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제남초교 오일주 교장의 연극교육 현장


 

현실과는 다른 또 하나의 삶이 존재하는 공간, 연극무대. 지금까지 누군가의 아내로, 누군가의 엄마로만 평범하게 살아온 중년 여성들의 일상이 무대를 만나면서 변하기 시작했다. 진정한 ‘나’를 만나고 또 다른 희망을 꿈꾸게 된 사람들. 그 작은 변화의 시작은 자신의 재능을 아낌없이 나누고 공유하고자 했던 한 사람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한여름 태양처럼 뜨거운 ‘왕초보’들의 열정

 

오랜 장마가 물러가고 난 뒤 연일 30도를 웃도는 폭염이 찾아왔다. 가만히 있어도 이마와 등에 금세 땀이 촉촉하게 배어 온다. 하지만 이런 한여름 무더위도 무색해질 만큼 뜨거운 열정으로 가득한 현장이 있다고 하여 한달음에 강원도 인제까지 달려갔다.

 

지난 7월 19일 오후 2시, 강원도 인제군에 위치한 인제실내체육관에서는 무대 의상까지 완벽하게 갖춰 입은 배우들이 더위에도 아랑곳 않고 한창 연극 연습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그런데 뭔가 조금 색다르다. 배우부터 스태프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중년의 여성들. 게다가 무대 위에서 살짝 실수를 했을 뿐인데도 수줍게 웃는 모습이 전문 배우들은 아닌 것 같다. 알고 보니 인제군 여성단체 회장들의 모임이라고 한다.

 

무대 경험이라고는 전혀 없는 평범한 주부들이 돌연 연극배우의 길로 입문하게 된 것은 이들이 올해 ‘제16회 강원여성대회’에서 연극을 선보이기로 했기 때문. 하지만 연극 초보들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 지가 막막했을 터이다. 이에 연극의 기본기는 물론이고 연출과 각본을 맡아서 도와 줄 능력자가 절실했다. 회장단은 강원도 인제군 인제남초등학교의 오일주 교장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다. 젊은 시절부터 연극을 사랑해 왔고, 연극 활동 경험이 풍부한 오일주 교장이야말로 이들에게 꼭 필요한 멘토였다.

 

문화예술 사랑이 활짝 꽃피다

 

오일주 교장은 여러모로 문화예술과의 인연이 깊다. 젊은 시절 연극무대에서 활약했으며 강원도 연극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또한 지금은 한국연극협회의 감사로 활동 중이다. 인제남초등학교가 ‘예술꽃 씨앗학교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서 주관하는 학교문화예술교육 활성화 사업. 1인 1예능 교육을 통해 학생들의 감수성을 키우는 프로그램‘로 지정된 데에는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인식과 열의가 남다른 오 교장의 영향력이 컸다.

 

처음 인제군 여성단체 회장단으로부터 연극 교육 제의를 받았을 때 오일주 교장이 흔쾌히 수락할 수 있었던 것은 이렇듯 문화예술을 향한 깊은 관심과 애틋한 시선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지역의 문화를 더욱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지역의 어른들이나 지도자들이 이러한 재능 나눔에 앞장서야 한다는 것이 오 교장의 생각이다.

 

“가까운 일본에서는 지역축제에 그 지역 어른들이 솔선수범하여 전통예술과 문화를 선보이지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어른들보다 젊은이들의 활동이 더 눈에 띕니다. 화천의 ‘낭천별곡’이나 강릉의 ‘오독떼기’, ‘관노가면놀이’와 같은 지역의 향토적인 축제는 지역 어른들이 계승, 발전 시켜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고요. 사라져 가는 지역문화를 위에서부터 지켜 나가야지요.”

 

지역의 문화예술을 발전을 위해 자신의 재능을 기꺼이 나눠주기로 결정하고 바로 각본 작업에 들어간 오일주 교장. 그렇게 해서 탄생한 작품이 바로 <덕산리 아기 울음소리>다. 저출산 시대 출산장려의 중요성을 알리는 내용인 이 작품은 누구에게나 쉽고 재미있게 와 닿는 내용으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역시 연극을 많이 접해보지 않은 보통 주부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하자니 대본 연습부터 쉽지 않았다.

 

 

연극 교육을 통해 샘솟는 자신감

 

오일주 교장은 여러 가지 어려움도 많았지만 보람이 더 크다고 말한다. “우리 연극팀이 평상시에 대사를 많이 연습 해보지 않았고, 연극이라는 분야를 처음 접해보는 것이니만큼 대사 리딩 하는 방법이 서툴렀습니다. 그래서 대사 중 일반 대화를 자꾸 삽입하거나 평상시 말버릇 등이 고쳐지지 않는 점이 어려웠지요. 그러나 대사를 할 때 토속적인 방언과 같이 녹여내고 무대에서 동선으로 세부적인 부분까지 잘 소화하다 보니 지금은 주제에 부합하는 무대예술을 표현하는데 매우 익숙해졌습니다. 이러한 성장이 아주 보람차고 흡족합니다.”

 

2주라는 짧은 기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발성과 대사 톤 등을 여러 차례 교정하면서 주민들의 실력은 나날이 발전했다. 연극 교육을 하는데 있어서 가장 주력한 부분 역시 ‘자신감 있는 표현력’이었다고 오일주 교장은 말한다.

 

우리들의 연극은 삶의 활력소!

 

7월 20일 철원에서 열리는 제 16회 강원여성대회를 하루 앞두고 마지막 연습이 한창인 현장을 찾았을 때, 매일 연습한 덕분인지 아마추어 배우들의 연기는 매우 자연스럽고 훌륭했다. 하지만 오일주 교장의 연기지도는 날카롭고 세심했다. 무대 동선은 물론 배우들의 손동작, 대사 톤까지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주시하는 그의 모습에서 연극을 향한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비록 10분 남짓의 짧은 작품이지만 그 안에 응축된 배우와 연출자의 노력이 고스란히 마음으로 전해지는 것 같았다.

 

더운 날씨에 잠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휴식을 취하는 오일주 교장과 연극팀원들. 쉬는 시간에도 여전히 연극 이야기에 폭 빠진 그들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서로 본명이 아닌 배역 이름으로 부르고 있는 것만 보아도 느낄 수 있었다. 직장생활 하랴, 살림 하랴 바쁜 와중에도 매일매일 연습 하는 것이 큰 보람이었다고 말하는 주부들의 모습에서 자부심이 전해졌다. 연습을 마치면서도 오일주 교장은 무대에 오르기 전과 공연 중에 주의해야 할 점 등을 하나하나 일러주며 끝까지 배우들을 격려했다.

 

앞으로도 자신의 재능을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면 또 기꺼이 나눔에 나서겠다 말하는 오일주 교장. 그리고 이번 공연이 끝나면 작은 극단이라도 만들어 계속해서 연극을 하겠다는 연극팀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들의 삶에 또 다른 희망의 막이 오르기를 소망했다.

 


 

글.사진_이연하 강원지역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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