 이 자리에는,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200여 명의 청중이 홀 안을 가득 채우며 유아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지대한 관심 속에서 열띤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날의 콘퍼런스에서는 생애주기별 문화예술교육을 실현하기 위해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서 추진한 ‘유아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의 기관별 우수 사례를 소개하고, 해외 유아 문화예술교육의 사례를 통해 향후 창의적이고 전망 있는 교육의 방향을 다 같이 모색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오후 1시부터 6시까지 6시간 여 진행된 이날 행사의 1부에서는 공연예술 분야 유아 문화예술교육의 국내외 사례를(극단 가제노꼬, 안양문화예술재단, 의정부예술의전당), 2부에서는 시각예술 분야 유아 문화예술교육의 사례를(주피터 아트랜드, 영은미술관, 임립미술관)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그날 발표된 내용을 간략히 살펴보자.
가르치고 기르는 것보다 상상으로 ‘함께 자라기’
– 일본 극단 가제노꼬
– 일본 극단 가제노꼬
공연예술 분야의 첫 사례 발표는 1950년에 창립된 이후 (무려 68년째) 아동을 위한 연극만을 전문으로 하고 있는 일본의 극단 가제노코(Kazenoko)에서 무려 40년째 연출을 맡고 있는 켄 나카지마(Ken Nakajima)가 맡았다. 가제노코는 초등학교와 유치원을 대상으로 학교나 기관으로 직접 찾아가 그곳의 강당이나 체육관 등의 시설을 활용하여 공연하고 있는 관록 있는 극단이다. ‘연극과 연계한 유아 문화예술교육이 유아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시작한 나카지마는 본인이 생각하는 아동 연극의 철학을 먼저 소개했는데, 요약하면, ‘우리 아이에게 한 번뿐인 어린 시절을 어떻게 하면 잘 보내게 할 수 있을까.’ 역으로 ‘나에게 한 번뿐인 어른 시절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결국은 ‘한 번뿐인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이다.
나카지마는 아동연극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공유해야 하고,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를 고려할 때 연극의 역할은 뭔가를 가르치기보다 함께 느끼고, 이미지를 공유하며, 어디로 갈 것인가를 아이들과 함께 생각해 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의 근본은 발상, 상상력과 에너지이므로 아이 때부터 이러한 것들을 연극을 통해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또한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있고 각각의 개성과 사고방식과 감성이 다르다는 것을 늘 염두에 두며, ‘어린이 시절에 이것만은 꼭 경험했으면 좋겠다’ 싶은 공통의 것을 연극에 담으려 노력하는데, 가장 중점은 ‘놀이’다. 연극은 본디 놀이를 연극화하고 표현하고 상상력과 연계시켜서 만들어 내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연극은 아이와 함께 같은 장소에서 서로 통하고 표현하는 것이며, 아이들의 연극은 보통의 연극과는 그 가치가 다르다.
가제노코가 지향하는 연극은 어른보다는 아이들이 박수 치고 울고 웃다가 재미가 없어지면 극장 안을 돌아다니더라도 그 모든 감정들을 표현하는 형식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청중이자 배우인 셈이다. 아이들은 모든 것이 궁금해서 항상 ‘왜’냐고 물어보는데 이때 아이들이 호기심을 느끼고 감성을 발휘하는 순간을 절대 놓치면 안 된다. 어른으로서 아이의 판단에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 스스로 질문에 대해 판단하고, 그것을 행위로 발전시키는 방향에 도움을 주어야 한다. 그래서 노는 척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와 진짜 노는 것이 중요하다고 나카지마는 강조한다. 어른은 아이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스스로 무리 지어 놀면서 살아가는 토대를 짓도록 지켜봐 주는 역할을 해주어야 한다.
놀이는 즐겁기만 한 것이 아니라, 참아야 할 때도 있고 자기 자신의 용기를 실험해야 할 때도 있다. 아이는 놀이를 통해 진짜 세계와 가상의 세계를 오가며 자기들끼리 배운다. 연극은 아이들의 놀이를 확대한 장으로서, 아이들은 연극을 보며 자신의 일상에 변화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나카지마는 연극의 사례로 3, 4세 아이를 대상으로 유치원에서 공연한 ‘카제노이치자’와 기후현의 특징을 살려 놀이를 공유하는 ‘파라리토세’, 노는 것을 좋아하는 요괴가 놀지 못해 스트레스가 쌓인 상황을 세 명의 주인공 할머니와 요괴 아이를 통해 풀어내는 ‘난카요카이’, 워크숍의 형식으로 공연 현장에서 아이들과 소통하며 만들어 나가는 ‘만남’(이 작품은 한국의 극단 사다리와 협업한 작품으로 한국에서 ‘세 가지 숲의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공연되었다.), 아코디언 주름과 같은 모양의 종이를 접고 펴며 아이들과 여러 모양을 만들어 보는 퍼포먼스 연극 ‘니코리코카리-자’ 를 소개했다.
