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영화를 읽다

한 해에 극장에서 개봉하는 영화는 대략 300편 정도다. 개봉작을 극장에서 챙겨보려면 매일 극장으로 출근을 해야 한다는 소리다. 하지만 때론 깜깜한 극장보다 환한 도서관에서 영화를 읽는 것도 좋은 관람법이 된다.

 

우아한 거짓말
노예12년
방황하는 칼들

올 상반기 개봉작 중 책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들 〈우아한 거짓말〉 〈노예12년〉 〈방황하는 칼들>

 

얼마 전 서점을 둘러보고 있자니 ‘영화 원작’이란 홍보 문구가 적힌 책들을 여럿 눈에 띄었다. 그러고 보면 영화 기자 시절에도 자주 쓰던 기사 중에 하나가 원작과 영화를 비교하는 것이었다. 근 몇 년 동안 책에서 시작한 영화 리스트를 읊기 시작하면 지면이 모자를 정도로 영화의 모태가 되는 책의 수가 엄청나다. 올 해도 책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쉴새 없이 관객과 만난다. 이미 개봉한 〈우아한 거짓말〉 〈노예12년〉 〈방황하는 칼들〉 〈존은 끝에 가서 죽는다〉 〈다이버전트〉 모두 영화보다 책이 먼저다.

 
 

책

영화를 꼭 극장에서만 보란 법은 없다. 때론 도서관도 훌륭한 극장이 된다.

 

무엇이 더 좋은지 우열을 가리는 건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다. 대신 조금 재미있는 접근법이 있다. 영화를 상상하며 책을 읽는 것이다. 이왕이면 집보다 도서관을 추천한다. 책으로 가득 둘러싸인 열람실 구석에 자리 잡고 마치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기분으로 장면을 상상하며 책을 읽는 건 평소의 ‘독서’와는 조금 다른 감성을 자극할 것이다. 곧, 영화로 만나게 될 책 다섯 권을 추천한다. 영화 보듯 미리 읽어 두고 설레는 마음으로 개봉을 기다려보자.


테레즈 라캥

테레즈 라캥

〈테레즈 라캥〉

에밀 졸라 지음 | 박이문 옮김 | 문학동네

 

“나는 해부학자가 시체에 대하여 행하는 분석 작업을 살아 있는 두 육체에 대하여 행한 것 뿐이다.”는 서문으로 시작하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자연주의 소설가 에밀 졸라의 대표작. 어렸을 때 고모인 라캥 부인에게 맡겨진 테레즈, 라캥 부인의 병약한 아들 카미유, 테레즈의 어릴 적 친구인 로랑의 관계를 중심으로 인간의 어두운 이면을 밀도 있게 그려내는 소설이다. 국내에선 박찬욱 감독의 〈박쥐〉의 모티프가 된 작품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는데, 이번엔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영국에서 〈인 시크릿〉이란 제목으로 오는 5월에 개봉한다. 광기와 욕망으로 가득한 테레즈 라캥 역에 엘리자베스 올슨이, 테레즈와 위험한 사랑에 빠지는 연인 로랑 역에 〈인사이드 르윈〉으로 얼굴을 알린 오스카 아이삭이 캐스팅됐다.


기억 전달자

기억 전달자

〈기억 전달자〉

로이스 로리 지음 | 장은수 옮김 | 비룡소

 

국가의 통제에 의해서 조정되는 사회. SF소설의 고전적인 설정에서 시작하는 작품이지만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소설인 만큼 사회의 알레고리를 좀 더 쉽게 접근하는 소설이다. 제목에서 눈치 챌 수 있듯이 국가가 지정한 극소수의 기억 보유자 외에는 누구도 특별한 감정을 느낄 수 없는 사회가 책의 배경이다. 주인공 조너스가 기억 전달자로부터 기억 보유자가 되는 과정을 쫓다보면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행복, 슬픔, 고통 등 너무나 당연하게 몸에 배어 있는 감정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새삼 깨닫게 한다. 연기파 배우 제프 브리지스가 원작의 판권 구입부터 각색과 출연에도 공들 들여 메릴 스트립, 케이티 홈즈 등 화려한 캐스팅을 확보했다.


