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교육은 순간을 영원하게 만드는 퍼포먼스

남인우 연출가, 극단 북새통 예술감독

극단 북새통의 예술감독 남인우 연출은 질문이 많은 사람이다. 인터뷰 내내 가장 많이 나온 단어가 ‘질문’이었고, 그 질문의 대부분은 스스로를 향해있었다. 바로 이 질문의 힘이 그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가장 큰 동력이 아닌가 생각 들 무렵, 그는 필자에게도 질문을 던졌다. “예술교육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오늘 저는 인터뷰어입니다, 라는 말로 넘어가긴 했지만, 평소 그의 작업 방식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대목이었다. 그는 어린이청소년 연극을 이끌고 있는 연출가이자, 전통음악을 현대적 연극 언어로 수용하는 성공적인 사례를 선보이며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연출가 중 한 사람이다. 동시에 그는 국립극단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 창립 당시 책임연구원을 역임했고, 서울문화재단, 국립극장 창극 아카데미 등을 통해 예술교육 프로그램 개발에 참여해온 예술교육가이다. 창극, 청소년극, 판소리 등 여러 분야에 걸쳐 활발한 창작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그가 문화예술교육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극단 북새통은 10년 넘게 어린이청소년연극 작품 활동을 해오고 있다.
2002년 활동을 시작했을 무렵에는 극단이라기보다는 연극놀이 단체의 성격이 강했다. 당시 신도시 재개발이 진행되고 있던 광명시의 도시빈민층 어린이들과 연극놀이를 통해 만나게 된 것이 극단의 출발점이 되었다. 어린이청소년연극 전공자들이 모여 예술가가 예술교육의 테두리 안에서 단체를 운영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예술과 교육을 병행할 수 있는 단체가 되어보고자 하였다. 어린이청소년연극은 특정 관객을 대상으로 한 축소의 개념이 아니라 그동안 연극판에서 다소 소외되어왔던 비주류 영역에 대한 확대의 개념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극단 북새통 역시 사회의 비주류로서 어린이청소년들의 삶을 바라보자는 태도로 작품을 만들어 왔다.
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했다. 예술교육의 길을 선택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우연한 기회에 서울 동부지청 관할 보호관찰소 청소년들과 함께 캠프를 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의 모습에서 부모님과 불화했던 청소년 시절 나와 내 친구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오토바이를 왜 훔쳤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럼 우리 그걸 연극으로 한번 만들어볼까?” 제안하게 되었다. 2박 3일 짧은 기간 동안 그 친구들의 겉으로 드러난 모습 뒤에 숨겨져 있던 이면을 보면서 문득 ‘인간은 뭐지? 인간이 가진 존엄은 뭐지?’ 이런 질문을 가지게 되었다. 정작 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하면서도 그때까지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던 질문이 내 안에서 생겨났고 막연하게나마 예술과 인간에 대한 관계를 떠올려 보았다. 그 고민의 연장으로 어린이청소년연극 전공 대학원에 진학했다. 입학 후 첫 한 학기 내내 일종의 놀이 형식의 프로그램들을 계속하면서 왜 이런 걸 해야 하는지 의아해했는데 어느 날 문득 나 자신이 달라졌다는 것을, 내 안에 뭔가 변해있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 늘 분노와 패배의식 사이에서 어쩔 줄 몰라 하던 내 모습이 어느새 달라져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예술이 가진 미적 체험을 경험했고, 인문학적 질문들을 품게 되었다. 그리고 예술 그 자체가 인간을 성장시키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몸소 깨달았다. 그 경험 속에서 셰익스피어나 체홉이 아닌 보다 근본적인 연극성에 대해 새롭게 눈뜨게 되었고 연극의 교육적 가치, 예술의 힘을 어떻게 나눌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되었다.
연극적 방법들이 어떤 교육적 효과를 이끌어낸다고 생각하는가.
우리가 예술교육에 대해 이야기할 때 먼저 ‘교육’에 대한 정의가 필요하다. 각자가 생각하는 교육의 의미는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예술교육이라고 하면 교과연계 프로그램을 떠올린다. 이는 교육을 근대식 교육의 틀 안에서 학교 교육으로 한정 짓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육을 근대식 교육 안에서의 지식교육으로 제한하지 않고, 배우고, 깨닫고, 성장하는 과정으로 본다면 달라진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예술 행위 자체가 이미 교육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학교 교육의 틀 속에서 예술교육은 어떤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는지.