나카지마는 예술이 필요한 근본 이유는 근저에 놀이가 있기 때문이며, 놀이를 통해 아이들이 현상을 확인하고 친구들과 소통하며 자신의 일상을 풍요롭게 한다고 강조했다. 아이들은 놀이를 하며 마음가짐을 바꾸고 세계를 다른 방향으로 바라본다. 배우들도 아이들의 마음 속 울림을 통해 자신의 연극을 더욱 풍요롭게 발전시키며, 서로서로 능동적 삶을 공유하게 된다. 그러므로 놀이는 표현할 기회를 서로 갖는 것, 완성형이 아닌 진행형이다. ‘2+3뿐 아니라 4+1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가능성’, 모두가 풍요롭게 살기 위해 씨앗을 뿌리는 작업이다.
아이들 스스로 주인공이 되고, 상상 속에서 몸을 이해하는 체험하는 시간
– 안양문화예술재단, 의정부예술의전당
– 안양문화예술재단, 의정부예술의전당
이어서 안양문화예술재단의 김정아 지역예술부 차장이 ‘움직이는 그림자 여행단’ 프로그램 사례를 소개했다. 전통 판소리 본에 의거하여 아동용 그림자 인형극을 제작한 본 프로그램은 소리꾼(박민정, 서어진, 신유진)과의 협업을 통해 전통 소리를 경험하고, 전래동화인 ‘토끼와 자라’를 각색하여(연출 손상희, 각색 이가현) 아이들 스스로 그 미완성의 결말을 채우도록 하는 흥미로운 구성으로 진행되었다. 아이들은 그림자 연극을 관람하고 빛과 그림자로 이루어진 무대에 주인공이 되어 물고기, 토끼, 거북이가 되기도 하며 상상의 공간을 체험한다. 이를 위해 폐품으로 소품을 만들고 대형 천과 빛을 활용하여 상상의 공간을 만들었다.
본 프로그램의 가장 주요한 특징은 아이들이 스스로 본 인형극의 주인공이 되고 연출가가 되도록, 어디서든 무대가 되는 그림자 극장 키트를 제작했다는 것이다. 키트 안에는 빛이 들어오는 휴대용 상자 모양의 무대와 거북이 모형 등의 구성물이 들어 있다. 아이들의 신체 활동을 강조했다는 점, 놀이를 통해 전통문화를 체험케 하고 이야기의 결말을 아이 스스로 상상하게 한 점, 언제든 아이가 원하는 공간에서 상상의 무대를 재현할 수 있는 제작 키트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완성도 높은 프로젝트로 보였다.
마지막으로 의정부예술의전당 김다정 연구원이 ‘꼼질꼼질 발레동물원’ 프로그램의 사례를 소개했다. 총 4회 차로 이루어진 본 프로그램은 단순한 발레 실습이 아니라, ‘발레동물원’이라는 콘셉트로 동물의 세계 속에서 몸을 활용해 창의적인 발레를 체험한다는 아기자기한 설정이 돋보였다. 1회 차에서 아이들은 정글 숲을 지나며 만나는 동물 친구들의 움직임을 발레 동작으로 흉내 내고, 우리 몸의 골격을 이해하도록 돕는 뼈 스티커를 붙이며 신체의 구성을 인지한다. 2회 차는 초원을 테마로 하여 사자가 되기도 하고, 동물 가면을 만들어 쓰며 역할놀이를 하기도 하고, 재활용품을 활용해 관절 인형을 만들어 보며 몸과 함께하는 시간을 갖는다. 3회 차는 바다로, 형광 스티커를 몸에 붙이고 신비로운 바닷속에서 헤엄치고 천으로 만든 파도도 체험한다. 이러한 체험을 통해 마지막 4회 차에는 모든 동물들이 모여 발표회를 열며 마무리했다.
본 프로젝트 역시 아이들의 이후 발레 교육과 연계할 5개의 ‘개발 키트’(2분 30초간 발레의 기본 동작 20개를 배울 수 있는 영상물, 골격 이미지 및 뼈 스티커, 리노 관절인형, 발레+연극을 연계한 스토리북, 리노 스토리북의 배경으로 활용한 5곡의 음악 키트)를 제공했는데, 구성이 꼼꼼하여 프로그램이 끝난 이후에도 유아기관에서 활용하기 유용할 듯했다.
