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미 커뮤니티 예술교육 연례컨퍼런스에 다녀와서

지난 11월 19일부터 22일까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제77회 전미 커뮤니티 예술교육 연례컨퍼런스(77th Annual Conference for Community Arts Education)’가 열렸다. 전미 커뮤니티 예술교육단체 국립조합(National Guild for Community Arts Education)이 주관하는 본 컨퍼런스는 ‘문화예술의 평생교육’을 지향하며, 관련 연구 결과 공유 및 네트워킹 기회 제공 등을 통해 커뮤니티 예술교육 단체의 생성과 발전을 지원하고 있다.

 

연례컨퍼런스

 

올해 컨퍼런스의 주제는 ‘예술교육의 영향력, 예술교육의 수요와 지원 확장, 그리고 지역 사회의 변화’였다. 이에 따라 국?공립 문화예술교육 운영기관 종사자, 민간 문화예술교육 단체 종사자, 문화예술분야 학계 전문가, 예술강사 등 각계각층의 인사가 참여하여 다양한 이슈에 대한 의견을 공유하고 토론했다. 참가자 중 절반 이상이 수년간 꾸준히 참석해온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본 컨퍼런스가 관련 분야의 지속적인 커뮤니케이션과 네트워크 형성의 장으로 자리매김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다양한 입장과 관심 주제, 그리고 소속과 신분이 공존하는 가운데 문화예술교육과 지역사회의 연결고리를 끊임없이 모색하고자 하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특히 이들은 각 지역사회의 발전을 위하여 예술 분야를 매개로 다양한 형태의 활동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같은 목적을 공유하고 있었다.

 

나흘 동안 진행된 컨퍼런스는 커뮤니티 예술교육 사례와 관련 연구 내용을 공유하는 세션이 주를 이루었고, 성공적인 자금 조달방법 등 문화예술교육 단체 실무자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정보에 대한 세션들도 눈에 띄었다. 그중 커뮤니티 예술교육 사례를 중심으로 인상 깊었던 몇 가지 세션을 소개하고자 한다.

 

노인 전수자, 오랜 이야기를 전하다

문화 전수자 프로그램(Apprenticeship Programs)_메인 예술위원회(Maine Arts Commission)

 

메인 예술위원회(Maine Arts Commission)의 노인 전통 문화예술 프로그램(Creative Aging and Traditional Arts Program) 디렉터를 맡고 있는 캐슬린 먼델(Kathleen Mundel, 이하 캐슬린)은 노인 문화예술교육 사례 공유 세션을 통해 그들이 진행하고 있는 ‘문화 전수자 프로그램(Apperenticeship Programs)’을 소개했다.

 

문화 전수자 프로그램(Apperenticeship Programs)
전제 : 노인은 풍부한 삶의 경험과 지혜를 갖고 있으며, 노인은 지역 사회의 좋은 자원이다.
참여 대상 : 지역 사회의 노인
실행 목표 : 노인의 사회 참여, 능력 개발, 삶 반추, 세대 간 의사소통 확대
– 노인에게 ‘가르칠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그들이 지역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에 대해 생각한다.
프로그램 사례
– 76세의 나무 조각가 노인이 두 명의 손녀에게 조각을 가르쳤고, 그중 한 명은 전문적인 나무 조각가로 성장했다.
– 81세의 노인이 나무 조각에 어릴 적 삶의 이야기를 남김으로써 역사를 시각적으로 기록했다.
– 소말리아 난민들이 전통 바구니 제작 방법을 전수할 수 있도록 관련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그들이 현지 언어를 습득 및 적응할 수 있도록 했다.

(※ 참고 웹사이트 : https://mainearts.maine.gov/Pages/Traditional/CreativeAging#)

 

캐슬린은 “현재 메인 주에는 위의 사례 이외에도 200여 개의 전수자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으며 이는 메인 주 내 5개 종족 사회의 전통문화를 유지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본 프로그램의 경우 문화 전수자의 예술 활동과 작품을 통해 개개인의 이야기는 물론 지역사회의 이야기를 함께 전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즉 문화 전수자 프로그램은 문화 전수자의 역할을 수행할 노인 매개자를 지속적으로 양성하고 지원함으로써 오랫동안 함께 살아 숨 쉬는 지역 사회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는 공동체적 의미도 조명하고 있었다.

