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보다 그림, 그림보다 영상에 익숙한 요즘의 청소년들과 영화로 만나는 일은 긍정적인 교육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방법이다. 특히 문화예술교육으로서의 영화 수업은 단순히 단편영화를 제작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나’를 둘러싼 환경을 돌아보고 자신의 관점을 담아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더 의미가 있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매체를 이용한 소통의 방식’을 배우게 된다. 이맘때면 늘 학생들의 작품에 대한 고민과 편집 작업으로 바쁠 시기지만, 잠시 일을 내려놓고 영화 예술강사로 8년이라는 긴 여정의 이야기를 들려줄 문해복 예술강사를 만나보았다.
Q. 어떠한 계기로 예술강사 지원사업에 영화분야 예술강사를 시작하게 되었나?
전공이 세 개였다. 귀금속 디자인, 영상 멀티미디어, 그리고 마지막으로 영화를 선택했다. 모두 시각적인 분야이다. 세 번째 전공을 마친 시점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이론보다는 제작현장에서 일하고 싶었다. 그렇게 진로에 대해서 고민하던 중 ‘난타’를 기획한 송승환 감독의 지면 인터뷰 한 구절이 나를 예술강사의 길로 이끌어 주었다.

“어렸을 적 공연 하나를 보게 되었는데 각인이 되어 난타를 기획하게 되었다. 어릴 때의 문화 경험은 학생들에게 풍부한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게 한다.”
어렸을 적 문화예술 소외지역에서 자랐다. 청소년기에 문화예술을 좀 더 빨리 접할 수 있었더라면 지금보다 더 흥미로운 삶을 살았을 것 같다. 그래서 문화 소외지역의 학생들에게 이런 문화예술에 대한 향유의 기회를 주고 싶었다. 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이 생각을 유지하고 있다.

Q. 수업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본인만의 수업 방식은 어떠한가.
영화 제작에 필요한 최소한의 개념과 용어를 설명하는 ‘기초이론’, 영화의 주제의식과 매체에 대한 이해를 다루는 ‘리터러시(Literacy)’, 그리고 실제 단편영화 제작과정으로 나누어 영화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모든 교육 과정은 학생들이 직접 경험하면서 즐겁게 배울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 초·중·고등학교 수업에 참여하고 있는데, 먼저 학생들의 상황을 파악하고 대상의 눈높이에 맞춘 교육 방법을 유연하게 채택하고 있다.
예를 들어 영화의 구도, 프레임과 렌즈의 화각에 대한 개념을 초등학교에서 수업할 때 우드락(woodlark)으로 여러 화각에 맞는 크기의 액자를 만들어서 주변의 사물을 관찰하게 한다. 이렇게 놀이로 체험을 하게 하면 영화에 대한 개념이 쉽게 이해된다. 상대적으로 이해력이 높은 고등학생에게는 정확하게 이론을 알려준 뒤, 실제 카메라로 배운 내용을 표현할 수 있게 예술사진 한 컷을 찍게 한다. 대상별로 눈높이를 맞춰 커리큘럼을 변경하고 있다.
영화 수업의 최종 목표는 단편영화 제작이다. 시나리오 쓰는 단계부터 학생들과 함께 한다. 콘티(촬영대본)도 그리는데, 그림 그리기를 싫어하는 학생들에게는 글로 만드는 방법을 알려준다. 그 후에 제작 파트를 나누고 리허설 촬영과 본 촬영을 순서대로 진행한다. 단기간에 기술 습득이 어려운 가공작업 등은 예술강사와 함께 진행한다. 수업과정 전체에서 가장 신경쓰고 있는 부분은 발표회, 혹은 시사회이다. 학급 학생들이 각자의 역할을 맡아서 전원이 참여하는 형태로 진행하고 있다. 요즘 모든 학교에서 축제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이 축제 시기에 맞추어 영상을 상영한다. 제작진 무대 인사를 시작으로 감독 인터뷰, 감상 발표도 한다. 이때가 학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순간이다. 발표를 통해 성취감도 맛보고, 작품에 대한 서로의 의견을 나누며, 문제점과 개선방안을 공유하게 된다.
Q. 학교 문화예술교육이 전해줄 수 있는 예술적 가치는 무엇인가?
영화 수업 30차시 동안 작품을 완성하려면 꽤 힘든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이 완성되면 ‘앞으로 영화를 하고 싶어요.’라고 얘기하는 학생이 1년에 한두 명씩은 있다. 학생들에게는 영화수업을 통해 자신의 미래를 구체적으로 꿈꿔 볼 수 있는 새로운 기회가 생긴다. 처음 예술강사를 시작했을 때의 꿈은 학생들이 예술적인 경험을 통해 스스로 무언가 하고 싶다는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이 점에 대해서 뿌듯함을 느낀다. 청소년기의 소소한 경험이 때로는 미래의 꿈과도 연결된다.
학생들은 보통 ‘영화’나 ‘드라마’를 얘기할 때 배우라는 직업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학생들이 영화를 직접 제작해보며, 한 편의 영화가 만들어지기까지 다양한 과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광고나 영화, 혹은 유튜브 동영상을 볼 때의 태도가 확연히 달라진다. 기존에는 단순히 영화를 보기만 했다면, 문화예술교육을 받은 이후에는 영화에 담긴 메시지와 제작 과정까지 그려볼 수 있게 된다.