숲과 미술작품 적극 활용한 오감체험 수업
– 스코틀랜드 주피터 아트랜드
– 스코틀랜드 주피터 아트랜드
시각예술 분야의 첫 발표 사례는 스코틀랜드에서 온 주피터 아트랜드(Jupiter Artland)의 케이트 래섬(Kate Latham)과 캐서린 오 브리언(Catherine O Brien) 큐레이터가 맡았다. 울창하고 멋진 숲으로 둘러싸인 주피터 아트랜드는 에든버러 교외에 위치하고 있으며, 세계적 수준의 미술 작품을 보유하고 있다. 기관은 이러한 자원을 적극 활용하여 어린이집과 학교 등에 참여 수업과 워크숍 등을 지원하며, 스코틀랜드 내 모든 학생들이 이곳을 경험하는 것을 비전으로 두고 있다.
지난 10년간 주피터 아트랜드의 학습 프로그램에는 4만 9천 명의 영유아가 참여했으며, 정기 전시와 연간 학교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여러 기관들과도 파트너십을 맺는 등의 활발한 활동을 해 왔다. 주피터 아트랜드가 중점을 두는 점은 가정의 소득 격차나 교육 환경의 차이로 인해 생기는 아이들 간의 불평등을 해소하는 것이며, 도시화나 빠르게 변화하는 소셜 네트워크의 현실에서 아이들이 적응할 수 있도록 인지 능력을 향상시키고, 친구들과의 유대를 놀이와 자연 환경 속에서 개선시키는 것이다. 특히 피로도를 높이는 시험과 공부, 장시간 차 안에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 주변 환경으로 인해 자연과의 경험이 점점 줄어드는 아이들에게 숲이나 들판에서 자유롭게 뛰어놀며 문화예술을 즐기는 체험을 제공하는 데 주력한다.
이를 위해 이곳에서는 학기 중 유아를 대상으로 10~12주 동안 매주 이루어지는 수업인 ‘Littlesparks’, ‘Woodland Littlesparks’와 같은 정기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Littlesparks’는 나뭇잎 꿰기, 신비의 약, 얼음 미술, 거품 페인팅, 모형 정원 만들기, 클레이 페인팅 등, 숲이나 삼림지대에 기반한 교실에서 12명의 아이들이 2명의 교사와 1명의 자원봉사자들의 지도로 창의적이고 신체를 발달시키는 체험 교육을 제공받으며, ‘Woodland Littlesparks’는 보다 자유로운 형태로, 8명의 아이들이 2명의 교사의 지도 아래 고정된 교실이나 장소가 따로 없이 100에이커에 달하는 숲에서 자유롭게 주변 사물을 관찰하고 노는 프로그램이다. ‘Woodland Littlesparks’의 세부 활동으로는 물 채집, 연못 빠지기, 불 피우기, 동굴 만들기, 나뭇잎 두드리기 등이 있다. 이 외에 여름이나 방학 중 개설되는 비정기 수업인 ‘Artsparks’도 운영 중인데, 2명의 교사와 1명의 자원봉사자가 본 프로그램을 처음 접하는 학생들과 함께 정규 프로그램의 일부를 체험케 하며, 30여 개 넘게 상설로 열리는 전시나 미술 작품을 활용하여 교육을 진행하기도 한다.
주피터 아트랜드의 모든 교육은 아이들이 스스로 주도하며, 아이들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스타일의 지적, 학습 능력을 인지하여 개별적인 형태로 진행한다. 무엇보다 선생님이 가르치는 일방향이 아니라, 소통을 통해 이끌어 주며 유동적으로 지식이 공유되게 한다. 선생님은 아이를 기다려 주고, 이야기를 듣고, 아이들의 생각을 반영하여 수업을 진행하는 역할을 한다. 아이들이 초대한 세계에 들어가는 것. 이를 위해 앞서 소개했듯, 수업 형태도 책상 대신 마루에서 하거나 동굴과 같은 자연 공간에서 운영하거나 자연의 재료를 활용하는 방식을 택한다. 이러한 대안 학습은 최근 홈스쿨링이나 유연한 형태의 교육을 내 아이에게 제공하고 싶어 하는 부모들의 호응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아이들은 자기 방식에 맞는 교육 환경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면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반응하게 된다. 내년에 개관 10주년을 맞는 주피터 아일랜드는, 에든버러의 네이피어 대학과 협업하여 더 많은 아이들에게 체험의 기회를 제공하는 디지털 워크숍 프로그램을 개발 중이다.
