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교육 현장에는 자신만의 교육철학과 소신을 가지고 열정을 불태우며 활발하게 활동하는 많은 분들이 있습니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문화예술교육의 가치와 힘,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와 삶의 모습을 인터뷰어의 시각에 담았습니다.
문화예술교육 현장을 가득 채우고 있는 다양한 생각과 시선, 움직임이 일곱 빛깔 무지개처럼 고스란히 드러나길 바라며, 지금 만나러 갑니다!
부산 사상구 덕포초등학교에서 강정림 예술강사를 만났다. 왁자지껄 참새 떼처럼 재잘대는 아이들 사이에서, 스스로도 한 명의 학생인 것처럼 자연스레 스며들어 함께 웃고 떠드는 중이었다. 오늘 수업의 주제는 ‘의성어와 의태어를 이용한 캐릭터 디자인’. 수업을 시작할 때, 또 수업의 중간 중간, 강정림 예술강사는 “디자인에는 정답이 없다. 잘 그리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솔직하게 떠오르는 것을 밖으로 끌어내고 남에게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반복해 강조했다. 요컨대 기능보다는 발상이라는 것. 나아가 디자인을 전공한 선생님답게 자기 안에서 그리고 끝나는 게 아니라 그 결과물을 잘 발표하는 것까지 마무리해야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는 것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아이들 안에 있는 것을 밖으로 끌어내기, 열심히 완성한 것을 자신 있게 보여주기, 다른 사람의 발표를 잘 들어주기… 흔한 미술교육에서는 보기 드문 풍경이었다.
교사 생활을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계기로 예술강사가 되셨나요?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했어요. 졸업하고 부산디자인고등학교에서 4년, 부산관광고등학교에서 3년, 도합 7년간의 교직 생활을 했고요. 처음부터 디자인 전문 고등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한 덕분에 적성을 살릴 수 있었고 그 점이 좋았어요. 출산과 더불어 교직을 그만뒀는데 둘째 아이 낳은 뒤 다시 일을 하고 싶었어요. 또 기왕이면 제 적성과 전공을 살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요. 마침 문화예술교육 관련 일을 하게 돼 좋습니다. 지금처럼 활동한 것은 6년 정도 됐고 학교 외에도 사회적기업 등에서 강의하고 있습니다.
디자인교육은 기존의 미술교육과 아무래도 차이가 있을 것 같은데요?
일반적으로 미술이라고 하면 회화나 조각 같은 것을 떠올리게 마련이죠. 그런 이른바 ‘파인아트’는 작가의 심상이나 개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편이고요. 반면 디자인은 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자꾸 새롭게 봐야 할 필요를 느끼게 해요. 크게도 보고, 작게도 보면서 여러 발상들을 해봐야 하는 거죠. 또, 계획을 해야 한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 아닐까 싶습니다. 결과물보다는 과정이 더 중요하달까요. 이치에 맞고 안 맞고의 문제가 아니라 발상을 떠올리고 그 중 하나를 선택하고 그것을 여러 표현방법 중 하나로 표현하는 등 자신의 발상과 표현을 구체화하기 위한 계획이 좀 더 체계적으로 요구됩니다. 마지막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작품을 설득력 있게 프리젠테이션 하는 것까지가 하나의 과정이죠.
수업 중간 중간 ‘디자인에는 정답이 없다’고 강조하시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수업을 할 때 특별히 중요하게 여기는 점이 있다면요?
쉽고 재밌는 디자인을 목표로 합니다. 처음 디자인에 대해 가르치려 하면 아이들은, “이렇게 하면 되나요? 저렇게 하면 안 되는 거죠?” 등의 질문을 많이 해요. 당위를 묻는 거죠. 획일화된 교육의 한계 중 하나라고 봅니다. 기술이나 결과 중심 교육의 폐해이기도 하고요. 그러다보면 과정을 즐기지 못하게 됩니다. 그런 아쉬움을 느끼면서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고민을 하게 됐어요. 디자인에는 정답이 없다는 걸 강조하고 마음껏 자유롭게 발상하고 쉽고 재밌게 접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편입니다.
오늘 수업은 아이디어 발상부터 발표까지 전 과정이 40분 동안에 모두 이뤄졌는데요. 이렇게 짧은 시간에 진행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수업은 보통 어떤 순서로 진행되나요?
