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음악가들에게 교육은 자신의 활동에서 꽤 비중을 차지해온 익숙하고도 당연한 활동이다. 음악가들은 가르침을 받아온 경험과 스스로 터득하고 학습한 방식을 교육의 중심에 둔다. 그 과정에서 학생들이 ‘음악적 성장’을 효과적으로 이루고 그중에 음악가들도 배출하면서 교육에 일가견 있는 음악가로 교육세계를 구축하게 된다. 그렇게 형성된 음악교육에 대한 음악가들의 이해의 틀과 신념에 새로운 질문이 던져지기 시작한 건 10여 년 새의 일이다. 음악교육의 생태계가 개인을 넘어 공동체와 사회적 개발로 확장되기 시작하면서이다. 개인 차원에서 ‘음악적 성장’에 분명한 초점을 뒀던 교육의 기능도 필요하지만, 이제는 더욱 광범위한 음악적 경험과 영향을 위한 활동의 가능성과 목적성, 그리고 방법이 개발되어야 한다는 필요성이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교육하는 음악가’의 철학과 방법론
내게 음악가들의 교육활동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열어준 건 ‘엘 시스테마’에서 출발한 오케스트라 기반 아동청소년 음악교육이었다. 2010년 전후로 국내에 도입된 엘 시스테마형 활동은 기존의 음악교육을 ‘컨서버토리형 교육’으로 일축하며 음악가들이 그간 의심 없이 수용해 온 음악교육 활동을 성찰하며 새로운 접근과 목적을 고민하게 하였다. ‘함께 음악 하기’를 통해 ‘아동의 복합적인 성장’을 목표하되, 음악의 본질이 그 영향을 발해야 하기에 미적 수월성을 포기하지 않아야 하며, 즐거워야 한다니, 그간 고립되어 인내하는 게 미덕이었던 음악교육과는 필시 다른 방법론이 필요했다. 철학만이 전해질 뿐 구체화된 교수법이라고는 존재하지 않았던 상황에서 음악가들을 위해 마련했던 에릭 부스(Eric Booth)와의 워크숍은 교수법을 좇던 우리의 시각을 ‘교육하는 음악가’에 더욱 집중하도록 돌려놓는 계기가 되었다. 음악을 통한 미적 체험이 학습자의 마음에, 학습자의 일상에 닿게 하고 지속하게 하는 그 방법과 에너지는 결국 음악가로부터 나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새로운 교육 방법론을 좇던 시야를 교육하는 음악가의 ‘가능하게 만드는’ 면모로 확장시켰고, 2주간의 연수에서 롤모델이 되는 교육하는 음악가의 개방적이고 수렴적인 자세, 아이들의 가능성에 대한 믿음, 돌봄의 자세, 소통의 힘, 그리고 끊임없이 기회와 가능성을 찾아 실현시키는 기업가정신에서 교육방법론이나 전문가적 역량 이상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의 새로운 음악적 교육은 우리 음악가들 안에서의 근본적 질문과 동기, 새로운 시도, 서로 간의 질의와 실행들로 구성해야함을 새로이 인식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엘 시스테마형 오케스트라의 새로운 교육적 접근과 새로운 유형의 교육하는 음악가들에 대한 재인식의 과정을 책으로 정리한 적이 있는데, 예술교육에 대한 인식을 확장한다는 데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를 에릭 부스의 『음악을 가르치는 예술가(The Music Teaching Artist’s Bible)』에서 얻었었다. 최근 이 책이 번역되어 국내에 소개되었다니 더 많은 음악가들의 새로운 음악교육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기대된다. 예술교육을 ‘예술이라는 동사를 즉석에서 보여주는 일’이라니. 그 충격적 공감은 오래갔다. 완성도 높은 예술적 기량의 공연이나 작품에만 주로 몰두해온 그간의 예술교육에 대한 시각을 간단히 전환시켜준다. 1980년대부터 링컨센터 인스티튜트(Lincoln Center Institute: LCI)에 몸담으며 ‘교육하는 예술가(teaching artist)’라는 개념을 실천을 통해 함께 구성했다. 그는 새로운 예술교육이 추구해야 하는 ‘미적(aesthetic) 체험’을 단지 ‘무감각(anesthetic)’의 반대어라는 존 듀이(John Dewey)의 설명을 빌어 교육하는 음악가들이 추구해야 하는 교육적 목적을 ‘음악적 성장’에서 인간을 무감각하게 만드는 현대 사회에서 미와 의미, 기쁨과 용기와 같은 것에 ‘반응할 수 있는 능력’의 학습으로 폭을 넓힌다. 음악가들에게 음악에서 얻을 수 있는 예술적 경험의 본질적 풍요로움이 사람들의 삶에서 전환될 수 있는 가능성을 생각해보게 한다.