자연과 함께, 작가와 함께 체험하는 시각예술
– 영은미술관, 임립미술관
– 영은미술관, 임립미술관
영은미술관의 ‘공간 속으로 풍덩’ 프로그램의 가장 큰 특징은 VR을 제작하여 작가들의 창작 스튜디오를 경험하게 하고, 입주 작가들과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프로그램에서는 미술관 전문 큐레이터와 에듀케이터들이 VR을 통해 아이들은 영은미술관의 전시와 창작스튜디오, 작가들과 간접적으로 만나고 야외 조각공원 및 소장품 등을 감상한 다음, 입주 작가와 직접 만나 체험 워크숍을 갖는다. 이러한 직간접 체험은 아이들이 보다 입체적이고 쉬운 시각예술 체험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발표를 맡은 영은미술관의 이지민 학예실장은 영은미술관에서는 유아들의 눈높이 맞춤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직접 현장으로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어린이들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던 창의력을 적극적으로 표출시키는 데에 목적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프로그램의 성과로는 총 24개의 유아 기관을 대상으로 528명의 영유아들이 본 프로그램을 체험했다고 설명했다. 올해는 박승순 작가가 아이들과 디오라마 모형 제작 워크숍을 진행했으며, 올해에는 모든 과정을 체험한 528명 아이들의 작품을 전시할 예정이라 한다.
다음으로 충남 공주에 자리하고 있는 임립미술관에서는 자연 환경을 적극 활용한 생태 미술놀이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자연 생태관찰과 미술작품 감상으로 이루어진 커리큘럼을 통해 각각 4회 차의 수업을 진행했으며, 아이들은 숲과 호수, 마을 등을 소재로 한 미술작품을 감상하고 미니 정원 꾸미기나 미니 어항을 만드는 체험 프로그램을 제공받았다. 본 프로그램의 진행을 위해 창의조형 키트를 교육 자료로 제작했으며, 24개의 기관에서 500여 명의 영유아들이 참여하여 수업을 받았다고 전했다.
신은주 부관장은 임립미술관에서 진행한 체험 프로그램의 목적은 자연환경을 교육 자원으로 활용하여 유아의 감각을 발달시키고, 관찰력과 상상력, 그리고 창의력을 키우는 데 주된 목적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현대미술과 생태미술을 융합한 본 프로그램을 통해 유아들이 문화예술을 즐기며,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구상했다고 덧붙였다.
눈높이를 맞추고 소통하면서 만들어가는 유아 문화예술교육
사례 발표가 모두 끝나고 문무경 육아정책연구소 실장의 사회로 종합토론이 이루어졌다. 유아 시기 문화예술 교육의 중요성과 유아의 발달 특성을 고려한 프로그램 개발의 필요성, 지역 공공 영역의 문화기반 시설의 활용, 향후 유아 문화예술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논의하는 이 자리에는 중앙대 연극학과 최재오 교수, 한국교원대학교 문화예술교육대학원 이재영 교수, 사례를 발표한 국내외 참여자 모두가 참석했다.
이재영 교수는 먼저 시각문화예술분야 유아 문화예술교육의 방향성을 돌아보면서, 유아시기의 문화예술교육의 중요성을 짚었다. 유아들에게 있어 교육은 자아 성장력의 발현이라고 볼 수 있으며, 문화와 예술을 개념적 또는 기능적으로 학습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아름다움에 대한 감수성을 체화하는 시기에서 유아들의 성장을 발현시킬 정교한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이 제공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는 프로그램 중심의 문화예술교육 활성화와 문화소외지역으로의 문화예술교육 지원을 확대하여, 보다 지속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제도적 기틀을 다져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으로 최재오 교수는 지역사회의 문화예술 인프라가 갖추어진 단체에서 유아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운영하는 것이 유아 문화예술교육 인프라 구축과 확대를 위해 의미 있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역시 놀이를 기반으로 하는 경험과 학습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정서적 안정감과 성취감을 느끼는 유아기의 특성을 설명하면서, 이러한 유아들의 특성을 고려한 세밀하고 효과적인 방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또한 토론 내내 심도 있는 질문과 대답이 오갔는데, 이재영 교수는 주피터 아트랜드 측에 놀이 체험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졌는지에 대해 물었고, 이에 대해 케이트 래섬과 캐서린 오 브리언 큐레이터는 교육이라는 용어가 오히려 아이들과의 소통을 방해하며, 탄력성이 회복되는 방향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즉 교육의 대상자라는 시각, 톱다운 방식에 대한 관점의 변화가 이루어져야 놀이 방향의 교육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학생들과의 신뢰를 높이고 관계를 개선시키는 시간이 필요하므로 정규 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영은미술관의 이지민 학예실장은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유아는 어른과 눈높이가 다르다는 것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따라서 개발 단계부터 아이들을 가르치는 기술을 시연하고 단어 선정과 전달력, 교감에 신중해야 함을 배웠으며, 다양한 기관이 가진 정체성을 대상에서 얼마나 전달력 있게 체험케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문무경 육아정책연구소 실장은 유아 대상의 특성과 개별적인 스토리에 따라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유아를 제대로 이해하고 용어와 태도 등을 고려한 실험적인 교육을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극단 가제노코의 켄 나카지마는 ‘찾아가는’ 형식의 유용성을 강조하며, 인간은 생물이므로 자연과 숲에서 노는 것이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의 징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인간은 누구나 생명으로 태어나는데, 자연 속에서 ‘있는 그대로의 인간의 모습’을 느낄 수 있으며, 자연을 배경으로 한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는 많은 것을 얻고, 아이들은 기억을 공유할 수 있다는 혜안 넘치는 답변도 들을 수 있었다.
