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도시에서 농사를 짓는 ‘도시농업’이 화제다. 건물마다 옥상텃밭이 유행이고, 구청별로 보급하는 ‘텃밭상자’는 신청자가 줄을 잇는다. 농사가 도시민의 삶에 이렇게 빠르게 스며들고 있는 것은 스스로 땅을 만들고 생명을 키워 수확하는 기쁨과 재미가 인간의 본성에 가깝다는 것을 설명해주는 한편, 오늘날 도시에서의 생태적 삶에 대한 위기감과 요구가 그만큼 커졌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예술과 농사는 그 역할과 운명이 닮아있는 듯하다. 실제로도 이 둘이 손을 맞잡고 펼치는 신선한 행동과 시도들이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9월 아르떼진 테마기획에서는 이들을 소개하면서 문화예술교육의 생태적, 문화적 가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자 한다. 그 첫 번째 이야기는 파주 헤이리에 위치한 생태문화공간 논밭예술학교에서 시작한다. 사회적 기업 쌈지농부와 논밭예술학교의 ‘예술적 농업활동’을 통해 문화예술과 농사의 통합적 전망을 만나 본다.

 

비주류 문화의 가치를 찾는 시도

 

쌈지농부는 디자인·문화기업인 쌈지가 선보인 농사 브랜드. 디자인 트렌드를 주도하며 ‘홍대 앞’으로 대변되는 인디문화와 현대미술을 향한 아낌없는 지원을 통해 문화적 기업의 기반을 공고히 한 쌈지가 농사를 짓고 농산물을 유통한다는 사실이 무척 생소하게 여겨졌다. 쌈지농부의 기획과 운영 전반을 맡고 있는 천재박 과장에게 쌈지와 농업의 만남에 대해 물어 보았다.

“쌈지의 관심은 항상 비주류 문화, 실험과 도전이 있는 문화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었습니다. 90년대 당시 인디 신과 젊은 예술가들을 지원하고 이들이 창작활동을 펼칠 수 있는 프로젝트를 만들었던 것도 그들이 ‘비주류’였으며, 기존 문화에 대한 도전과 실험을 계속했기 때문이죠. 지금 저희가 주목하는 것은 농업이 ‘비주류’라는 사실입니다. 쌈지농부는 천호균 창업주의 텃밭으로부터 시작하는데요. 천호균 창업주는 직접 텃밭에서 유기농으로 작물을 키우며 ‘뭔가를 만들고 일구는 것은 농사와 예술이 다르지 않다. 농사는 예술이다’는 생각을 가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요. 우리의 먹을거리를 책임지고 우리 생활의 근간이 되는 농사는 대중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져 있습니다. 물질 만능주의가 판치는 이 시대, 농사는 그야말로 비주류이며 소외된 문화인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사람들이 정성껏 잘 키운 먹을거리에 좀 더 관심을 갖고, 나아가 직접 무언가를 키우고 만드는 ‘슬로 라이프’의 삶이 멋있고 가치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쌈지농부가 시작된 것입니다.”

 

 

창작의 기쁨은 다르지 않다

 

‘농사는 예술이다’라는 쌈지의 선언은 헤이리 논밭예술학교와 유기농산물 상점 ‘농부로부터’, 그리고 다양한 유기농 작물로 만든 먹을거리를 만날 수 있는 식당 ‘지렁이다’, ‘오가닉 튼튼밥상’, 또한 작가공방 ‘일하자’등을 통해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온다. 천재박 과장의 설명이 이어진다.

“쌈지농부는 농업을 주요 포인트로 하여 ‘창작’이라는 큰 틀 안에서 다양한 실험을 합니다. 유기농 식당 ‘지렁이다’, ‘오가닉 튼튼밥상’ 그리고 작가공방 ‘일하자’는 일종의 실험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농사의 결과물로 좋은 먹을거리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을 하는 곳이 식당이고요. 작가공방은 예술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만들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곳입니다. ‘로컬 아트’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느리지만 세상에 이로운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곳이 바로 이곳이지요. 쌈지농부의 정신은 밭에서, 식당에서, 공방에서, 그리고 논밭예술학교에서 쑥쑥 자라고 있습니다.”
농사의 의미는 그것이 창조의 기쁨과 더불어 어머니 지구의 소중함을 가르쳐 주고, 우리에게 정직한 가능성과 겸손의 가치를 일깨워 준다는 데 있다. 문화예술의 가치 역시 이와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다. 하여 쌈지농부의 선언 ‘농사가 예술이다’라는 문장은 당위성을 갖는다. 성실히 땀 흘리며 ‘좋은 것’을 ‘새롭게’ 만들어내는 데 농부와 예술가가 다르지 않은 것이다.

 

 

모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고백

 

생태문화공간 논밭예술학교는 농사와 예술이 만나 근사한 화학 작용을 만들어내고 있는 곳이다. 이곳에는 생태적 삶을 추구하는 다양한 프로그램과 예술작품이 있다. 배움 프로그램으로는 ‘평화가 깃든 밥상’ 자연요리교실과 막걸리 교실, 농사, 디자인, 공예 등 각 분야 전문가의 강연을 들을 수 있는 ‘생태교육’ 등이 있다. 또한 논 갤러리와 밭 갤러리를 통해 젊은 예술가들의 작품을 경험할 수 있고, 일곱 명의 아티스트들이 7개의 주제를 가지고 만든 공간에서 토론과 숙박, 식사 등을 즐길 수 있다. 논밭예술학교 건물 구석구석에 위치한 작은 텃밭에는 유기농 작물이 자라고 있다.

“사실 ‘생태문화공간’이라는 것은 저희가 모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용기 있는 고백이 아닐까 싶습니다. 생태문화라는 단어가 갖고 있는 큰 의미를 저희들이 모두 다 알고 실천할 수는 없지만, 쌈지농부의 도전과 발걸음은 의미를 찾는 시도이며 노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르니까 알고 싶고, 알수록 더 알고 싶고 잘하고 싶은 마음을 담은 것이지요. 논밭예술학교를 운영하고 여러 가지 배움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것 역시 저희가 먼저 배우고 알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입니다.” 천재박 과장의 설명처럼, 멀게만 느껴지는 농사와 예술 사이를 가까이 만드는 배움과 시도가 거듭될 때 더 많은 사람들이 농사의 중요성, 좋은 먹을거리를 정직하게 만들어 내는 것이 예술에 수렴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세상에 이롭고 좋은 것을 만들어 내는 일, 사람들의 의식을 일깨우고 생각의 영역을 확장하게 하는 시도, 문화예술이란 이러한 것을 가능케 하며, 예술교육은 우리 개인 안에 이러한 능력을 부여하는 행위다. 정직한 땀방울로 일구어지는 농사는 문화예술교육에 새로운 방법론적 전망을 보여 주고 있다. 사회적 기업 쌈지농부의 다양한 시도를 통해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글_ 박세라 사진_ 쌈지농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