먼저 주제에 대한 흥미를 유발합니다. 문제제기 혹은 물음을 던지는 거죠. 지구온난화 같은 사회적 이슈가 주제라면 사례나 유머 등을 활용해 흥미를 돋웁니다. 혹은 영상, 시각자료, 동화 등을 통해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우선 느끼도록 하는 거죠. 1차적 생각, 날 것의 생각을 떠올리게 하고 이후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아이들과 의논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학습목표나 주제로 자연스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유도하죠. 아이들에게 학습목표를 전달하고 나면 목표를 명확하게 할 수 있도록 유도합니다. 편하게 의견을 툭툭 던질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고 브레인스토밍을 하죠. 여러 단어들이 계통 없이 막 튀어나오도록 합니다. 그리고 각자의 스타일로 문제를 해결하게 해요. 아이디어를 스케치하고 구현하도록 하는 거죠. 중간 중간 저는 모든 아이들과 1분이라도 꼭 1대1로 얘기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아이들의 자신감을 북돋워주는 효과도 있고 그런 피드백을 주는 게 아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많이 됩니다. 이후 스케치한 것을 채색하는 등 작품을 완성시키고, 완성된 작품을 발표하도록 하죠.
현재 우리 교육은 경쟁을 강조하고 대학 입학이라는 한 가지 목적에만 집착하다보니 여러 문제들을 낳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문화예술교육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좀 거창하게 들릴지 몰라도, 저는 우리 삶의 전반적인 질적 향상과 디자인이 아주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고 보는 편이에요. 공부 1등 하는 것보다 디자인에 대한 감각, 창의성, 발상의 신선함 등이 실제로 사회에 나갔을 때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데 더 필요하다고 보죠. 삶의 질은 성적보다는 융통성, 문제해결능력 등과 더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봐요. 그런 면에서 보면 디자인교육은 오히려 고등학생들에게 더 필요한 게 아닐까 싶고요. 매일매일 획일적인 사고방식으로 사는 사람들일수록, 거꾸로 보고 새롭게 볼 수 있는 디자인에 대한 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삶의 질적 향상을 위해서요.
현직교사이셨던 만큼 학교와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여러 가지 고민이 있으실 것 같습니다. 예술강사로 활동하면서 아쉬운 점은 없나요?
디자인은 문제와 부딪쳤을 때 여러 발상을 통해 그것을 해결하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학교 현장에서는 아무래도 보통의 미술 수업이라고 생각하고 결과 중심적으로 접근하죠. 예쁜 수채화나 학예제 때 발표할 만한 멋진 작품들이 나오기를 바라는 분위기가 있어요. 원근감이나 기술적 완성도를 중요하게 생각하기도 하고요. 선생님이나 학생들이 평소 문화예술을 많이 접하지 못하기 때문 아닐까 싶습니다. 여러 경험들이 있어야 진로결정 등에도 유익한데 그런 점에서 아쉬운 점이 많죠. 중학교 자유학기제처럼, 초등학교에서도 과정 중심, 문제해결 중심의 시간을 확보해줬으면 합니다. 저는 수업할 때 아이들과 참 좋은 시간을 보냈는데, 나중에 들어온 다른 선생님은 ‘오늘은 (게시판에) 붙일 만한 게 없네요’ 하는 식으로 반응을 보이면 아무래도 힘이 빠지죠. 문화예술을 도구로 보는 인식이 여전히 많습니다. 한편으론 이런 것이 제가 풀어야 할 숙제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하고요.
예술강사로 활동하신 지 6년이면 꽤 긴 시간인데, 그동안 현장의 느낌도 많이 변했을 것 같습니다.
우선 제 자신이 가장 많이 변했죠. 디자인 교사로서 현직에 있을 때는 저 역시 입시 위주로 가르쳤고 커리큘럼도 대학 입시를 목적으로 짰어요. 학교 바깥에서 디자인을 가르칠 때는 콘셉트, 레이아웃 등 초보적인 개념조차 낯설어하는 학생들을 상대하면서 하나하나 디자인 자체에 대해 원점에서부터 다시 생각해보게 됐죠. 아이디어를 입 밖에 낼 수 있도록 하는 게 시급하다고 여겼고 여러 발상들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 또 그것을 어떻게 멋지게 표현할 수 있을지 등에 대해 함께 고민하며 학생들과 함께 변화해온 것 같아요. 제 수업은 디자인 수업이긴 하지만 음악이나 국어, 수학 등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다 가지고 와요. 오늘 같은 경우도 의성어와 의태어를 선택하고 표현하는 수업이었죠.
늘 학생들과 함께 변화해온 것 같다는 말씀이 크게 와 닿습니다. 예술교육을 하면서 가장 고민하는 점이 있다면요?