장기적으로, 아이 스스로 자율성과 놀이 기쁨 찾게 해야
이번 콘퍼런스를 참관하며 스코틀랜드와 일본, 한국에서 진행 중인 유아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의 차이를 실감할 수 있었다. 일본의 경우 오랜 유아 문화예술교육의 경험을 지니고 있는 문화단체가 역시 오래된 경력을 지닌 전문 기획자와 예술인들을 초대하는 방식이 아니라, 그들이 직접 아이들을 찾아가, 친숙한 환경에서 문화예술을 체험이 이뤄질 수 있도록 배려하는 문화가 정착된 듯했다. 스코틀랜드의 경우 국가적으로 장기적 비전으로 계획을 세워, 그 나라의 문화예술교육의 가치를 인정하는 전문 인력들이 천혜의 자연환경과 공간 자원을 활용하여 안정적인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한국의 경우도 일본, 스코틀랜드의 사례처럼 민간이나 공공에서 장기적 프로그램 마련에 대한 의견을 제기하거나 생태적 환경과 인문적 발상을 기반으로 아이들을 위한 알찬 프로그램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으나, 타 국가들에 비해 지속성과 안정성 면에서 부족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프로그램의 내용이나 성격에 따라 단기, 장기 프로그램의 장단점이 다르겠으나, 유아를 대상으로 하는 문화예술교육의 경우 1년 단위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좀 더 바람직해 보인다. 그리고 민간에서 오랜 경험과 실력을 쌓은 현장의 기획자 및 연출가에게 더 많은 영역에서 유아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맡아 줄 수 있는 제도적 보완이 마련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울러 성과 보고의 형식으로 결과물을 강조하는 국내 연구자들에 비해 해외의 교육 주체들은 오랜 경험에서 나오는 유아들과의 소통 노하우, 지역의 특성이 보다 자연스럽게 반영되는 현장 프로그램의 사례를 들려준 듯하다. 이는 국내 유아 문화예술교육의 주체들이 아이들에 대한 애정과 교육에 대한 열정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앞서 언급한 ‘장기적 프로그램의 부재’로 인한 교육 노하우의 부족함, 종합적이고 인문적 사유가 반영된 안정적인 기획을 진행하기 위한 ‘제도적 지원의 미비함’에 이유가 조금 더 큰 듯하다.
본 발표에서 가장 진정성 있게 들리는 단어는 ‘놀이’와 ‘아이 스스로’였다. 아이의 시선에서 아이의 행위를 이해하며 아이의 공간에서 함께 놀려는 어른의 노력, 인위적 방식이 아니라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자연과 함께,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아이 스스로 느끼고 움직이고 변화하도록 기다리는 어른의 모습을 우리의 교육 현장에서 보고 싶다는 바람이 생긴다. 그런 환경이 주어질 때, 아이들이 보다 자율적으로 외부 세계를 발견하고 자신의 사회를 구성해, 씩씩하게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아이의 세계에 초대받을 때에는 노는 ‘척’이 아니라 아이와 ‘진짜 놀아야 한다’는 나카지마 기획자의 이야기가 오래 남았다.
- 이정화_독립 에디터
- 대학과 대학원에서 문학과 철학과 미학을 공부했다. 다수의 재단과 문화예술 관련 매체에 인터뷰, 에세이, 미술비평 등의 글을 게재했으며, 독립 에디터로서 독립출판과 관련 프로젝트를 기획해 왔다. 비평과 창작의 사이공간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그러한 질문을 텍스트와 이미지로 표현하고 ‘존재하는 나’로서 공부하며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 junghwa-1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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