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문화예술 분야에서의 펀딩은 우리나라와 해외에서 온도차를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해외보다 펀딩이 활발하지 않은 게 현실이지만 해외에서는 최근들어 펀딩과 한 발 더 나아간 크라우드 펀딩*이 각광받고 있다. 과거 금융 서비스 중심의 펀딩이 주를 이루다가 미국의 많은 창작자들이 꾸준한 펀딩 활동을 이어감에 따라 현재는 예술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전시, 공연, 음반 및 저예산 다큐멘터리 등의 분야에서 펀딩이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최근 해외에서는 크라우드 펀딩이 전통적인 자금조달 방식에서 벗어난 대안 금융의 한 방식으로 주목받고 있다. 일반적으로 크라우드펀딩은 온라인에서 다수의 대중으로부터 비교적 소액의 자금을 조달한다. 자금 조달 방식에 따라 리워드형(보상형), 투자형 및 대출형으로 구분되기도 하는데, 이번 칼럼에서는 상대적으로 모집이 쉬운 리워드형을 기준으로 해외에서 진행되고 있는 크라우드 펀딩의 주요 사례를 살펴보고자 한다.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 자금을 필요로 하는 수요자가 웹이나 온라인 플랫폼 등을 통해 불특정 다수 대중에게 자금을 모으는 방식.
글로벌 크라우드펀딩 사이트의 활약
기존 문화예술의 유통은 일반적으로 티켓판매 사이트나 극장 등을 통해 이루어졌다. 창작물에 대한 프로덕션 노트와 티켓 판매를 위한 활동은 홍보, 마케팅 담당자가 전문성을 갖고 진행했으며, 관객에 대한 정보는 티켓 판매 사이트나 극장을 갖고 있었다. 공연에 대한 리뷰도 일부 투자자나 프로듀서, 기자 등에 제한돼 작성된 평점들이 전부였다. 즉, 창작자가 관객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은 공연이 시작되거나 끝나는 순간에 불과했다. 하지만, 크라우드 펀딩이라는 새로운 형태가 등장하면서 창작자들과 대중이 직접적인 관계를 맺게 됐다.

  • 킥스타터 홈페이지에서는 페스티벌, 뮤지컬, 연극 등 다양한 창작물이 펀딩을 진행 중이다.

세계 최대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로 잘 알려진 킥스타터(Kick Starter)의 시작은 약 9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킥스타터는 지난 2009년부터 영화, 음악, 공연예술, 만화, 비디오게임 등 다양한 분야 프로젝트의 투자를 유치했다. 프로젝트에 기부를 진행하여 일정 금액이 넘으면 돈을 제공하고, 목표액을 넘지 못하면 투자를 하지 않아도 되는 방식이다. 투자자는 돈이 아닌 해당 시제품, 감사 인사, 티셔츠, 작가와의 식사 등 다른 유·무형 형태의 보상을 받게 된다.
지난 10월 15일 기준으로 킥스타터 홈페이지에서 ‘theater’라는 키워드로 검색을 하면 10,786건의 프로젝트가 검색된다. 적게는 수십만 원에서 많게는 수천만 원까지 창작 공연들에 대한 펀딩이 진행되고 있다.

