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수업시간에 다다를 무렵이 되면 수업을 시작할 때마다 아이들은 하나같이 물어본다.
“선생님, 우리 연극수업 몇 번 남았어요?”
마음속으로 이별의 카운트를 세고 있는 것일까. 수업 시간에 잔소리도 하고, 혼낸 적도 있는데 아이들은 고맙게도 우리의 마지막을 아쉬워하며 미리 대비하고 있는 눈치다. 나는 수업 시간마다 항상 아이들의 모습을 한 두 컷, 꼭 사진으로 남겨놓는다. (물론 담임선생님과 학생들에게 미리 양해를 구한다) 아이들에게는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뭔가 특이하게 표현을 하거나 상상력을 재미있게 발휘할 때 사진을 찍는 것이라고 미리 이야기해준다. 몇 번 수업을 하다 보면 아이들이 먼저 나에게 이렇게 묻는다.
“선생님, 방금 발표한 거 특이했는데, 사진 찍으셨어요?”
놀이하듯 몸으로 익힌 연극용어
수업 때마다 연극 활동을 하며 그와 관련된 연극용어를 하나씩 알려주었다. 그렇게 연극용어는 아이들의 머릿속에 하나둘 쌓이고, 마지막 연극수업 때는 총 10~12개 정도의 연극용어를 알게 된다. 교과서도 공책도 없기에 연필도 지우개도 필요 없는 연극수업인 만큼, 학생들은 글자와 손이 아닌 경험과 몸으로 연극용어를 익힌다.
마지막 수업 시간, 칠판에 그동안 함께 배운 연극용어만큼의 번호를 써놓고 무대에 나와 우리가 함께 배웠던 연극용어를 말이 아닌 몸으로 표현해보도록 한다. 그러면 아이들은 자유롭게 판토마임이나 표정 연기, 타블로(tableau, 정지 동작) 등으로 자신이 알리고자 하는 연극용어나 그 용어를 배울 때 함께 했던 연극수업 내용을 표현한다. 나머지 학생들은 발표하는 학생의 모습을 보고 어떤 연극용어를 설명하고 있는지 유추해서 맞추는 식이다. 그리고 직접 칠판에 자신이 표현했던 연극용어를 글자로 쓴다. 삐뚤빼뚤한 글씨지만 나는 알고 있다. 학생들의 마음속에는 바르고 곧게 그리고 재미있게 연극용어가 새겨졌다는 사실을.
우리만의 추억, 기억하는 연극수업
마지막 수업의 말미, 반별로 작은 패널에 그동안 함께했던 수업 중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공개한다. 아이들은 자기 학급의 모습은 물론 다른 반의 모습까지도 볼 수 있는 이 시간을 무척 즐긴다. 아주 잠깐이지만 교실은 순식간에 사진전시회가 되고 사진 앞에서 환호성이 펼쳐지기도 한다. 그동안의 수업 내용을 사진으로 공유하다 보면 아이들은 스스로 기억하고 상기하고 곱씹게 된다. 어느 수업 때 누가 어떻게 발표했고, 그 모습을 보고 어떤 반응이 나왔었는지, 혹은 왜 그때 다 함께 박장대소했었는지 말이다.
이렇게 사진을 통해 지난 활동을 돌아보는 것은 아이들로 하여금 다른 반과 비교하며 평가하는 시간이 아니라 “우리 반은 이 시간에 이렇게 표현했었는데 저 반은 이렇게도 표현을 했구나.”라는 식의 ‘다름’을 인정하는 시간이 된다.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사진 공유를 통해 ‘나와 다르다’는 것은 틀린 것도, 나보다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도 아님을 알려주는 것이다. 이것이 ‘나와 표현을 다르게 하는 타인’을 통해 나를 돌아보고 서로를 인정해보는 시간이 되었기를 바란다.
패널에는 아이들의 사진은 물론 그동안 함께 했던 연극활동에서 아이들이 남긴 작은 쪽지, 그림 작품 등도 잘 간직했다가 붙여준다. 그 속에서 아이들은 자신의 작은 표현이 얼마나 큰 예술적 가치가 있는지 스스로 느껴볼 수 있다.
다 함께 커튼콜
마지막 수업 때 알려주는 연극용어는 항상 ‘커튼콜’이다. ‘커튼콜’을 아이들의 눈높이로 이야기한 후, 연극이 끝난 것처럼 이제 우리의 연극수업이 끝났음을 알리며 마지막 인사를 한다. 여러분과 함께한 수업시간을 통해 무대에서 ‘연극선생님’으로 열연했던 시간들을 잊지 않겠노라고, 여러분은 최고의 관객이자 배우였다고 마지막 메시지를 전하면서 말이다.
연극선생님의 커튼콜은 학생들에게 어떻게 기억될까. 나의 연극수업이 학생들에게 어떤 긍정적인 예술교육 효과를 발휘했을까. 이 모든 것은 나만의 숙제로 남긴 채 아이들과 함께한 칠판 앞 무대에서 고개 숙여 인사하면, 관객이자 배우였던 학생들이 박수를 쳐준다. 힘차게, 오래오래.
이지현
이지현
서울예술대학에서 극작을 전공하고 연극배우와 작가로 활동했다. 연극예술강사, 연극치료사로 활동하며, 2014 유아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 2016 학교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 공모전에서 입선한 바 있다. 요즘은 문화예술교육은 물론 ‘아들셋맘’으로 부모 강연, 육아강사, 그림책 큐레이터 등 다방면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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