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교육 현장에는 자신만의 교육철학과 소신을 가지고 열정을 불태우며 활발하게 활동하는 많은 분들이 있습니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문화예술교육의 가치와 힘,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와 삶의 모습을 인터뷰어의 시각에 담았습니다.
문화예술교육 현장을 가득 채우고 있는 다양한 생각과 시선, 움직임이 일곱 빛깔 무지개처럼 고스란히 드러나길 바라며, 지금 만나러 갑니다!
아담한 크기의 회색빛 카펫이 깔려있는 교실을 안내 받고 들어 설 무렵 뒤이어 들어오는 아이들, 낮선 우리 일행이 궁금한지 연신 “누구세요?”를 반복해 물어 본다. 대답을 해 줘도 묻고 또 묻는가 하면 “안녕하세요!”라고 먼저 인사를 건네도 아무런 반응이 없거나 배시시 웃기만 하는 아이까지 그 모습이 참으로 다양하다. 이렇게 부모님의 손을 잡고 아이들이 모인 곳은 김포시장애인복지관이다.
벌써 1년 남 짓 이곳을 다니고 있다는 아이들의 모습에는 익숙한 듯 편안함이 묻어 나왔고 공간을 여기 저기 뛰어 다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오늘 수업에 대한 기대감이 커져갔다. 이연숙 예술강사를 중심으로 두 명의 복지관 교사와 네 명의 아이들이 함께하는 수업은 서로의 안부를 묻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산만하게 돌아다니던 아이들은 이연숙 예술강사의 지도에 따라 원으로 둘러앉아 노래와 움직임으로 구성된 수업의 흐름 안으로 자연스럽게 들어갔고, 조금 전 모습과는 다르게 수업에 집중 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반복적인 노래와 움직임 활동은 아이들의 수행능력에 맞도록 충분한 시간을 두고 이루어졌으며, 빛을 이용한 그림자놀이 또한 아이들의 오감을 자극하여 창의적 예술 활동을 하기에 잘 구성된 수업이었다. 이렇게 1시간가량의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장애아동들의 특성상 나타나는 돌발 행동은 간간히, 때로는 오랜 시간 지속되기도 했는데, 이연숙 예술강사는 이조차 아이들의 언어이고 하나의 표현이라고 생각하는 듯 아이를 품에 안기도 하고 때로는 그 행동을 읽어내려 듯 마음을 쏟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갓난아기의 필요를 채우려는 엄마의 마음이 느껴져 보는 내도록 마음에 잔잔한 감동이 일었다.
이연숙 예술강사는 많은 예술활동과 교육활동 경력을 가진 베테랑 강사이다. 장애인 예술강사로는 올해가 8년째라고 말하며 장애아동 예술교육을 시작하면서 예술강사로 또 다른 보람과 행복을 느끼고 있다며 웃음을 짓는다.
예술가로 또한 예술교육자로 많은 활동을 하셨다고 들었는데 장애인 예술교육에 까지 관심을 갖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나요?
사실 장애인을 만나면 선뜻 다가서지 못하는 것이 우리 비장애인들 같아요. 다름에 대한 낯설음과 장애인에 대한 선입견이 두려움으로 다가오기 때문인데, 저도 비슷했어요. 그런데 오래전 노인대학에서 강의를 할 때 어르신들과 함께 봉사활동을 나간 적이 있었는데 그곳이 장애인 마을공동체였어요. 그날 여러 가지 봉사활동을 하고 이후 식사시간에 선천적인 지체장애로 누구의 도움이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시는 분을 보게 되었어요. 조금 낯설긴 했지만 옆에서 밥도 먹여 드리며 시간을 보냈는데, 그때 그 분과의 짧은 만남과 헤어짐이 오늘 이 자리까지 오게 된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고 볼 수 있어요.
그날 봉사를 마치고 돌아갈 때 그분이 내년에도 꼭 오라며 기다리겠다고 하셨고, 저도 그러겠노라 약속을 하고 헤어졌어요. 그 후 다시 그곳을 찾아 갔는데 그분 자리가 비어 있어서 물어보니 돌아가셨다는 거예요. 그분이 무용선생님은 왜 안 오시냐며 계속 기다렸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마음이 먹먹해 졌어요. ‘내가 너무 늦게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오래도록 아팠어요. 그 후에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닌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어디일까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즈음 장애아동 무용 분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서슴지 않고 신청을 하게 되었어요.
그렇게 시작된 장애아동 무용예술교육은 어떠셨나요?
