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학교문화예술교육 문학창작분야 시범사업 수록작 (2)

1.

 

하얀 눈이 목련 꽃 눈송이처럼 앉아있다.

 

나는 낭랑하다는 18세 김준수다. 하지만 23일 후면 19세다.
결국 고3이 되어가는 지금, 시간들은 정말 빠르게 지나간다. 냉정한 겨울만큼이나…
길게만 느껴졌던 2년, 이렇게 소리 없이 지나가 버릴 줄이야!
야자를 마친 나는 바로 집에 가야 하지만 별로 가고 싶지 않다.

 

“오늘도 열심히 했니?”
그 한 결 같은 질문도 다정한 것만큼이나 잔인한 화가 솟구친다.
어쩌면,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내 자신이 집을 밀어버리고 싶은 가시방석 일지도…

 

나는 오늘 새로운 길목을 찾아 저벅저벅 향한다.
이 길로 가면 이제까지 다녔던 길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오늘은 이 길로 가야만 할 것 같다.

문득, 두렵다.
18년간 큰 사고 없이 보내온 나에게는 이런 작은 변화조차 도전이었던가!
그래도 이런 식으로 살고 싶지 않다.
내가 좋아하는 주희에게도 이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

 

‘좋아! 김 준 수. 넌 할 수 있어. 네가 새로운 길을 세워볼 것이다.’
시리게 맺힌 땀방울 그리고 주먹 쥔 손, 그 안은 공기 눅눅하다.
이 길 또한.
나 역시……

 

2.

 

수많은 시간은 삶이라는 그림자 안에 둘러놓은 시간 같다.
얼마나 반복해야 나의 무게가 나의 존재가 삶이라는 것을 알게 될까?
어렵다. 아직은 모르겠다.

 

얼마나 지났을까? 새로운 사건이 반겨줄 것만 같던 거리가 그저 차가운 한숨이 안경에 앉아 뿌옇게 맞이한다. 다른 길이란 이런 것인가?
그저 주저앉고 싶다. 울고 싶다.
내 눈 앞에서 깜빡이는 저 가로등마저 나를 놀리는 것 같다.
지금이라도 항상 그러하듯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객쩍은 말이나 하며 그냥 그렇게 살아가야 하는가?

 

따스한 공기가 감싸온다.
‘뭐지?’
허름한 우동가게가 있다.

 

양철 굴뚝에서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올라온다.
색 바랜 미닫이 문, 드문드문 노란 테이프로 새겨진 가락국수, 오랜 시간만큼이나 버텨온 그 간판을 그 한결 같은 그 곳처럼 멍 때리는 나.
손님으로 보이는 남자 한 명이 나오고 있다.
열리는 문틈으로 우동 냄새가 따뜻하다.

 

‘좋다.’ 하는 그 순간, 뇌리에 박힌 그 무엇!
무언가에 끌리듯이 우동 가게 안으로 들어와 있는 멍 때리는 나.

 

우동 가게는 생각보다 깔끔하다. 외부와 전혀 어울리지 않을 만큼 따뜻하다.
‘뭐지.’
이상한 기운이 느껴지는 순간, 누군가 내 어깨 위에 손을 올려놓는다.
“학생, 우동 먹겠나? 들어와 앉아보게.”
‘아니, 아니……. 저는 그냥.’
“오늘 면은 아주 좋군. 내가 오늘은 우동 한 그릇 대접해 주지.”
‘면이? 좋아, 뭐지 여기.’

 

이 아저씨는 어디서 나타난 거지. 온 몸에 털이 삐죽하게 선다. 이건 경고야. 아니 낯설음이다. 나갈까?
하지만 내 몸은 어느새 아저씨가 가리키는 곳에 앉아있다.
어릴 적부터 맛있는 음식 앞에 나의 코는 점령당해 있었다.

익숙함이란 가끔 두렵기도 하다.
그러하듯, 우동 냄새 어딘가에 내 기억은 조각처럼 사라지고 있었다.