 

예술가를 꿈꾸는 노인들의 공간

노인 예술가 공동거주시(EngAGE : NOHO Senior Arts Colony)

 

로스앤젤레스에는 시 정부‧은행 및 지역 부동산 전문가가 협업해 만든 ‘노인 예술가 공동거주시설(NOHO Senior Arts Colony, 이하 NOHO)’이 있다. 이 공동시설은 베이미부머 세대가 노인 인구로 전환되는 시기가 다가옴에 따라 노인 공동거주시설에 대한 시장 수요가 높아질 것이라 예상한 부동산 전문가의 아이디어로 탄생했다.
그러나 NOHO가 노인 예술가만을 위한 주거 공간인 것은 아니다. 본인의 의지만 있다면 예술적 기술 혹은 경험과는 무관하게 입주하여 예술 활동을 즐길 수 있다. 입주하기 위해서는 ‘NOHO에 들어오고 싶은 이유’를 기술한 에세이와 작품 포트폴리오를 제출해야 하지만, 전문 예술가가 아닌 경우 작품 포트폴리오는 제출하지 않아도 된다. 집세도 LA 시 시세에 비해 저렴한 편이며 입주 이후 시설에서 제공되는 모든 수업은 무료다. 또 전체 거주 인원의 30%를 빈곤계층으로 유지하여, 경제적 소외 계층을 지원하고 있다.

 

연례컨퍼런스

NOHO는 지역 사회로부터 고립된 곳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담벼락을 없애고 외부에서도 시설이 잘 보일 수 있도록 했다. 시설 운영을 맡고 있는 비영리 조직 인게이지(EngAGE)의 대표자인 팀 카펜터(Tim Carpenter)는 “일반적으로 노인 주거시설은 노인을 ‘보호’하는 곳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매우 활동적이고 지역 사회와 지속적인 교류가 가능한 공간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NOHO에서는 이에 대한 흥미로운 사례를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않던 한 노인 화가가 시설에 거주하며 지역 고등학생들을 가르쳐 학생들이 무사히 교육 과정을 마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사례, 작가가 되고 싶었던 노인이 NOHO에 입주하여 작가 양성 과정에 참여, 작품을 집필하고 그 시나리오를 영화로 만들어 350여 명의 지역 주민 앞에서 상영한 사례 등이다.

 

 

NOHO는 한 부동산 전문가로부터 시작된 아이디어였지만, 그가 시 정부 및 사설 은행의 대출 담당자와 논의하여 아이디어를 현실화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지역 사회 전반에 깔려 있는 예술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 덕분이었다. 단순히 예술가를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 노인이 예술 활동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한 NOHO는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사례임이 틀림없다.
(※ 참고 웹사이트 : http://www.nohoseniorartscolony.com/)

 

연례컨퍼런스연례컨퍼런스

왼쪽_NOHO 센터 외관, 오른쪽_현장 투어(로비)

 

연례컨퍼런스연례컨퍼런스

미술 작업실

 

연례컨퍼런스연례컨퍼런스

왼쪽_NOHO 지하 극장에서 강연 중인 인게이지(EngAGE) 대표 팀 카펜터(Tim Carpenter)
오른쪽_팀 카펜터(Tim Carpenter)와 NOHO 건립의 주요 관계자들(팀 카펜터 우측으로 뱅크 오브 아메리카의 대출 담당자, 부동산 전문가, LA 시 정부 관계자 순)

 

프로그램의 참여자를 넘어
핵심 주체로 거듭나는 아이들


YOLA(Youth Orchestra LA)프로그램에서의 청소년 리더십

 

컨퍼런스 기간 중 엘 시스테마(El Sistema)를 모태로 한 YOLA(Youth Orchestra LA)의 운영 현장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YOLA는 공평하고 혁신적인 문화예술교육의 표본으로 전 세계적인 화두가 된 바 있는 엘 시스테마(El Sistema)를 모태로 한 아동청소년 오케스트라 양성사업의 일환이다. 원활한 운영을 위하여 3개의 운영 주체가 상호 협력하고 있다. 이에 따라 비영리단체인 하모니 프로젝트가 기획 및 프로젝트 운영 관리를, LA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전문 인력 제공을, LA 엑스포 센터가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지난 2007년 플롯과 첼로만으로 구성된 이중주로 시작되었지만 현재 로스앤젤레스 내 3개의 운영거점을 두고 진행될 만큼 확대되었으며, 특히 LA 엑스포 센터에서 진행되는 프로그램에는 300여 명의 아동이 참여 하고있다.

