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재산’을 많이 갖고 싶어 한다. 하지만 정작 자신이 창조한 정신적 결과물에 대해서는 이것이 재산인지, 어떻게 주장해야 하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과거에는 부동산, 유체동산과 같이 눈에 보이는 재산이 중심이었다면, 4차 산업혁명 시대라고 불리는 현재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정신적 노동의 산물인 지식재산으로 재산권의 중심이 옮겨가고 있다. 현시대에는 자신의 건물이나 자동차를 지켜왔듯이, 지적재산도 지킬 수 있는 기본적인 법률 지식이 필요하다.
문화예술교육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예술강사, 기획자 등은 스스로 만들어 낸 독창적인 커리큘럼인 ‘기획안’에 대해 어떤 권리가 있는지, 어떤 방식으로 권리를 지켜낼 수 있는지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문화예술교육 분야의 중심에서 누구보다 창조적 지식의 법률관계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할 전문가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에 예술강사와 문화예술교육 기획자가 창조하는 기획안을 중심으로 권리 의무 관계를 살펴보고 향후 권리 보호 방안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지고자 한다.
해외사례에서 본 우리나라 저작권법의 한계
먼저 기획안의 법률적 성격에 대해서 살펴보자. 기획안의 법률분쟁과 관련하여 최근 흥미로운 일이 언론에서 보도된 적이 있는데, 바로 ‘스타강림’ 사건이다. 한국의 ‘컨텐츠플래너’라는 제작사가 중국의 한 투자자와 합작해 새로운 프로젝트에 대한 사업 구상을 시작했다. 당시 기획한 프로그램의 콘셉트는 한국과 중국의 스타들이 두 나라의 기업으로 나뉘어 다른 문화권의 회사원으로 일한다는 내용으로 꾸려졌지만 결국 불발되고 말았다. 하지만 당시 컨텐츠플래너의 기획안을 중국 투자자가 한국의 다른 제작사인 ‘케이콘텐츠’에 제공했고, 케이콘텐츠가 이를 수정·보완하여 프로그램 제작에 들어갔다. 애초에 기획했던 ‘스타강림’이라는 프로그램명과 콘셉트까지 그대로 유지한 채였다. 이에 최초로 기획안을 만든 컨텐츠플래너는 본인들의 기획안이 도용되었다며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제작금지 가처분을 제기하였지만 패소하였다.
여기서 컨텐츠플래너는 기획안을 최초로 만들었음에도 왜 법원으로부터 권리를 인정받지 못했을까? 이러한 컨텐츠플래너의 사례가 예술강사와 문화예술교육 기획자의 모습일 수 있다. 기획안은 전적으로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구성된 하나의 지적 스케치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현재 아이디어를 저작권으로 보호해주고 있지 않다. 저작권으로 인정이 되려면 단지 생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표현’이 되어야 한다는 게 우리나라 법 내용에 해당한다. 즉, 글이나 영상, 그림 등으로 표현된 결과물이 저작물로서 보호받을 수 있다. 이때 독자들은 “기획안도 저작권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글’이 아닌가?”라고 질문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글로 표현된 어문 저작물은 표현을 중시하기 때문에 이면의 아이디어를 보호해주지 못한다. 기획안을 다른 표현이나 글로 바꿔 적는 등 새로운 기획안처럼 재구성한다고 가정할 때, 결과물의 콘셉트가 유사하더라도 어문 저작물의 침해가 될 수 없다. 스타강림 사건에서도 마찬가지다. 만약 컨텐츠플래너의 기획안을 복사해서 이용했다면 어문 저작물의 침해가 될 수는 있지만, 해당 내용을 수정·보완하는 작업을 거쳤기 때문에 법에 어긋나지 않게 된다. 이처럼, 우리나라 법원은 저작권 침해에 있어 데드카피(Dead copy)* 수준의 복제를 주로 침해로 인식하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 데드카피(Dead copy): 타사 제품을 똑같이 모방하여 만드는 것.
그렇다면 기획안이 저작권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경우 『부정경쟁방지법』상의 ‘영업비밀’로 보호될 수는 없을까? 스타강림 사건에서도 이 부분과 관련된 내용이 주장된 바 있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황이다. 영업비밀이 되려면 그 사안에 접근 가능한 사람이 한정되고 패스워드가 존재하는 등 영업비밀로서의 유지 관리 및 표지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기획안은 대외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목적이 강하기 때문에 영업비밀로서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공모로 수집한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의 저작권법 적용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하 진흥원)은 매년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공모하고 그 중 진흥원의 운영 방향과 맞는 예술단체 혹은 예술강사를 선정‧선발하고 있다. 이때 제출되는 기획안에는 세부적인 운영계획과 참여인력, 시차별 교안 등을 제안하도록 하고 있는데, 이 문서는 바로 수업에 적용할 수 있는 교육 커리큘럼에 가깝다고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공모에 제출된 기획서는 저작권법의 보호 대상이 될 수 있을까? ‘스타강림’사건의 예와 동일하게 공모에 제출된 기획서는 그 수준과 관계없이 ‘아이디어’ 혹은 ‘지적 스케치’에 해당한다. 따라서 저작권을 주장하기 어렵다. 심지어 제3자가 공모전에 제출된 기획서를 입수하고 그에 착안하여 누가 봐도 비슷하게 기획서를 제작하여 다른 공모에 제출한 경우라 해도 저작권법상 보호를 받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런 경우도 있을 수 있다. A씨가 공모를 통해 사업자로 선정되고, 예술 단체의 예산과 지원을 받아 교육현장에서 수업에 대한 성과를 인정받았다. 그리고 그 이후 차년도부터 예술단체 주도로 이 프로그램을 수정, 보완한 후 전국적인 단위로 확대해 여러 사업자 또는 문화예술교육자를 통해 진행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A 사업자는 여러 가지 사정으로 사업에서 배제되게 되었다고 가정해보자. 기획서를 통해 아이디어를 내고 현장에서 전체 과정을 담당했던 A 사업자 입장에서는 다소 억울한 점이 있을 수 있다. 이 경우 A 사업자의 저작권은 어떻게 될까? 또 공모를 통해 받은 복수의 기획서를 결합하여 더 큰 교육 프로그램 기획의 일부로 포함했다면 이 경우 저작권은 누구에게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두 사례 모두 현재 저작권법 기준으로 기획서와 프로그램에 대한 저작권을 주장하기 어렵다. 단지 생각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으로 표현된 글과 사진, 영상 등만이 저작권의 대상이 될 수 있을 뿐이다. 위의 두 가지 경우는 ‘스타강림’ 사례에서와 동일하게 기획안을 목적에 맞게 수정·보완하여 새로운 기획안처럼 재구성한 범주에 들어가게 되므로, 글자 하나 틀리지 않는 데드카피가 아닌 이상 결과물의 콘셉트가 유사하더라도 어문 저작물의 침해가 될 수 없다.
