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시 서구 관저동에 위치한 해뜰마을 어린이 도서관. 한자리에 모인 주부들의 웃음소리가 창문을 넘어 들려 올 정도다. ‘여자 셋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는 속담과 달리, 이곳의 분위기는 여자 여럿이 모여 뭔가 재미있는 ‘사건’을 펼칠 듯한 분위기다.

 

공감과 해소의 한마당을 열다

 

대전지역을 중심으로 올해로 21년째 활동하고 있는 마당극패 우금치는 마당극의 대중화와 양식 정립, 그리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누구나 마당극을 즐길 수 있고 마당극을 통해 자기 표현을 할 수 있도록 문화예술교육을 펼치는 전문예술인단체다. 우금치는 마당극을 직접 무대에 올릴 뿐만 아니라 청소년, 어린이, 노인, 주부 등을 대상으로 마당극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우리 전통연희인 마당극을 즐기기 위해서는 직접 체험해 보고 겪어 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마당극 교육에 힘을 쏟고 있는 우금치는 지난 4월부터 관저동 해뜰마을 어린이 도서관을 이용하는 주부들을 대상으로 ‘살림하는 여자들의 수다로 만드는 마당극 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이 강좌의 선생님이자 마당극패 우금치 단원인 이신애 강사에게 주부 마당극 교실을 운영하게 된 까닭을 물어 보았다.

 

“어르신이나 학생 등 일반인 대상 마당극 교실을 진행해 보면,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 자체가 저희에게 큰 깨달음을 주곤 합니다. 마당극이라는 것이 어떤 힘이 있는 것 같아요. 자기 이야기를 하게 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웃음과 공감으로 들어줄 수 있게 만드는 힘 말이죠. 주부 대상 마당극 교실은 이번에 처음 운영하는 것인데요. 공감과 해소, 자기 표현이라는 점에 있어 어머니들은 다른 어떤 분들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함께하세요. 저 또한 주부이자 엄마로서 살림하는 여자들을 위한 자기 표현의 장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었는데, 해뜰마을 어린이 도서관의 주부 마당극 교실이 바로 그런 현장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내 안에 숨겨진 흥과 끼를 찾아서

 

주 1회 열리는 주부 마당극 교실은 이제 6개월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올 12월 예정된 해뜰마을 어린이 도서관 문화제에 마당극을 공연하는 목표를 갖고 있는 주부들. 오늘 강좌에서 준비된 주제는 ‘소원을 말해봐~’이다. 엄마이자 아내로 살아가며 ‘나 자신’의 꿈은 잊어버린 채 바쁘게 지내는 주부들에게 그녀 자신들만의 소원을 묻고 이야기해 보는 시간이다. “이런 행위는 엄마나 아내가 아닌 나 자신의 꿈을 돌아 보는 계기도 되고요. 큰 목소리로 발성하며 자신의 뜻을 조리 있게 전달하는 ‘사설 풀기’ 교육이 되기도 합니다.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이야기할 땐 목소리가 커지고 기쁨이 넘치잖아요. 그런 활기를 관객에게 전달하는 것이죠.” 이신애 강사의 설명이다.

 

종이 위에 소원을 적는 것만으로 이미 두 눈이 반짝반짝, 얼굴에 미소가 감도는 마당극 교실의 그녀들. 하지만 나와서 소원을 말해 보라 하니 쉽지만은 않은 듯하다. “제 소원은…! 어… 음, 그러니까요…” 초두는 힘차게 떼었지만 어쩐지 말이 나오지 않는 순간, 이신애 강사가 기운을 북돋운다. “자, 소원을 말하는 목소리가 이 창문을 지나 저어~쪽 마을까지 닿도록. 창문을 뚫는다는 생각으로 편하게 말씀하세요. 고민하지 말고!”

 

이내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한 번, “제 소원은!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나만의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마음껏 책을 볼 수 있는 곳 말이죠!” 묵은 체증을 풀어내듯 크게 내지르는 소원풀이에 얼굴이 환해지는 그녀. 귀 기울여 듣고 있는 교실의 다른 주부들에게서 탄성과 박수가 터져 나온다. “맞아~” “나도 그랬으면 좋겠어!” 마당극을 만들어 가는 연습 과정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일인 마당극 한 편씩을 무대에 올린 듯한 느낌이다. 소원을 말하고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는 사람들은 작은 무대의 연희자이며 그 이야기를 들어 주는 다른 사람들은 추임새를 넣으며 공감하는 감상자가 된다.

 

“마당극 교실은 즐거워요. 제 안에 이런 끼가 있었나 생각하게 되기도 하고. 이곳에서 마당극을 만들면서 엄마나 아내가 아닌 제 이름을 찾은 것 같은 기분이에요. 다른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어서 좋고요.” “다른 주부 모임에 가면 애들 이야기, 남편 이야기밖에 안 해요. 정작 우리 자신 이야기를 하자면 ‘무슨 얘기 하지?’ 싶은 것이, 할 말이 없는 거에요. 그런데 마당극 교실에선 연극 이야기를 할 수 있잖아요. 다른 모임보다 훨씬 생산적이고요.” 주부들의 소감은 우금치의 마당극 교실이 어떤 의미를 가진 곳인지 솔직하게 드러내 준다. 이들에게 마당극 교실은 ‘나 자신’을 찾게 해 준 계기, 예술을 통해 창조하는 기쁨을 느끼는 현장인 것이다.

 

 

창작의 즐거움을 널리 더 널리

 

“저희 극단의 소망이 있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마당극의 즐거움을 알고, 같이 만들어 나갔으면 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연희자가 될 수 있거든요. 왜냐하면 각자의 가슴에 담은 이야기는 모두 고유의 가치를 갖고 있기 때문이에요. 누구나 자기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어 펼칠 수 있도록 마당극의 저변이 보다 넓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저희 우금치도 열심히 작품을 하고, 마당극 교육에도 나서야지요.” 이신애 강사가 마당극과 함께하는 앞으로의 소망을 밝힌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만의 무대에 선 주인공이다. 마당극 본연의 의미는 너른 터전에서 모두가 ‘계급장 떼고’ 흥겹게 어우러지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 마당극패 우금치와 함께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어울리는 즐거움을 느끼고, 나의 이야기와 목소리를 통해 무언가 창조해 내는 즐거움을 더 많이 느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가져 본다.

 

글.사진_ 박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