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세계문화예술교육 주간행사의 일환으로 지난 5월 24일(화) 누리꿈스퀘어 3층 국제회의실에서 2016 한중일 문화예술교육 포럼이 개최되었다. 이 포럼은 한국, 중국, 일본의 문화예술교육 관계자와 전문가들이 한 자리에 모여 예술의 가치와 힘에 대한 국가별 관점을 살펴보고, 최근의 이슈와 사례를 공유하는 자리이다. 2013년 서울을 시작으로 일본, 중국에서 매년 순회 개최되어온 포럼은 올해 다시 서울로 돌아와 ‘예술가와 예술교육’을 주제로 진행되었다. 오전에 이루어진 정부관계자 발제에 이어, 오후에는 각국 7명의 분야별 전문가들이 다양한 사례를 발표하였다. 가깝지만 멀게 느껴졌던 동아시아 3국의 예술교육 현장이 일궈가고 있는 여러 시도와 고민들을 공유할 수 있는 자리로 마련되었던 만큼, 많은 문화예술교육 관계자들이 함께 하였다.
  • 첫 번째 발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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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 예술교육을 만나다
‘예술교육자로서의 예술가’를 주제로 발제에 나선 남정호 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는 화려하게 포장된 춤 무대를 전수하고 이에 필요한 자금을 모으는 것에 대한 피로감에서 회의가 밀려왔다는 고백으로 시작했다. 그런 회의감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무용을 하는 이유를 묻고, 공연이라는 형식을 통하지 않더라도 자신이 하고 있는 것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서 공연 횟수를 줄이고 교육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 그에게 잘 가르치는 것은 동작 따라 하기 식의 수업이 아니라 자신의 춤을 발견하는 것, 즉 자신의 존재를 깨닫고 움직이는 것이기에 내면을 끌어내는 ‘즉흥’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이 지점에서 교육은 또 다른 예술작업의 확장으로 이어진다.
인간이 노동을 기계에 의지하면서 자신의 신체성을 상실해가는 현대사회에서 무용은 전문가 영역으로 남게 되고 관객은 대리만족에 머무른다. 그러나 남정호 교수는 모든 사람들이 춤을 추고 싶어 하고 또 춤을 출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동안 하자작업장학교의 청소년들이나 일반인 대상의 즉흥무용 경험을 통해 신체와 신체가 만나 효과적인 소통이 이루어지는 것을 실제로 확인해왔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예술교육과 예술비평은 실패한 예술가가 하는 일이라고 빈정대기도 하지만, 예술이 인간의 변화에 영향을 미친다는 믿음 속에서 무대보다 교육을 통해 나누는 것이 더 즐거운 예술가들에게 예술교육은 중요한 선택지가 될 수 있음을 제안하였다. 그러한 선택이 교육 현장에서 유의미하게 되려면 예술가의 교육자로의 자세와 자질, 콘텐츠에 대한 접근이 중요함을 강조하였다.
카즈미 미노구치 강사(동경예술대학대학원 국제예술창조연구과)는 클래식음악의 보급프로그램에 관심을 가지고 젊은 공연자들과 다양한 아웃리치(outreach) 프로그램과 협력 프로젝트를 시도해왔다. 그에게 음악교육 현장은 타 예술분야와 비교할 때 “연주자가 공연장 무대에서 연주하는 것과 같은 수준의 음악을 교실에서 제공할 수 있고, 하나의 작품을 원작의 형태로 제시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흔히 음악감상 교육을 창작‧실습 워크숍 프로그램에 비해 수동적이라 생각하지만, 잘 듣는 행위는 듣는 자의 적극적 관여를 필요로 한다.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자신이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는 게 아니라, 타인의 이야기를 잘 듣는 것에서 출발한다는 점에서 감상 수업은 아이들이 상대를 이해하도록 마음의 성숙을 유도한다. 예술가로서 연주자들의 경우에도 단지 연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을 경청하는 능력, 나의 음악에 대해 발견하고 이해한 것을 음악으로 전달하는 능력, 즉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중요하다.
