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란한 겨울비의 흔적이 사라지자, 쌀쌀한 겨울바람이 온몸을 훑고 지나갔다. 마른기침과 어울리지 않는 목소리와 함께 2011년 겨울 초입을 혹독하게 보내던 어느 날, 미루나무꼭대기 창작소 조기섭 원장과의 만남을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이른바 문화 소외 지역이라는 제주. 이곳의 여러 문화예술단체는 단체명에 ‘제주’라는 단어를 넣고, 콘텐츠 또한 당연히 ‘제주적’이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고 있다. 하지만, ‘미루나무꼭대기 창작소’라는 이름을 가진 이 단체를 만났을 때, 기획하고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대한 호기심과 함께 어쩐지 재미있는 곳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기섭 원장과의 만남을 통해 신선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분 좋은 상상이 얄미운 제주의 겨울바람을 잊게 했다.
미루나무 꼭대기에 꿈이 열린다
마치 대학을 갓 졸업한 듯 앳된 얼굴의 조기섭 원장. 올해 31세인 조기섭 원장과는 지역문화예술교육사업 프로그램 참관 시 만난 적이 있어 필자와 구면이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물어보니 연말이라서 많이 바쁘다는 근황을 전한다. “미루나무꼭대기 창작소를 개소한 이후 하루도 쉬어 본 적이 없어요. 하지만 제가 생각하고 계획했던 일들이 차근차근 이뤄지는 것을 보니 보람찹니다.”라는 조기섭 원장의 이야기다.
‘미루나무꼭대기 창작소’라는 이름이 참 독특합니다. 혹시 이름에 담긴 내용이나 사연이 있는지 여쭤 보고 싶은데요.
조기섭 원장(이하 기섭)_저는 서울에서 대학을 다녔는데요. 제주도에서는 보기 어렵지만, 서울 생활을 하면서 미루나무를 본 적이 있어요. 하늘을 향해 군더더기 없이 곧게 뻗어 있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이후 제주에 내려와 창작소라는 공간을 만들겠다는 결심을 했을 때, 창작소가 아이들에게 ‘미루나무’ 같은 존재가 되기를 바랐어요. 아이들이 곧게 뻗은 미루나무 위에서 마음껏 창작활동을 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미루나무꼭대기 창작소’라는 이름을 짓게 되었습니다.
그런 까닭이 있었네요. 며칠 후에는 프로그램 진행을 위해 추자도를 방문하신다죠?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 외에도 작품 활동도 병행하시는 등 다양한 영역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시는데요. 최근 프로그램 활동은 어떤 것인지, 그리고 다양한 일을 동시에 하시며 느끼는 점은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기섭_2년 전부터 진행해 온 제주도립미술관 어린이미술학교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문화 소외지역 초등학교를 1년에 서너 차례 찾아가 어린이에게 다양한 미술체험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동시에 문화예술교육사업의 일환으로 아트리치 사업과 지역문화예술교육사업을 지역아동센터에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대학 졸업전 이후로 작품 활동을 거의 하지 못해 아쉬움이 있었는데요. 지난 8월 개인전을 가질 수 있게 됐습니다. 더불어 100여 명의 어린이와 미루나무꼭대기 창작소에서 미술 활동을 하고 있고요.
4년 전, 서울에서 보증금 천만 원을 가지고 제주도로 내려와 다섯 평 남짓한 작은 실기실과 의자 두 개가 전부인 공간을 마련했던 기억이 납니다. 공간은 협소했고, 처음 문 연 후 1~2년간은 학생 다섯 명 남짓 지도하면서 지냈던 기억이 있네요. 하지만 어려웠던 기간에도 마음은 항상 뜨거웠어요. 하고 싶은 것이 있었고,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으며, 그것을 위해 차근차근 준비를 하는 과정이라고 스스로 생각했기 때문이죠.
누군가는 저를 보고 일 중독자라고도 하고, 어떤 이는 한 번에 모든 일을 성공적으로 이룬다며 부러워하기도 하고, 완벽주의자라고도 해요. 평소 제 철학은 ‘준비는 철저히, 행동은 적극적으로 하자’는 것이에요. 지금도 어느 하나만 선택해서 일하고 싶지는 않아요. 제가 그려놓은 미래의 모습을 위해 다양한 경험과 그에 대한 피드백이 필요할 것이고, 그러한 모든 것들이 미래의 저에게 소중한 자양분이 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거든요. 서두르지 않으려고 해요. 천천히 저의 길을 뚜벅뚜벅 가다 보면, 언제가 되었든, 제가 그려놓은 숲의 모습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나눔이 있는 삶, 그 아름다운 가치
제주도를 떠나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시고, 다시 고향으로 내려오게 된 계기가 있는지요?
기섭_저희 부모님의 고향은 제주가 아니었지만, 저는 이곳 제주에서 태어나고 자랐어요. 솔직히 학창 시절의 제게는 좋은 기억이 별로 없어요. 사투리를 쓰지 못하는 부모님의 영향으로 저 또한 사투리가 익숙하지 않았는데요. 제가 나고 자란 구좌읍 세화 지역은 제주에서도 강한 사투리를 쓰고 있는 지역이었던 터라 배타적인 지역 아이들에게 저는 이질적인 존재였던 것 같아요. 저는 아주 소심한 아이였지요. 하지만 중학교 때 저를 가르치신 미술 선생님의 창의적이고 열정적인 미술교육을 통해 또 다른 나를 발견했고, 그 속에서 많은 치유를 받았어요. 미술을 전공한 계기도 그 선생님의 영향이 컸지요.
