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교육 현장에는 자신만의 교육철학과 소신을 가지고 열정을 불태우며 활발하게 활동하는 많은 분들이 있습니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문화예술교육의 가치와 힘,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와 삶의 모습을 인터뷰어의 시각에 담았습니다.
문화예술교육 현장을 가득 채우고 있는 다양한 생각과 시선, 움직임이 일곱 빛깔 무지개처럼 고스란히 드러나길 바라며, 지금 만나러 갑니다!
김옥희 예술강사가 진행하는 무용수업을 참관하기 위해 서울 대원외고를 찾았다. 이곳은 한국의 입시교육을 둘러싼 쟁점들이 다루어질 때마다 빠짐없이 등장하는, 그 정점에 위치한 학교들 중 하나일 것이다. 약간의 긴장감을 어깨로 느끼며 교정에 들어서자 점심시간이 막 끝났는지 교정에서 볕을 쬐는 학생들이 여기저기 보였다. 수업이 진행될 건물 5층에 위치한 무용실로 안내를 받고 얼마 후 학생들이 문을 열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삼십 여명의 남학생, 여학생들이 왁자지껄 떠들고 있었는데 어느새 수업이 진행되고 학생들은 줄을 맞추어 서서 자연스럽게 김옥희 예술강사의 수업에 집중하고 있었다.
“발레는 긴장 속에 최고의 선을 추구했다면 현대무용은 긴장과 이완 속에 자기 몸을 통제하고 해방감을 얻는 자유로운 춤입니다.”
그는 한손에는 마이크를 들고 설명하는 동시에, 학생들 앞이나 뒤에 서서, 또는 그 사이로 다니면서 자신의 위치를 수시로 바꾸었다. 마치 고정된 공간 배치를 거부하며 감각이 깨어나도록 끊임없이 변화를 이끌어내려는 듯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무용실 공간을 종횡무진하며 학생들에게 쉼 없이 말을 걸고 몸을 움직여 시도할 수 있도록 열정적이고 역동적으로 수업을 이끌어갔다. 앞쪽 교탁 주변에서 시작된 이 수업은 마지막에는 문이 있는 뒤쪽에서 인사를 나누며 끝났다. 학교 안에서 어김없이 지켜지는 앞쪽 교탁과 그 이하 학생들의 자리라는 공간배치가 이 수업에서만큼은 흔들려 사라진 상태랄까. 김옥희 예술강사의 수업시간이 그렇게 마무리 되고, 인터뷰가 이어졌다.
몸은 언어가 되고 대화가 되고 놀이가 되어
오늘 수업은 무엇에 중점을 두고 진행되었는지 궁금하다.
오늘 수업은 연간계획안 중 현대무용부분이다. 현대무용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테크닉의 원리들을 경험하고 그것을 일상의 춤들과 연결해보는 수업이다. 학생들이 많이 접하는 대중적인 댄스의 움직임도 예술무용의 원리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을 몸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하고, 동시에 역사적인 배경 설명과 그 안에서 예술은 무엇을 추구 했는가 등의 질문들을 하며 생각하는 기회를 갖는 시간이었다. 이 수업은 1학기에 발레수업으로 시작해 현대무용으로 연결되는데, 지난 한 학기 내내 힘든 발레수업을 하면서 누적된 경험과 그 연속성 안에서 학생들이 몸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자기 몸을 이해하고 자기 몸과 만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예술강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 학생들과 만나게 된 계기를 듣고 싶다.