  • 키스키스 뱅크뱅크의 메인 홈페이지

크라우드 펀딩 시장 규모가 영국 다음으로 큰 프랑스에서는 다양한 문화예술인들이 향유하고 있는 나라답게 예술 분야 크라우드 펀딩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 중 프랑스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오래된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인 ‘키스키스 뱅크뱅크(kisskissbankbank)’가 주목받고 있다. 키스키스 뱅크뱅크는 문화예술 관련 창작자들에게 특화된 펀딩 사이트로 설립 이후 27,000여 개 프로젝트가 생성돼 현재 약 127만 명의 일반인으로부터 약 1,000억 원의 자금을 조달하였다. 산술적으로 일반인 기준 1인당 약 8만 원을 창작자(창업가)들에게 후원해준 셈이다.
키스키스 뱅크뱅크의 펀딩 사이트 역시 눈길을 끈다. 메인 페이지의 ‘Liberons la Creativite(창작자를 자유케하라)’라는 메시지가 인상적이다. 이같은 키스키스 뱅크뱅크의 모토는 ‘창작자를 위한 펀딩’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은연중에 암시한다. 그렇다면, 창작자를 위한 펀딩이 어떤 이유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을까? 이는 크라우드 펀딩의 본질적인 요소와 관련이 있다. 미국이 대중문화의 강자라서, 프랑스가 자국 문화에 대한 사랑이 유별나서 펀딩이 잘 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창작자들이 그 중심에 있기 때문이다.
공공예술 분야의 크라우드 펀딩
공공예술 분야에서도 크라우드 펀딩이 강세다. 그중 뉴욕의 공공예술 펀딩은 지역 거주자들에게 역동적인 현대 미술을 경험하게 하면서, 접근성을 높이는 역할을 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지난 8월 21일부터 9월 21일까지 진행한 ‘새로운 장벽이 새로운 이웃을 만든다(Good Fences Make Good Neighbors)’라는 프로젝트가 있다. 이 프로젝트는 킥스타터와 예술가 아이 웨이웨이(Ai Weiwei)가 협업한 야외 전시 프로젝트로, 약 한 달간 883명으로부터 96,853달러(한화 약 1억 925만 원)를 모집했다. 특히, 엽서, 티켓, 공공예술 펀드 기금파티 초대권 등 다양한 보상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일반인들의 참여를 다양한 방식으로 이끌어낸 점이 인상적이다.

현재 킥스타터에서 진행하고 있는 ‘샨티 프로젝트(Art Shanty Projects Membership Program)’ 역시 개인에 국한하지 않고 일반 기업까지 참여할 수 있도록 다양한 보상 프로그램을 제시하고 있다. 프로젝트의 발상 자체도 흥미롭다. 겨울철 얼어붙는 미국 미네소타의 호수 위에 예술가들의 창작품을 전시하고, 전시기간에 약 20개의 창작 팀이 호수 위에서 야외 공연을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다. 지난 10월 24일 기준으로 101명이 8,343달러(한화로 약 941만 원)를 모집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최근 점점 어려워지는 공공 또는 민간 보조금 의존도를 줄이고, 예술가들에게 공정한 보상을 하기 위해 기획돼 눈길을 끈다. 일반 대중에게는 프로그램을 무료로 제공하되, 충성도 높은 사람들이 해당 프로그램을 활용할 수 있도록 공개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자발적인 펀딩 능력이 공공예술 분야에서도 중요해지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미래의 열정적인 대중을 위한 노력
크라우드 펀딩은 자금의 공급자와 수요자가 별도의 중개기관 없이 직접 연결되어 있는 형식이다. 펀딩 형태에 따라 다른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직접적인 관계를 맺게 된다. 이 과정에서 자금의 공급자는 팬(Fan)이 될 수도 있다. 지금까지 무대 객석에서만 볼 수 있었던 관객을 온라인에서 먼저 만날 수 있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때, 제작 자금이 만들어진다.
지난 10월 17일 기준으로 키스키스 뱅크뱅크에서 진행되고 있는 크라우드 펀딩 과정을 살펴보자. 문화예술 분야의 작가들이 모여 한 전시회의 마지막 단계에서 자금을 모집 중이다. 사이트에서는 프로젝트를 시작한 배경에서부터 시작해 역사, 창작자의 이력, 자금사용처, 예산의 투명한 공개, 모집금액 초과 시의 사용계획 등을 자세히 기재한 뒤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다.

  • 지난 10월 17일 기준으로 키스키스뱅크뱅크에서 크라우드펀딩이 이뤄지고 있다.

