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수연|기획운영팀
-How do I know what I think until I here what I say
영국에 있는 지인을 만나기 위해 휴가차 방문하게 되면서, 영국 문화예술교육에 특별한 족적을 남기고 있는 분을 인터뷰 해오겠노라고 호언장담을 했다. 하지만 인터뷰 요청 메일을 보낸 곳들에서 응답이 없어 시간이 지날수록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그러던 중에 국립극장(national theater)의 링크를 통해 발견한 드라마교육(Drama in education) 사이트(http://www.kentaylor.co.uk)에서 영국의 드라마교과 과정에 대한 자세한 정보와 자료들이 차곡차곡 쌓여있는 창고를 발견하게 되었다. 보통의 애정으로 쌓을 수 있는 자료가 아니다. 누가 영국의 공교육에서 교사들이 활용할 수 있는 드라마교육에 이런 깊은 애정을 쏟고 있는 것일까? 만나 뵙고 싶다는 요지의 인터뷰 요청 메일을 보냈더니 다음날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주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인터뷰에 응해준 케네스 테일러(Kenneth Taylor) 씨는 영국에서 20년간 드라마 교사 양성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미들섹스 대학(Middlesex University)의 교수이다. 필자와 인터뷰를 하기로 한 날에도 두 세 개의 회의가 있을 정도로 바쁜 분이다. 하지만 인터뷰를 하기로 한 미들섹스 대학(Middlesex University)을 찾아가는 길이 수월치가 않았다. 가뜩이나 시간이 없다고 하는데 인터뷰에 늦으면 어쩌나 하는 조급한 마음으로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수화기 저편의 ‘찾아오기 힘들죠? 내가 학교 앞에 나가있겠습니다’라는 친절한 목소리에 조금 안심을 하고, 반가운 얼굴로 학교 앞에 마중 나와 주었던 케네스 테일러 교수를 만나 인터뷰를 시작했다.
우선 바쁜 와중에도 인터뷰에 응해준 데 대한 감사의 말을 잊지 않고 전하며, 문화예술교육 사이트 아르떼에 대한 설명을 해드렸다. 한국의 문화예술교육은 이제 걸음을 내딛는 단계라는 얘기와, 아르떼 뿐만 아니라 문화예술교육에 깊은 애정으로 활동하고 있는 각 분야의 사람들과 사업에 대한 간략한 소개도 곁들였다. 그리고 이어서 드라마교육(Drama in education)에 대한 질문으로 넘어갔다. 케네스 테일러 교수가 집중하고 있는 영국 공교육 내의 드라마교사 양성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기에 앞서 이해를 돕기 위해 영국의 교육과정에 대한 간략한 정리를 부탁했다.
영국의 학교는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듯 공립학교(state school), 사립학교(private school)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흔히 공립학교(public school)가 있고, 대립적으로 사립학교(private school)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사립학교(private school)를 수업료를 내는 학교(fee paying school)라고 부르기도 하고 공립학교(public school)라고도 부릅니다. 상당히 혼란한 개념이지요? 사립학교(private school)와 공립학교(state school)의 차이는, 사립학교(private school)는 국가 교과과정(national curriculum)을 따를 필요가 없고 가르치는 교사의 자격증도 필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공립학교(State school)에서는 교사 자격증이 꼭 필요하고 국가 교육 과정도 반드시 따라야 합니다. 드라마교육(한국 상황에서는 연극교육이라고 이해하면 좋겠다)은 국가 교육 과정에 필수 수업으로 포함되어있습니다. 반면 사립학교에서는 자신들 나름의 교과 과정대로 수업을 진행하기 때문에 필히 드라마교육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따라서 제가 양성하고 있는 드라마교사들은 공립학교의 교사로 파견됩니다.
일본에서도 교육운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고, 공교육과정 개편을 시도 중이어서 몇 년 전에 몇 명이 저의 인터넷 사이트(http://www.kentaylor.co.uk)를 보고 찾아와서 자문을 구하고, 또 지금까지 몇 차례 방문하여 저의 교수법을 배우고 가기도 했습니다. 영국뿐 아니라 일본, 캐나다, 호주 등에서도 공교육 내에서의 예술과목에 대한 비중은 상당히 작은 편이고, 최근에는 이를 개혁하기 위한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다. 영국에서 제가 운영하고 있는 드라마교육 그룹 사이트(http://groups.yahoo.com/group/drama_uk)에는 약 980여명의 회원이 있는데 영국에 있는 드라마교사뿐 아니라 위에 언급한 나라들과 미국, 싱가포르 등 다양한 나라의 교사들이 온라인상으로 정보를 교환하고 있습니다. 일본과 한국의 교육 상황이 비슷하다고 알고 있는데, 일본의 학생들이 대학입시 중심의 교육으로 상당히 힘들어한다고 들었습니다. 영국에서는 3년 후에 교과과정을 개편하게 되는데, 현재의 주 5일 수업을 주 4일 과정으로 바꾸고 남은 하루를 창조적인 수업을 할 수 있는 예술과목 중심으로 배정할 예정입니다. 문화예술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개혁하려는 움직임이 일본, 캐나다, 미국, 호주, 영국 등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현재까지의 교과과정은 대학 입학이나 직업을 얻는 것을 주목적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자기를 표현하거나 감성을 키울 수 있는 수업은 부족했던 것이죠. 그래서 학생들 사이에서 폭력성이 극단적으로 드러나는 현상들이 나타난 것 같기도 합니다.