나를 찾아줘

나를 찾아줘

〈나를 찾아줘〉

길리언 플린 지음 | 강선재 옮김 | 푸른숲

 

미모와 지성에 재력까지 갖춘 여자 에이미와 친절하고 위트 있는 신문 기자 닉은 주변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 환상의 커플이다. 하지만 결혼 5주년 아침 갑자기 에이미가 실종되면서 이 부부의 삶은 파탄을 향해 곤두박질친다. 스릴러의 구조를 띄고 있지만 정작 이 소설에서 중요한 건 결혼을 이루는 요소와 미국 중산층 사회의 위선을 꼬집는 작가의 신랄함이다. 이 소설의 작가인 길리언 플린이 직접 영화 각색을 맡아 소설에 녹인 메시지를 영화에서도 진하게 드러낼 거라 기대를 모으고 있는 중. 여기에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로 책을 영화로 옮기는 데 합격점을 받은 데이비드 핀처가 연출을 맡고 남편 역에 벤 애플렉, 아내 역에 로잘먼드 파이크가 캐스팅 되어 ‘드림팀’을 이뤘다.


무덤으로 향하다

무덤으로 향하다

〈무덤으로 향하다〉

로렌스 블록 지음 | 박산호 옮김 | 황금가지

 

미국 하드보일드 문학의 대가로 손꼽히는 로렌스 블록의 소설. 뉴욕을 배경으로 알코올 중독 탐정 매튜 스커더가 엽기적인 연쇄 살인 사건을 파헤치는 내용의 스릴러 소설이다. 납치당한 아내를 위해 40만 달러를 몸값으로 지불했으나 끔찍하게 살해된 아내의 시체를 발견한 남편이 매튜 스커더에게 사건을 의뢰하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뉴욕이라는 거대하고 비정한 도시의 밑바닥에서 악랄한 살인범을 뒤쫓는 탐정과 그의 친구들, 겉으론 다소 괴팍해보이지만 소설을 읽다보면 그들의 인간적인 면모가 하나 둘씩 드러난다. 〈테이큰〉 〈논스톱〉으로 국내에 두터운 팬 층을 가지고 있는 액션의 신 리암 니슨이 탐정 역에 캐스팅됐다. 그의 얼굴을 떠올리며 소설을 읽으면 두 배쯤 더 스릴 있다.


와일드

와일드

〈와일드〉

셰릴 스트레이드 지음 | 우진하 옮김 | 나무의 철학

 

아버지의 학대, 어머니의 죽음, 뿔뿔이 흩어진 가족, 26살의 이혼. 인생의 모든 것을 잃었다 생각한 셰릴 스트레이드는 어느 날 멕시코 국경에서부터 캐나다 국경에 이르기까지 4,825km에 이르는 트레킹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9개의 산맥과 사막과 황무지가 이어지는 인디언 부족의 땅, 배낭 하나를 메고 온갖 시련과 싸운 그녀가 적어 내려간 인생의 이야기.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도전, 누구도 엄두내지 못했던 길을 걷는 여정의 기록 속에 찬란한 삶의 진실이 담겨 있다.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모든 걸 걸고 한 번은 떠나야 할 길이 있음을 확인시켜 주는 감격적인 책. 이 감격을 온 몸으로 연기할 배우는 리즈 위더스푼, 최근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으로 세계를 감동시킨 장 마크 발레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글 이유진 (칼럼니스트)

영화 전문지 기자로 시작해 지금은 다양한 매체에 주로 영화와 공연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공연 현장에서 프로듀서를 하기도 하고 문화체육관광부 대변인실에서도 일했다. 복잡한 이력이지만 그저 ‘문화’ 안에 있으면 그만인 단순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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