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cinema)와 도서관(bibliotheque)의 합성어로 일종의 ‘영화 도서관’을 뜻하는 시네마테크는 1935년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해 지금은 각 국가별로 체계적인 운영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단연 탐나는 곳은 런던과 파리의 시네마테크다.
런던 한 복판에 위치한 영국의 시네마테크 BFI Southbank는 전 세계 영화팬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국제적 인기의 비결은 아주 튼튼하고 견고하게 갖춰진 BFI Southbank의 운영 시스템 덕분이다. 영화 보전과 라이브러리 운영, 영화 연구를 위한 서비스 제공, 여기에 영화 배급과 지역 영화관 네트워크에 대한 책임까지 말 그대로 ‘영화의 모든 것’을 총괄하는 곳이 바로 영국의 시네마테크 BFI Southbank이다. 매일이 고전 영화의 잔치이자 이름만으로 설레는 거장들의 회고전에다 세계 예술영화의 최전선에 서 있는 감독들의 최신작이 더해지고 바로 건너편에 위치한 내셔널 씨어터의 연극과 뮤지컬을 라이브로 상영하기도 한다. 보는 것만으로 침이 고이는 이 많은 프로그램은 짧게는 한 달, 길게는 세 달까지 지속되는데 관객의 다양한 선택을 위해 여러 프로그램을 동시 다발적으로 운영하기 때문이다.
BFI Southbank의 유혹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시네마테크 내부에 자리하고 있는 도서관 BFI Reuben은 규모에 한 번 놀라고 보유하고 있는 DB의 양에 두 번 놀란다. 일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무료로 개방되는 도서관에 앉아 있으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영상 저작물을 보유하고 있단 말을 온 몸으로 체험할 수 있다. 이렇듯 방대한 자료와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은 런던에 머무르는 모두를 위해 개방되어 있다. 런던의 시민뿐만 아니라 잠시 런던을 방문하는 관광객에게도 마찬가지다. 영화가 얼마나 중요한 교육적 자산인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기에 가능한 시스템이다.
이러한 시스템을 기반으로 BFI Southbank는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단순히 극장 안에서의 교육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학교 교사를 대상으로 ‘영화를 수업에 활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이에 따른 시민들의 피드백을 적극적으로 반영한다. 이와 관련한 일련의 과정은 레퍼런스를 통해 정리되고 또 발전 가능성을 가늠하며 홈페이지를 통해 상세히 기록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영화등급 분류, 배급 등 시스템에 대한 강좌를 시작으로 심도 깊은 영화 리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커리큘럼의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특히 16세부터 19세 사이의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영화 제작을 경험하게 하는 BFI Film Academy는 BFI가 자랑하는 프로그램 중 하나, 이들이 영국 영화 시장의 미래라는 것을 누구보다 정확히 알고 그 미래를 적극적으로 후원하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의 시네마테크인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는 BFI Southbank와 비교했을 때 ‘박물관’으로서의 역할에 좀 더 충실하다. 프랑스 영화의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문서, 영상, 소품, 사진 등을 보존하고 있는 연중 전시 덕분에 오전에는 아이들의 단체 관람이 쉴 세 없이 이어지고 있으며, 방대한 양의 책과 필름을 소장하고 있는 도서관엔 영화를 공부하는 학생들이 아침 일찍 방문해 저녁 늦게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다. 홈페이지에 켜켜이 기록되고 있는 수많은 아카이브를 보고 있으면 이곳이 왜 시네마테크인지를 새삼 깨닫게 한다. 특히 최근에 진행한 프로젝트를 살펴보면 ‘필름이 사라지고 있는 지금, 시네마테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듯 보인다. 현재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는 고전의 디지털 복원 작업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으며 그에 따른 성과 또한 세심하게 기록하여 관객들과 공유하고 있다. 게다가 이와 관련한 포럼도 정기적으로 개최하고 있으며 이는 당연히 관객들과 함께한다.
런던과 파리의 시네마테크에 머무는 내내 낙원상가 옥상에 위치한 서울의 시네마테크를 내내 생각했었다. 십 년 넘게 온전히 머물 곳을 찾지 못하고 떠도는 처지에 안타깝다 못해 화가 나기도 한다. 시네마테크는 영화를 보존하여 상영하고 영화 교육을 실시함으로써 과거와 현재의 영화를 미래 세대에게 전달하는 중요한 공간이다. 현대영화의 거장 장 뤽 고다르가 말했다. “내가 영화에 관해 내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시네마테크에서 배웠다.”라고. 시네마테크는 영화를 둘러싼 모든 것을 품은 공간이다. 영화를 보고 듣고 즐기는 시간을 통해 그 가치를 곱씹고 이를 통해 자연스레 문화예술교육의 장으로 발전할 수 있다. 서울에 런던과 파리 못지않은 시네마테크가 절실한 이유다.
영국시네마테크 British Film Institute:
http://www.bfi.org.uk
프랑스시네마테크 Cinémathèque Française
http://www.cinematheque.fr
(사)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http://www.cinematheque.seoul.kr
글 이유진 (칼럼니스트)
영화 전문지 기자로 시작해 지금은 다양한 매체에 주로 영화와 공연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공연 현장에서 프로듀서를 하기도 하고 문화체육관광부 대변인실에서도 일했다. 복잡한 이력이지만 그저 ‘문화’ 안에 있으면 그만인 단순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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