처음에는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교육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 기준에 맞춰서 뭔가를 하나라도 더 해줘야 한다는 생각으로 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아이들에게 강요하고 있는 제 모습을 보게 되었어요. 열정만 가지고 내 욕심을 채우는 나를 위한 수업을 한 거죠. 부끄럽지만 처음은 그렇게 시행착오를 많이도 겪었어요. 그러면서 하나둘 고쳐나갔던 기억이 납니다.
비장애아동과 장애아동 무용교육 시 차이점이 있을 것 같아요.
장애인의 경우 그 특수성 때문에 비장애인과 같은 방법으로 수업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 이예요. 그래서 시작부터 다른 방법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비장애아동과 달리 장애아동의 경우는 머리가 아닌 오감으로 먼저 느끼고 오감으로 반응하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 해요. 머리보다 오감으로 감각되어질 때 움직임이라는 표현의 결과가 나오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인지의 과정에는 계속되는 자극이 필요하고 그것으로 오감을 깨우는 시간이 필요해요. 이것이 장애아동과 비장애아동 예술교육의 가장 큰 차이점이 아닐까 생각해요.
장애인의 경우 복합장애를 가진 경우가 많고 그에 따라서 신체적 인지적 측면에 큰 편차를 보일 텐데 이런 경우 무엇에 중점을 두고 수업을 준비, 진행 하시나요?
우선 능력의 차이를 이해하며 조화롭게 상호작용 하도록 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수업을 진행해요. 그리고 수업의 수준은 수행능력이 낮은 아이들이 그 기준이 되도록 하는데 이때 수행능력이 좋은 아이들이 지루해 할 수 있어서 개인의 가능성을 최대한 자극하여 다양한 표현을 유도하기도 하고 아이들이 서로 도우며 협력할 수 있도록 하기도 해요. 그렇게 하면 모두 다 함께 성취감도 느끼고 자부심도 느끼게 되죠. 그러면서 리더십도 생기는 것을 볼 수 있어요. 수행능력이 떨어지는 아이를 선생님이 가르치는 것보다 친구가 도와주면 훨씬 빨리 인지하는 것을 볼 수 있어요. 그래서 서로 상호작용을 통해 수업 목표에 함께 오르게 하는 방법을 찾아가고 있어요.
몸으로 표현 하는 무용 활동의 특성과 장애아동의 특수성으로 인해 수업 진행에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을 것 같습니다.
어려움은 아이들의 감정조절과 신체조절 능력에서 나타나요. 장애아동들은 공간인식이 안 되기 때문에 나와 타인과의 거리조절이 안 되서 불상사가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되요. 조금이라도 자신의 자리를 침범하면 신체적 행동을 하거나 감정이 폭발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수업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공간인식과 신체조절, 감정조절에 초점을 두고 관계를 적용한 반복적인 활동을 통해 어려움을 해결해 나가고 있어요.
또 하나는 지체장애로 인한 어려움인데 장애 정도에 따라서 움직임이 불가능한 경우에는 다른 친구들이 그 아이를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는 움직임을 하기도 해요. 그렇게 하면 비록 자신은 움직이지 못하지만 나도 수업에 참여하고 있고 주인공으로 주목 받았다는 것에 대해 만족감을 느끼는 것을 볼 수 있어요. 그래서 어느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수업으로 ‘함께’라는 관계성을 자연스럽게 경험하도록 하고 있어요.
활동영역이 좁고 사회성이 낮은 장애인들이 이러한 수업을 지속적으로 받으면서 변화가 있었을 것 같습니다.
변화는 다양한 부분에서 나타나고 있어요. 전체적으로 가장 큰 변화는 집중력이 생긴 거예요. 원으로 앉아서 수업을 시작하는데, 처음에는 앉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집중이 안 되던 아이들이 1년이 지나면서 이제는 앉는 것 뿐 아니라 다음 순서에 대한 인식도 하고 스스로 생각해서 자신을 표현하는 단계까지 왔어요.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을 지켜보며 기다리고 배려하는 모습도 변화의 한 모습 이예요. 처음에는 공격적이고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던 아이가 그러한 행동이 많이 감소된다거나 자폐로 아무런 반응이 없던 아이가 소리를 내고 눈 맞춤이 가능해지는 등 많은 변화를 보여 주고 있는데, 제가 볼 때는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받기 때문인 것 같아요.
무용 예술교육을 통해 아이들에게 좋은 변화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 어떠세요?