최근 알파고의 등장을 비롯해 4차 산업혁명, 지능정보사회라는 말이 눈앞의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인공지능 시대에 과거의 학교 교육의 기능은 의미가 없어졌다. 이런 시대에 근대 교육 시스템으로는 앞으로 살아갈 친구들에게 미래를 꿈꾸게 해줄 수 없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깨닫기 시작했다. 지식교육은 스스로 한계를 드러내고 있으며 앞으로 학교 교육은 무엇을 위한 것인지 근본적인 성찰을 해야 한다. 교육은 미래지향적이어야 하는데 학교 교육은 여전히 과거에 묶여있다. 이제 인간다운 삶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어떤 학습을 해야 하는지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한다. 왜 교육이 예술과 만나야 하는가, 근대교육의 문제점들을 예술이 어떤 부분에서 보완해줄 수 있는가라는 지점들을 들여다본다면 예술교육이 가야 할 길도 더 확실해질 것이다. 단순히 수학과 과학을 잘하기 위한 교과연계 예술교육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예술이 가진 근본적인 힘이 무엇인지, 그 본질이 교육과 왜 만나야 하는지 알게 된다면 예술교육 과정도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에는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으로 통합예술교육에 대한 시도가 있다. 다음 달에 강사로 참여하는 아르떼 아카데미 <2017 창의적 예술교육 프로젝트 6 : 몸. 맘. 통 통!>에도 통합예술교육이 포함되어있다.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통합예술교육은 ‘장르 통합적 프로그램’에 가깝다. 장르마다의 개별 특성을 통합하는 구성으로서의 통합예술은 기능적 접근의 결과라고 생각된다. 제가 주목하는 건 예술 자체가 가진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미학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예술이 가진 근본적인 공통점들, 생성과 소멸, 리듬과 템포, 공간성과 시간성, 이런 것들을 일상 안에서 충분히 발견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실험해보고 실현해보는 것을 통합예술교육이라고 생각한다. 예컨대 우리가 일상 안에서 매일 하는 것, 앉고 서고 눕고 하는 동작을 리듬과 템포를 변형해서 움직이다 보면 일종의 현대무용이 된다거나, 숫자와 음표로 바꾸어보면 어느새 음악적 표현이 된다거나. 이렇게 예술의 기본적인 구성 요소들을 체험하고 나서 다각적인 방식으로 전환해보고 또 다른 표현들로 확장해 나가는 식이다.
여전히 창작과 교육은 분리된 영역에서 작동하고 있는 것 같다. 예컨대 교육현장에서 예술교육이 예술적 기능을 습득하는 것과 예술적 체험을 하는 것 사이에 혼란이 있지 않을까.
역시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탐구 안에 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예술은 기본적으로 이상과 기술의 합성어이다. 정신과 질문, 그것을 드러낼 수 있는 테크닉이 잘 조화되고 완벽해졌을 때 비로소 예술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예술교육 과정에서 교육 대상자를 만날 때 무엇을 바라보고 만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먼저 필요하다. 결국, 예술은 기술이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지만, 그렇다고 기술만으로 되는 것도 아니다. 기본적으로 반복적인 훈련을 해야 하지만 충분한 질문과 사고 없이는 더 나아갈 수 없다. 예술교육은 그 대상에 따라 다양해질 수밖에 없다. 어떤 친구들에게는 기술적인 것들이 좀 더 훈련될 수 있도록 도움을 줘야 하고, 어떤 친구들에게는 삶을 바라보고 질문하는 경험을 충분히 해보도록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
예술교육가 자신도 교육하는 동안 예술가의 창작 에너지를 스스로 일깨우지 않으면 단지 기능을 전수하는 역할에 그치게 될 수 있다. 한편, 반복적 학습을 통한 기술의 습득이라는 부분을 간과하는 경우도 있다. 즐겁고 재밌는 경험에서 그치게 되는 경우이다. 그런 경험은 단지 놀이에서 끝난다. 그 자체만으로는 예술교육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예술은 궁극적으로 나의 즐거움을 타인과 공유하는 기호를 만들어 내는 것이고 이를 위해 구조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 과정이 즐겁지만은 않을뿐더러 때로는 고통스럽다. 예술교육과정에서 그 부분을 놓치고 갈 때 아쉬운 생각이 든다.
