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도 널리 알려진 ‘엘 시스테마’는 마약과 실업, 총기사고와 범죄에 빠질 수밖에 없는 베네수엘라의 빈민가 청소년들이 어떻게 변화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감동적인 오케스트라 이야기다. 1975년에 11명의 빈민가 청소년들과 함께 시작한 기적의 음악교육 프로그램은 이제 30여만 명이 참가하여 교육현장과 사회를 바꾸는 요원의 불길처럼 확산되고 있다. 가난하고 버림받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러한 예술교육 운동은 실제로 많은 개발도상국에서 절실히 필요하다. 피폐한 정신을 깨우고 삶을 변화시키며 공동체를 만들고 사회를 바꾸는 최고의 교육은 다양한 삶의 현장에서 다양하게 실천되고 있는 문화예술교육이다. 지금도 지구촌 수억 명의 가난한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못하고 있으며, 설령 학교가 있어도 교육환경은 극도로 열악하며 문화예술 활동은 전혀 접해볼 기회조차 없다. 그러니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교육의 기회도 문화를 향유할 기본권도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나는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지난 5년 동안 매년 농부의 마음으로 진행해 온 베트남 북부 산악지대인 사파현과 박하현에서의 문화예술교육 현장을 다녀왔다. 베트남의 오지 학교에 한국의 문화예술교육 강사들과 전문가들이 매년 파견되어 사진, 미술, 무용, 연극 활동 등을 통해 학교를 바꾸고 있었다. 아이들의 생각과 태도가 매우 적극적이고 희망적으로 바뀌고 있는 것을 확인하였으며, 아이들의 가족과 마을과 학교도 서서히 바뀌고 있는 것을 보면서 정말 놀랐다. 아이들은 자신의 마을과 주변 사람들의 다양한 삶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표현력과 의사소통 능력이 눈에 띄게 좋아졌으며 소수민족으로서의 정체성과 자긍심도 생겼다. 학교와 교육청도 문화예술교육의 성과와 중요성을 깨닫게 되어, 열린 교육과 체험교육, 창의 교육을 더욱 확산할 수 있게 되었다.
베트남 라오까이성 라오까이 사범대 매개자 교육
[사진제공] 문화예술교육 ODA 페이스북
가난한 나라에서 아무런 희망이 없는 사람들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공적개발원조(ODA, 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의 최고 이상은 모두 함께 잘사는 세상, 지속가능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2015년 전 세계 170여 개국이 유엔에서 합의하여 선포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를 이행하고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국제개발원조의 가장 중요한 목표이고 과제다. 그런데 SDG는 지금과 같이 양극화되고 불평등한 세상, 화석연료와 기후변화 문제가 심각한 세상, 인간의 경제, 사회, 문화적 권리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는 세상을 바꾸지 않으면 결코 달성할 수 없다. 그리고 우리가 원하는 또 다른 세상은 인간의 도덕적 각성과 공동체 정신과 다양하고 아름다운 창조적 문화를 통해서만 만들어질 수 있다.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결코 아닌 것이다. 세상을 바꾸는 실험은 교육을 통해서 시작되어야 하고, 특히 문화예술 체험을 통한 다양하고 창의적인 교육실험을 통해서 실천되어야 한다. 이것이 공적개발원조에도 문화예술교육이 접목되어야 하는 가장 확실한 이유이다.
인도네시아 발리 사람들은 모두가 예술가다. 그들은 제사와 의례, 마을 축제와 공동체, 종교 활동을 통해 모두가 장인이 되고 춤꾼이 되며, 공연자로 거듭 태어난다. 이들의 꿈과 예술, 기예는 세대를 통해 전승되고 발리 문화를 통해 학습된다. 그래서 발리는 자연환경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신이 만든 최고의 걸작이라고 불리는 발리의 혼성 문화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보전하는 것이다. 이처럼 문화예술교육은 인간의 영혼을 깨우고 공동체를 살리며 도시를 재생시킨다. 문화예술교육은 공적개발원조에도 긍정적 변화를 일으킨다. 시혜주의나 일방주의, 물질주의와 권위주의 같은 ‘나쁜 원조’ 관행을 바꾸고 파트너를 존중하며 호혜적인 관계를 증진시키고 대화와 소통을 통해 지속가능한 세상을 함께 꿈꿀 수 있도록 한다.
공적개발원조가 세상을 바꾸고 지속가능한 발전에 기여하고자 하는 것이라면 기존의 잘못된 관행을 과감히 바꿔야 한다. 건물 지어주고 일방적으로 가르치려 하고 한국 상품을 팔고자 하는 방식이 아니라, 쌍방향의 진정한 문화 간 대화를 통해 사람을 살리고 공동체를 일구며 인권을 향상시키는 방식으로 대전환되어야 한다. 이러한 국제개발원조의 대전환에 최적의 수단 중 하나가 바로 문화예술교육이다. 세계시민교육도 지속가능발전 교육도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증진될 수 있으며, ‘또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는 인류의 꿈은 문화와 예술을 통해 하나씩 구체적으로 실현될 수 있다. 우리의 진정한 국제 파트너들과 문화예술을 통한 문화 간 대화를 확산해가기 위한 국가전략을 만들 때가 되었다.
이태주
이태주
세계 100여 국을 다니며 다양한 현지문화를 비교 연구하고 있는 문화인류학자. 한국해외봉사단 프로그램의 기획자이며 공적개발원조 전문기관인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창단 멤버이다. ODA Watch와 ReDI를 설립하여 국제개발 시민사회운동에도 열정적으로 기여하고 있는 실천가이다. 현재 한성대학교 문화인류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tjlee@hansu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