 

“메뉴판?”
선뜻 받은 메뉴판을 보고 마시던 보리차 물을 뿜어 버릴 뻔 했다.
“크크큭 크-크크큭” 익숙한 풍경을 보듯 웃는 저 소리가 좋다.
“저기 아저씨, 이게 무슨 뜻인지.”
“아이고, 저희 가게는 특별한 메뉴가 없습니다.”
“저는 손님 여러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적당한 우동을 만들어드리지요.”
“적당한 우동이요?”
“네, 손님에게는 이제까지 살아온 삶이 항상 일정하지 않지요. 나는 그 손님의 인생을 사고, 손님에게 적당한 우동이 무엇인지 만들어 대접합니다.”
‘내가 살아온 삶!’
“저는 손님의 추억을 우동으로 대접해 드립니다. 어떠신가요?”

 

어느새 내 안에 웃음은 사라졌다. 내가 누구인지조차도 따뜻한 연기와 함께 사라졌다.
이 우동은 어쩌면 오늘 내 인생을 바꿀 선택을 할지도 모르겠다.
“아저씨 한 번 믿어볼게요.”
“네, 시작하세요.”
“저는 이제 고3이 됩니다. 솔직히 고3이라는 게 크게 와 닿지는 않아요.”
“그렇군……!”
“돌이켜보면 정말 빠른 날들이 지나갔는데 저는 모르겠습니다. 남들은 고등학교 가면 시간이 정말 빠르게 지나간다고 했는데 이제 고3이 되니 실감해요. 그 두려움이, 남은 시간 그리고 주변 시선……”
“음…… 그 기대가 너무 두렵습니다.”
“저희 집은 꽤나 잘 삽니다. 아버지는 회사에서 꽤 높은 자리에 계시거든요. 그런 집에서 공부 못하는 아들의 위치가 어느 정도겠어요? 집에 있으면…… 마치, 제 뒤에 가족 시선이 붙어있는 것 같습니다.”
“음-“ 어깨가 자꾸 내려간다.
“집에 있는 시간이 정말 불편합니다. 물론, 저에게 문제가 있죠. 2년 동안 고등학교 생활을 어물 저물 보낸 것 같습니다.”
“…….”
“차라리 남들처럼 공부에 빠지든지, 실컷 놀든지, 연애를 해보든지, 저는 그저 남의 시선만 눈치보고 부모님이 하라는 대로 맞춰 살아온 것 같아요.”
“차라리 하고 싶은 것을 맘껏 하면서 내 자신을 돌아봤으면 지금의 고민이 없겠죠. 지금은 제가 허무하게 보내온 그 2년이 후회스럽습니다.”

 

“그럼 학생, 아직도 그런 모습으로 살고 싶은가요?”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아니, 나의 고민조차 작게 느껴졌다.
“부모님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에게도 자신에게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가요?”
“물론 아니죠! 저도 친구는 당연히 있고,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고요.”
주인 아저씨의 짤막한 질문은 마치 나의 가슴을 크게 두드리는 것 같았다.
나는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지금으로서는 그저 그 사람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만 싶다.
그런데 무언가 빠진 느낌이다. 무언가…….
“그렇다면 노력해보세요. 손님에게 남은 시간이 고작 1년이 아니라 1년씩이나 남았다고 생각해보세요. 남은 1년마저 지금처럼 보내고 싶지는 않지요?”
사실이다. 나는 이대로라면 남은 1년마저 지금처럼 보내버릴 것이다.

 

3.

 

‘1년/ 일 년/ 365일’
모든 것은 숫자 위에 세상이 놓여있다.

 

드르륵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난다. 본능적으로 문 쪽을 본 나는 사람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다.

‘당황스럽다’ 내가 짝사랑하던 신 주 희.