일주일에 한번은 문화예술교육을 위한 전일 수업이라니 부럽다. 그렇다면 영국의 국가교육 과정에서 드라마수업은 어느 정도 배정되어 있는가?
영국의 공교육 상황 역시 대학입학과 취업, 이 두 가지 목표에 무게가 편중되어있기 때문에 다양하고 폭넓은 예술교과 과정을 듣기 어렵습니다. 5살에 입학하는 초등학교에서는 일주일에 두 시간 정도 드라마수업이 편성되어 있습니다. 5~10세까지는 연기를 통해 자기를 표현 하는 방법 외에도 짧은 극을 쓰는 과정을 통해 글쓰기 능력을 기르는 수업과정도 함께 진행하고 있습니다. 드라마수업은 5~16세까지 필수적으로 교육받아야 하고 16세 이후부터는 A 레벨이라고 부르는 교과과정을 이수하는데, 이때 학생들은 예술교과목에 대한 선택권이 있습니다. 보통, 음악교과보다 2배 정도 많은 학생들이 드라마교과를 선택합니다. 그리고 한 학교당 드라마수업을 진행하는 교사는 3~4명 정도 배치되어 있습니다.
한국에서 음악교과와 연극교과를 놓고 선택해서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하면 어느 쪽이 인기가 많을까. 그렇게 많은 학생들이 드라마 교과를 선택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음악수업은 혼자 하는 작업이 많기 때문에 외롭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악기를 구입해야 한다던가 하는 금전적 문제가 있고 또 공간상의 문제도 있습니다. 그리고 음악교육에서는 잘하고 못하는 것에 대한 구분이 명확하기 때문에 학생들이 성과에 대한 부담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반면에 드라마교육은 그런 구분이 없습니다. 그냥 자신을 표현하고 서로 역할 분담을 하고 자유롭게 연기하는 것을 즐기면 되는 것이지, 누가 잘하고, 누가 못하는지, 무엇이 맞고, 무엇이 틀리는지에 대해 초점이 맞춰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훨씬 더 흥미를 유발시키기 쉽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이 음악교과보다 드라마교과를 많이 선택하는 이유는, 드라마교과에서 그들 자신이 좀더 수업을 즐기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문화예술교육에는 ‘향유자교육’도 중요하지만, 체계적이고 훌륭한 ‘매개자교육’도 필요하다. 드라마교육을 위한 교사는 어떻게 양성하고 있는가?
영국에서 드라마교과가 시작된 것은 1950년 정도부터이고 제가 교사양성 수업을 진행한지는 20여년 정도 되었습니다. 제가 담당하고 있는 수업 외에도 런던에 총 9개의 교사 재교육 시설이 있습니다. 이러한 교육은 정부에서 교사와 기관을 연결해주어 교육이 진행되고, 교육을 마친 후에는 자격증을 수여하여 각 학교에 드라마교과 담당교사로 배치합니다.
우리가 하는 드라마수업은 학생들을 연기자로 만들기 위한 수업이 아닙니다. 연기자를 가르치는 것과 비슷한 수업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들이 교육을 마친 후 전문적인 연기자가 되도록 하는 것이 아닙니다. 드라마 교육을 통해서 학생들이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능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죠. 그리고 드라마교육은 두 가지 방법으로 교육이 시행되고 있는데 ‘드라마 자체를 가르치는 것’과 ‘드라마를 통해서 다른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드라마를 통해 교육을 한다는 것은 수학이나 과학, 영어 수업에 드라마 교수법을 적용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과학시간에는 산소 혹은 이산화탄소 등으로 분장을 한 연기자가 교실에 찾아갑니다. 그러면 학생들은 그에게 자신이 그 물질에 대하여 알고 있는 것을 물어보고 연기자는 그에 대한 답변을 함으로써 좀 더 흥미롭고 각인하기 쉬운 방법으로 어려운 과학에 쉽게 접근하게 되는 것이죠.
