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짐 지고 구경만 하는 미술관은 재미없다. 예술을 품은 공간의 변형과 확장은 현 시대 예술가들에게 주어진 필수 과제다. 여기에 일상과의 접점을 통한 소통까지 더해진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을 것이다.
통의동에 위치한 대림 미술관. 최근 미술관으로서의 역할을 넘어서 지역 커뮤니티로서 공간의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경복궁 뒤편 골목에 위치한 미술관에 언젠가부터 사람들이 줄을 늘어서기 시작했다. 고즈넉하던 서촌 일대가 평일 주말 상관없이 사람들로 북적인다. 그리고 너나 할 것 없이 통과의례처럼 ‘이곳’을 거쳐 간다. 어떤 이를 전시를 보러 오고 어떤 이는 커피 한 잔을 마시러 오고 어떤 이는 동네 친구를 만나러 온다. 국내 최초의 사진 전문 미술관로 시작해 국내외 아티스트들을 소개해 오던 대림미술관, 이곳은 어떻게 서촌을 찾는 이들이 쉼터이자 놀이터가 된 것일까? ‘일상이 예술이 되는 미술관’이란 목표를 통해 ‘예술’과 ‘교육’을 통한 ‘소통’을 지향하는 미술관의 노력 덕분에 가능한 성과다.
지난 2월 진행한 전시 <데이트 프로젝트:통의동 데이트>는 서촌에 살고 있는 주민들과 함께 만들어서 눈길을 끌었다.
지난 2월, 고즈넉한 서촌의 한 구석에 위치한 ‘빈 집’에 교복을 입은 여고생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이 여고생들의 정체는 안국동의 오래된 학교 풍문여자고등학교의 학생들, 이들이 직접 참여한 전시 <데이트 프로젝트:통의동 데이트>를 관람하기 위해서였다. <데이트 프로젝트:통의동 데이트>는 대림미술관의 지역연계 프로그램인 ‘데이트 프로젝트(DA+E PROJECT=Daelim Museum Art + Education Project)’의 일환으로, 주민들의 눈을 통해 포착한 서촌의 모습을 보여주는 전시였다. 천여 명에 달하는 동네 주민들이 참여한 이 전시는 미술관이란 공간이 마을 공동체에 얼마나 깊숙이 참여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영리하고 명쾌하게 풀어냈다.
지역 청소년들이 서촌 지역을 집중 탐구해 글, 그림, 사진으로 기록한 틴틴매거진, 서촌을 구석구석을 지도에 담아 낸 사진으로 만나는 동네 지도가 전시에 참여한 이들은 물론 서촌을 아끼는 모두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전시 뿐 아니라 서촌 여행작가 설재우의 강연과 아티스트 구민자가 진행하는 서촌 싱글남녀를 위한 이벤트 또한 인기를 끌었다. 대림미술관은 “문화예술을 단순히 지원 대상으로 삼지 않고 다양한 계층이 직접 문화 예술 생산자로 활동하게 하는 기업 공유가치 프로그램을 계속 진행할 것”이라며 데이트 프로젝트의 지속성을 예고했다.
대림 미술관은 전시 외에도 강연과 콘서트 등 참여형 프로그램을 기획하여 관람객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데 주력한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이제 대림미술관을 찾는 관람객 대부분은 전시를 ‘보러’ 가기 보다는 ‘즐기러’ 간다. 전시와 함께 국내외 연사, 뮤지션, 작가 등이 참여하는 토크, 콘서트, 워크숍 등 다양한 형식의 프로그램이 공간의 핵심이다. 얼마 전 진행한 토크 콘서트에는 서촌의 명물로 떠오르고 있는 ‘옥인상영관’을 만든 주인공들이 참여했다. 옥인동에 버려져 있던 빈 집을 개조해 만든 독립영화상영관을 소개하는 자리에 대림미술관이 위치하고 있는 서촌의 예술가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이렇듯 지역과 끊임없이 소통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대림미술관은 서촌을 찾는, 그리고 서촌에 살고 있는 예술가들의 훌륭한 아지트 역할을 해내고 있다. 예술이 일상 깊숙이 들어와 있는 요즘, 예술과 교육을 통한 만남을 권장하는 공간의 노력이 참으로 반갑고 고맙다.
대림미술관 홈페이지 www.daelimmuseum.org
영화 전문지 기자로 시작해 지금은 다양한 매체에 주로 영화와 공연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공연 현장에서 프로듀서를 하기도 하고 문화체육관광부 대변인실에서도 일했다. 복잡한 이력이지만 그저 ‘문화’ 안에 있으면 그만인 단순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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