 

주희는 언제나 항상 매고 있던 빨간색 머플러를 내리며 내 옆자리에 앉았다. 딱히 내 옆을 골라 앉았다기보다는 좁은 가게의 구조상 내 옆자리에 앉게 된 것이었다.

 

“여기 분위기가 왜 이래요? 히히.”
주희가 가게에서 한 첫마디였다.
나는 어쩌면 좋을까? 고민하며 그저 아저씨가 내준 물을 홀짝거렸다. 주희는 나를 알아채지 못한 것 같다.

 

“여기는 뭐 하는 곳이에요?” 식당 맞죠! 근데 왜 메뉴가 없죠?”
주희는 매우 흥미를 느낀다는 듯이 주인아저씨에게 물어봤다.
“여기는 손님 고민에 따라 우동이 달라지게 나옵니다.”
“오 오 오! 엄청 신기한! 요즘은 메뉴 없는 식당이 뜨나?”
그녀의 뜬금없고 어이없는 말에 나와 아저씨는 크게 웃어버렸다.

 

‘아랑곳 하지 않는 주희가 신기하다. 이 시간에 얘는 여기 왜 왔을까?”

 

주희의 특유의 밝음이 가게를 둘러쌌고, 나는 그런 활기찬 분위기 안에 즐거우면서도 씁쓸했다.

 

4.

 

이 공간 안에 그녀는 주위를 환하게 비추고 빛나게 하지만 그건 나의 어둠을 오히려 돋보이게 해 주었다.
그런데 난 봐버렸다.
그녀의 밝음에 비쳐지지 않았던 어깨 위의 답답함. 눈 밑의 외로움, 가슴 한 구석의 쓰라림을. 주희는 주인아저씨에게 자신의 고민을 들어줄 수 있냐고 물었다.
“그러게 학생.”
진지하지만 무게가 있는 듯 없는 듯 부담스럽지 않은 표정이다. 사람들이 여기 와서 말하는 이유가 어쩌면 저 아저씨 특유의 말투 때문 일지도 모르겠다.
“감사합니다.”
주희는 밝게 웃으며 고민을 들어달라고 말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쭉 도우미 아주머니와 지냈어요. 아빠는 판사여서 항상 바쁘셨고 엄마는 삼성병원 의사세요. 그래서 초등학교 때 부모님 참관수업에는 당연히 못 오셨고 졸업식도 못 오는 분이셨어요. 제가 몇 번 못 보는 가족이라도 저보다는 자기 일이 더 중요한 분들이셨어요.”
“음!”
아저씨의 짤막한 공감. 어쩌면 우리가 바랐던 것이 아닐까?

 