“우린 그런 교육을 못 받았잖아”라고 푸념하는 음악가들의 무기력을 해소하며 시작점을 제공할 수 있는 지점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왜 자신이 평생 음악을 하기로 마음먹었는지, 음악과 교감한 경험들이 자신의 삶에서 언제, 어떻게, 무엇으로 다가왔는지를 성찰하는 데에서 말이다. 그리고 시야를 교육 대상자에게 넓히고 관심을 갖는 것. 여기서 교육하는 음악가에게 중요한 공감과 소통역량이 비롯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사람들이 음악에 제공하는 기회가 음악과 멀어지는 이탈점이 아닌 접속의 지점이 되도록 하는 노력은 바로 교육하는 음악가의 가장 중요한 미션이 된다. 에릭 부스는 이를 ‘진입 접점’으로 부른다. 그 접점이 교육 대상에게 편안하게, 또는 의미 있는 접촉이 될 수 있도록 음악적 접점을 풀어주고 안내해주고 넓혀주는 방법을 모색하는 건 음악가들의 끝나지 않을 연구 과제가 될 듯하다.
  • 『음악을 가르치는 예술가』
    (에릭 부스, 열린책들, 2017)
예술의 ‘동사적 순간’을 이끄는 과정과 모색
우리는 이제 음악교육이 음악을 통해 사람들이 자신만의 자유로운 상상과 탐험, 그리고 접속을 가능하게 하길 바란다. 강사가 내린 지침을 잘 지켜 연습하여 레슨에서 확인받는 방법에 익숙한 음악가들에게 사람들로 하여금 음악에서 자신만의 발견을 이룰 수 있는 여지와 가이드를 주는 방식으로의 전환은 정말 중요하지만 아직은 어색한 미지의 과정이다. 에릭 부스는 이 익숙하지 않은 음악(예술)과의 만남에 개개인의 어색함과 불안함의 경계 단계를 거쳐 내밀하게 연결성을 만들어 가는 과정을 “경계 지대”로 칭하며 천천히 통과해갈 수 있도록 기다리거나 도와주는 음악가의 역할을 강조한다. 현대음악을 소재로 “경계 지대”에 함께 머무는 교육적 과정을 기획했던 그의 구체적인 사례는 음악가들의 개방적인 사고 습관과 열의 어린 호기심을 자극할 것이다.
음악 활동을 영위해나간다는 것은 음악에 대한 끝없는 추구와 탐구를 의미함과 동시에 영감과 즐거움을 주고받으며 음악적 공감을 확대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음악가로서 자신이 일궈가는 음악적 과정의 의미와 가치가 사회에서 좀 더 파장을 만드는 데에 관심이 넓어지고, 자신이 매혹되고 진정한 열의를 갖고 있음을 타인들과 공유해야 할 책임을 느끼며 그 방법을 모색 중에 있다면 에릭 부스의 책은 분명 당신을 위한 책이다. 또 무대의 진가를 최대로 끌어올리는 데에 지대한 관심이 있는 음악가 역시 이 책을 지척에 두고 종종 찾을 것을 권한다. 분명 더 나은 음악가의 길로 인도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나는 음악가들이 이러한 교육적 활동을 통해 음악적 교감의 장을 넓히는 노력들이 결국 음악가들을 음악가일 수 있도록 하는게 아닐까 한다. 결국, 연주 또한 예술의 동사적 순간이 아닌가.
이태주
서지혜
예술과 예술가들에게 내재된 가치가 사회의 다양한 접점과 경계선상에서 발현될 수 있도록 하는 탐험적 시도들과 협업의 실행들에 관심을 두고 연구 및 컨설팅 활동을 하고 있다. 연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 뉴욕대학교 공연예술경영 석사, 중앙대학교 문화예술경영 박사과정을 수료했으며,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 인컬쳐컨설팅 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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