사실 이곳 복지관에 나올 정도가 되면 정말 축복받은 아이들이죠. 가정에서의 경제적 지원과 장애아동에 대한 교육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부모님 밑에서 보살핌을 받고 있는 아이들이거든요. 다른 열악한 시설이나 가정에만 있는 아이들도 많아요. 그래서 이러한 시설이 아니어도 다른 기관으로도 예술강사들이 많이 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요. 그러기위해서는 장애아동을 가르칠 수 있는 예술강사가 좀 더 많이 배출되어서 함께 활동할 수 있는 길이 열리고 더 많은 아이들이 교육의 혜택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장애인 예술교육을 준비 중인 분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장애아동을 만날 때에는 사전 지식이 필요해요. 많은 공부를 해야 하구요. 특수아동에 대한 전문 지식이 없이는 장애아동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지식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하지만, 아이들을 실제로 만나서 수업을 할 때에는 이론과 지식 위에 마음이 먼저여야 한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어요. 그럴 때 아이들에게 좀 더 가깝게 다가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머리로 하는 수업보다는 마음으로 함께 할 수 있는 수업을 할 때 강사 또한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것 같아요.
장애인 예술교육을 하시면서 자부심, 어려운 점과 현재까지도 가장 크게 도전 받고 있는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인지요?
아이들을 대하는 것은 항상 조심스러워요. 장애아동은 유리병 속에 있는 듯해요. 이 유리병이라는 것이 잘못하면 깨질 수도 있기 때문에 예쁘게 잘 닦아서 다른 곳에 옮기는 것이 저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예쁘게 성장시키고 자기 나름대로의 꿈과 희망을 펼칠 수 있게 돕는 일에 책임감을 느껴요. 많은 사람들이 장애인 예술교육을 하는 저에게 대단하다는 말을 하곤 하는데, 물론 이 일을 하는 저 스스로가 자랑스럽기도 하지만 나를 그렇게 봐주는 것만이 제가 느끼는 자부심의 전부는 아니에요. 아이들을 통해서 얻는 기쁨이 저의 자부심이자 행복이에요. 저는 이 아이들을 통해 기다림을 배우고 참된 의미의 배려가 무엇인지 깨달아 가는 중인 것 같아요. 그래서 이 아이들과 함께 하기 위해 날마다 도전하며 배움의 삶을 살고 싶은 것이 저의 소망입니다.
마지막으로 이연숙 강사님에게 ‘예술교육’이란?
오아시스.
예술교육은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해요. 무엇을 이루고 끝내는 것이 아이라 그 안에서 감정, 생각 등을 무한대로 표현을 할 수 있는 하나의 오아시스가 아닐까 생각해요. 그리고 이것은 저에게 생명수이자, 제가 살아 갈 수 있는 버팀목이에요.
아이들과 만나다보면 머리 보다는 마음으로 다가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된다며 절실함을 담아 말했다. 교육에 앞서 아이들과 진정한 소통을 위해서는 진실함이 필요하며 그렇게 다가 설 때 비로소 아이들이 다가와 품에 안기고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고 말하던 이연숙 예술강사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인터뷰가 시작되고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그녀의 눈빛 속에서 사라지지 않던 간절함. 그것은 아마도 장애아동들이 세상과 소통할 수 있게 다리가 되어 주고 싶은 그녀의 간절한 마음 때문이 아닐까. 소리치고 품에 안기고 도망가기를 반복하는 아이들, 그들의 세계에 귀 기울이며 또 다른 예술 세계로 안내하는 이연숙 예술강사의 마음에 항상 생명수가 넘쳐나길 바래본다.
이연숙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무용과 학사, 체육학과 석사과정을 마쳤다. 졸업 후 공연활동과 함께 노인대학, 학교 등에서 무용교육을 했다. 2007년부터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예술강사로 장애아동들을 만나고 있다. 걱정 반 설렘 반으로 시작했던 아이들과의 만남은 세상으로부터 닫힌 마음을 열어주고,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과 움직임, 표현들은 세상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을 버리고 마음의 문을 열어주었다. 지식을 넘어 마음으로 만나기 위해 오늘도 변함없이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영상 _ 윤영욱 (미디어 아티스트)
사진 _ 빈흥선 (마루스튜디오)
이선영 _ 트러스트무용단
현재 트러스트무용단에서 창작활동과 예술교육을 병행하며 활동 중이다. 예술교육의 전반을 담당하며 예술가가 가르치는 예술교육이라는 관점으로 아동 및 청소년, 장애인을 위한 무용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단원들 교육과 더불어 현장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mbc417@hotmail.com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