 

엘 시스테마(El Sistema)를 모태로 한 아동‧청소년 오케스트라 양성사업은 한국의 ‘꿈의 오케스트라’를 포함, 각국에서 다양한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YOLA의 특별한 강점을 꼽자면, 참여 아동 간 멤버십(멘토-멘티) 프로그램과 멘토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리더십 프로그램을 통해 참여자 간의 활발한 소통과 관계 형성을 중요시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여름 음악캠프의 경우 실기 연습과 레슨은 전체 일정의 50% 정도이고 나머지 50%는 멤버십 및 리더십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을 정도로 YOLA의 기획자들은 참여 아동 간 시너지를 극대화하기 위해 꾸준히 고민하고 있다.

 

YOLA에 3~4년 이상 참여한 아동에게는 멘토의 역할이 주어지며, 리더십 프로그램은 이들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악기가 다른 2명이 짝이 되어 서로의 악기를 가르쳐 주고 배워 보는 재미있는 시간도 있고, YOLA의 목표와 실행 방향성에 대해 자유롭고 진지하게 논의할 시간도 충분히 제공된다.

 

리더십 프로그램이 얼마나 성공적이었는가는 멘토 아동들과 함께한 인터뷰를 통해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이 네 명의 아동은 YOLA의 참여자를 넘어 조직을 이끌어 가는 핵심 구성원으로서 주체적인 사고를 하고 있었다. 또 멘토 아동 중 일부는 운영 본부(하모니 프로젝트)의 음악 도서관 운영이나, 연주 일정 담당 등의 업무를 맡아 YOLA에 기여하고 있다고 했다. 자원봉사의 형태도 있지만 대부분 파트 타임제의 고용 형태였다.
“너희는 커서 어떤 일을 하고 싶니?”라는 한 인터뷰어의 질문에 잠깐 서로 눈을 마주치며 수줍어하다 이내 눈을 반짝거리며 끊임없이 말을 쏟아내던 아이들의 모습은 쉽게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연례컨퍼런스

YOLA의 거점 중 하나인 LA 엑스포 센터. LA에서 가장 규모가 큰 공공 시설이다.

 

연례컨퍼런스연례컨퍼런스

목관 악기 수업 진행 장면

 

연례컨퍼런스

인터뷰에 참여한 네 명의 YOLA 멘토 아동

 

나흘간 이어진 컨퍼런스에서는 앞에서 소개한 세션 이외에도 수십 개의 프로그램 사례 공유 및 현장 방문, 그룹토론 세션 등이 진행되었다. 교도소의 재소자를 대상으로 하는 예술 교육이나 LA 시의 퇴역 군인을 위한 예술 교육 등 다양한 대상과 주제별 프로그램 사례 소개는 물론 부모•가족의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 참여확대 방안, 청소년 창의성 발달 등을 주제로 한 그룹 토론 등을 통해 유용한 정보와 의견이 활발하게 공유되었다. 다만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면 대부분 하나의 이슈에 대한 다수의 사례가 공유되다 보니 하나의 프로그램을 집중적으로 소개하고 그에 대해 논의하기에는 시간적 여유가 부족했다는 점이다.

 

“커뮤니티 문화예술교육은 ‘지금, 현재의 이슈’를 반드시 반영해야 한다”고 선언한 론 츄(Ron chew, 지역사회에 기반을 둔 박물관 전시 모델 전문가)의 키노트가 기억에 남는다. 이번 컨퍼런스를 통해 한국 사회문화예술교육의 성장 흐름과 마찬가지로 전 세계에서 문화예술교육의 사회적 역할이 놀라울 만큼 커지고 있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필자를 포함한 그곳에 모인 모두가 문화예술교육은 ‘예술의 고유 가치를 넘어 시민 사회의 발전을 위한 일’이라는 것을 다시금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었던 행복한 시간이지 않았을까 한다.

 

다양한 이슈와 사례가 공존했던 4일이지만 공통적으로 도출된 내용은 사회의 다양한 참여 주체 간 입장을 살피고 그를 조율하는 과정이 성공적인 커뮤니티 문화예술교육의 핵심이라는 점이었다. 한국의 사회문화예술교육은 엄청난 양적 성장을 달성해오고 있다. 예술교육의 필요성과 중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얻었다면, 이제는 그것을 풀어나가는 방식에 대한 고민에 집중할 때이다. 그러한 노력과 열정이 함께할 때, 한국의 사회문화예술교육 또한 진정한 커뮤니티 예술교육으로서의 본연의 역할에 더욱 충실할 수 있지 않을까.

김민지 _ 사회교육팀

김민지 _ 사회교육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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