30대에는 공연예술 현장에 있었고, 그 후 대학에서 무용 전공자들을 가르쳤다. 그러던 중 내 안에 많은 질문이 생겼다. 이들은 왜 춤을 출까? 나에게 춤은 무엇일까? 왜 춤을 ‘추지’ 않고 끊임없이 기능을 ‘습득’해야 하는지, 또 나는 왜 그것을 가르쳐야 하는지 등과 같은 회의가 들었다. 그러던 중, 자기 몸에 대한 고민, 삶에 대한 갈등을 겪고 있는 한 친구와 만나 대화를 나누면서 춤으로 풀어냈는데 그 후 많은 변화를 겪었다. 무용이란 나로부터 시작해서 내 몸을 알고 나를 발견하는 시간이 되고 이것이 쌓여 기능으로 익혀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용 전공자 뿐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몸에 대한 원초적인 예술매체로서 무용을 경험하고 공감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전공자가 아닌 일반인들을 만나고 싶다는 바램을 갖고 있던 차에 예술강사 제도를 알게 되었고 2007년부터 시작하게 되었다. 그런데 막상 현장에 나와 보니 무용수업은 댄스를 배우는 시간, 이런 공식이 대체로 학교 현장에서 무용수업에 대해 갖는 일반적인 기대치였다. 첫해 나갔던 학교에서 대부분의 아이들은 “춤추기 싫어요.” “몸 움직이기 싫어요.”라는 반응을 보였었다. 하지만 조금씩 마음이 통하면서 몸도 따라와 주기 시작했다.
이 수업이 다른 수업과 차별점이 있다면 어떤 부분일까.
2009년 처음 이 학교에 왔을 때 무용을 통해 (전공자가 아닌 일반)학생들을 만나겠다는 의지가 컸던 만큼 두려움도 컸다. 그런데 이 수업의 의미나 가치를 오히려 아이들을 통해 알게 되었다. 학생들이 무용수업에 대해 쓴 글 중에 ‘내 몸을 알아가기’라는 표현이 있었다. 예술교육으로서 무용수업은, 학생들에게 무용배우기가 아니라 무용을 통해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그런데 중요한건 학생들이 내 몸을 모른다는 것이다. 움직임을 조절하고 통제하는 내 몸의 감각능력. 나의 몸을 열고, 내 몸이 다른 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고, 내 몸으로부터 나를 생각할 수 있게 되는 것, 이때 비로소 생각과 더불어 표현이 나올 수 있다. 내 몸을 알게 되었을 때 몸은 언어가 되고 대화가 되고 놀이가 되어 예술무용에도 과감하게 도전하게 된다. “저는 몸이 뻣뻣해서 무용을 못해요.” “저는 발레하는 몸이 아니예요.”라고 하는데 발레하는 몸이기 이전에 ‘몸’이어야 한다. 그 부분이 핵심이 되어, 내 몸을 알아가고 조절하면서 자기를 실현해나가는 것, 이 과정을 체험하고 또 일상과 연계해보도록 하는 것이 예술교육에서 무용수업이 갖는 의미이고 가치라고 생각한다.
그 동안 교육현장에서 만나온 학생들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많은 학생들이 신체의 불균형이나 두통, 요통 등 통증의 경험을 가지고 있다. 자기가 가진 통증을 호소하는 정도는 그래도 어느 정도 자기 몸에 대한 지각능력이 있다는 의미다. 중요한 건 내가 어떤 상태인가를 느끼는 몸이어야 한다. 내가 어느 줄에 서 있는지, 옆에 누가 있는지, 이 순간 내가 뭘 하고 있는지 이런 것을 알아차려야 내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런 의식이 없으면 내 몸이 어디에 있어도 상관이 없게 된다. 내 몸을 먼저 지탱해야 규칙 안에 서로 협업이 가능해진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열 시간 이상 같은 자세로 의자에 앉아있는 생활을 한다. 그 중 한 시간 주어지는 무용수업에 오면 산만할 수밖에 없다. 의자를 떠났으니까 마음껏 뛰고 장난치고 싶어 한다. 그럴 때 아이들에게 규칙을 알려주고 그것을 지켜준다면 훨씬 더 자유롭게 춤추고 대화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존중하고 인정하고 어우러지는 훈련
무용은 중간 매체 없이 오롯이 내 몸으로 표현해야하는 장르이다. 학생들의 자발적 참여가 무엇보다 필요할 텐데 어려운 점은 없나?
