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 농사를 배우다 ① 쌈지농부 · 논밭예술학교 탐방 기사보기
문화예술, 농사를 배우다 ② 국내외 문화예술-도시농업 사례 기사보기
미국의 백악관 뒤뜰에 텃밭을 만들어 어린 학생을 초대해 먹거리 교육을 하고, 영부인인 미셀 오바마가 텃밭교육의 전도사가 되었다는 것은 이제 새로운 일도 아니다. 국내에서도 학교 텃밭이 생태교육의 일환으로 점차 늘어나고 있는 추세에 있다.
텃밭 가꾸기는 끝없이 되풀이 되는 자연계의 순환을 이해하게 되는 좋은 경험이다. 생명의 성장을 직접 몸으로 체험하면서 아이들은 한 개의 작은 씨앗이 다시 새로운 생명을 담은 여러 개의 씨앗으로 변화하는 대자연의 원리를 자연스럽게 알게 되고 이를 경이롭게 받아들이게 된다. 계절의 변화에 민감해지고, 땀의 의미와 수확의 기쁨, 감사의 마음과 나눔의 환희를 경험하게 된다. 아이들의 건강에서 오감체험은 물론 밥상머리 교육에서 삶에 대한 태도를 기르는 것까지, 텃밭을 통한 교육이 문화예술교육의 새로운 레퍼토리로, 통합의 주제로 활용될 수 있을까? 텃밭에서 크는 아이들의 모습 속에서 그 답을 찾아본다.
최연소 꼬마농부의 성장기
남편과 내가 헤어진다면 그 이유는 TV가 될 것이 분명했다. 주말에 눈뜨면서부터 잠들기 직전까지 TV 붙박이로 사는 꼴을 더 이상 눈 뜨고 봐줄 수가 없었다. TV를 깨부술까도 생각했지만 차마 그러지는 못했다. 대신 그냥 떨어뜨려놓기로 했다. 주말이면 나갈 핑계를 찾았고, 소비가 아닌 생산을 택했다.
처음엔 친구의 텃밭에 놀러 가서 막걸리나 마시고, 콧구멍에 바람 좀 넣고 오는 게 다였다. 그러다 본격 도시농부 대열에 들어서게 된 때가 우리 아이 돌 무렵 즈음이다. 백일 지나고부터 밭을 출입한 아이는 첫돌 무렵 내 품에서 기어 나와 밭으로 들어갔다.
자식농사도 농사라고, 밭에 나와 내가 하는 일은 애 보는 일이다. 내가 구사하는 농법은 ‘태평농법’이다. 말 그대로 태평하게 키운다. 아주 위험한 것, 가장 최소한의 것만 마련해주고, 그냥 풀어놓는 거다. 유기농 농사가 그렇듯, 투입과 개입은 최소로 한다. 그렇게 두기만 해도 아이는 자라고 창조한다. 밭고랑 사이를 기어 다니다가 궁금하다 싶으면 상추와 깻잎 따위를 뜯어 먹고는 했다. 언젠가는 아이가 부추 꽃을 뜯어 먹는 걸 보았다. 어른들도 아이를 따라 먹어보고 부추 꽃의 매력적인 맛을 알았다. 우리는 아이에게서 그 맛을 배웠다.
돌이 지나 20개월 될 즈음, 아이는 ‘호모 파베르(도구의 인간)’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호미질은 졸업한 지 오래고, 자기 몸보다 훨씬 큰 괭이질은 흉내를 제법 낸다. 누가 일부러 가르쳐주거나 도움을 주지도 않았다. 어른들이 하니까 그대로 따라서 하는 거였다. 호미 든 꼬마인 우리 아이는 텃밭계의 신동으로 꽤나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자연과 생활, 배움이 하나로 어우러지다
아이들은 자연 속에서 계절이 바뀌고, 해가 바뀔수록 진화를 거듭한다. 자유롭게 배우고 어울리고 창조하는 아이들 앞에 관망하던 어른들이 오히려 배우고 느끼는 게 많다. 요즘은 생활과 놀이와 배움과 예술이 일체화된 자연놀이가 한창이다.
