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 빛깔의 한복을 차려 입은 꽃처녀들! 푸르른 캠퍼스 잔디밭 위에서 그녀들의 웃음이 더욱 싱그럽다.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는 생소한(?) 이름의 대학생 국악그룹인 이들은 전남대학교 국악과 재학 중인 학생들. 박지선 씨(국악이론), 고윤아 씨(가야금), 이연우 씨(판소리), 김규리 씨(타악), 신지수 씨(타악) 등 다섯 명의 학생들이 펼치는 신나는 국악 이야기를 들어 보자.
국악그룹이 공자님을 만난 까닭
이들의 그룹명인 ‘화이부동’은 ‘논어’에서 나온 이야기. ‘다양한 인간의 특성과 차이를 인정하고 함께 공존하며 어우러진다’는 뜻을 갖고 있다. 아무리 봐도 요즘 젊은이들이 지을 만한 이름은 아닌 것 같다. 이 어려운 이야기를 모임의 이름으로 지을 생각을 하다니, 무언가 고집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어떻게 국악그룹에 공자님을 모시게 된 건가요?” 질문을 건네자 다섯 명의 학생들은 일제히 웃음을 터뜨린다. ‘화이부동’의 대표인 박지선 씨는 “보통 국악그룹이라면 다들 국악과 관련된 이름을 짓는데, 저희는 일반인들도 관심을 가질 만한 이름을 지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다름과 공존’을 뜻하는 ‘화이부동’을 저희 그룹의 이름으로 지었지요. 저희 그룹을 접한 어떤 분들은 ‘나이도 어린 친구들이 기특하다’라며 칭찬해 주시기도 하고, 다들 쉽게 기억해 주셔서 좋아요.”라고 설명을 한다. 국악 속에서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함께 공존하며 어우러지겠다는 뜻이 새겨진 이름인 것이다.
‘화이부동’의 시작은 깊은 고민에서 비롯됐다. 박지선 씨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다들 졸업 후엔 무엇을 해야 하나, 고민을 갖고 있었어요. 현실을 보면 국악은 전공자 외에는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할 정도였어요. 문화 소외계층이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였죠. 관객도 적고 취업기회도 많지 않은 분야가 국악이었지요.” 하지만 앉아서 고민만 할 순 없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있어 왔던 고질적 문제, 하지만 ‘현실을 어떻게 바꿔…’ 하면서 누구도 도전하려 하지 않던 문제였다. 이들은 ‘생각만 하지 말고 직접 현실과 부딪쳐 보자!’라고 뜻을 모은 후, 대중 속에 함께하는 국악그룹을 만들었다.
국악과 대중이 ‘더불어 한 길’ 걸어가도록
‘화이부동’의 첫 번째 공연은 작년 7월 전남대 캠퍼스에서 열렸다. ‘국악은 무료’라는 인식을 깨기 위해 입장료 3000원을 받았다. 그리고 관객을 위한 따끈한 떡과 차를 마련했다. 흔히 공연에는 필수적이라 하는 음향장비는 준비하지 않았다. “원래 국악은 음향장비나 마이크 앞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너른 마당에서 다 같이 즐기는 음악이니까요. 음향장비가 있으면 관객과 연주자가 더 멀어질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대신 관객을 30명 정도로 제한하고, 관객 바로 앞에서 연주를 선보였죠.”
첫 번째 공연에서는 연주뿐만 아니라 ‘더불어 한 길’이라는 코너도 선보였다. 관객들이 공연 중에 간단한 우리 노래를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국악을 보고 듣는 것뿐 아니라 직접 부르고 느껴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이들의 생각은 적중했다. 관객의 반응이 뜨거웠다. 단체관람객 중 한 팀은 공연 후 회식자리에서 ‘더불어 한 길’에서 배운 우리 노래를 다 같이 부른다는 후기를 보내 오기도 했다.