아침 첫 수업에 문을 열고 들어오는 친구들의 몸이 가장 어렵다. 깨어난 지 불과 한 시간 반 만인 아침 8시 20분에 첫 수업으로 무용을 시작해야하는 건 공포에 가깝다. 무겁고 졸린 몸을 이끌고 들어오는 학생들에게 어떤 말을 걸어서 오늘의 수업을 이끌어낼 것인가가 관건이다. 아이들은 자신의 얘기와 상관없는 건 재미없어한다. 어떤 즐거움으로 그들을 열어주면 그들의 몸이 움직일까 하는 것이 항상 고민이다. 그들의 몸 상태라든지 일상생활에 대한 말 걸기를 시작하면 아이들은 참여하게 되고 그 안에서 이미 움직임은 다양하게 발현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학기 초반에는 “오늘은 몸이 안 좋아서 수업을 못해요.”라고 말하던 학생들이 하반기쯤 되면 “몸이 안 좋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라고 물으며 먼저 다가온다.
지향하는 예술교육의 철학이랄까, 예술교육이 나아갔으면 하는 방향에 대해 듣고 싶다.
예술강사를 하면서 학생들이 말을 잘 들어주면 그 친구가 예쁘고 그렇지 않으면 속상해진다. 하루살이에게도 그 하루가 힘들듯 어른들만 사는 게 힘든 건 아니다. 이 친구들에게도 매 순간을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수많은 선택과 판단을 해야 하고 자기 입장을 이야기하고 행동해야한다. 그 순간 어떤 행동이 수업을 진행하는 나에게 불편하게 느껴졌을지 모르지만 모든 생명은 살아 움직이느라 고생하고 있는 게 아닐까. 자꾸 잘잘못만 판단하려고 하는데 그들의 모든 순간이 살아내기 위한 움직임이 아닐까. 그렇다면 친구들의 조그만 실수도 미워할 일이 아니고 실수로 볼 일도 아니다, 라는 것을 시간이 꽤 지난 다음에야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친구들이 자기 색깔, 자기다움을 못 찾아내고 있다는 점이다. 항상 눌려있고 자신 없어 하고 자신을 조절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다. 무용은 스스로 자기다움을 찾아가는, 몸으로 만들어갈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길이라고 생각한다. 자기다움을 찾으면 그 다음 타인에 대한 존중이 생긴다. 타인의 몸짓과 나의 몸짓이 다름을 지켜보고 인정해주다보면 내가 못해도 불안하지 않게 된다. 무용수업 안에서 자기다움을 찾고 더불어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가는 걸 보면서 결국 나를 인정하고 친구들을 인정하면서 어우러질 때 비로소 편안한 시간, 행복한 순간을 맞게 됨을 발견한다. 이런 부분이 삶으로 확장되고 지속될 수 있도록 작게는 무용수업 안에서 훈련되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다양한 수업과정을 진행하면서 인상적인 순간이나 기억에 남는 경험이 있다면?
한국 궁중무용 수업을 진행하던 때인데, 민속무용인 탈춤 등과 비교하면 궁중무용은 다가가기 힘든 예술이다. 한국 궁중무용이 갖는 감수성, 철학 등을 알고 오행의 원리, 몸의 원리를 찾아가는 것에 아이들은 그다지 흥미 없어한다. 수업을 진행한 후 다시 아이들에게 궁중무용을 소개하기는 쉽지 않겠다는 좌절감에 빠져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궁중무용에서 원을 돌며 추는 회무를 진행하던 중 한 친구가 “선생님 제가 도니까 우주도 같이 돌아요.”라는 말을 했다. “제가 돌았는데 전체가 다 돌면서 제가 굉장히 커지는 느낌이에요.” 그 순간 그 친구는 자기 몸의 몰입상태, 몸과 정신이 하나로 만난 상태를 경험한 것이다. 그 후 아이들 사이에서 ‘우주랑 함께 돌았다’는 말이 번지면서 엄청난 호기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수업을 하기 전에 먼저 나 자신이 예술강사로서 확신과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항상 고민에 빠진다. ‘이건 반응이 없을 텐데 다른 걸로 바꿀까, 아니 아이들에게는 어떤 체험이 될지 모르잖아.’ 그런데 섣불리 이건 아이들에게 너무 힘들고 재미없을 거라고 속단할 문제가 아니었다. 각각의 무용마다 갖고 있는 원리와 의미들이 분명하다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는 것을 그 때 알았다. 그 경험을 통해 많이 반성했던 기억이 난다.
