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공방이라는 이름의 예술가들

 

공방(工房), 공방은 말 그대로 풀이하자면 장인 공(工)자에 방(房)자 즉, 장인의 방이다. 사전을 찾아보면 첫째, 조선 시대에는 승정원에 속한 육방 가운데 공예, 건축, 토목 공사 따위를 관한 일을 맡아보던 부서로, 둘째는 조선시대에 각 지방 관아에 속한 육방 가운데 공예, 건축, 토목 공사 따위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부서라고 나와 있다. 단순히 장인의 방을 넘어선 국가예속 기관이라는 사실이 예전 국사 시간에 한 줄로 쓰여 있던 내용보다 새롭다. 그리고 갑자기 어려워진다. 공방은 그냥 뭐 만드는데 아니었어? 아니면 조금 더 붙여서 만들기 종류의 기능을 가진 장인이 작업하는 장소 정도? 그런데 그렇게 깊은 뜻이? 서울 구석구석에 있는 가구 거리에서 보던 그 숱한 공방은 뭐지? DIY는? 궁금증이 증폭되는 가운데 성북창작센터에서 매주 월요일마다 하늘공방이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그곳을 찾아가 보았다.

 

 

공방을 닮은 자매를 만나다

 

솔직히 특별한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우선 이런저런 기대를 하고 가면 필자가 투사한 의도로 밖에 글을 쓸 수 없을 것 같았다. 지역통신원으로서의 최대한 있는 그대로를 보고 기술하자는 뜻이 있었고 두 번째는 예술교육이 많았고 그에 따라 이어지는 전시회도 발표회에도 익숙했던 까닭이다. 더욱이 취재 요청 안에 하늘공방 전시회라는 취재 대상은 있으나 기획의도는 없으므로 일단은 부딪혀 보기로 하였다.
그리고 문을 열고 들어선 그곳에는 발랄, 청초 해맑은 비슷한 꼴의 두 여인네가 있었다. 하늘공방을 연 NNR의 정선주, 정선욱 작가였다. 둘은 자매였는데 조용히 도예를 하려던 동생 정선욱 작가를, 언니 정선주 작가가 NNR로 공공미술의 세계로 꼬드겼다고 한다. 웃음이 만연한 두 자매와 전시회장을 찾았다. 예쁜 조명과 아늑한 공간, 깨끗한 벽면에 그려진 연한 선의 그림들이 아기자기 하고 담백한 가구를 감싸고 있었다. 작은 화장대, 보물을 담는 책상, 자매가 마주보고 읽는 독서대, 거실 중앙에 당당히 놓인 LCD TV 거실대 등등 파스텔과 분위기 있는 커피색으로 은근하게 칠해진 가구들은 아마추어의 DIY 제품이 아닌 그야말로 가구였다. 나무의 고풍스러움, 아이와 어머니의 향기가 묻어나는 디자인, 정성까지 머금은 세상에서 볼 수 없는 가구였다.
이러한 가구에 때마침 같이 전시회장에 들어선 관람객은 아주머니 두 분이 눈을 떼지 못한다. 두 작가를 부여잡고 이것저것 묻는다. 인터뷰할 필요가 없었다. 그들의 대화를 인용해 그대로 옮겨본다.
관람객: 나무는 다 어디서 구했어요?
작가: 동네에서 버린 나무를 주어왔어요. 그 가구들을 디자인과 나뭇결에 맞게 잘라 드렸어요.
관람객: 그럼 다 공짜예요?
작가: 나무만 구해 오시면 재료는 거의 공방에서 제공해 드려요. 본인이 원하는 디자인에 필요한 문고리 같은 소품만 가져오시면 돼요.
관람객: 디자인은 어떻게 해요?
작가: 디자인은 본인이 필요하신 가구와 원하시는 디자인을 설명해 주시면 같이 상의해요.
관람객: 얼마나 만들어야 해요? 저희 같은 어머니도 괜찮은가요?
작가: 일주일에 하루 월요일 오후에 만나요. 어머니들은 괜찮은데 요즘 학생들이 바쁘더라고요. 중고등학생들은 학교 끝나고 이런저런 학원들도 많고 스케줄 맞추기가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많이들 오셔서 이렇게 만들어 가세요. 대신 주에 2~3회 정도는 방문해서 만드셔야 해요.
관람객: 그래도 돼요?
작가: 네, 성북예술창작센터 위층에 공방이 만들어져 있어요. 그곳에 가셔서 시간 날 때 오셔서 만드시면 돼요.
관람객: 사포질은 어떻게 해요? 직접 다 하는 건가?
작가: 직접 하셔도 되고요. 사포기계로 하기도 해요.
관람객: 그래요, 그렇구나.