“어렸을 때 아니, 초등학교 때부터 알던 애들은 저를 부모님이 없는 애로 놀리더라고요. 아니라고 따지고 싶어도 화내고 싶어도 저는 도움을 청할 사람이 한 명도 없었어요. 차라리 도우미 아줌마한테 부탁이라도 해야 했었나? 그렇게 학교생활을 지내고 나서 내가 중3때 반장이 제가 너무 심한 언어폭력에 시달리는 걸 보고 담임선생님께 말했었어요. 학교폭력위원회가 열리게 되고 생각보다 일이 커졌어요. 이 일 때문에 부모님이 학교에 오셔야 하는데 부모님들은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려고 했어요. 자기는 바쁘다는 거죠. 이러고 책임만 피하고 있었지 저를 걱정해 주지는 않으시더라고요.”
“힘들었겠구나!”
“네… 지난 일이지만, 아직도 덜 익은 열매 같아요… 마치… 그래요.”
“그때 절 괴롭힌 애들이 무릎을 꿇으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그 애들 부모님들도 무릎 꿇고 있는데 그걸 저와 담임 선생님께서 처리해야 했었어요……. 솔직히 저로서는 감당하기 힘들어 기댈 사람이 필요했는데 그 역할을 담임 선생님이 대신 해주신 거죠. 너무 자존심이 상하고 과연 지금 같은 집에서 살고 있는 이 사람들이 내 부모님인가 했어요. 그런 생각을 아무리 해도 부모님은 일을 핑계로 저에게 괜찮은지 물어보지도 않았어요. 정말 1주일동안 방에 틀어박혀 울기만 했어요. 그래서 저는 지금 아빠 직장에서 가까운 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어요.”
“반대가 심했겠구나!”
“네. 처음에 혼자 살겠다고 했을 때는 엄청나게 반대 하셨죠. 아직 어린데 부모 없이 어떻게 혼자 사냐고. 그 말을 들은 제 심정이 어떨 거 같으세요. 정말로 어이가 없었죠! 그래서 소리쳤죠. 당신들 때문에 나가는 거라고 당신들과 같은 집에서 살고 싶지 않다고! 순간 실수했다는 걸 느끼고 얼버무렸죠. 그런데 부모님은 아무 말도 안 하시더라고요. 그러더니 미안하다 한 마디 툭 던지더니 며칠 후에 아파트를 잡아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우리가 너에게 너무 무심했던 것 같구나. 우리 잠시 떨어져 살면서 서로에게 서로가 얼마나 필요한지 느껴보자꾸나.’ 그렇게 지금까지 혼자서 살고 있어요. 근데 왠지 이제는 그렇게 혐오스러웠던 부모님이 그리워요.”
“근데 다시 그 커다란 집에 들어가는 내 작은 모습이 보여서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아요.”
“다시 들어갈 생각을 하니 힘든가 보군요.”
“네.”
긴 이야기 끝에 대답은 대롱 매달려 있는 감 같았다.
잠깐 동안 우동 가게 안에 싸늘한 적막이 일어나고 내 어깨를 시치고 지나갔다.

 

5.

 

덜 익은 열매를 먹고 있는 그 기분! 주희가 한 그 말을 계속 생각하게 된다.
덜 익은 열매 같다는 생각이 지금 우리들 아닌가.
우리들 그 무언가의 우리들…….

 

난 주희처럼 밝은 아이가 이런 고민을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다.
‘주위 사람들에게 계속 무시당하는 그런 삶! 어쩌면 주희와 나는 비슷한 고민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주희의 고민을 내가 과연 들어도 되는 걸까?
생각보다 다른 면의 주희를 보게 되니 왠지 죄책감이 들었고 그런 나를 자책하며 찬물을 벌컥 들이켰다.
“그럼 저는 두 분께서 주문하신 우동을 만들러 가 보겠습니다.”
그렇게 가게 안에는 주희와 나 두 사람만 남게 되고 어색한 정적만 흘렀다.
“어머, 너 준수 아니야?”
“어, 그러게 얼떨결에 네 얘기, 듣게 됐네! 미안.”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생각해서 한 사과에 주희는 그저 옅은 미소를 보이며 나에게 말했다.
“괜찮아, 나도 고민을 털어 놓게 되어서 마음이 놓여. 그리고 나의 고민을 들어줘서 기쁘다.”
“음, 어 괜찮다니 다행이네.”
사실 주희랑 나는 같은 동네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푹푹 찌던 올해 여름이었다. 너무 더워 아이스크림이라도 사러 갈까 하고 집을 나서던 때였다. 아파트 복도에 동그랗게 말려있는 생물이 고개를 들었고 그 생물의 입에서 나온 첫마디는 “같은 반이지? 신세 좀 질게!” 하며 내 집으로 달려 들어갔다.
주희가 복도에서 몸을 말고 있었던 이유는 집 열쇠를 놓고 나와서 열쇠 따주는 사람이 올 때까지 기다렸던 것이었다. 그러던 중 집을 나서던 내가 보였고 같은 반이라는 걸 알아채고 달려든 것이었다. 솔직히 이런 털털한 점이 내 마음을 잡아채갔다. 나라면 아마도 푹푹 찌는 아파트 복도에서 그저 쭈그리고 누군가를 계속 기다렸을 것이다. 그런 행동력 있는 모습이 항상 나는 부럽기만 했다.
“음. 고마워!”
주희는 갑자기 고맙다고 한다.
“야야, 뭘 어색해 하니? 솔직히 그때 여름 너 좀 의외였어.”
“아, 아 그래.”
“너 그때 날 잘 챙겨 줬잖아!”
“아… 오늘은 정말 우동 가게 들어와서 정말 다행이다. 솔직히 너 학교에서 그냥 별로 말도 없고 항상 남 얘기만 들어주잖아. 별로 튀는 점도 없고.”
“으음… 그냥 불편하니까.”

