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필요한 내공은 어디에서 오는가

『성찰하는 티칭아티스트』에서 찾는 성찰과 실천의 방법

이 글의 제목에서 언급한 ‘우리’는 넓게는 이 글을 만나고 있는 독자이고, 좀 더 구체적으로는 나와 나의 동료인 예술교육자들을 가리킨다. ‘예술강사’ 혹은 ‘티칭아티스트’라 불리며, 예술가의 정신과 교육자의 철학을 바탕으로 예술로 ‘일상을 새롭게 발견’하고 ‘삶을 성찰’하도록 안내하는 사람들. 하지만 예술교육이 삶을 바꿀 수 있다는 사명감과 믿음은 만만찮은 현실 속에서 자주 숨바꼭질을 하고, 잘 해내고 싶은 현장교육은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즐거움과 소통의 기쁨으로 상승했다가 돌연 혼돈으로 내리꽂히며 자존감이 바닥을 친다. 롤러코스터가 아래로 향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버텨내기가 참으로 버겁다.
내가 초보연극교사에서 벗어나 어느 정도는 능숙해졌다고 자부했던 때의 일이다. 매주 토요일마다 만난 초등 1, 2학년 아이들은 감당하기 힘들만큼 에너지가 높았다. 목이 터져라 소리치고, 장난치는 아이들을 혼내면서 정신없이 수업을 마치고 나면 원망과 자괴감이 날 괴롭혔다. 간절히 바라던 학기말이 다가왔고 마지막 시간에 아이들에게 나누어 줄 수업 사진을 살피다가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사진 속 아이들은 세상을 다 가진 듯 활짝 웃고 있었다. 반면 내 표정은 참혹했다. 사진마다 행복한 아이들과 불행한 교사가 함께 포착되어 있었다. 이럴 수가! 내가 수업에서 중요하다고 여긴 것은 과연 무엇인가? 어떤 수업이 좋은 예술교육일까? 예술교육자는 무엇을 하는 사람일까? 나는 왜 예술교육을 하는가? 본질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답을 찾으려 애썼던 그 시간은 힘들고 결코 녹록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나를 나아가게 해주고 성장시켰다. 그리고 한편으로 스스로를 돌아보고 자신의 작업과 마주하는 그 직면의 과정을 건강하게 겪어내는 방법을 고민하게 되었다.
  • 『성찰하는 티칭아티스트- 연극예술교육에서의 집단 지혜』
    (캐스린 도슨·대니얼 A. 켈린, 한울, 2017)
최근 발간된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문화예술교육 총서 『성찰하는 티칭아티스트- 연극예술교육에서의 집단 지혜』는 우리를 “효과적인 성찰”로 이끄는 가이드북이다. 서문에서 저자들은 ‘성찰적 실행’에 초점을 두고, ‘성찰은 어떻게 실천과 목적을 향상시킬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책 전반에 걸쳐 탐구하고 있음을 밝힌다. 그리고 이 핵심질문을 바탕으로 의도성(intentionality), 질(Quality), 예술적 관점(Artistic perspective), 프락시스(praxis), 평가(assessment)를 성찰의 틀거리로 이용하며, 이 다섯 가지 핵심개념에 대한 현장의 사례를 각각 다섯 편씩 제시하고 있다. 총 25개의 사례에서 연극예술교육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확인할 수 있는데, 선정된 필자들 역시 자신의 작업을 ‘왜’, ‘무엇’, ‘어떻게’의 관점으로 깊이 들여다보는 성찰을 통해 작업의 이해와 의미를 확장시키고 있다. 그리고 책의 후반부에는 ‘참여적 실행 연구’를 적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단계와 연습, 예시를 제공하여 독자들이 각자의 현장에 대한 연구를 시도하도록 안내한다.
‘성찰적 실행’을 다루는 책의 전반부에서 ‘성찰(Reflection)’과 ‘반영적 성찰(Reflexivity)’을 구분하여 검토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성찰’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개념인 ‘어떤 것에 대한 신중한 숙고’로 선택, 행동, 노력에 초점을 두며 경험을 이해하게 해준다면, ‘반영적 성찰’은 개인에게 초점을 두며 자신의 신념과 습관에까지 의문을 던지는 것인데 성찰보다 더욱 강도 높은 엄밀함은 물론, 신념을 수정하고 보강하거나 심지어 뒤엎을 수도 있는 자발적 의지까지 필요로 한다. 반영적 성찰의 실행가가 된다는 것은 쉽지 않으며, 그것은 티칭아티스트가 패배를 받아들이는 것, 성장과 도움의 필요를 깨닫는 것, 그리고 자신이 지닌 이해를 뒤흔들 수도 있는 새로운 아이디어에 귀 기울이고 수용하는 것을 자발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언급한다.
저자들은 성찰의 단계를 ‘(1) 참여자들에게 무엇이 일어났는지 ‘묘사’하기 (2) 관찰에 기반을 두어 경험을 ‘분석하고 해석’하기 (3) 그것을 참여자들이 이해한 보다 거시적인 교육적 목표와 연계하거나 자신들의 경험에 대한 개인적 이해로 ‘연계’하기’로 나누어 짚으며 각각에 해당되는 질문을 제시한다. 이렇게 무엇이 왜 일어났는지 파악하면서 성찰은 우리의 계획과 행동의 결과 사이에 더 큰 연결지점을 만드는 능력을 향상시키는데 이를 통해 우리가 실행 속에서 ‘반영적 성찰’을 적용할 수 있는 역량을 발전시킬 수 있다고 언급한다. 성찰과 반영적 성찰을 통해 우리가 실천 속에서 ‘지금 제대로 하고 있는지, 옳은 일을 하고 있는지, 무엇이 옳은지를 어떻게 결정하는지’ 삼중으로 되짚으며 성찰적 실행을 정기적으로 또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고, 이렇게 배운 것을 새로운 상황에 적용하거나 전이하는 능력을 발달’시키는 데 저자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
책을 읽는 사람들의 관심에 따라 저자들이 제시하는 성찰에 대한 검토와 분석이 다르게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은데, 25가지 현장 사례를 만나는 일은 그 자체만으로도 흥미롭다. 유아를 위한 시민연극수업에서부터 어린이/청소년 관객을 위한 양질의 연극이란 어떤 것인지 그 ‘질’에 대한 탐색, 과학 개념을 가르치기 위한 ‘드라마적 메타포’ 개발하기, 위탁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무대에 올리기, 개인적/정치적 거리를 가로질러 가르치기 등 우리에게 조금은 낯선 작업의 형태를 만나고, 저자들이 제시하는 성찰의 도구를 이용하여 분석하는 것을 들여다보는 것이 가치 있게 느껴진다.
책에서 언급한 ‘당신이 가르치는 것의 80%는 당신 자신이다.’라는 에릭 부스(Eric Booth)의 말은 단순히 프로그램을 잘 만들어서 참여자들을 만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님을 시사하며 강력한 울림을 준다. 나 자신이 살아있는 텍스트로서 참여자들과 만나는 일, 그것은 단단한 내공을 필요로 한다. 그 일을 위해 우리는 책의 저자인 두 티칭아티스트가 제공하는 구조화된 성찰 방법을 참고로 하여 각자에게 맞는 성찰의 프레임을 찾고 작업 속에서 실천해야 할 것이다.
천정명
천정명
사다리연극놀이아카데미 교감. 어린이들과 연극/연극놀이로 만나는 것을 좋아하며, 그 경험을 서울교대 대학원,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등에서 학생들과 공유하고 있다.
ch25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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