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년 예술 수업』
    (고영직·안태호, 서해문집, 2017)
  • 『노인으로 산다는 것』
    (조엘 드 로스네 외, 계단, 2014)
2월 초 후배와 함께 『노년 예술 수업』이라는 책을 펴냈다. 수년 전부터 노년의 문화 내지는 노인으로 산다는 것에 관한 문화 다양성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책을 펴내게 된 것이다. 『노년 예술 수업』을 구상하게 된 가장 큰 문제의식은 우리나라 노년 문화예술교육 현장에서는 노인 한 사람 한 사람의 발자취[履歷]를 존중하며 멋진 노년의 양식을 만들어가는 프로젝트가 너무나 적다는 것이었다. 노년 문화예술교육은 프로그램 공급자의 관점에서 온갖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려는 행태를 관행처럼 답습한다는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노년 문화예술교육의 경우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다른 어느 분야보다 특히 더 심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우리나라 노년 문화예술교육 현장에서 의미 생산보다는 기능주의 교육이 유독 기승을 부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책을 쓰게 된 문제의식이 교사의 가르침이 아니라 참여자들의 배움이라는 관점에서 노년 문화예술교육의 틀을 새로 짜야 한다고 주장하는 데에는 그런 이유가 있다. 이러한 취지에서 나이 차별을 의미하는 에이지즘(ageism, 연령주의)에 저항하며 노인들이 자기 서사(敍事)를 편집할 수 있는 권리를 행사하고 새로운 자아상을 연출하는 노년 문화예술교육 현장들을 방문했다. 그렇게 찾아간 노년 문화예술교육의 현장이 누나쓰(만화), 칠곡 늘배움학교(문학), 안은미컴퍼니의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춤), 북북(Book-Book)봉사단(동화구연), 왕언니클럽(노래), 뭐라도학교(자기 기획)이다. 이 가운데 수원시 평생학습관에서 활동하는 시니어들의 베이스캠프인 뭐라도학교의 경우처럼 노년 스스로 조직을 만들고, 스스로 일을 기획하고, 스스로 뭐라도 실행하는 현장들이 더 많아져야 하고, 노년 문화예술교육 또한 그런 방식으로 프레임을 전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근 출범한 서울시50플러스재단(바로가기)에서 운영하는 서울시50+캠퍼스(서부/중부)는 그런 유형이라고 확언할 수 있다.
생물학적 노인, 정신적 노인, 사회적 노인
결국, 노년 당사자들이 무엇을 원하는가에 대한 욕구 파악이 더 중요하다. 이 점에서 과학자, 인권운동가, 사회운동가 등 70~80대 원로 4명이 대담하며 장수의 윤리학에 대해 말하는 『노인으로 산다는 것』은 좋은 참조자료가 된다. 프랑스 언론인 도미니크 시모네가 원로 과학자 조엘 드 로스네, 인권운동가 장 루이 세르방 슈레베르, 사회운동가 프랑수아 드 클로제와 함께 생물학적 노인, 정신적 노인, 사회적 노인을 주제로 대담을 나눈 것이다. “새로운 노년은 발견되어야 할 아메리카이고, 60세 너머에 감춰져 있는 미지의 대륙이다”라는 인터뷰어 도미니크 시모네의 말은 책의 의도와 취지를 그대로 설명해준다.
책에서 가장 핵심적인 용어는 과학자 조엘 드 로스네가 제시한 ‘바이오노미(bionomy)’라는 개념이다. 집의 경영을 의미하는 ‘이코노미’라는 표현에 빗대어 젊게 늙기 위한 삶의 경영을 강조한다는 의미에서 ‘바이오노미’라는 새로운 용어를 제시한 것이다. 쉽게 말해 몸을 잘 다스리는 법을 배우자는 것이다. 이러한 바이오노미 관점에서 책의 저자들은 압축된 죽음, 노화 지연, 노화 중지처럼 노화(老化)에 맞서는 안티에이징의 차원이 아니라, 제2중간기(60~75세)인 노년을 맞이하는 개인의 몸과 정신의 변화와 더불어 사회정책의 변화가 동시에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핵심 요지는 항상 호기심을 갖고 행동하며 관심을 갖고 역동적으로 사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세상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도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인권운동가인 장 루이 세르방 슈레베르가 “노년은 철학적이고 영적인 물음을 던지는 시기”라고 말한 대목은 책의 기저에 깔린 생각이다.
문제가 아닌 존재로서의 노인
과학자인 로스네가 노인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일종의 해피메이커 약품 개발에 대해 비교적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의료 불평등 문제를 제기할 수 있고, 노인이 노인의 특성을 점점 잃어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민주화된 장수와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인권운동가인 슈레베르는 인생의 쇠퇴기에는 ‘행동’이야말로 절망하지 않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역설한다. “새로운 전투지는 바로 나의 몸이자 나의 태도”라면서, 스스로에게 부여할 작은 도전을 찾아 행동하라는 것이다. 노년 문화예술교육이 의미 있는 것은 바로 이 지점과 관련 있을 법하다. 이른바 온건한 이기주의를 권장하는 슈레베르의 주장은 노년의 문화 관점에서 참조해야 할 점이 매우 크다. 내 목소리를 들어서, 나를 만나서, 나와 대화를 나눠서 상대방이 즐거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나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는 그의 주장은 외로움이라는 짐을 누구나 짊어진 노년을 위한 핵심적 장수의 윤리학이라 할 만하다. 특히 다른 사람을 ‘웃게 만드는’ 능력의 필요성을 강조한 대목이 나는 퍽 인상적이었다. 사회운동가인 프랑수아 드 클로제는 조기퇴직이 청년실업을 막아주지 못한다고 전제한 뒤, 프랑스의 이민정책과 사회복지정책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한다. 더 중요한 것은 노년을 경멸하는 사회문화를 바꾸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노인으로 산다는 것』은 노년 스스로 느끼는 문제를 직접 당사자들이 육성으로 말한다는 점에서 참조할 만한 책이다. 문제로서의 노인이 아니라 존재로서의 노인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나는 특히 책에서 슈레베르가 “오래 사는 것과 그럴 준비를 하는 것은 인간의 새로운 권리가 되어야 합니다”라고 한 말은 나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는 중요한 철학적 화두라고 생각한다. 4명의 저자들이 노인 혹은 노년에 관한 상식의 회복을 촉구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그런 상식의 회복을 위해 노년 문화예술교육은 프레임 전환과 다양한 교육실천이 요청된다. 노년 문화예술교육은 무엇보다 목적이 되어가는 과정의 상태가 더 중요하다. 그리고 그런 목적이 실행되는 과정 자체가 완전한 가치를 지니는 노년 예술 수업 현장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 노년 문화예술교육 정책사업 현장에서 더 중요한 것은 양적 성장이 아니라 질적 제고이기 때문이다. 바로 지금이 그렇다.
이미지 제공 _ 서해문집, 계단
고영직
고영직
문학평론가. 문화예술교육 웹진 [지지봄봄] 편집위원을 역임했으며, 경희대 실천교육센터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 『자치와 상상력』(공저)이라는 책을 펴냈다.
gohyj@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