 

‘이제 어떡하지. 말을 계속 해야 하나.”

 

“준수야! 지금 니 컵 물이 넘쳐!”
아. 나 지금 물 따르고 있었구나. 컵에는 물이 살짝 넘쳐 흘렀고 나는 그걸 황급히 마시다가 사래에 걸려 얼굴이 시뻘개지도록 기침을 토해냈고. 그리고 그걸 보는 주희는 너무 웃긴지 나처럼 숨도 못 쉬고 웃고 있었다.

 

나의 그런 행동 덕인지 주희의 얼굴이 밝게 변하고 있었다…….

 

그 사이에 벌써 우동이 나와 있었고 그걸 받은 나와 주희는 살짝 놀라 말이 없어짐과 동시에 미지근한 미소를 띠며 우동을 받아 들었다.

 

“어떤가요… 맛은 괜찮은가요?”
눈을 쑥 내밀며 말하는 바람에 우리도 눈을 크게 뜨고 멍 때리고 있었다. 마치 잠깐의 시간이 멈추듯 그러했다.

 

아저씨의 말끝은 그렇게 정적이 흘렀지만, 이내 웃음이 나왔다.
아저씨의 물음에는 대답하지 않아도 되며 그렇게 묘하면서도 자연스러운 분위기가 이 가게를 둘러싸고 있었다.

 

6.

 

하얀 가락국수는 보통 때 먹던 국수랑 같았다.
하지만 시원하다.
자꾸 우동을 먹는데 가슴이 먹먹하다… 그동안의 가슴 아픈 쓰라림이 나아지는 걸까?
우동은 비어있었고, 나는 당장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만 같았다.
옆을 보니 주희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일어나 아저씨께 인사를 드리고 천천히 우동 가게를 나왔다. 또 그렇게 말없이 걸었다. 어색하지 않고 오히려 다정하게.
‘어쩌면, 갈 길을 알고 있는 듯이.’
아마 그녀는 그녀의 길을 찾았을 것이다.
내 입에서 나온 입김이 작은 눈을 감싸 그대로 사라진다.
검은 밤길은 하얀 안개로 변해가고 가로등 불빛도 하얗게 깜박거린다.

 

우동 가게도 점점 멀어졌고, 뒤돌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나와 주희는 조용히 걸었다.

 

집으로 들어오는 부모님은 “이 자식….” 입안에 맴도는 작은 돌멩이 같은 욕들이 튀어나온다.
그래, 너무 늦은 시간이고 화낼 만한 일이다.

 

“엄마, 다르다와 다른 길은 어떤 차이일까요?”
멍 때리는 엄마 그리고 동생, 아버지.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내일도 오늘 왔던 길로 다시 가보는 게 어떨까?
나는 아직 내 고민을 말하지도 못했다. 아니 했다. 그런데 남은 찌꺼기가 있다.

 

‘오늘은 도시 전역에 많은 눈이 내릴 것으로 보입니다. 주민 여러분께서는…….’
내리는 눈 소리 사이로 들려오는 방송.

 

7.