예술교육가를 위한 강의도 하고 계시다. 그 과정에서 강조하는 부분이 있다면.
예술가가 예술교육가가 되고자 할 때 대부분은 ‘나의 예술적 체험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다’는 동기가 크기 때문에 이 경우에는 대상과 공유하는 방법을 습득하면 된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예술가’라는 것은 근대식 예술교육을 충실히 받은 예술가가 아니라 예술의 근본적인 힘을 경험했던 예술가를 의미한다. 그런 질문과 경험을 갖고 있는 예술가라면, 이미 예술교육가가 지녀야할 자질을 충분히 갖고 있다고 본다. 예술교육가를 양성하기 위한 프로그램에 참여한 예술가들을 만날 때는 교육적 스킬 보다 예술가로서 자기 발견을 다시 하는 것에 오히려 더 초점을 둔다. 예술가로서 당신은 지금 어디인가, 어떻게 창작하는가, 무슨 질문을 던지는가를 묻는다. 그 질문을 과정화해보고 어떻게 공유할 것인지 생각하게끔 한다.
반면, 예술교육을 위한 교사 연수를 진행하다보면 방법론을 알려주는 경우가 있다. 연수에 참여하는 교사들이 당장 학교로 돌아가 수업시간에 활용할 수 있는 것을 알려주기를 요구한다. 이럴 때는 설득하려 애쓴다. 좋은 교육은 커리큘럼이 만드는 게 아니다. 좋은 예술이 기술로만 만들어지지 않듯이. 좋은 예술가가 좋은 예술을 만들고, 훌륭한 교사가 훌륭한 교육을 하는 것이지 커리큘럼이 그렇게 만들지는 않는다. 지금 당장은 약간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연수를 통해 얻은 방법은 늘 소진되게 마련이다. 소진되지 않는 걸 채우는 것이 더 오래 길게 갈 수 있는 방법이다. 마치 예술창작 프로세스를 아무리 외우고 공부해봐야 훌륭한 예술가가 되지는 않는 것처럼.
하지만 이것은 단지 개개인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교육현장에서 그것을 요구하니까 그렇다. 그나마 최근 예술교육에 대한 태도가 조금씩 변하고 있는 것 같다. 더욱 많은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장이 바뀌려면 변화에 대한 의지가 있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하지 않을까. 근대식 학교 교육이 자기반성과 성찰을 통해 다른 방식의 요구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고, 또 그렇게 바뀔 수 있도록 예술가들도 요구해야 한다.
예술교육의 방향이 훈육을 위한 방법론보다는 참여자들 사이의 관계에 집중하고, 그 안에서 발견된 것들로부터 구조를 만드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의미인가.
그렇게 되기 위한 제도적 필요성을 절감했다. 그래서 최근에는 예술가가 주도하는 예술교육센터에 관심이 많다.
2013년에 해외 주요 문화예술교육 관련 기관을 탐방하고 책을 내기도 했다. 그때의 경험이 어떤 영향을 주었나.
핀란드, 영국, 벨기에, 스웨덴 등지의 예술교육센터들을 견학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하드웨어가 소프트웨어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를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성공적인 기관들은 대부분 관(官) 중심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활동가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각 센터마다 각기 다른 예술적 목표, 교육적 철학을 가지고 있으며, 공간마다 그 정신과 예술적 감수성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물론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지만 예술가가 주도하는 운영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민간 영역의 활동이 공적 자원을 토대로 꽃을 피우고 있는 모습이었다.
핀란드 아난딸로 아트센터(Annatalo Arts Center)의 경우, 당시 높은 청소년 자살률을 방지하기 위해 헬싱키 시에서 초등학생들에게 2시간씩 5번의 수영 수업을 의무적으로 받도록 한 것에 대해, 청소년들의 생존을 위해서라면 예술 경험을 통해 자존감을 찾도록 하는 것이 더욱 필요하지 않은가 하는 질문과 실천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한편, 벨기에의 어린이 예술교육기관인 ABC하우스는 접경지에 위치한 벨기에가 끊임없이 갈등과 분열을 겪어왔던 역사적 배경 때문에 예술을 통한 통합, 화해, 평등을 강조하고 있었다. 각 센터마다 그 사회가 가지고 있는 질문을 품고 있었고 그에 맞는 프로그램과 공간 운영이 뒤따르고 있었다.