실제로 필자가 미국과 프랑스의 펀딩 플랫폼에 만나본 창작자들은 매우 적극적이다. 자신이 왜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는지, 준비 과정에서 어떤 에피소드가 있었는지에 대해서 정확히 설명한다. 심지어 자신의 창작 열정과 의도를 보여주기 위해서 온라인상에 의문이 드는 사진이나 영상을 과감히 게재하기도 한다. 더 나아가서는 1달러부터 수천 달러 형태의 수단을 마련한 뒤, 그에 걸맞은 보상과 약속을 만들어 낸다. 미래 열정적인 팬이 될지도 모르는 잠재적 지지자를 위해서 말이다.
초기에는 적은 금액으로 모인 소규모 공연이 수차례 반복되면서 규모가 커지는 사례가 있는가 하면, 지지자들의 공감을 받지 못해서 중단되는 경우도 있다. 바로 이 과정에서 성공과 실패 두 가지 길로 갈린다. 킥스타터의 경우 창작물의 자금 조달 방식이 대부분 ‘전체 혹은 전무(all or nothing)’ 식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프로젝트를 처음 시작할 때 목표금액을 설정하고, 도달하지 않으면 아예 펀딩된 자금을 가져가지 않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효과적인 크라우드 펀딩을 구축하는 방법
크라우드 펀딩의 특징은 처음에 한 번 결정하면 펀딩이 종료될 때까지 바꿀 수 없다는 점이다. 펀딩의 모든 과정은 진행하는 자의 몫이 된다. 펀딩을 위해 자신의 프로젝트를 최대한 자세하게 설명하기도 하고, 핵심 요인들을 강조하면서 간단하게 프로필 페이지를 만드는 수고스러움까지 동반한다. 이전까지 검색 사이트에서 찾을 수 없는 정보들이 새롭게 생성되는 것이다. 보통 국내에서 특정 창작물에 대한 정보를 찾으려고 하면 포털사이트나 티켓 판매 사이트에서 검색해야 한다. 검색된 내용 역시 대부분 창작자가 직접 쓴 내용이 아니라 공연의 홍보, 마케팅을 위해서 가공된 콘텐츠들이다. 창작자의 이야기는 인터뷰 기사를 찾아보거나 제작팀에서 별도로 마련한 웹사이트를 이용하지 않으면 쉽지가 않다. 하지만 크라우드 펀딩 창작자들의 결과물이 검색 사이트에서 쉽게 찾을 수 없는 정보가 되고, 그 과정에서 커뮤니티가 만들어진다. 이때, 상호 신뢰감이 싹트게 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크라우드 펀딩 방식은 이런 정보들을 균형 있게 맞춰가는 데 좋은 역할을 할 수 있다. 앞서 살펴본 미국과 프랑스의 창작자들도 불균형과 비대칭의 균형점을 찾아가고 있다. 문화예술 분야에서의 크라우드 펀딩 역시 불특정 다수가 아니라, 창작자의 가치를 알아봐 주고 인정할 수 있는 소수의 대중을 위해 준비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항상 부족한 자금을 위해 펀딩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창작자 혹은 기획자 스스로가 아주 오래전부터 준비했던 작품에 대해 몰입하고 표현하는 과정이다.
미국과 프랑스에서 수만 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한 창작자들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금액보다 프로젝트 본질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 순간 지지를 보내주는 대중들과 자금이 만들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처럼 한국에서의 문화예술 관계자 역시 크라우드 펀딩을 활용할 때 적극적으로 대중들과 소통하고자 한다면, 지지와 자금을 동시에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개인이나 단체가 크라우드 펀딩을 처음 진행할 때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 가뜩이나 기존의 펀딩 환경과 대비하여 준비해야 할 것도 많은데, 현재 문화예술 분야에서는 여전히 어렵고 낯설게 느껴지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국내의 예술가, 예술단체가 이러한 자금조달 방식을 더욱 쉽게 접하고 시도해 볼 수 있도록 문화예술 관련 단체들의 관심과 지원도 꼭 필요해 보인다.

윤성욱_와디즈 이사
윤성욱_와디즈 이사
한양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뒤 영화 투자배급사에서 다수의 프로젝트 마케팅, 투자업무를 경험했다. 이후 투자사로 옮겨 다양한 영화, 공연, 드라마 등 문화산업 내 다양한 투자업무를 수행하다가, 2011년부터 기업은행 문화콘텐츠금융부에서 문화산업 분야 금융에 대한 기획과 실행업무 경험을 쌓았다. 투자형 크라우드 펀딩이 법제화된 2016년부터 창작자, 중소기업의 대안금융으로써 가능성을 보고, 지금은 와디즈에서 투자형 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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