‘법적 효력’이 포함된 저작권법 대안
필자는 현재 많은 강연을 하고 있기 때문에 강연업체와 교류할 일이 많다. 한 강연업체에 따르면 강연 프로그램을 요청하는 기업들이 많은데, 특정 커리큘럼과 강사진으로 프로그램 진행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이에 강연업체는 해당 기업의 취지와 목적에 맞는 프로그램과 강사를 세팅하고 기획안을 만들어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기업 중 열에 아홉은 강의업체로부터 프로그램 내용만 제공받고 강의를 진행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더 악랄한 기업은 프로그램 기획안을 받고 나서, 강의료 부담이 적은 강사들을 섭외하여 별도로 강의를 진행하겠다고 한다. 필자는 이에 대해 강연업체에게 문제를 제기할 필요성을 역설했지만, 강연업체는 을의 입장으로서 순종적으로 현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을 뿐이다.
이런 기획안 도용을 막을 수 있는 법률적 장치가 있기는 하다. 바로 양해각서(MOU)의 활용이다. 양해각서라고 하면 큰 단체들이 교류하면서 ‘사진을 찍기 위해 만드는 서류’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업무를 제휴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법적 문제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좋은 장치가 될 수 있다. 다시 말해 ‘협약 당사자는 각자의 비밀보호 방침을 존중하며, 업무협력 과정에서 상호 취득한 비밀과 업무 내용에 대하여 상대방의 승낙 없이 임의로 외부에 누설 또는 공개하지 않는다’는 비밀유지 조항을 양해각서에 포함하면 향후 위반 사항에 대해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하게 된다.
이때 “양해각서는 법적 효력이 있는가?”라는 질문이 또 제기될 수 있다. 결론적으로 ‘MOU’라는 명칭 때문에 법적 효력이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명칭이 무엇이든 그 구체적인 효력은 해당 MOU의 내용 안에 어떤 항목들이 규정되어 있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일반적으로 의향서는 협상기간 동안의 우선협상권 및 비밀유지의무 정도를 법적인 의무로 규정하고 있고, 나머지 사항들은 협조사항에 불과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히려 양자의 공통의 비전에 대해서 추상적인 규정을 두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비밀유지 조항은 법적 효력을 가진다는 규정을 두기만 하면 계약서와 다를 것이 없게 된다.
주의깊은 ‘비밀유지 의무 부여’가 관건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창의적 활동을 하는 사람들 주변에는 자본가들의 접근이 많다. 필자가 직접 진행한 사건만 해도 웹툰 작가, 애니메이션 캐릭터 작가, 연예인 등 많은 예술가들이 자본가들로부터 여러 가지 제안을 받는다. 지적 창조물을 생산하는 예술강사와 문화예술교육 기획자들도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자본에 제공하고 협업을 해야 할 일이 많이 있다. 그런 경우에 자신의 아이디어를 도용당하지 않기 위해서 업무 협상을 할 때 상대방에게 비밀유지 의무를 부여하는 협약서를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더해서, 만약 제3자가 기획안을 모방하여 프로그램을 진행한다면 부정경쟁방지법 상의 부정경쟁행위로 볼 수 있다. 즉, ‘타인의 상당한 투자나 노력으로 만들어진 성과 등을 공정한 상거래 관행이나 경쟁질서에 반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영업을 위하여 무단으로 사용함으로써 타인의 경제적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라는 명목으로 형사고소나 손해배상 민사소송을 진행할 수 있다. 하지만 법원은 형사고소가 가능한 만큼 부정경쟁행위에 대해서 엄격하게 해석하고 있으므로, 현실적으로는 실현 가능성이 낮아 보이기도 한다.
- 조상규_변호사
- 법무법인 주원의 파트너 변호사이자 법학박사, 금융MBA, 변리사이다. 경희대를 비롯한 대학교에서의 겸임교수와 기재부·문화부·공공기관 경영평가단 평가위원 등을 지내고 있다. 저서로는 『문화예술저작권 분쟁의 숲에 가다』와 『김영란법 제대로 알기』 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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