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대연동 철탑마을 우암공동체를 가다


 

부산 도심에 자리잡은 대연동 우암공동체는 철탑이 있는 풍경 덕분에 ‘철탑마을’이라는 별명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곳은 1970년대부터 정착하기 시작한 무허가 주택 53세대가 모여 사는 작은 마을이다. 우암공동체가 자리잡은 땅은 대학이 소유권을 갖고 있으며 곧 재개발이 될 예정이다. 비록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마을이지만, 이곳은 주민 스스로 지역을 지키며 더불어 사는 공동체의 진정한 의미를 보여 주는 곳이기도 하다. 문화예술을 통해 주민들은 마을에 대한 애정을 공고히 하고, 서로 배우고 익히는 가운데 우암공동체를 ‘꿈의 커뮤니티’로 키워나가고 있다.

 

 

우리 동네는 우리 스스로 가꿔나간다

 

우암공동체는 20년 전부터 주민 스스로 조직을 만들어 매달 마을 대청소를 하고 주민총회를 열어오고 있다. 삶의 터전이 위협받고 있다는 위기의식 때문에 시작한 일, 주민들은 함께 모여 마을에 대해 고민하고 이곳을 보다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우리 힘으로’ 한다는 것에 가장 큰 의미를 두고 시작한 마을 만들기 작업은 외부인이 몰래 버리고 가는 쓰레기 투기 문제를 해결하고, 낙후된 마을의 청소년과 고령화 거주자를 보살피는 목적을 가졌다.

“너와 내가 아닌 ‘모두’가 함께한다는 것, 즉 마을 주민 모두가 이웃이 아니라 ‘가족’이 된다는 뜻입니다. 서로의 형편을 이해하며 기쁨과 아픔을 같이 나누고 서로 돕는 것이죠. 뿐만 아니라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기 위해 주민 각자가 해야 할 책임과 의무도 같이 공유하고자 했습니다. 외부의 지원이 하나도 없는 데다 연세가 많은 어르신도 계시고 다들 생계에 바빠 마을 가꾸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가난해도 씩씩하게 우리 마을을 만들자는 것이 저희의 생각입니다. 모두가 한 식구처럼요. 모두가 이곳에서 오래 즐겁게 살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이 큰 힘이 됩니다.” 우암공동체의 살림을 맡고 있는 마을위원회 손이헌 집행위원장의 설명이다.

마을 위쪽 공터엔 그림이 그려진 합판 울타리가 자리잡고 있다. 정성스레 꾸며진 울타리는 마을 주민들이 직접 합판을 모으고 그 위에 그림을 그린 것이다. 몸이 불편한 어르신들도 기꺼이 울타리 만들기에 참여했다고 한다. 인근 지역에 사는 청소년 자원봉사단이 함께 그림을 그려 줘서 울타리가 더욱 멋있어졌다며 주민들은 함박웃음을 지었다. 울타리는 마을 주민들의 ‘갤러리’로 변신하기도 한다. 얼마 전 동네 사람들이 찍고 쓴 사진과 시를 울타리 위에 걸어 작은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또한 합판 울타리뿐 아니라 동네의 노후한 벽에도 알록달록한 벽화를 그려 마을을 예쁘게 꾸몄다. 따사로운 가을 햇살 아래 반짝반짝 빛나는 마을 벽화가 다정하게 느껴졌다.

 

골칫덩어리 쓰레기가 마을의 보물로

 

우암공동체의 해묵은 고민 중 하나는 인근 지역 주민들이 폐휴지와 대형 쓰레기를 무단으로 투기하는 일이었다.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이라고 안내문을 붙이기도 했고 철조망을 쳐보기도 했지만 쓰레기와 폐휴지 무단투기는 끊이지 않았다. 정기적으로 마을청소를 해도 쓰레기는 자꾸 불어나기만 했다. 주민들은 애물단지인 폐휴지와 대형 쓰레기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고심하다 ‘자원 재활용을 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마을 사람 모두가 힘을 합쳐 쓰레기 재활용에 나섰다. 파지, 헌옷, 공병 등 알뜰하게 분리된 쓰레기는 전기와 수도 등 마을 공과금을 내는 데 유용하게 쓰인다. 그리고 철거대상 지역이라 개보수가 쉽지 않은 마을을 위해 길을 닦고 미관을 정리하는 등 유지보수 재원으로도 사용된다.



