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낡은 듯한 청바지가 디자이너의 손길에 과감하게 두쪽이 난다. 복고풍 화이트 셔츠도 소매가 뭉턱 잘렸다. 과연 이들의 손에서 무엇이 탄생될까. 명예교사 이상봉 디자이너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학생들의 손놀림을 지켜보고 있다.

 

사랑은 함께할 때 더욱 아름다워진다

 

지난 7월 22일 금요일 오후, 강남구에 위치한 동덕여대 디자인센터. 실기실을 가득 메운 학생들은 설레는 마음으로 명예교사 이상봉 디자이너를 맞이했다. 문화예술 명예교사 프로그램 ‘특별한 하루’의 7월 테마는 바로 ‘아이들을 위한 아름다운 리메이킹’. 이상봉 디자이너와 패션디자인 전공 학생들이 캄보디아 미용 학교의 10대 학생들을 위해 의류 리폼에 나선 것이다. 학생들이 한 점씩 준비한 의류에 이상봉 디자이너가 기증한 의류와 원단을 더해 새로운 옷을 만들어(리메이킹), 정성스런 메시지와 함께 캄보디아에 보내는 것이 오늘의 미션.

 

이상봉 디자이너는 “대학 때 접했던 강사들의 특강이 참 좋았습니다. 전공 수업도 중요하지만 외부 강사의 강연에서 다른 세상을 만나고 새로운 시각을 가졌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명예교사가 사람들에게 ‘다른 세상’을 만나게 해 주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는데요. 제가 학생 때 특강을 통해 많은 영향을 받았듯 저 또한 학생들에게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명예교사 수업에 임하는 소감을 밝혔다.

 

학생들의 뜨거운 호응 속에 강단에 나선 이상봉 디자이너. “현재 지구에는 앞으로 3년 간 전혀 옷을 만들지 않아도 전 인류가 입을 수 있을 만큼 많은 옷이 있다고 합니다. 옷을 만드는 사람으로써 우리는 환경, 그리고 미래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리고 “리메이킹은 세계적 대세입니다. 환경 보호를 실천하는 것임은 물론 옷에 ‘하나밖에 없는’ 고유성을 부여하는 작업이 바로 리메이킹이기 때문입니다.”라고 이야기했다. 자신도 낡은 셔츠나 바지를 다양하게 리폼해서 입는다고 밝혔다. 이날 이상봉 디자이너가 입은 상의 역시 20년이 넘은 셔츠에 패브릭을 더한 것이었다.

 

“캄보디아에 보낼 의상이니만큼 한국적인 멋을 더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라며 이상봉 디자이너가 준비한 것은 특유의 한글 디자인이 담긴 원단. 뿐만 아니라 이상봉 디자이너만의 깜짝 선물도 준비됐다. 한글 흘림체가 아름다운 ‘김연아 티셔츠’, 그리고 한글 디자인 스카프와 넥타이 등이었다. 열심히 도전하는 사람을 위한 상품이라는 그의 설명에 학생들의 환호성이 터졌다.

 

 

생활 속 살아 숨쉬는 나눔의 가치

 

약 3시간에 걸친 제작이 시작되자 명예교사 이상봉 디자이너는 학생들 사이를 누비며 실전 지도에 나섰다. “아무리 실험적이고 멋스럽다 해도 실제 생활에서 입을 수 없는 옷이면 안돼요. 이 옷을 입을 사람들이 누구인지, 그리고 어떤 상황인지를 생각하세요.” 캄보디아의 10대 청소년이 입을 수 있는 옷이라는 기본 주제를 잊어서는 안된다는 이야기. 작은 부분까지 세심하게 챙기는 이상봉 디자이너의 가르침에 학생들 또한 진지한 모습으로 작업에 몰입했다.

 

“오늘 이 수업이 보다 특별한 까닭은 ‘나눔과 배움’이 함께 하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이중기부’라고 할까요? 제가 가진 재능을 기부하고, 그 재능이 다시 배움이 되어 학생들과의 작업을 통해 캄보디아 청소년을 위한 나눔이 되잖아요. 그래서 더욱 뜻깊은 자리인 것 같네요.” 이상봉 디자이너는 나눔은 순환할수록 더욱 커진다는 평소의 지론을 이야기하며 “오늘 저와의 경험을 함께한 학생들이 재능기부와 나눔실천을 생활화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소망을 밝혔다.

 

드디어 작업이 끝나고 작품 발표 시간. 학생들의 기발한 아이디어가 고스란히 반영된 작품들이 속속 선보였다. 한글 모티브를 적절히 이용하며 10대들의 감수성을 사로잡을 수 있는 발랄한 작품들이 많이 나왔다. 이상봉 디자이너는 ‘학생들의 수준이 높고, 좋은 옷을 만들고 싶다는 의욕과 성의가 보여 좋다’며 칭찬과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자기가 만든 옷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진짜 디자이너입니다.”라며 학생들에게 자신의 작품을 직접 설명하는 즉석 프리젠테이션을 제안한 이상봉 디자이너는 작품뿐만 아니라 프리젠테이션 태도 등에 대해서도 살아있는 조언을 건넸다.

 

뒤이어 이어진 학생 패션쇼, 자신이 만든 옷을 입고 나와 워킹하는 학생들의 모습에서 보람과 자부심이 느껴졌다. 이상봉 디자이너 또한 그 어떤 패션쇼에서 만났을 때보다 더욱 기쁘고 즐거운 모습이었다. 비록 조금은 서투르고 아마추어의 느낌이 나는 옷들이지만 세상에 단 한 벌밖에 없는, 사랑이 가득한 옷이기에 무엇보다 소중한 옷. 이날 명예교사 이상봉 디자이너와 학생들은 함께하는 리메이킹을 통해 세상을 따뜻하고 아름답게 만들어 주는 사랑을 가득 메이킹했다. 특별한 하루, 더욱 특별한 체험을 함께한 이들의 얼굴에 번지는 웃음이 나누는 사랑의 가치를 말해 주고 있었다.

 

 

글_ 박세라 사진_ 김병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