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횡성에서 이른 새벽에 출발한 스물 한 명의 학생들. 다른 날보다 일찍 일어났기에 피곤할 법도 하건만 아이들의 눈빛은 초롱초롱하다. “와~ 진짜 크다!” “이게 모두 다 임금님의 집이었단 말야? 집안에서 길 잃어 버리겠다!” 경복궁 앞에 선 그들의 목소리에 한껏 설렘이 묻어난다.

 

한복려 명예교사와 떠나는 시간여행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 사업지원 신청을 했던 인연으로 오늘 이 자리에 초대된 갑천중학교 전교생과 교사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문화예술 명예교사 한복려 선생과 함께하는 아주 특별한 하루다. 한복려 명예교사는 중요무형문화재 제38호 ‘조선왕조 궁중음식’ 기능보유자로 사단법인 궁중음식연구원 이사장이기도 하다. 선생의 수려한 솜씨는 우리에게 한류드라마 ‘대장금’, ‘식객’등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궁궐에서의 하루’를 모토로 경복궁 경내를 둘러보고 맛과 멋, 오행의 기운이 녹아 있는 우리나라 궁중음식의 참맛을 맛볼 수 있는 기회. 학생들의 가슴이 두근두근 설레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고운 미색 저고리에 남빛 치마를 받쳐 입은 한복려 명예교사가 등장하자 학생들은 마치 ‘아이돌’이라도 등장한 듯 즐거워하며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고 박수와 환호로 선생을 맞이했다. “오느라 고생들 많았지요. 반가워요. 오늘 하루 여러분들과 함께 궁궐에서의 특별한 추억을 만들었으면 좋겠네요.” 한복려 명예교사의 다정스런 인삿말이 이어졌다. 이날 ‘특별한 하루’ 명예교사 수업은 경복궁 수정전 주변을 돌아보는 궁궐 견학과 자경전에서의 수라 예법 강의, 이후 한복려 명예교사와 함께 율란과 송편을 빚어 보는 궁중음식 만들기 실습, 마지막으로 학생들이 직접 만든 떡과 간식을 들며 궁중예절과 잔치 이야기를 듣는 시간으로 구성되었다.

 

 

임금님의 밥상 앞에서 문화를 만나다

 

한복려 명예교사는 학생들에게 단지 궁중 음식문화뿐 아니라 멋과 격식, 그리고 우주의 원리가 담긴 우리 전통문화의 진면목을 느끼게 해 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다. “궁중음식은 왕족을 위한 음식인 동시에 최고의 예와 문화가 담긴 식문화의 정수라고 할 수 있어요. 건강에 해가 되는 음식은 아무리 혀 끝에 달아도 올리지 않았으며, 품위와 격식이 없는 음식 역시 허락되지 않았어요.” 수라상 하면 보통 화려한 산해진미를 연상하기 쉽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이야기다. 예절과 문화, 품위가 있는 건강하고 담박한 요리, 조화로운 정성이 담뿍 담긴 음식이 바로 궁중의 음식이다.

 

경복궁 자경전에 학생들을 위한 수라상이 차려진 가운데 임금의 복장을 한 학생과 상궁 복장을 한 학생들이 수라상 주변으로 자리를 잡았다. “임금님은 식사를 하실 때도 법도와 예를 지켜서 잡수셨어요.” 세 개의 상에 밥과 국, 반찬, 국수와 죽 등이 놓여진 수라상을 바라보는 학생들의 눈빛이 초롱초롱하다. 인솔 교사들도 직접 실물로 수라상을 본 것은 처음이라며 깊은 관심을 나타냈다. 수라상 앞에서 앉아 있는 임금 역할과 상궁 역할의 학생들은 친구들과 눈을 맞추며 의젓한 표정을 짓는다. 난생 처음 입어보는 붉은색 곤룡포, 녹색 당의가 어색할 법도 하지만, 마음은 이미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날아가 궁중 문화에 흠뻑 젖어 있는 모습이다.

 

법도에 맞춰 순서대로 상을 물리며 한복려 명예교사는 수라상의 원리와 궁중 식사예절을 가르쳤다. 늦더위가 남아 있을 무렵이라 운집한 취재진과 학생들에게 이야기를 건네는 선생의 콧등에 구슬땀이 맺혔다. 하지만 선생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꼼꼼한 강의를 전했다.

 

 

마음으로 정성을 빚어 곱게 전하다

 

비빔밥으로 점심식사를 하고 학생들이 이동한 곳은 국립고궁박물관 내 수라간. 수라간은 우리나라 전통음식조리를 직접 실습해 보는 곳이다. “너, 송편 만들어 본 적 있어?” “아니. 없어.” “나는 만들어본 적 있는데~” 와글와글, 학생들은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이곳에서 갑천중학교 학생들은 꽃송편과 율란 만들기를 배웠다. 고운 색으로 물든 송편 반죽과 삶은 밤, 송편 소로 준비된 깨와 콩이 놓여진 조리대 앞에서 학생들은 떡과 과자의 유래, 그리고 추석에 송편을 먹는 까닭을 배우고, 이어 직접 송편을 빚어 다과상을 나누었다.

 

“나보다 송편 더 잘 빚는 학생에겐 특별한 상을 줄게요. 그럼 제가 한 번 만들어 볼 테니 보셔요.” 한복려 명예교사는 학생들에게 농담을 건네며 송편 빚는 모습을 시연했다. “아이, 오늘 잘 안 되네. 상 받아 갈 학생들 많겠는걸요~” 뒤이어 선생의 유머가 이어지자 학생들 얼굴에 큰 웃음이 번진다.

한복려 명예교사는 오늘 특별수업을 위해 강의 외에도 또 다른 선물을 준비했다. “우리가 빚은 꽃송편과 율란을 예쁘게 포장할 수 있는 보자기와 상자를 준비했어요. 오늘 실습한 것을 부모님께 가져다 드리세요. 옛 어른들은 멀리 다녀올 땐 반드시 부모님을 위한 선물을 준비하라고 하셨습니다. ‘엄마, 아빠, 제가 이것을 만들었어요’ 자랑도 하시고, 오늘 배운 것들을 집에 가서 전해 드리며 즐거운 시간 가졌으면 좋겠네요.” 고운 홍빛으로 물든 보자기와 한지 상자. 아이들의 가슴과 머리를 채우는 지식을 전할 뿐 아니라 가족에게도 멋진 추억이 될 특별수업을 준비한 한복려 명예교사의 마음이 오롯이 전해졌다.

“앞으로 밥 먹을 때마다 수라상을 생각할 거에요. 어떻게 먹는지, 그리고 무엇을 먹는지에 따라 내가 왕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느꼈거든요.” 참여 학생의 한 마디가 오래도록 뇌리에 남는다. 앞서 가는 명예교사의 지혜와 마음이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생생하게 전해진 현장, 한복려 명예교사와 갑천중 학생들이 함께 한 궁궐의 하루는 정녕 특별한 하루였다.

 


 

글_ 박세라 사진_ 김병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