동네 사람들이 일일이 분리하여 정돈한 폐품은 마을회관 뒷편에 깔끔하게 자리잡고 있다. 동네 골칫덩어리가 이제 마을을 살리는 귀한 존재가 된 것이다. “여기가 우리 마을 보물창고에요. 저희들 살림이고 재산이죠. 주민 모두가 구슬땀 흘리며 함께 분류하고 정리하는 폐품은 그야말로 우리들의 보람과 결실입니다.” 우암공동체 마을위원회 최동식 조직부장은 ‘돈으로 따지면 얼마 안 된다.’고 쑥스러워하면서도 주민 모두가 힘을 합쳐 꿈을 일궈내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동네의 단점을 장점으로 바꾸는 마을 사람들의 노력은 이뿐만이 아니다. 우암공동체 사람들은 ‘달동네’ 대신 ‘별동네’를 만들어 가고 있다. ‘달동네’라는 단어는 달이 어느 지역보다 가깝게 보이는 산동네를 말하는데, 철탑마을에서는 달보다 별이 더 가깝게 다가온다. 산마루에 위치하고 있어 다른 곳보다 하늘이 가까이 보이는 우암공동체는 맑은 공기와 때묻지 않은 자연환경을 갖고 있다. 맑은 공기와 장수하늘소를 만날 수 있을뿐더러 밤에는 도심에서 보기 드문 은하수와 별들, 그리고 반딧불도 발견할 수 있다. 마을 사람들은 폐품으로 버려진 망가진 의자를 고쳐서 마을 공터에 놓고 마을 주변으로 산책로를 정비했다. 이들은 의자가 놓여진 공터를 작고 소박한 공원으로 만들었다. 밤이 되면 이곳에 주민들이 앉아 정담을 나누고 별이 총총한 하늘을 바라본다고 한다.

 

 

누구나 환영하는 ‘열린 마을’로 변신

 

벽화가 그려진 마을 회관은 마을 입구에 자리잡고 있다. 이곳은 주민들의 쉼터이자 소통의 공간이다. 몸이 불편한 동네 어르신들이 마을 회관에서 식사를 해결할 수 있도록 공동체에서 식재료를 구입, 조리하며 직접 재배하기도 한다. 마을 구석구석 알뜰하게 꾸며진 텃밭에는 주민 개개인이 소비하는 채소뿐 아니라 마을 공동체를 위한 채소들이 자라고 있다. 또한 연령별로 돈독한 친목회를 운영하기도 한다. 마을 회관은 친목의 장소이자 같이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는 ‘밥상 공동체’의 장이었다. 우암공동체 사람들은 수시로 밥을 같이 먹으며 자연스레 마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의 삶과 고민을 공유하고 있다. 불안정한 주거 환경과 가난이 지역 주민을 위협하고 있지만, 이들은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더 나은 방향을 모색하고 실천한다.

홍수희 마을위원회 여성부장은 “여기가 내 고향이고 아이들을 키운 곳이잖아요. 무조건 여기를 떠날 생각만 할 것이 아니라 살기 좋은 곳, 살고 싶은 곳으로 만들어야죠.”라고 말한다. 마을 큰 마당에 나무를 심고 공원을 꾸미며, 오솔길을 내는 것 모두 마을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이라는 것. 앞으로 이들이 가진 큰 바람 중 하나인 ‘함께 살 수 있는 공동주택’ 설립을 위해 지금부터 마을 구석구석을 하나 둘씩 살기 좋게 고쳐 나가겠다는 것이다.

주민들이 대개 고령이며 생계에 바쁘다 보니 마을을 정비하는 작업은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이들은 밥과 꿈, 그리고 삶을 나누며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현대 사회는 공동체보다 개인이 우선되는 편의성 위주의 사회다. 아파트 생활에 익숙해진 핵가족이나 독신 가정에게 이웃과의 연대나 ‘우리 동네’라는 의미는 멀고 낯설기만 하다. 하지만 우암공동체 사람들에게 이웃, 그리고 우리 동네는 연약한 개인에게 힘을 더해 주는 존재다. 지역 주민들은 손수 마을을 꾸미고 쓰레기 속에서 보물을 찾아냈으며, 풍물놀이와 디지털카메라 사진 찍기, 벽화 그리기 등 삶 속의 예술을 배우고 실천한다. 개인이 잘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행동하는 것이다.

최근 우암공동체는 ‘열린 마을’을 목표로 배려가 있는 마을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다. 외부인에게 폐쇄적이었던 마을을 누구나 찾아오고 편안하게 쉬다 갈 수 있는 곳으로 바꾸고자 하는 것이다. 별을 볼 수 있는 마을공원과 산책로를 외부인에게도 개방하기로 했고, 내년 봄에는 누구나 따뜻한 차 한 잔을 즐길 수 있는 노천 카페를 열고자 한다. 비록 넉넉하지 않은 살림이지만 나눔을 실천하고 싶다는 우암공동체 사람들. 소박한 꿈이 무르익는 ‘철탑마을’ 우암공동체의 노을이 무척이나 곱다.

 

 


 

글.사진_ 예정원 부산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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