인터뷰를 하는 동안 케네스 테일러 교수의 얼굴에 자부심이 어린다. 그 자신이 기울인 노력의 성과를 교육현장에서 확인하는 것은 벅찬 감동이리라. 20년간이나 교사양성을 위한 수업을 진행해왔는데 그렇다면 케네스 교수가 교사를 양성하는데 있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어떤 것일까?
우선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학생들이 역할분담(role play)을 통해 의사소통 능력과 이해능력을 높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자유롭게 표현하면서 자신에 대한 믿음과 자신감을 찾는데 있습니다. 교사들에게는 그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여 수업을 진행하도록 강조합니다. 제가 수업의 진행 과정을 자세히 정리해놓은 자료를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자료참조) 중요한 것은 학생들의 연령별 발달상태에 따라 구체적인 교육방법도 다양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사들에게는 매일의 수업 후에 일기(자료참조)를 작성하도록 항상 강조합니다. 간단한 기록만을 담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어떻게, 왜, 무엇을(How, Why, What)이라는 요소를 구분하여 그 날의 수업 과정을 자세히 작성하도록 합니다. 어떻게 수업을 진행하였는지, 얼마나 성과가 있었는지, 성과가 있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에 관한 자세한 서술을 통해 교사 스스로도 다음 수업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설정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 수업 후에 학생들이 다시 수업을 되새길 수 있도록 적당한 과제를 부여합니다. 과제를 통해서 함께 작업하는 것, 서로를 이해하는 것에 대한 생각의 정리에 도움을 주려고 노력하도록 각 교사들에게 강조합니다. (예시 자료 참조)
전문 연기자가 아닌 수요자를 위한 교육이라 해도 단순히 극장에서 연극을 관람한다던가 하는 것은 학생들에게 감동을 주거나 동기부여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직접 연기를 해보고 느껴본 후에는 연극 한편을 감상하더라도 그 감동이 몇 배로 증폭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일본과 교류한지는 4년 정도가 되었는데 일본에서도 드라마교육에 대한 전통이 없기 때문에 어떤 교사가 드라마교과를 가르쳐야 하는지, 어떤 커리큘럼으로 수업을 진행해야 하는지에 대한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일본에 방문하여 워크숍을 진행하였을 때 회사 사무원, 연극인, 영어교사, 일본어교사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모여서 흥미를 가지고 수업을 받았는데요, 처음에 어떻게 드라마 수업을 진행하는지에 대한 이해를 하는데 시간이 꽤 걸렸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영국까지 방문하여 저의 수업에도 참여하고, 그들의 초청으로 저도 지금까지 몇 차례 계속해서 방문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교사들이 가장 염려했던 것은 학생들이 처음 해보는 드라마 수업을 그것도 영어로 진행한다면 수업진행이 어렵지 않을까? 혹시 학생들이 수줍어하며 수업에 따라가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걱정하지 않았죠. 아이들은 전혀 쑥스러워 하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적극적으로 너무나 즐겁게 수업에 참여했답니다. 어느 때는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춤도 추고 흥겨워하더군요.
다음주부터 수업이 진행되는데 기회가 된다면 직접 참가해서 수업 과정을 보면 이 과정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후에 저도 한국을 방문해서 수업을 진행해 볼 수 있게 된다면 매우 기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드라마 수업에 대한 케네스 테일러 교수의 기대나 목표, 철학이 있다면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제가 평소에 즐겨 쓰는 말이 있습니다. How do I know what I think until I here what I say. 내가 이 자리에 있기 전에 내가 무슨 생각을 하게 될지, 어떤 말을 하게 될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라는 말입니다. 현재와 미래, 내가 있는 자리에 대한 어떤 돌발적인 상황, 조금 전에 일본에서의 학생들을 예로 들었듯이 내가 생각지도 못하는 즐거운 상황들에서 내가 어떻게 할 것인지는 나 자신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니 항상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고 지금의 일을 계속해서 꾸준히 해야 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에너지를 얻은 이번의 인터뷰를 마치며 새롭게 느낀 것은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기 전에 내가 무슨 말을 하게 될지, 내가 무슨 생각을 하게 될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지금 여기 모인 사람들이 진행하고 있는 일들에서, 새로운 혹은 예상치 못한 결과가 또 하나의 힘으로 발휘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으며 멋진 미래, 흥나는 교육을 꿈꿔본다.
참고 사이트 : kenneth taylor 사이트http://www.kentaylor.co.uk
drama in school 참고 자료http://www.artscouncil.org.uk/publication_archive/drama-in-schools-second-e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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