우선 저 자신도 아이를 키우는 엄마 입장이라, 그런 관점에서 아이들을 보게 되요. 물론 학교에 와서 디자인 스킬만 주고 갈 수도 있죠. 하지만 엄마의 마음으로 보면 좀 달라지는 것 같아요. 지금 분위기는 공부든 뭐든 잘하는 아이들만 주목받고 부각되는 분위기인데 문화예술 영역에서도 다르지 않아요. 아이디어는 있는데 손이 못 따라가는 아이들도 많고, 자기 존재감을 드러내는 데 익숙하지 않아 늘 움츠려 있는 아이들도 많거든요. 이 아이들을 잘 이끌 수 있을 것 같은데 지금은 주어진 시간 안에 수업만 하고 와야 하니 더 깊이 소통하고 애착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여유가 부족하죠. 그런 게 가장 고민인 것 같아요.
요즘 들어 문화예술교육의 지역화, 지역의 특색이 반영된 문화예술교육이 많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부산 지역의 문화예술교육이 다른 지역에 비해 특별히 다른 점이 있을까요?
다른 광역시에 비하면 부산이 문화적으로 낙후된 편이라고 봐요. 어린이미술관, 아이들 관련 도서관 프로그램 등 뭔가 많이 생기고 있는 추세이니 기대는 됩니다. 처음 강사 생활 시작할 때만 해도 아이들에게 뭔가 보여줄 만한 실물이나 프로그램이 많이 부족했어요. 해운대나 동부산 쪽은 영화의 전당이나 미술관 등 비교적 문화적 인프라가 풍부한 편인데 이쪽 서부산은 여전히 많이 부족해요. 아이들과 함께 볼 수 있는 간이 전시 등 여러 프로그램이나 기회가 늘어났으면 좋겠어요. 좋은 점도 있죠.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 늘 바다를 볼 수 있다는 건데요. 실제로 아이들이 작품 소재로 바다를 많이 다루기도 합니다.
강정림 강사님께 아이들이란 어떤 존재인가요?
고등학교에서 교직 생활할 때는 미스였는데 결혼, 출산 등을 겪으며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아이가 있을 때와 없을 때, 아이들을 바라보고 또 가르치는 태도는 정말 다른 것 같고요. 지금 저에게 아이들은…… 그냥 다들 자식 같다고나 할까요. 특히 소외받고 상황이 안 좋은 아이들을 보면 엄마 입장에서 마음이 많이 아프죠. 책임감도 더 많이 느끼게 되고요. 가정에서 디자인이나 문화예술을 경험할 기회가 많지 않을 것 같으면 저라도 최대한 많은 경험을 하게 해주려 합니다. 제가 특수학교나 좀 소외된 지역의 학교를 많이 선택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사교육을 많이 받거나 풍족한 지역의 학생들을 대할 때보다 책임감도 많이 느끼는 편이고 거꾸로 아이들이 저를 채찍질하기도 합니다. 아이들 눈빛만 봐도 그날 제 수업이나 준비해 간 내용이 70점인지, 80점인지 알 수 있을 정도에요. 아이들은 저에게는 스승이기도 하고, 이 분야에서 떠날 수 없게 만드는 그런 존재들이죠.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요?
아이들이 환경에 상관없이 건강하고 창의적인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디자인을 통해 돕고 싶어요. 통합교육이라는 화두도 숙제죠. 어떤 것들과 융합해서 디자인을 좀 더 쉽고 밝고 또 재밌게 가르칠 수 있을까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강정림
경성대학교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고 2002년부터 부산디자인고등학교, 부산관광고등학교에서 디자인교과 교사로 7년간 근무했다. 디자인분야 예술강사 지원이 시작된 2010년부터 예술강사로 활동하며 부산의 초등학교 아이들과 디자인으로 만나고 있다.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데 있어 디자인의 역할이 크다고 믿으며, 오늘도 신나고 재미있는 브레인스토밍을 위해 고민하고 있다.
영상 _ 윤영욱 (미디어 아티스트)
장현정
현재 호밀밭출판사를 운영하며 대학에서 사회학을 가르치고 있다. 『소년의 철학』 『록킹 소사이어티』 등 몇 권의 책과 연극 <나투라>의 대본을 썼고, 영화 <보름달>을 연출하는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하며 매주 토요일 부산 KBS1 에서 부산의 다양한 문화예술 소식을 전하고 있다. hjmiro@naver.com
고등학교 때 정답이 있어야만 하는 줄 알고 사는 자신이 싫어 고민했던 게 떠오르네요… 그땐 정답이 있고 저는 거기에 맞춰야만 하는 건줄 알았죠
아이들을 위한 이시대 진정한 선생님께 응원과 박수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