단순히 물리적으로 예술교육센터를 짓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지금 한국사회의 동시대적 질문이 무엇인지, 그에 대해 예술은 어떤 가치를 지녀야 하는지, 그럼 우리의 공간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고민을 담고 있어야 한다. 관 중심의 문화 행정에서 공간이 규격화되거나 방법론에 매달리는 행태가 반복되지 않았으면 한다. 예술가들 역시 주어진 체계에 위축되지 않고 예술이 어떻게 사회적 공헌을 할 것인가에 대해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목소리를 높이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예술교육 현장에 있는 분들과 나누고 싶은 말이 있다면.
드리고 싶은 말씀은 직업적 자존감에 관한 것이다. 예술강사는 예술가로서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의 직업군으로 인식되거나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오히려 예술교육가로 훈련을 받는 과정에서 예술가로서 다른 지점을 발견했던 저의 경우를 말씀드리고 싶다. 예술가로서의 성공 여부와 비교해 자신을 판단한다거나, 현재 하고 있는 일을 평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예술교육가는 유형‧무형의 가치를 현장에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순간을 만들어내고 사라지는 것을 위해, 순간을 영원하게 만드는 어마어마한 퍼포먼스를 하고 있는 것이다. 예술가가 한 사회에서 위대하다고 평가받는다면 그것은 훌륭한 예술작품이 가지고 있는 인문학적 가치 때문일 것이다. 삶을 충만하게 만드는 좋은 질문들이 예술 과정 안에 훌륭한 교육적 가치를 갖게 할 것이다. 제가 예술강사 교육을 마치면 참여자들께 읽어드리는 글이 있다. 청소년 예술교육 프로그램에 참가했던 한 참여자가 과정을 마치고 강사에게 보낸 편지인데, [아르떼365] 독자들과도 나누고 싶다.
선생님 저는 지금 집으로 가고 있습니다.
첫날이 아직도 생생해요. 첫날부터 늦어가지고 부랴부랴 달려간 그 날을.
그때 저의 몸은 참 딱딱했었는데. ㅎㅎ
(중략)
저는 17년밖에 안 살았지만, 인생의 터닝포인트 였습니다.
사람을 의지하고 믿는 것. 나도 모르던 나만 있는 것이 아닌 ‘너’가 들어왔어요.
나를 위로해주고 찾아주고 공감해주고 같이 살아가는 건 너의 몸이었어요.
지금이라도 알아서 너무 기뻐요. 이걸 알지 못했더라면 전 어떻게 살아갔을까요?
앞으로 살아가면서 너라는 존재에게 기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음도 참 많이 열린 것 같네요.
이렇게 저를 변화시킨 건 몸이었고 춤이었습니다.
(중략)
저는 지하철 타기 전에 확신했어요. 살아있구나. 감정을 느끼는구나.
저는 살아있어요! 그리고 우리도 살아있어요!
감사해요. 살아있다는 게!
* 국립극단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의 ‘청소년예술가탐색전’에 참가했던 박한별 학생이 이윤정 강사(안무가)에게 보낸 편지 중 일부 발췌
남인우
남인우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연기과 아동청소년극전공 MFA를 졸업하고 극단 북새통 예술감독, 상임연출로 활동 중이다. <봉장취>, <가믄장아기>, <재주 많은 다섯 친구>, <소년이 그랬다> 등의 작품으로 국내외에서 호평을 받으며 한국 어린이청소년연극을 이끌고 있다. 또한, 판소리 <억척가>, <사천가>를 연출하여 한국 전통 음악의 현대적 수용에 새로운 지평을 열고 다양한 관객층을 아우르며 작품 세계를 확장해 나가고 있다. 연극의 교육적 가치, 예술의 힘을 널리 알리고자 노력하고 있고, 최근엔 예술가가 주도하는 예술교육센터를 꿈꾸고 있다.
사진 _ 마루스튜디오
홍은지
홍은지
다양한 공연방식을 고민하고 고안 중인 공연예술 연출가. 얼라이브아츠 코모(alivearts como, collectors of moments)에서 여러 분야의 아티스트들과 함께 순간을 채집하고 그 흔적을 담아내고자 노력하고 있다.
<팰름시스트>, <카페더로스트>, <벙어리시인> 등을 연출했다.
eufy654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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