아이들을 보면 ‘자연에서는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가 될 수 밖에 없구나’를 깨닫게 된다. 거추장스럽기만 한 신발은 벗어 던지고, 맨몸, 맨손, 맨발로 흙과 시내를 누빈다. 지렁이와 함께 흙침대에 드러눕는 것은 기본이다. 어른들은 지렁이에 기함해도 아이들은 지렁이가 들고 나는 구멍을 따라 다니느라 바쁘다. 아이들은 물고랑을 파는 토목공사도 벌였다가, 배가 고프면 자연 된장국을 끓인다. 흙은 된장이요, 돌멩이는 채소요, 나뭇잎은 푸성귀다. 가을 기운이 제법 나는 백로 전까지는 밭에 딸린 시내에서 잘 놀았다. 우리가 새참을 먹으면 아이들은 그 그릇들을 모아다가 설거지를 한다. 돌멩이로 돌담을 쌓아서 커다란 싱크대 겸 풀장을 만들고, 풀잎을 뜯어 수세미를 삼는다.
아이들은 자연에서 크고 배우고 놀고 창조한다. 기획되지 않은 자유 속 태평농법으로 임할 때 창조의 능력이 극대화된다. 개입이 없으니 자유롭고, 부족하니 창조가 절로 되며 오히려 풍요를 부른다. 그 자체로 생활이고 문화이며 예술이다.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일상과 맞닿아 있다. 소비하는 인간이 아니라 생산하고 창조하는 인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모든 것이 소비로 치환되는 이 시대 아이들에게 자연이라 함은 수목원이나 산림욕장, 놀이는 테마파크나 수영장, 배움은 체험농장 등에서 얻는 것이 전부다. 이는 또 하나의 소비문화가 되기 쉽다.
흙을 만나는 것이 단발 이벤트나 체험이 아니라 생활이다 보니 모든 게 자연스럽다. 밭에서 자란 아이들은 대부분 가리지 않고 잘 먹는다. 자주 보고 만지고 냄새 맡고 맛보는 만큼 채소를 잘 먹게 된다. 특히 철이 든 제철채소를 먹을 수 있다는 것, 채소의 맛을 제대로 배운다는 것은 아주 매력적이다. 유기농으로 재배한 제철 채소는 채소 본연의 모습과 맛을 간직하고 있다. 이렇게 철이 든 음식은 가공을 최소화하여 뿌리부터 껍질까지 통째로 먹는 게 최고다. 그 자체로 온전한 에너지이기 때문이다. 길러서 갈무리하고, 요리하고 먹는 과정까지 하나로 연결되고 통합되어 아이들에게 ‘온전한 경험’을 겪게 한다.
창작이 숨쉬는 텃밭에서 본질을 구하다
일, 놀이, 배움, 그리고 생활이 일체화되는 문화는 참 귀하다. 요즘엔 이 모든 것이 분리되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는 서둘러 텃밭을 만들거나 농촌체험을 위해 지방으로 떠나고 아이들은 방과 후에 창의력을 ‘배우러’ 놀이학원에 가고 편식을 개선하겠다며 요리교실에도 나간다. 일상은 증발됐고, 이 모든 것들이 더 세분화되고 더 다양하게 소비의 대상이 되었다.
무릇 예술이 그러하듯, 생산자와 소비와의 관계가 멀어지면 기본과 본질에서 멀어지게 마련이다. 생산과 소비의 거리를 줄이고 본질을 탐구해야 한다. 현재로서 가장 좋은 대안은 텃밭이라고 생각한다. 본질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그 동안 관행적으로 믿고 있었던 편견을 깨는 역할은 예술이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게을러야 사는 예술가들과 태평농법을 구사하는 텃밭은 결합의 여지가 많고 서로 상생할 확률 또한 굉장히 높다. 그래서 나는 창작을 갈구하는 예술가들을 창작이 ‘난무하는’ 텃밭으로 초대하고 싶다.
글_ 에코칼럼니스트·(주)꼬마농부 공동대표 김연희
사진_ 에코블로그ecoblog.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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