카즈미 강사는 일반재단법인 지역창조가 1998년부터 실시해 온 ‘공공 공연장 음악활성화 사업’을 사례로 제시했다. 이 프로그램은 보통 4일간 6~8곳에서 음악감상 수업 형태로 진행된다. 한 사례를 소개하자면, 젊은 유명연주자가 간사이 지방의 한 초등학교에서 친근하게 간사이 사투리를 쓰면서 슈베르트의 <마왕>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려주고 마치 실제 공연장에서 하듯 주요 멜로디를 바이올린으로 훌륭하게 연주한다. 아이들은 연주를 들으며 <마왕>에서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병든 아이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실제로 적극적 청취를 통해 아이들은 음악에 대한 놀라운 해석력을 보여준다. 카즈미 강사는 예술가들이 무대공연이라는 협소한 커리어 관점에서 벗어나 미래의 관객을 만나는 다양한 아웃리치 프로그램을 훌륭한 커리어 선택지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중국의 중앙문화관리간부학원 사회교육과 부책임자 왕 짠핑은 현재 당 정부 지도자 간부와 문화경영관리인재에 대한 육성과 훈련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그는 전문 엘리트교육과 대중교육으로 나뉘어 있는 중국 예술교육 중 대중을 위한 예술교육 현황과 본인이 소속되어 있는 중앙문화관리간부학원의 사례를 소개하였다. 중국 대중예술교육은 전국 단위에 분포한 44,423개 문화관에서 다양한 장르로 진행되고 있는데, 특히 전통문화 계승을 중심으로 전통과 현대의 융합을 꾀하는 특징을 보인다.
  • 첫 번째 발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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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남정호, 카즈미 미노구치, 왕 짠핑
예술가, 예술교육을 펼치다
코이치 우에노 회장(일본 미술을통한학습연구회)은 ‘예술가와 함께하는 미술감상 교육’을 주제로, 일본 학교․미술관의 미술감상 교육이 가진 과제를 점검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시도들을 소개하였다. 일본 초중등학교에서 미술감상 교육은 대화와 비평을 통해 서로 다름을 이해하고 자신을 상대화하면서 새로운 의미를 찾아간다는 고유의 목적이 있다. 그러나 실제 교육 현장에서는 그림그리기나 제작 수업에 비해 감상 수업 시간이 부족하고, 미술관이 가까운 곳에 없으며, 감상수업에 대한 교사의 지식이 부족한 문제 등이 있다. 한편 미술관은 교육활동 역사가 짧고 담당자가 교육 전문가가 아닌 경우가 많으며, 교육활동이 종종 학술 또는 오락의 양극단에 있으며 공유된 학습지도 요령이 부족했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코이치 회장이 소속된 미술을통한학습연구회는 지도자 육성, 정보발신, 학습지원 등 다양한 활동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미술관이 없는 동네의 생애학습시설에 작품전시와 대화를 통한 초등 미술감상 교육, 학교가 작가를 초대하여 작품을 전시감상하거나 작가와 함께 자연을 감상하고 발상한 것을 조형하는 활동, 조각 보전 복원가의 지도에 따라 학생들이 스스로 주변 야외 조각을 유지 관리하는 활동, 지역의 전통을 배우고 감상에서 창조로 나아가는 활동의 일환으로 전통 화과자의 점토 제작 등 여러 흥미로운 사례를 소개하였다.
노주희 소장(한국오디에이션교육연구소)은 화성감수성에 기반한 수업을 짧은 시연으로 준비했다. 화성감수성은 화음과 그 진행에 대해 섬세하게 느끼고 자유롭게 즐기는 오디에이션(audiation) 능력을 일컫는데, 전체와 부분의 소리를 이해하게 하면서 즉흥연주와 창작의 기반이 된다. 포럼 참가자들은 악보 없이 소리를 듣고 화음을 경험하며 이해하는 교육활동으로 연령별 다양하게 변주되는 ‘나무와 바람’에 참여하면서, 잠깐이지만 각자 500년 동안 외로웠던 나무의 노래에 찾아든 바람, 해님, 구름, 소년의 하모니가 되어보았다.