틀에 박힌? 늘 역동적인!
예술강사에 관심을 갖고 있는 분들과 공유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예술수업을 한다는 건 항상 창의적인 순간이자 나를 실현하는 순간이 되어 스스로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이 되어야 그 다음을 이어나갈 수 있다. 예술교육자로 학교에 오다보니 학교가 직장인양 틀에 박히게 되는 것이 두렵다. 몸을 움직여 수업을 한다는 것은 내가 항상 능동적으로 아이들을 만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데 틀에 박히기 시작하면 몸이 귀찮아지기 시작한다. 인간은 어쩔 수 없이 편한 것을 찾고 틀에 맞추려고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아이들을 만나는 설렘과 즐거움, 그것이 행복한 순간이라는 것을 잊지 않으려 노력한다. 어떤 것이든 고정하거나 획일화하지 않고 항상 역동적으로 삶을 바라보고 대하는 태도가 예술 안에 있다. 그 본분을 잃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 요즘 나 스스로 경계하려한다.
사회 안에 ‘예술강사’라는 역할이 존재한지는 얼마 되지 않아 선례가 없기 때문에 힘들었던 부분들이 있다. 예술교육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제도적인 장치가 만들어지지 않으면 지난 십여 년 간 많은 분들의 노력도 사라져버릴 수 있다. 예술교육이 안정적으로 지속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수업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일 년에 열 번도 되지 않는 수업 안에서 학생들이 체험하고 변화되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현장에는 여전히 많은 불안정한 요소들이 있는데 예술교육이 학교 안에 안착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는 강사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수혜를 받고 있는 학생들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김옥희 강사님께 ‘10대’란?
알록달록 컬러사탕 같다.
다양한 색깔과 달달하고 새콤한 맛. 10대들은 다양함 그 자체이다. 물론 수업시간에 학생들이 바르게 정렬해있는 것이 나에게는 안정감을 준다. 하지만 10대들은 그게 잘 되지는 않는다. 그 자체로 자연스럽게 볼 수 있게 될 때까지 나에게는 시련의 시간이었다. 한편으로는 그들을 통제하고자 하는 마음을 버리지만 또 한편 통제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하는 훈련이 필요했다. 예술은 자유롭게 스스로 규칙을 만들고 또 그것을 다시 허무는 과정이다. 10대는 그런 예술로 가장 많은 경험을 할 수 있고, 가능성을 꽃 피울 수 있는 대상이기 때문에 가장 만나고 싶고 함께 하고 싶다. 10대는 항상 반짝반짝하다.
김옥희
이화여자대학교 무용과를 졸업하고 무용수이자 안무가로 공연예술 현장에서 활동했다. 대학에서 무용전공자 수업을 하며 춤에 대한 회의와 몸에 대한 깨달음(?)으로 무용전공자가 아닌 일반 학생들을 만나기 위해 2007년 예술강사를 시작했다. 춤을 배우는 수업이 아닌 자신의 몸을 알아가고 그것을 자유롭게 사용할 줄 아는 무용수업을 추구한다. 오늘도 10대들과 예술교육으로 만나며 아이들의 일상을 발견하고 그것을 몸으로 표현 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가며 알록달록하고 달달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영상 _ 윤영욱 (미디어 아티스트)
홍은지
다양한 공연방식을 고민하고 고안중인 공연예술 연출가. 얼라이브아츠 코모(alivearts co_mo, collecors of moments)에서 다양한 분야의 아티스트들과 함께 순간을 채집하고 그 흔적을 담아내고자 노력하고 있다. <벙어리시인> <카페더로스트> <야만적 낭만> 등을 연출. eufy6542@hanmail.net
저희 복지관에 출강중이신 김옥희 선생님을 여기서 뵈니 정말 반갑고 멋지네요!
항상 이용자들과 함께 녹아들어 즐거운 수업 만들어 주시는 선생님~ 감사하고 응원합니다! ^^
저도 우주와 함께 돌면서 커지는 기분을 느껴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