대학 시절 작가적 열정에 가득 차 온 힘을 쏟으며 졸업전을 준비하던 중, 제주도에 계신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어요. 장남이었던 저는 가장의 길을 가야 할 것인지, 작가의 길을 계속 가야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으로 방황을 좀 했어요. 그때, 아버지께서 마지막으로 남기신 말씀인 ‘봉사하며 살아라.’라는 당부가 다시금 떠올랐죠. 마침 미술교육에 대한 관심도 많았던 터라,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다양한 문화예술교육 분야에서 경력을 쌓은 후 고향인 제주로 오게 됐어요. 제주도에 돌아와선 지인의 권유로 지역 노인요양시설 미술교육을 담당하게 되었어요. 제가 알고 있던 미술교육과는 또 다른 경험이었죠. 노인요양시설 미술교육을 하면서, 지역아동센터에 대해서 갖고 있던 관심을 프로그램으로 발전시키게 되었어요. 아트리치 사업 일환으로 지역아동센터 어린이에게 미술 교육을 했고, 올해는 그 대상을 청소년에게까지 확장해 보았습니다. 제가 겪었던 청소년 시절 문화예술교육의 감동을 제 고향 청소년들에게도 비슷하나마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아요.
미루나무꼭대기 창작소가 다른 도내 문화예술교육 단체와 다른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기섭_미루나무꼭대기 창작소에는 백여 명의 학생이 있는데요. 창작소는 제주시에 위치해 있지만, 제주도 전역의 아이들이 다니고 있습니다. 저의 교육철학은 자발적 참여입니다. 모든 것을 스스로 생각하고 실천하게끔 하는 것이지요. 물론 이러한 활동을 하기에 앞서 학생들과 충분한 대화를 필수적으로 하고 있답니다. 또한, 작품 전시를 할 때도 전시기획 및 디스플레이 구상, 심지어 초대장 제작까지 스스로 하게끔 합니다. 요즘 말하는 ‘자기주도 학습법’이라고나 할까요? 문화예술교육사업도 마찬가지예요. 차가운 시선과 냉정한 현실의 잣대로 상처받은 아이들이 많은 지역아동센터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에는 교육 이전에 상호 간의 교감이 먼저 이루어지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강사 스스로 아픔과 상처를 드러내고, 그 아픔과 상처가 어떻게 치유되고 있는지를 전달하면 아이들 역시 굳게 닫혔던 마음을 열어 주지요.
더 큰 ‘미루나무 숲’을 꿈꾸며
미루나무꼭대기 창작소만의 여러 가지 목표와 비전이 있을 것 같은데요. 그중 몇 가지만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기섭_지역아동센터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느낀 점인데요. 아이들 스스로 그들만의 공간에서 벗어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지역아동센터뿐 아니라 미술관, 박물관 등 다양한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문화활동의 기회와 소통의 장을 만들어 주고 싶어요.
첫 단추 채우는 것이 힘들다고 하잖아요. 4년 전 사회경험이 전무한 20대 청년이었던 제가 한 권의 포트폴리오만을 들고 무작정 미술관을 찾아 오랜 기다림 끝에 사무실도 아닌 맨바닥에서 당찬 신념과 계획을 펼쳐 보였던 것이 오늘날 값진 인연이 되었고, 그 인연으로 또 다른 인연이 맺어지고 있어요. 저는 이미 미래 저 자신의 모습과 미루나무꼭대기 창작소의 모습을 그려 놓았습니다. 한 가지 일만을 목표로 하여 가고 있지는 않아요.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형태로 미루나무 씨앗을 심을 토양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미술관을 비롯한 공공기관에서의 미술교육 프로그램, 소외지역 아동과 청소년을 위한 다양한 형태의 문화예술교육 등이 더욱 활성화되게끔 하는 것이 제 바람입니다.
정말 여러 가지 목표를 향해 달리고 계신 것 같아요. 조기섭 원장님의 개인적인 꿈은 어떤 것인지요?
기섭_먼저, 소박하고 화목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에요. 제가 가정을 꾸리고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준다면, 아이들 또한 이를 거울삼아 따라올 것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리고 제가 만난 아이들이 제가 가는 길을 같이 걷고 싶다는 연락을 해 왔으면 하는 바람도 있어요. 저는 미루나무가 되었든, 제주도에 흔한 삼나무가 되었든, 아이들이 자신의 소신과 꿈에 대한 의지를 저버리지 않고 곧게 뻗어 나갔으면 하고 바라요. 그들이 또 다른 미루나무, 혹은 삼나무가 되어 그들만의 자유공간이었던 미루나무꼭대기 창작소와 같은 곳을 만들 수 있다면 좋겠어요. 자신과 비슷한 경험을 가진 훗날의 아이들에게 이러한 공간을 제공하고 함께할 수 있다면, 결국, 미루나무 숲 혹은 삼나무 숲과 같은 커다란 ‘공원’이 조성되지 않을까요? 이것이 바로 저의 꿈이랍니다.
인터뷰 내 조용한 카리스마를 내뿜으며 본인의 소신과 열정에 대해 이야기한 조기섭 원장. 조 원장의 모습을 보면서 그는 어떤 일을 빠르게 추진하며 성취감을 느끼는 데 만족하는 사람이 아니라, 어떠한 일이든 천천히 꼭꼭 씹어 가며 자신을 위한 영양분으로 충분히 소화한 후 또 다른 공복감을 느끼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얼마 전 돌아간 스티브 잡스의 ‘stay hungry’라는 문구가 바로 조기섭 원장에게 꼭 들어맞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글.사진_ 이민경 제주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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