일본 예능실연가단체협의회(이하 예단협)의 ‘키즈전통예술체험’ 프로그램을 맡아 온 카오리 가와시마 디렉터는 전통예술에 주목하여 ‘아이들 속에서 전통문화가 숨 쉴 때: 접근법과 예술가의 역할’에 대하여 발표했다. 일본에서 1950년대까지 강습의 주류였던 전통예술은 라이프스타일이 바뀌면서 그 중요성에 비해 실질적 관심은 줄어드는 추세이다. 한편 국제화의 진전과 함께 오히려 일본문화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기도 하다. 실연예술분야 68개 단체가 회원인 공익법인 예단협은 아이들에게 전통예술이 고리타분하다는 선입견을 벗어나 새로운 체험을 통해 예술가들에 대한 동경심과 전통예술에 대한 애정을 품을 수 있도록 2008년부터 도쿄도 문화정책의 일환으로 ‘키즈전통예술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해오고 있다. 전문 강사가 투입되어 전문 연습장과 발표회장에서 아이들 대상의 교육을 6개월간 장기 프로그램으로 진행하면서 전통적 감성을 키우고 선생님에 대한 동경, 정체성 인식 등의 교육적 성과가 있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중국 중앙문화관리간부학원 국제교류과 책임자인 쬬우 메이펀은 한중일 문화예술교육포럼의 플랫폼을 통한 실무 협력 강화, ‘아세안+3 문화인력자원개발 협력 워크숍’을 통한 교류와 협력, 한중일 예술교육 연맹 결성, 국제민속축전기구협의회(C.I.OF.F)를 통한 상대국 민간예술제에 민간예술단 상호파견, 한중일 사례 공유 사이트 구축 등을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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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코이치 우에노, 노주희, 카오리 가와시마, 쬬우 메이펀
가깝고도 먼 한중일, 새로운 발견과 협력을 기대하며
종합토론에서는 박영정 연구위원(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사회로 7명 발제자들의 경험과 사례, 각국의 예술교육 정책 현황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글로벌 시대에 더욱 가까워진 한국, 중국, 일본이지만, 각국의 예술교육 사례를 들여다보면 공통의 이슈 외에 문화적 풍토와 정책 지형의 차이도 적지 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일본의 경우 민간 협회 차원에서 학교 단위와 연계한 새롭고 다양한 감상 및 제작‧실연 등의 시도가 활발함을 볼 수 있는 반면, 중국은 국가 주도 하에 지방 단위 문화관과 문화센터 등 수많은 거점기관을 중심으로 다수의 대중을 위한 예술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번 포럼은 예술교육에서 예술가의 역할과 관련한 근원적 질문부터 각국의 장르별 현장사례, 한중일 교류와 협력방안 등 굵직한 이슈가 포괄적으로 진행되었다. 가깝고도 먼, 세 나라의 예술교육 정책과 현장을 상호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흔하지 않기에 이 또한 의미 있는 작업일 것이다. 그러나 문화예술교육 현장 전문가들 간 보편성과 특수성을 발견하고 이해하면서 교류와 협력의 실질적 바탕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좀 더 세분화된 주제로 밀도 있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장이 필요하다. 오늘의 만남이 한국-중국-일본의 예술교육 현장에서 또 다른 흥미로운 발견과 협력 작업을 위한 내일의 만남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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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토론 및 질의응답
이선옥
이선옥
예술교육과 예술경영, 정책과 현장을 가로지르며 일해 왔다. 서울프린지네트워크, 하자센터,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문화재청, 예술경영지원센터 등에서 프로그램 기획홍보, 연구조사, 컨설팅 업무를 담당했다.
이메일_ dal0310@naver.com 블로그_ http://blog.naver.com/dal0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