Q. 이번 수업에 참여하시면서 기억나는 에피소드(보람된 일, 힘들었던 부분)가 있는가?
보통 창의적인 체험 활동은 정규 교과목으로 편성돼 있지 않다. 간혹 수업 시간에 태도가 안 좋은 학생들 때문에 힘든 적도 있지만, 감동한 적이 더 많다. 첫 수업에서는 이름만 불러도 우는 학생이 있었다. 왜 우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쉬는 시간마다 우는 학생의 눈을 맞추고 이름을 불러주었더니, 8주 차 정도 지나서 “선생님, 오늘은 뭐해요?”라며 먼저 말을 걸기 시작했다. 이런 학생들의 변화를 보면서 느낀 점이 많았다. ‘모든 변화는 천천히 일어난다’라고 깨닫는 순간이었다.
올해는 전교생이 20명인 초등학교에서 1, 2학년을 대상으로 수업을 하게 되었다. 평소보다 제작 쪽에 집중하고 있던 찰나에 담임교사의 말 한마디가 나의 모습을 돌아보게 했다.

“선생님은 완벽한 수업을 원하시나 봐요. 그 수업도 재밌고 좋지만, 아이들이 즐거웠으면 좋겠어요. 아이들하고 오롯이 놀아주시면 됩니다.”
담임교사의 조언이 학생들을 배려하지 못한 나를 반성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학교에 출강을 하면 작품에 대한 결과물을 제출해야 된다는 압박이 있었고 그 결과물이 나를 평가하는 요소라는 생각을 했었다. 사실 예술강사 2년 차까지는 학교 교사와의 협력 관계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3년 차가 되면서 학생들을 위한 수업을 하는 건지, 학교 교사를 위한 건지 고민하게 되었고, 최근에서야 학생들이 먼저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는 ‘학생들과 즐겁게 작품 하나 만들자’라는 생각이 수업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오는 2학기 커리큘럼은 좀 더 흥미롭고 재미있는 방향으로 바꾸려고 한다.
Q. 학교 문화예술교육 예술강사로서 관련 지원사업 외에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
지난 2016년에는 단체를 만들어서 꿈다락 토요문화학교를 운영했고, 올해는 사회봉사 활동을 더 하고 싶다는 생각에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진행하는 인생나눔 교실에 멘토로 참여하고 있다. 지역아동센터와 중학교 자유학기제 대상 아이들에게 영화 클립도 보여주고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끌어내면서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선생님도 하고 있는 것들이 쉽게 이루어진 것은 없단다.”라고 이야기 해주며 만나는 아이들에게 작은 씨앗이 되어 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지금 이 단계까지 왔을 때 얼마만큼 노력을 했는지, 슬펐거나 괴로웠던 점을 말해 주기도 한다.
사회 예술강사 수업을 할 때는 보육원 아이들과 만나게 되는데, 그 아이들이 보여주는 행동이 나 스스로를 베풀게 만들어 준다. 처음 강진 지역에 장애인을 대상으로 수업을 진행하게 되었는데, 과정은 힘들었지만 나를 반겨주는 아이들을 보면 보람을 느꼈다.
또한, 지역의 작은 영화관에서 특강형식으로 학생들에게 영화 리터러시(Literacy) 수업을 하는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해 왔다. 작은 영화관에서 활동한 지는 벌써 5년이 되었다. 그 지역에서는 나를 알아보는 유치원생도 생겼다.
Q. 사회 기반의 커뮤니티에서 기여할 수 있는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이유나 동기는 무엇인가?
문화예술교육을 하면서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운다. 사회 예술강사로 수업할 때는 상대방을 기쁘게 할 수 있고, 스스로도 기쁨을 얻게 되면서 더 멋진 사람이 된 느낌을 받게 된다. 특히, 할 수 있는 일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고 계속해서 새로운 영역에 도전할 때 행복하다. 지식과 기술의 습득만큼이나 다른 사람들과의 정서적인 교류와 유대관계가 형성되는 것이 큰 기쁨을 주고 있다. 커뮤니티의 일원으로 기여하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도 크다.