 

어쩌면, 길을 찾았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는 시간이 좀 더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좋은 아침. 그리고 저녁.
그곳에는 다른 손님이 있었다.
‘그들은 누구일까?’ 그 질문은 쇄기처럼 나에게 와서 대답한다.
‘너잖아.’
살면서 우리는 자신에게 질문하는 법을 모른 채 남의 시선만 의식하고 산다.
어쩌면, 우리들의 고민은 한낱 납작 엎드린 풀보다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이 고민은 나를 놔주는 법을 모르기 때문일지도, 어쩌면, 이것 또한 내가 잡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언제나 그렇게 하루하루 살아가는 시간 속에 연결 지어져 있는 또 다른 나와 누군가를 연결 지어 놓는 장난처럼…… 말이다.

 

나는 그 가게로 들어가지 않았다.
지금까지는 달라지기 위해서 내가 해야 하는 일을 밖으로 찾았다면, 이제는 다른 것과 다른 길에 대한 답을 나에게 묻고 있었다.

 

차가운 바람이 내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준다.
내 기분을 이해하는 차가운 바람이 기분을 으쓱하게 한다.

 

“……그날의 추억은 새로운 만남이자 새로운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강창훈

강창훈 _ 글
“대전 유성고 3학년 강창훈입니다. 남들과 마찬가지로 대학입시로 고생 중이죠. 현재는 가고 싶은 대학을 위해 힘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네요.”

 

이강현

이강현 _ 글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유성고등학교 이강현입니다.”

 


강창훈, 이강현 학생 인터뷰

1. 작품의 소재인 ‘가락국수’는 어떤 계기로 떠올렸나요?
강창훈_ 처음에는 국수집을 중심으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써보려고 했는데, 준수와 주희의 이야기로 압축 되었어요. 처음 글을 쓸 때, 글의 배경인 밤하늘을 묘사하는 게 기분 좋았어요.

2. 두 친구가 함께 글을 썼는데, 어땠어요?
강창훈_ 저 혼자 썼다면 아마 지금의 가락국수는 아니었을 거예요. 더 어둡고 칙칙했을 글이었을 텐데 강현이가 주희 부분을 맡아주어 지금처럼 부드러운 글이 완성되었어요. 지금은 혼자 글을 쓰고 있지만, 강현이의 감수성이 절실할 때가 많아요.

이강현_ 이야기를 만드는데 위태로운 순간들이 있었어요. 시험기간 인데다 핸드폰으로 의견을 나누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고, 1주일에 한번 만나기는 하지만, 역부족이었어요. 창훈이 형이랑 가끔 의견 다툼도 있었지만, 그래서 완성된 지금 훨씬 더 뿌듯해요. 선생님의 아낌없는 지원 덕분에 후반 수정도 원활히 할 수 있었고요.

3. 작품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이었나요?
강창훈_ 이 작품은 제가 고3이라 쓸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저 자신에 대한 메시지와 고3의 걱정이 해소되는 모습도 표현하고 싶었어요.

이강현_ 대한민국의 학생으로 살아가면서 생기는 고민들을 ‘우동가게’의 ‘아저씨’에게 토로하고, 그 아저씨가 그에 맞는 ‘적당한’ 가락국수를 내어 줌으로써 지친 마음을 위로하고, 응원하고자 했어요. 주인공은 주희와 준수이지만, 글을 읽는 독자들이 주인공이기도 해요.

 

2014 학교문화예술교육 문학 창작 분야 시범사업 참가 고등학생 인터뷰
http://www.arte365.kr/?p=39174
2014 학교문화예술교육 문학창작분야 시범사업 수록작 (1) 「변기맨이 된 남자」
http://www.arte365.kr/?p=39189

1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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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E 2015년 04월 13일 at 2:49 PM

    글을 읽으며 잠시 옛생각이 났네요^^ 두 분 모두 따뜻한 마음과 눈을 가진 작가로 계속해서 성장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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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E 2015년 04월 13일 at 2:49 PM

    글을 읽으며 잠시 옛생각이 났네요^^ 두 분 모두 따뜻한 마음과 눈을 가진 작가로 계속해서 성장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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