 

지역민과 소통하는 예술

 

관람객들이 나도 한 번 해보고 싶다는 간절한 눈빛으로 자리를 떠난 뒤, 본격적인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정선주, 정선욱 작가가 소속된 NNR은 일러스트, 도예, 서양화 등 시각예술 작가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성북예술창작센터와 인연을 맺게 된 건, 작년 성북예술창작센터 1기 입주작가가 되어 지금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입주작가 기한이 끝난 다음 만들어진 공공역 예술 기반이 사라질까 우려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다행히 성북예술창작센터 담당자인 나영희 매니저님이 이러한 우려를 서울문화재단에 잘 전달해 주셨고 입주단체가 끝난 이후에도 프로젝트 정보제공과 지금과 같은 장소 제공 등의 후원을 해주는 등 다각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 NNR은 많은 공공영역의 예술 사업(고려대역 벽화, 마을문고 활성화 등)을 진행했다. 어떤 일화들이 있었는지 물었다. “주민 자치센터의 마을문고를 1년 동안 조사하고 나서 우리를 감시하는 사람으로 생각했는지 거부감을 갖고 주민센터 회장 대표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지 말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다른 마을문고 회장님들도 거부하셨죠. 그나마 단 한 곳이 우리를 받아 주셔서 마을문고 사용자들을 관찰할 수 있었어요. 유치원생들이 앉는 의자가 너무 높은 것을 발견하고 작은 의자를 만들어 제공하기도 했죠. 아이들과 함께 색칠하면서 엄마와 할머니, 동네 분들과 친해지기도 했어요.”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그 힘의 원천이 궁금해졌다.

NNR은 활동가도 교육가도 아닌 우리가 즐겁고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예술가이다. 그들은 자신의 정체성이 사라지지 않도록 현재 진행을 위해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힘은 그 마음에서 비롯되는 듯 했다. 2007년부터 본격적으로 NNR의 정체성을 고민하며 스터디를 꾸렸고 일주일에 한 번은 같은 시간에 모여 잔인할 만큼 신랄한 토론을 하고 있다. 또한 각 분야의 전문가에게 도움을 받고 있다. 현재 서양미술사를 훑고 미학을 공부하고 있다는 두 자매는 그 과정에서 상처를 입고 떠나는 참가자와 멘토도 있었지만 뿌리가 튼튼한 예술가로 성장하는 기회가 되었다고 말한다. 요즘 자매는 ‘리오타르’의 <지식인 종언>을 읽고 있다고 했다. 아직 문화예술교육프로그램 진행만으로 자족하는 팀들에 비해 앞서 가고 있는 NNR. 인문학적 토대를 튼튼히 쌓아 올리며 자신의 예술세계의 지향점을 발견해 가고 있는 NNR을 만난 건 무척 행운이었다. 그리고 NNR의 예술이 사유를 넘어서 하늘공방이라는 이름처럼 하늘이 품은 명제들을 찾아서 또 다른 성장을 하길 기대해 본다.

 

NNR 소개
NNR(Ne-Ne-Ro, 내내로)은 내내, 항상, 늘 이라는 의미를 가진 한국어 방언이다. NNR은 다양성과 분화의 과정으로 뭉쳐진 현대 사회에서 항상성을 가지고 작업하는 작가들의 구성체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NNR은 대도시 안에서 활동하는 동시대 작가들이 가지게 되는 고민과 자기성찰을 적극적인 소통의 방식으로 제시하고, 동시대 미술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 조사를 기본으로 구조적으로 탄탄한 작업을 진행시켜 대중과의 소통의 방법을 모색하고자 한다. NNR은 참여해 온 다양한 미술 및 비미술 활동을 통해 아티스트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발생시킬 수 있는 무수한 비공식적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지속적인 활동을 해왔다. 또한 소속 작가들은 시각예술의 공공성과 관련된 장소 특정적 미술(Site-specific art)에 대한 다각적인 실험과 토론을 통해 아티스트 공동체의 시각과 경험, 그리고 예술가들이 지향하는 바에 대해 동시대 미술 분야의 흐름을 가늠하며 끊임없이 진화하고 발전하고 있다.

 

정선욱은
단국대 도예학과를 졸업하고, 2010년_책만 빌려줄까?展 (갤러리 맺음, 서울문화재단지원, 한국), 2011년_taste text 展 (KAIST 경영대학 SUPEX 경영관, 이현갤러리 지원, 한국)외 다양한 전시를 했으며 현재 성북예술창작센터 1기 입주 작가, 화경 도예가회 회원, 아름우리 도예가회 회원이다.

정선주는
이화여자대학교 조형대학원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2002년_제 1회 개인전(한가람 미술관), 2012년_연결하기-설치구조물(고려대지하철역 설치, 서울문화재단 지원, 한국) 등 다양한 전시를 열고 있다. ‘성북예술창작센터 1기 입주 작가’, ‘서울문화재단 예술로 희망드림 꿈나무키움 멘토’로 활동하고 있다.

 

글_ 정진영 지역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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