이렇게 시작한 공연은 입소문을 타고 지역방송과 언론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공연 섭외도 잦아졌다. 그리고 ‘화이부동’은 공연 외에 문화예술과 관련된 다른 일들에도 도전하기 시작했다. 이번에 선정된 ‘대학생 문화예술교육 자원봉사단’은 이와 같은 맥락이다.
다함께 어울림! 국악의 세계로
“공연 중 ‘더불어 한 길’을 진행하며 느꼈던 보람을 교육현장에서도 느끼고 싶었습니다. 국악을 널리 알리고자 하는 노력을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펼치고 싶었지요.” ‘화이부동’은 목포의 대안학교인 ‘꿈꾸는 요셉스쿨’과 서울 양원초등학교에서 국악 수업을 실시했다. 처음 해 보는 문화예술교육은 이들에게 더 큰 배움을 주었다.
“가르치러 갔다가 배우고 왔다고 해야 할 것 같아요. 수업 전 만들었던 커리큘럼이 얼마나 탁상공론이었는지 깨달았거든요. 그래서 모든 멤버가 모여 새롭게 커리큘럼을 만들고 수업 준비를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아이디어가 하나 탄생했다. 학생들이 ‘화이부동’에게 관심을 갖고 집중할 수 있도록 한복을 입고 수업하기로 한 것. 공연용 의상이 아니라 오직 수업을 위해 준비한 한복의 고운 빛깔에 학생들은 모두 매료되었다. 치맛자락을 만져보고 싶어했고 집에 가서 ‘한복을 사 달라’고 조르는 학생도 생겨났다. 학생들은 이들을 ‘분홍치마 선생님’, ‘초록치마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화이부동’의 멤버들과 더욱 가까워졌다.
‘화이부동’의 멤버 고윤아 씨는 문화예술교육 자원봉사를 통해 “어디서도 배울 수 없었던 좋은 경험을 얻었어요. 막연히 취직과 진로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현장에서 가르침을 통해 책임감과 실전 경험을 얻었지요.”라고 말한다. 김규리 씨 역시 봉사활동을 잊지 못할 것이라고 한다. “여태껏 저는 배우는 입장에만 서 봤는데, 가르치는 입장에 서 보니 또 다른 의미를 찾을 수 있었어요.” 신지수 씨는 이번 국악교육이 재능있는 어린이들을 발굴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으면 하고 바란다. “제가 바로 특기적성시간에 국악을 접하면서 전공을 결정한 경우거든요. 저희들의 수업을 통해 재능있는 학생들이 국악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더 큰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젊은 그들
“어린이들이 국악을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접할 기회가 많았으면 합니다. 마치 피아노를 배우듯 당연하고 손쉽게 국악을 배울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저희들이 그 역할을 담당해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할 거에요. 지속적인 공연과 교육을 통해서요.” 이연우 씨의 말처럼, ‘화이부동’은 연주와 교육을 통한 국악 저변확대에 더욱 힘쓸 생각이다.
‘화이부동’이 시작될 무렵 많은 사람들이 걱정도 하고 의문도 가졌다. 하지만 젊은 그들은 패기 하나로, 주변의 도움 없이 자신들의 힘으로 길을 찾아 나가고 있다. 주변 사람들의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연주로, 또 교육으로 사람들을 만나며 ‘화이부동’은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 가고 있다. 이들은 이제 사회적 기업으로 자라나는 ‘화이부동’을 꿈꾼다. 공연과 국악교육사업을 펼치며 체계적인 국악교육 프로그램과 교재를 개발하고자 하는 목표를 세운 것.
생활 속에서 만나는 국악은 그것에 닿는 길이 너무 멀고 힘들었다. 누구나 좋아하지만 가까이 할 수 없어 힘들었던 국악을 사람들에게 더 깊이 전하는 일, 그것이 ‘화이부동’의 변치 않는 목표다. 무대가 없으면 만들면 되고 교육이 없으면 가르치면 된다. 몰라서 못 들었다면 알려서 더 많이 흥겹게 누리도록 하면 된다. ‘화이부동’의 미션인 ‘국악을 알려라!’는 이렇게 하나하나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글.사진_ 정선희 광주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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