예술강사로서 경력을 쌓아가고 있는 과정이지만, 여전히 머릿속에 뭔가를 채워 넣고 싶은 열망이 강하다. 3년 전부터는 아르떼 아카데미 연수에 참여하는 등 예술적 역량을 높일 목적으로 미술, 시각예술 분야 관련 강의에 참여한 뒤 수업에 접목시키고 있다. 미래를 위해 내가 준비해야 할 일, 나서서 해야 할 일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다.
Q. 문화예술 중에서 영화라는 장르가 주는 유리한 면이 있나?
영화라는 매개체는 공감각을 활용하여 뚜렷한 주제의식에 대해 전달하기 때문에 설득력이 크다는 장점이 있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의 친구 관계, 가정에서의 가족 간의 소통 그리고 꿈에 대한 주제에 영화를 통해 접근하면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추구하는 영화 수업은 문제가 있는 지점을 학생들과 함께 찾아서 접근해 보고 그 문제점을 소재로 단편영화를 만드는 작업이다.
예를 들어, ‘집단 따돌림’이라는 주제가 정해지면 우선 유사한 영화를 찾아 학생들에게 보여준다. 그리고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 영화 주제에 대해 토론하는 시간을 갖는다. 토론 시간 동안에는 누구나 자유롭게 움직이고 말할 권리가 있다. 이런 자유로운 분위기는 학생들이 자신만의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구성하고 제작하는 경험을 하게 한다.
Q. 예비 문화예술교육자가 갖춰야 할 태도나 소양이 있다면?
새로 시작한 예술강사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단순하게 리터러시(Literacy) 교육만 하는 경우가 있다. 일단 스스로 문화예술교육이 무엇인지, 왜 필요한 지에 대해 알아야 한다. 학생들에게 영화, 사진 등 단순한 기술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변화가 일어나도록 이끌어줘야 한다. 학교에서 집단 따돌림을 당하는 학생이 있을 경우, 그 학생에게 작은 역할을 하나라도 부여해 참여 동기를 일으키고 함께 어울리도록 해줘야 한다. 사실 아직도 학생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 지 고민이 되고 몇몇 학생들에게는 안타까움을 느끼기도 한다. 이럴 때마다 적절한 대응방법을 고민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학교에서 학생들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 같이 고민을 하고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Q. 문해복 예술강사에게 문화예술교육이란 무엇인가?
영화 예술강사는 학생들에게 문화예술이라는 씨앗을 뿌려주는 역할만 할 뿐, 그 씨앗은 학생들이 키워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씨앗은 같이 뿌리지만, 키워 나가는 것은 개개인의 몫이다. 개인적으로는 어렸을 때부터 희망해오던 꿈이 있었지만 결국은 영화를 택했다. 영화가 나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 주었다. 영화를 통한 문화예술교육은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이다.

김남희_영화 예술강사
김남희_영화 예술강사
지난 2009년부터 영화분야 예술강사로서 문화예술교육에 참여해왔다. 이후 부처 간 문화예술교육지원사업, 인생나눔교실, 전라북도 주민시네마스쿨 등으로 활동 분야를 넓혀가며 더 많은 지역주민과 문화예술의 즐거움을 나누고자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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